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발산 - 강영숙

 


기획특집 봄봄 그후이야기, 봄봄 이어쓰기 강원도출신의 다섯명의 소설가가 두 주인공의 그 후 이야기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쳤습니다. 2016년 봄, '나'와'점순이'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김유정 문학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4화 발산-강영숙기획특집 봄봄 그후이야기, 봄봄 이어쓰기 강원도출신의 다섯명의 소설가가 두 주인공의 그 후 이야기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쳤습니다. 2016년 봄, '나'와'점순이'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김유정 문학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4화 발산-강영숙




점순 씨는 늦게 퇴근한 며느리를 위해 두부 조림을 만들었다. 며느리의 퇴근 시간에 맞추다 보니 저녁은 늘 밤 열 시경에 먹었다.


“발산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며느리는 저녁 밥상에서 언제나 소주 한 병을 반주로 마셨다. 자기 혼자 힘든 일을 한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리고 차려준 밥은 늘 반 정도만 먹었다. 무슨 반찬을 하든 늘 똑같은 분량을 먹었다. 술 탓인지 며느리의 목소리는 점점 더 탁해지고 몸은 빼빼 말라갔다.


“왜요? 또 땅이라도 찾았다는 건가.”


며느리는 손바닥으로 눈자위를 비비며 말했다. 사실 한두 번 당한 일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가볼 것도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오는 정기적인 소식 같은 것이었다. 점순 씨는 아버지가 남겨놓은 땅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여러 차례 고향에 갔었다. 땅 부잣집이었다는 것 때문에 처음엔 큰 기대를 하고 간 게 사실이었지만 매번 허탕을 쳤다. 이제는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술이나 몇 병 사들고 가 고스톱 치는 사람들 틈에 앉아 반나절쯤 놀다 오는 게 다였다.


“응, 이번엔 진짜라고, 나보고 와서 꼭 한번 보라고.”


“할머니 그럼 이제 우리 부자 되는 거야? 부자 되면 나 미국에 유학 보내주라.”


손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순 씨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덧붙이려다가 며느리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유학 같은 건 꿈도 못 꾼다는 걸 손녀도 며느리도 점순 씨도 다 잘 알았다. 그래서 아무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깊게 팬 얼굴 주름을 문지르며 소주잔을 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이 지직거렸다. 며느리는 소주병을 내려놓고 텔레비전 앞까지 다가가 쭈그려 앉은 채 말했다.


“빚을 내서라도 칼라 테레비로 바꿔야겠다. 답답해서 안 되겠어.”


며느리의 밥상은 금세 치우기가 어려웠다. 며느리가 멸치라도 먹게, 상을 치우지 않는 게 점순 씨의 배려라면 배려였다. 아니, 어쩌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잠도 못 자고 기다리고 있다는 시위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때는 밥상을 길게 잡고 오래 밥을 먹는 사람은 수명이 길다는 말도 덧붙였다. 며느리는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저렇게 앉아 있다가 양치질도 하지 않고 잠이 들곤 했다.

며느리는 점순 씨의 아들이 죽은 후 생계를 책임졌다. 아들이 고향에 남아 있던 땅을 모두 팔아 인근의 N시로 나오자고 했을 때 점순 씨는 아무 생각 없이 따라왔다. 모두 도시로 나가는 게 소원이던 때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N시로 온 뒤로 모든 것이 다 줄어들었다. 강물이 줄고 강폭이 좁아지고 바닥이 드러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재산도 가족도 하나씩 없어지고 죽어버렸다.

처음에 다방 주방에서 일하던 며느리는 최근에 여관으로 일자리를 바꿨다. 지금 며느리가 입고 있는, 대나무 무늬가 있는 목욕 가운도 일하고 있는 ‘미도 여관’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샴푸 통에도 린스 통에도, 손녀가 가지고 다니는 머리빗에도 ‘미도 여관’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며느리는 미도 여관 조바였다.


