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소쩍새 한 마리가 울고 있다.
봄날이 다 가고 있는데도 저 소쩍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다. 다른 새들은 초봄에 일찌감치 짝을 찾았는데 저 소쩍새는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울려면 어디 먼 데 가서 울지 꼭 우리 집 뒷산에서만 운다. 그것도 새벽까지. 얼마나 울었는지 목까지 쉬었다. 소쩍— 소쩍— 이렇게 우는 게 아니라 이가 다 빠진 노인네가 말하는 것처럼 울고 있다. 우는 건지, 노래하는 건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내 귀에는 꼭 흐느끼는 것처럼 들린다. 대체 저렇게 울면 어느 암컷이 좋다고 하겠는가. 나라도 찾아가지 않겠다. 하는 짓이 꼭 마당 옆 행랑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코나 드렁드렁 골며 잠을 자는 바보 멍텅구리 종포1)와 꼭 닮았다. 아이고! 저 바보 멍텅구리 생각을 하니 오던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으면 뭐하나. 생각하는 건 어린앤데.”
“언니, 누구 얘길 하는 거야?”
“니는 몰라도 된다.”
“나도 알 건 안다. 종포 아저씨 말하는 거지?”
“꼬맹인 잠이나 자라!”
“근데 종포 아저씬 언니 신랑이야, 우리 집 머슴이야?”
점순은 이불 속에 누워 눈만 말똥히 뜬 여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톡 먹였다. 여동생은 자라처럼 이불 속으로 머리를 감췄다. 점순은 이불을 밀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생각할수록 열불이 치솟았다. 문창호지를 통과한 달빛이 방안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는 밤이었다. 목이 쉰 소쩍새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아휴, 저것도 노래라고!”
“삼 년 동안이나 불렀으면 좀 나아지기라도 해야지…… 갈수록 엉망이야!”
“언니는 키가 하나도 안 컸잖아.”
“야, 엄마가 참새만 한데 내 키가 어떻게 크니!”
보름에 가까운 달이 마당을 훤하게 비추고 있다. 점순은 토방의 테두리에 올망졸망 놓인 호박돌 위에 걸터앉아 실레마을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본다. 키가 커지게 해달라고 달에게 빌고 또 빌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마을 입구의 서낭당에 가서 빌었고 금병산 중턱의 산신당에 가서도 절을 한 뒤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비볐다. 그게 벌써 이태가 되었건만 키는 늘 제자리다. 키는 이미 다 자라버린 게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안의 벽에다 눈금을 그어놓고 틈만 나면 재어보았지만 다 헛수고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아버지의 치밀한 꿍꿍이였다는 것을. 실레마을에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 행랑에서 코를 고는 저 바보 멍텅구리 종포밖에 없다. 목이 쉰 소쩍새는 잠깐 쉬었다가 다시 울고 점순은 아직 다 차오르지 않은 달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 한숨을 올려 보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달이 바보 멍텅구리의 얼굴로 변해버리다니. 점순은 두 손으로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달 속의 종포는 꾀꼬리보다 더 감미로운 소리로 노래하고 있으니……
“……밤이 늦었는데.”
점순이 발끝으로 톡톡 건드려 잠을 자고 있던 종포를 깨웠다. 종포는 놀란 얼굴로 눈곱을 떼고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점순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점순은 문고리를 걸고 등잔불빛이 마당으로 새어나갈까 염려하여 종포가 덮고 있던 담요로 문을 가렸다. 방안은 한결 아늑해졌다.
“……이게 다 뭐야?”
“야참 가져왔어.”
“장인님이 알면……”
“자고 있어. 빨랑 먹기나 해!”
목 쉰 소쩍새가 우는 밤 점순은 막걸리를 잔 가득 따라주고 쑥떡이 담긴 그릇을 종포 앞으로 내밀었다. 잠이 덜 깬 얼굴의 종포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고 점순은 그 모습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다 마실 때까지.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종포는 점순의 표정을 읽느라 바빴다. 오밤중의 이 상황이 대체 어찌된 까닭인지 몰라서. 잔을 비우고 트림을 내뱉자 점순이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 잔 줘.”
