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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전후사정

해어화, 서늘한 욕망으로 피어난 꽃, 조선의 마지막 기생

그 영화의 전후사정 - 서늘한 욕망으로 피어난 꽃. 조선의 마지막 기생, 해어화
그 영화의 전후사정 - 서늘한 욕망으로 피어난 꽃. 조선의 마지막 기생, 해어화

시간의 한 부분을 떼어 내 보여주는 영화는 시간의 기록인 역사 속에서 소재를 찾곤 합니다. [그 영화의 전후사정]에서는 영화 의 소재가 되는 주요 사건의 원인과 그 후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전후 맥락으로 이해하고 역사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 보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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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해어화]
  • 영화의 배경은 1943년,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 대성권번.
    [해어화(解語花)] 는 이곳에서 자라난 두 소녀, 소율과 연희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어두운 시대에도 생동했던 예술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줄거리나 대사보다 더욱 강렬하게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당시의 음악과 서정적인 영상인데요.
    영화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지금껏 익숙하지 않았던 광복 직전 조선의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잊혀진 음반의 발견 ‘그 노래가 내 것이어야 했어’

  •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1940 년대에 발매된 서연희 선생의 미공개 음반이 발견됐습니다.”

[해어화(解語花)] 의 시작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991년, 한 음악 프로그램의 DJ가 우연히 발견된 오래된 음반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곧 일제강점기 어느 날, 권번에서 기생들에 둘러싸인 어린 소율이 소리를 선보이는 장면으로 교차하는데요. 영화의 제목인 ‘해어화(解語花)’는 당 현종이 양귀비를 일컬은 것에서 유래한 말로, ‘말을 아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기생을 의미하는 단어죠.

# [해어화(解語花)] 줄거리, 대중가수를 꿈꾼 기생(예인)

  • (좌) 소율 (한효주 분) (우) 연희 (천우희 분)
  • (좌) 소율 (한효주 분) (우) 연희 (천우희 분)
  • “계속 가둬주세요 . 아무도 만날 수 없게...”

영화 내내 ‘복사꽃’과 ‘가시꽃’으로 상징되는 두 소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으로 사랑 받는 정가의 명인 소율과 어린 시절 아버지의 노름빚 때문에 단 돈 5원에 팔려온 연희. 둘은 대성권번에서 함께 자란, 너무나 다르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동무입니다. 당대 기생은 이를테면 오늘날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는데요. 권번에 들어가 소리와 가무를 공부해 그 실력에 따라 ‘일패’, ‘이패’, ‘삼패’ 기생으로 구분되었고, ‘일패’ 기생들은 술자리 시중이 아니라, 공연을 나가는 예인이 되었습니다. 소율과 연희가 바로 이 일패 기생이었죠. 소녀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자연스럽게 대중음악에 눈뜹니다. 이 때 유학을 떠났던 소율의 정인 윤우가 작곡가가 되어 돌아오는데요. 우연히 연희의 노래를 듣게 된 연우가 그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리게 되면서 이들의 운명은 얽히기 시작합니다. 윤우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로 식민통치를 받는 국민들의 아픔과 고단함을 어루만져 주고자 하는데요. 소율과 연희는 동시에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죠. 요즘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출연자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재능을 대중 앞에 펼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두 소녀에게, 비운의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사명감, 그리고 사랑과 질투까지 더해진 것입니다.

# 에필로그. ‘사랑, 거짓말 ...’

  • “그렇게 좋은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

영화는 다시 1991년으로 돌아가 노인이 된 소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송국을 찾아간 소율은 수십 년 만에 대중 앞에 공개된 연희의 음반과 자신의 음반을 나란히 두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데요. 가장 사랑했던 친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파멸의 나락으로 자신의 운명을 던졌던 그녀의 젊은 날은, 그보다 더 먼 과거의 어느 날 연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흐려집니다.

前後事情

영화 [해어화(解語花)] 는 일제강점기 말, 대개 독립운동사로 기억되는 시대의 또 다른 이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영화입니다. 예인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일본인에게 웃음과 몸을 팔아야 했던 게 그 시대 실제 했던 또 다른 아픔일 것입니다. 권번에서 기생들을 1패, 2패, 3패로 등급을 매겨 관리한 것도 실상은 그들을 상품으로 취급한 것이죠. 소율과 연희는 기생이 아닌 예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기생의 역할이 가지는 섹슈얼리티와 남성의 마음을 얻어 출세한다는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는) 고루한 판타지는 그녀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결국 영화는 당대의 천재들이 재능을 겨루는 구도가 아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지금과 다름없는) 욕망과 사랑에 대해 다룬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정신은 출세나 독립운동이 아닌 음악으로써 민족의 근본을 이어가고자 했던 윤우를 통해 소극적이나마 보여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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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지난 역사도 함께 시작된다