점순 씨는 계속 발산에 가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데리고 일하던 머슴들과는 절대로 혼인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딱 한 사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발산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솔직히 말하면 머슴들의 얼굴이 다 비슷비슷해서 누가누구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날씨가 좋았다. 점순 씨는 오후에 발산에 갈 생각이었다. 겨울 추위가 다 지나간 것처럼 느끼게 하는 훈훈한 날씨였다. 점순 씨는 화분을 살펴보러 옥상에 올라갔다. 긴 겨울 동안 쌓인 먼지가 더께처럼 앉은 카펫을 벗겨내도 될 것 같았다. 화초가 얼어 죽어 있지만 않기를 바랐다. 팔에 힘을 주어 카펫을 벗겨내려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여기저기 다세대주택의 작은 창들이 다투어 열렸다가 닫혔다. 고양이가 매우 놀라 달아났다.


“여기는 민방위 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지역에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점순 씨는 조금 전까지 주변을 맴돌던 고양이부터 찾았다.


“나비? 나비야 어딨니? 얘가 어디 갔지.”


점순 씨는 여러 번 고양이를 불렀다. 플라스틱 문으로 가려둔 간이 창고 문도 열어보고 김장용 붉은 양동이도 들춰봤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옥상 철제 난간 안의 공간에는 고양이가 숨을 곳이 없어 보였다. 옥상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옥상에 더 있다가는 떨어지는 폭격이라도 맞을 것 같았다. 집에는 점순 씨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옥상 계단에서 거의 다 내려갔을 즈음 전화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점순 씨는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난데, 꼼짝 말고 집에 있어! 지금 전쟁 난 거 같아. 나 도서관에 있다가 겁나서 할머니한테 전화하는 거야. 꼭 집에 있어.”


손녀의 전화였다.


“언제 집에 오니?”


“할머니 절대 밖에 나가지 마. 엄마가 올 때까지 바깥에 나가지 마.”


공중전화기 소리가 달칵하고 들렸다. 점순 씨는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놓고도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내 한복판의 2층짜리 다세대주택에 세 들어 산 지 5년째였다. 혼자 있는 게 무서운 적은 없었는데 무서웠다.


‘전쟁이 나면 어쩌지, 발산엔 언제 가지.’


점순 씨는 중얼거렸다.


전쟁이 난 건 아니라는 걸 저녁 뉴스를 보고 알았다. 과자 상자만한 흑백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키가 큰 북한 공군이 개장수 같은 모자를 쓰고 비행기에서 막 내리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북한의 공군 대위가 미그 19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북한 사람들은 참 잘 생겼네.

점순 씨는 또 중얼거렸다.


점순 씨는 괜히 다급해졌다. 집안일도 그렇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밤이 되었다.


“붕어빵은 없구나.”


오늘은 손녀가 빈손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막 방으로 들어가 버린 손녀의 등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듣지 못한 줄 알았는데 곧 손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오늘 북한 공군이 넘어와서 지금 붕어빵 같은 거 안 팔아. 바깥이 완전 다 으스스하다니깐.”


점순 씨는 대학생인 손녀가 사 들고 들어오는 붕어빵 먹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인사도 없이 쏜살같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릴 때는 몹시 서운했다.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할 때 손녀의 걸음걸이는 발목에 모래주머니라도 매단 것처럼 무거웠다. 어떤 때는 술이 떡이 된 채로 기어들어 와 가방도 현관에 버리고 문턱에 턱을 걸친 채 붕어빵이 든 봉투를 건네줄 때도 있었다. 술에 약한 건 아들을 닮아서 그렇다는 게 점순 씨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붕어빵이 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점순 씨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거기 발산 봉필 아재 따님 점순 씨라고 있습니까?”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군 공군 대위의 뉴스가 계속 나왔다. 그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장면에서 화면이 검게 꺼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오늘은 전쟁이 나는 줄 알았어요. 내일 가지요.”


점순 씨는 전화를 끊고는 또 붕어빵 생각을 했다.