“술 마실 줄 아나?”
“답답해서 마실란다!”
“근데 점순이 니는 나이도 한참 어린 게 왜 꼬박꼬박 반말을 하냐?”
“니 하는 짓이 애 같아서 그런다.”
“애라고? 내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행랑이었지만 그래도 깊어가는 봄밤에 아버지 엄마 몰래 종포랑 마시는 술은 나름 운치가 있었다. 낮에 김매느라 다리가 아프다며 슬그머니 한쪽 다리를 내밀면 종포는 주물러주기는 고사하고 찔끔 놀라 뒤로 물러나다가 결국 바람벽까지 밀려나버렸다. 저러니 바보 멍텅구리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점순은 한숨을 토한 뒤 작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뒷산의 소쩍새는 흑— 흑— 울었다.
“니는 내가 좋나?”
“……좋다.”
“나랑 성례를 올리고 싶나?”
점순은 바람벽에 막혀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종포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막걸리 냄새를 풍기는 입으로.
“그래.”
“좋아. 그럼 지금부터 니도 뭉태에게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우리 집 상황을 얘기해줄게.
우리 집은 아들이 없다. 딸만 셋이다. 그건 뭐냐 하면 일할 남자가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야.
아버지는 우리 언니가 열 살 때 처음 데릴사윌 들였어.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고. 언니는 재작년 열아홉 살에 시집갔어. 그동안 들인 데릴사위가 총 열네 명이고. 아버지가 돈 한 푼 안 쓰고 데릴사위들을 십 년 동안이나 공짜로 부려먹은 거지. 내가 열 살이 되자 이번엔 나한테 데릴사윌 들였지. 이 방에서 언니의 데릴사위와 내 데릴사위 두 명이 함께 지낸 적도 있어. 니 이전에 내 데릴사위가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딱 일 년을 채우고 도망가 버렸다. 아버지 의돌 눈치 챈 거지. 그리고 지금 니가 세 번째야.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지?”
“햇수로 치면 사 년. 정확히는 삼 년 칠 개월째.”
“그건 정확히 기억하네.”
점순은 쑥떡을 먹었고 종포는 막걸리를 마셨다. 목이 쉰 소쩍새는 제 목소리로 울지 못하고 계속 흐느끼기만 했다. 쑥떡을 삼킨 점순은 다시 물었다.
“내 동생 나이가 몇인지 알아?”
“……여섯 살.”
“니 나이는 올해 몇이야?”
“스물여섯.”
“그래. 그럼 니랑 나랑 계산상으론 언제 성례를 올릴 것 같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장인님 맘에 달렸는데.”
“아휴, 속 터져! 그래서 니가 바보 멍텅구린 거야! 이 바보야, 아무리 빨라도 내 동생이 열 살이 돼야 데릴사윌 들일 거 아냐. 아버지한텐 그래야 새 일꾼이 생기는 거고. 그럼 몇 년 남았냐?”
종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 년.”
“사 년 뒤면 니 나이가 몇 살이야?”
“……서른.”
“그럼 총 몇 년을 이 집에서 데릴사윌 사는 거냐?”
“팔 년……”
종포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소쩍새는 이제 지쳤는지 울음의 간격이 점점 멀어졌다. 한 번 흐느끼고 한참을 쉬었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흐느꼈다. 점순은 실의에 잠긴 채 바람벽에 기대 있는 종포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긴 채.
“내 키가 가을이 되면 요만큼 커질 거 같아?”
점순이 벌린 엄지와 검지의 넓이를 종포가 헤아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맞아. 양쪽에서 잡아당긴다 해도 안 커질 거야. 만약에 커진다 해도 아버진 내 동생이 최소한 열 살이 돼 데릴사윌 들일 수 있을 때까진 절대 성례를 올려주지 않을 거야. 이유만 만들면 이유니까 말이야. 니가 다른 데릴사위들처럼 도망가면 새로 사람을 들일 테고. 그때까지 버틸 자신 있어?”