  • 당시 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했던 ‘권번’의 모습
  • 당시 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했던 ‘권번’의 모습

1940년대의 아이돌, 조선의 기생

소율과 연희가 자란 권번은 기생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곳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돌을 키우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할 수 있죠. [해어화(解語花)] 속 대성권번과 같이 좋은 권번에 들어가기 위해 추천을 받거나, 찾아와 시험을 보기도 했는데요. 인물이나 태도, 가무, 서화 등을 심사받고 입학 허가를 받더라도 입회금으로 10-20원, 매월 50전씩 회비를 내야 했습니다. 권번이 어린 기생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놀음 스케줄을 조절하는 일종의 매니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죠. 놀음에 나가는 기생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돌의 연습생 기간과 마찬가지로 4년의 수업 과정을 거쳐 시험에 통과해야 했고, 권번에서는 합격생들을 모아 '초일기(草日記)'라는 기생명단을 냈습니다. 일패 명기의 경우에는 일주일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만날 수 있었다고 하죠. 기생의 한 달 화대수입은 평균적으로 100-200원 정도였는데, 쌀 1가마에 7-8원하던 시절이니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권번에서는 규정된 수수료만 차감했으므로 본인들의 실력에 따라 큰돈을 만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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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나고 역사는 계속된다

  • 이난영 목포의 눈물 레코드판 자켓
  • 이난영 목포의 눈물 레코드판 자켓

비운의 시대를 위로한 대중음악

[해어화(解語花)] 에서는 소율로 분한 한효주가 직접 실제 존재했던 정가(正價) '일각이여삼추'를 불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무형 문화유산에 지정된 정가는 바른 노래라는 뜻으로 가곡(歌曲), 가사(歌詞), 시조(時調)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 고유의 성악곡입니다. 옛 선비들이 즐겨 불렀고, 당시엔 주로 기생들이 불렀던 노래죠. 또 당시의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과 '봄 아가씨',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조선의 마음' 역시 연희로 분한 천우희의 목소리로 불려졌는데요. 특히 ‘조선의 마음’ 1절은 그녀가 직접 작사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생 출신 가수로 기록되어있는 왕수복의 모습
  • 기생 출신 가수로 기록되어있는 왕수복의 모습
  • 기생이 ‘예인’의 자부심을 갖고 살던 시절 정가를 부르는 것만이 ‘예술’로 여겨졌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권번 기생들은 대중음악으로 진출해나갔습니다. 그 시작은 각종 전람회와 박람회에 흥을 돋우기 위해 권번 기생들을 초청한 것이었는데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조선의 특산품으로 기생을 출품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죠. 또 경인철도 개통 초기 승객 유치를 위해 주요 역 정거장마다 '평양명기 앵금' '인천기생 초선' 식의 푯말을 꽂아놓고 일종의 라이브 공연을 벌였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1930년대 이후 레코드 산업이 본격화되자 당대 명기들은 대거 레코드 업계로 진출했는데요. 전근대적 인물인 '기생'이 근대의 표상인 '대중스타'로 바뀌어가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은 라디오의 음악방송에 주로 출연했고, 소율이나 연희와 같이 음반을 취입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실제 왕수복과 선우일선이라는 인물들이 한국 대중 가요사에 기생 출신 가수로서 기록되어 있죠.

    당대를 풍미한 유행가의 작곡가 '윤우'
  • 당대를 풍미한 유행가의 작곡가 '윤우'
  • 그러나 비운의 시대,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공연 검열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 정책에서부터 시작됐다는 말이 있죠. [해어화(解語花)] 에서 연희의 앨범이 검열에 통과하지 못했듯, 당시 조선총독부는 고등경찰과(1920), 보안과(1945), 검열과(1945) 등으로 주관부서를 바꿔가며 음반에 대해 직간접적인 검열과 통제에 나섰습니다. 음반 검열과 함께 공연 현장, 공연 제작업자 등을 통해 2차 검열에도 철저했는데요. 당대 최고의 히트곡인 ‘목포의 눈물’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에도 검열에 관련된 서글픈 사연이 있습니다. 작사가 문일석은 '300년 원한 품은'이라는 가사 때문에 노래가 일본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하자 '원한을 품은'이라는 가사를 '원앙풍'이라는 단어로 바꿨습니다. 글자는 바꿨지만 원래 가사처럼 들리게 하는 수를 낸 것이죠.

    김서경 작가 (KBS 「남북의 창」, 「역사저널 그날」등)
    일러스트
    장홍탁
    이미지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뮤지엄, 언니네홍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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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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