발산으로 가는 버스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들면서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엉덩이가 계속 들썩였다. 애써 롤을 말아 올린 머리며 오랜만에 차려입은 옷차림이 점점 흐트러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발산에 오는 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시내에서 장을 봐 발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외에는 손님도 없었다. 장바구니 위로 삐져나온 울긋불긋한 조화가 보였다. 벌초 때 아버지 산소에 꽂아달라고 산 것이었다.

점순 씨는 손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춰보고는 옆자리를 둘러봤다. 조화 때문인지, 봄 때문인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비포장도로 양쪽으로는 띄엄띄엄 떨어져 집들이 있고 양계장과 축사들, 평범한 밭과 논뿐이었다. 버스가 서고 점순 씨는 내렸다. 천 가방 안에 넣은 소주병과 과자 두 봉지, 담배 한 상자가 저절로 푹 쓰러지는 소리를 냈다. 평지를 어느 정도 걸은 뒤 산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옆에 붉은 흙이 쌓여 있었다. 약간 차가운 바람이 뺨에 달라붙자 머릿속도 이내 시원해졌다.


마을은 푹 꺼진 듯, 산 위에서 보면 전체가 다 드러나지 않고 일부는 조금씩 숨어 있었다. 전쟁 때 점순 씨는 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전쟁 초기에는 산에 얼마나 오래 숨어 있었는지 나중에는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전쟁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점순 씨는 고향에 살았다.

도시가 아무리 변해도 시골 사람들은 여전히 땅을 기반으로 살아갔다. 돈이 있고 자기 땅을 소유한 사람들은 집을 고치거나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을 짓고 살았다. 점순 씨는 언덕에서 내려가면서 마을의 중심에 있던 우물과 집터 쪽을 바라봤다. 지금은 겨우 집터만 알아볼 수 있었다.

점순 씨는 가끔 생각했다. 태어날 때는 아무 데서나 태어나도 죽을 자리는 죽기 전에 먼저 알고 싶었다. 땅에서는 왠지 퍽퍽 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실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이 차가 얼마나 나는지 알 수 없지만, 점순 씨는 오빠라는 사람들이 한 방에 들어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보고도 그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 같이 늙어가는 와중에 오빠니 동생이니 하는 것도 우스웠다.


“오느라고 고생했네. 어서 들어와.”


다들 술에 취해 있었다. 레퍼토리는 뻔했다. 아버지가 남긴 땅을 찾았으니 제반 비용 천만 원을 대주면 그걸로 행정 문제를 처리하고 몇 십 억을 받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목이 말라서, 물 좀 마시고 들어갈게요.”


다리가 후들거렸다. 점순 씨는 남자들이 모여 소주를 마시며 화투를 치는 방으로 들어갔다. 소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이것도 드세요.”


점순 씨는 가방에 든 소주와 막걸리, 과자 봉지를 꺼내 화투를 치는 사람들 쪽으로 밀어놓았다.

검고 작은 얼굴의 오리지널 시골 사람들이 방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자고 내일 아침에 갑시다.”


전화한, 오빠라는 사람이 말했다.


“며느리가 직장에 다녀서 손녀 밥을 해줘야 합니다. 난 그냥 저녁 버스로 시내로 나갈게요. 보긴 뭘 봐요. 봐야 그렇지.”


“그럼 지금 가볼까? 있다 저기 일만이랑 같이 시내로 나가면 되겠네.”


점순 씨는 구석에 앉은, 유난히 동그란 얼굴의 남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순간 남자도 점순 씨를 쳐다봤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동그란 얼굴과 빠르게 움직이던 몸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부리던 머슴이 많았지만 일을 제일 열심히 한 건 일만 씨뿐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딸을 주겠다던 아버지의 거짓말을 믿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고 점순 씨는 알고 있었다. 가족도 있고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최근에 발산에 자주 왔다.