종포는 목이 쉰 소쩍새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바보 멍텅구리 같으니. 거짓일망정 고개를 끄떡거리지 않네. 괜히 모든 걸 알려줬나. 이러다 아침 해 뜨기도 전에 자기 집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점순은 억지로 침을 끌어 모아 혀로 입술을 적셨다. 이불 속으로 발을 디밀어 종포의 발을 찾아 발가락으로 슬쩍 건드렸다.
“나는 니가 좋아. 니는?”
“……나도. 하지만……”
“알아. 니 입장이 어떤지. 그래서 내가 이 오밤중에 니 방에 찾아온 거야.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어떤 방법이 있는데?”
“우리가 일을 저지르면 된다.”
“무슨 일?”
“아이고, 이 바보 멍텅구리!”
점순은 상을 옆으로 밀어놓고 바람벽에 기댄 채 오도 가도 못하는 종포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기댔다. 몸살에 걸린 것처럼 종포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소쩍새가 기운을 회복했는지 소쩍— 하고 제법 운치 있게 울었다.
점순은 이불을 끌어와 나란히 뻗은 다리를 덮었다. 두 사람의 허벅지가 이불 속에서 맞닿자 서로의 따스한 체온이 전해졌다. 소쩍— 소쩍— 오랜만에 신이 난 듯 소쩍새가 노래했다. 점순은 종포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듬직한 사내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외양간을 뛰쳐나온 화소 한 마리가 쿵쿵거리며 달려가는 것 같았다. 점순은 이불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종포의 손을 자신의 봉긋한 가슴으로 끌어왔다. 아무리 성질 사나운 화소도 부드러운 것 앞에서는 꼬리를 낮추는 법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사내들은 거길 잡아당기면 그렇게 아프나?”
얼마 전 아버지와 종포가 싸우다가 아랫도릴 잡아당기자 서로 번갈이 할아버지! 소리를 내뱉은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프다.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그래?”
“오죽하면 장인님이 내게 할아버지라고 불렀겠어.”
“지금은 괜찮나?”
“괜찮다.”
점순은 이불로 가려진 종포의 아랫도리 근처를 바라보았고 종포는 점순의 젖가슴에 올려놓은 손을 떼지 않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소쩍새는 이제 졸음이 가득 묻어 있는 듯한 소리로 노래했다. 어쩌면 이 봄의 마지막 소쩍새 울음일 것이다.
“아버지가 엄청 세게 잡아당기는 거 같던데…… 진짜 괜찮나?”
“괜찮다니까!”
“……그럼 진짜 괜찮은지 어디 한번 보자?”
“……왜 보려 하는데?”
“만약 고장 났으면 니 소원인 아들 못 날 거 아냐.”
“고장 안 났다!”
그때 천둥이 치듯 문이 벌컥 열렸다. 문고리가 뽑혔고 문을 가렸던 담요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바깥에서 와락 몰려든 바람에 등잔불이 애처롭게 춤을 추다가 꺼져버린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지게작대기를 든 아버지였다.
한달음에 방으로 뛰어든 아버지의 지게작대기가 도리깻열처럼 점순과 종포에게로 날아왔다. 천장이 낮아 걸리는 데가 많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게작대기에 맞으면서도 점순은 행복했다. 종포가 너럭바위처럼 넓은 가슴으로 참새만 한 점순을 어느새 꼭 껴안아주었기 때문이다. 매질이 멈추지 않는데도 종포가 평소처럼 아버지께 대들지 않고 그 매를 묵묵히 견디는 것 또한 신기했다.
점순은 종포의 품에서 따뜻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소쩍새 우는 흐뭇한 봄밤이었다.
〃 작가소개 〃
김도연소설가
1966년생
소설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마지막 정육점』 등
『봄봄』
1935년 발표된 단편소설 「봄봄」은 김유정 문학의 본령인 해학과 향토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점순이와 혼례를 약속하고 데릴사위로 들어간 ‘나’는 차일피일 혼례를 미루는 장인 봉필영감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담판을 지을 요량이었던 ‘나’는 장인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엔 지게막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게 되는데요.
이야기는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