“이제 그냥 오라고 해요. 땅 있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봄이 오면 아버지 묘소 벌초 좀 해 달라고 오빠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그 돈이 곧 술값으로 날아갈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버스를 타겠다고 일어선 사람은 점순 씨와 남자뿐이었다.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서거나 말을 걸지 않고 모르는 사람처럼 언덕을 넘고 평지를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담배를 피워 문 채 도로 턱에 걸터앉아 산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점순 씨는 버스 정류장 앞 가겟방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버스가 오는지 보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북한 군인이 전투기를 몰고 남한으로 온 뉴스가 계속 나왔다.


고향에 오면 조금은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게 사실이었다. 점순 씨는 체기라도 있는 것처럼 자꾸만 메슥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훑어 내렸다. 버스가 오고 남자는 앞자리에, 점순 씨는 중간쯤 자리에 앉았다. 내내 체크무늬 점퍼를 입은 남자의 어깨가 반쯤은 의자 바깥으로 떨어지려고 해서 조마조마한 기분이었다. 점순 씨는 창밖을 내다봤다. 다리를 지나고 터널을 지나고 다시 다리를 지났다. 졸았다가 깬 것 같은데 버스가 어느새 시내 터미널에 도착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점순 씨는 잠깐 허둥댔다.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아니, 이 노인네가 어딜 갔지.’


점순 씨는 혼자 중얼거렸다. 버스 후미 쪽에도 앞쪽에도 보이지 않았다. 점순 씨는 구겨진 옷을 소리 나게 털며 터미널 바깥으로 나가는 문을 통과했다. 중국식으로 붉은 기둥 두 개를 이어붙인 문 앞에 남자가 서 있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뭔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건강하시죠?”


점순 씨가 먼저 한 말이었다.


“건강하지요. 요즘엔 통 입맛이 없어서요.”


“왜 입맛이 없어요?”


점순은 어릴 때 남자가 밥을 먹던 모습을 떠올렸다. 뭐가 문제인지, 점순 씨가 걷다가 자주 넘어져서 머리에 이고 가던 밥 광주리를 엎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흙이 묻은 밥을 잘도 먹던 사람이었다. 남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조용해졌다. 둘에게 조금 틈이 생겼다.


“어디 살아요? 내가 모셔다드릴게.”


남자가 말했다.


“손자들도 있죠?”


남자가 다시 물었다.


“봄이 되면 손녀가 대학교 3학년이 돼요. 난 아시다시피 학교는커녕 글자조차도 못 읽잖아요. 그런데 똑똑한 손녀가 있어 모든 면에서 안심이 됩니다. 학교에서 올 때 맨날 붕어빵을 사와요. 나 먹으라고.”


점순 씨는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설이 지나고 해가 확실히 좀 길어진 것 같았다. 불을 환하게 켠 모텔촌 앞을 지나고 타이어 가게와 주유소를 지났다. 식당가와 술집들이 환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제가 밥 사드리고 싶은데 같이 가실래요?”


점순 씨가 물었다. 남자가 가다가 서서 몸을 돌리고 웃는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남자의 몸은 수평인 땅보다 왼쪽으로 조금 기운 채 서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식당들 많아요.”


점순 씨가 한 손을 들어 앞길 쪽을 가리켰다.


“그럴까요. 나도 동생한테, 아니 그쪽에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데…….”


봄봄 이어쓰기 네번째 이야기

점순 씨는 전에 손녀와 같이 갔던 원불교 사당과 화장품 가게 옆 중국집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벽이 온통 붉은색 비단 벽지로 둘러싸인 아늑하고 따뜻했던 실내. 지금이 아니면, 봄이 지나면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순 씨는 남자와 함께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강영숙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강영숙소설가


1967년생

소설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아령 하는 밤』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등






  • 『봄봄』


    1935년 발표된 단편소설 「봄봄」은 김유정 문학의 본령인 해학과 향토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점순이와 혼례를 약속하고 데릴사위로 들어간 ‘나’는 차일피일 혼례를 미루는 장인 봉필영감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담판을 지을 요량이었던 ‘나’는 장인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엔 지게막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게 되는데요.

    이야기는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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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5-0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