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구가 봉필영감 집에 세 해 일곱 달이나 머슴처럼 일을 해주고도 장가들기는커녕 오히려 장인영감한테 죽도록 매를 맞고 점순이한테까지 귀가 떼이도록 봉변을 당한 게 그 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점순이의 키가 조금도 자라지 않았는데도 성구는 장가를 들었다. 말만 데릴사위이지 절대 성례를 시켜줄 봉필영감이 아니지만, 그것도 이제 어쩔 것이냐는 듯 떠받들 듯이 장가를 들어 이 마을 저 마을 무용담처럼 소문이 났다.
지난 봄 장가도 들지 못하고 봉변만 당한 건 한 동네에 사는 건달 같은 뭉태의 말을 들어서였다. 구장 집에 다녀온 다음 성구가 심통이 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봉필영감이 다시 발길질을 해대고 미련퉁이 같은 성구는 그걸 그대로 맞고만 말았다.
그 얘기를 뭉태 집에 마실 가서 했더니 뭉태가 오히려 펄펄 뛰었다.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둬?”
“그럼 어떡하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루 박아 놓지 뭘 어떡해?”
뭉태라면 정말 그랬을지 모른다. 괜히 자기가 화가 난다며 허공에 주먹질하다가 등잔까지 칠 만큼 열을 올렸다.
“남의 일이라도 분하다. 이 자식아, 우물에 가 빠져 죽어.”
그래서 뭉태의 말을 절반 듣고, 자기와 성례를 시켜주지 않으면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던 점순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장인의 쇰도 잡아채고,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사타구니까지 확 움켜 챘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당연히 고소해 할 줄 알았던 점순이까지 달려들어 성구의 귀에서 피가 나도록 귀때기를 잡아당겼다.
성구도 이제 그것으로 봉필영감한테 쫓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보아도 그랬다. 장인의 사타구니를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게 잡아당긴 놈에게 딸을 줄 리가 만무했다. 그냥 내쫓고는 사경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런 욕심쟁이 봉필영감의 딸 점순이가 성구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봉필영감은 이참에 삼년 일곱 달 동안이나 헛머슴을 산 성구를 내쫓고 새로운 데릴사위를 구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일을 꾸미려고 했다. 봉필영감이 그간 점순이와 성구 두 사람 사이를 악착같이 내외시켜온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성구를 내쫓는 걸 막은 사람이 점순이었다.
“그러기만 해봐. 내가 혀를 꽉 깨물고 죽을 거니까.”
점순이는 그 말을 봉필영감에게 직접 하지는 못하고 어머니에게 했다.
“어이구, 말이 그렇지 혀 깨문다고 사람이 죽는다니?”
“왜 안 죽어? 꽉 깨물면 죽지.”
“백날 깨물어봐라, 사람이 죽는가.
혀 깨물어봐야 입에 피나는 거 말고는 없어.
말만 혀 깨물고 죽는다고 하지 정말 혀 깨물고 죽는 사람도 없고.”
“그럼 어떻게 죽어?”
“그게 딸이 어미한테 물을 소리냐?”
“엄니한테 묻지 않아도 알아.
성구 내보내고 다른 사람 들이기만 하면
저 윗말 저수지에 가서 확 빠져죽을 테니까.
다른 사람 들이려고 성구 내보내기만 하면 이 집에 나 없는 줄 알아.”
그 말을 점순이 어머니가 봉필영감에게 했다. 봉필영감도 처음엔 성구를 내보낼 생각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굳이 그렇게 해서 얻을 이득도 없었다. 성구보다 일을 더 잘하는 데릴사위야 천지사방에 말을 놓으면 어쩌다 구할 수 있겠지만, 봉필영감네 전답을 성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전답을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한 여름 장마 때 논마다 물이 넘치려 할 때 어느 논의 논둑이 제일 약한지, 그래서 어느 논의 논둑부터 물꼬를 봐야 하는지, 또 물꼬를 막아 물을 가둘 때는 또 어느 논부터 그득 채워야 하는지, 적어도 두 해는 그 집 논을 내 논처럼 관리해야 아는 일이었다.
밭에 키우는 작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곡식이 씨 뿌린 대로 저절로 농사가 되는 게 아니었다. 어느 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는 주인이 알아서 결정하겠지만, 그 밭 어느 쪽에 거름을 실하게 내야 할지, 머슴이든 데릴사위든 일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일이었다. 그 점에서 성구만한 데릴사위도 없고, 성구만한 일꾼도 없었다.
지난번에 장인 사타구니를 움켜쥐어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게 한 성구는 잠시 실레마을을 떠나 자기 동네로 갔다. 그런 성구를 봉필영감은 점순이 때문에라도 어쩌지 못해 다시 불러와야 했다. 사랑방 문 앞을 지날 때 점순이의 입이 한 발은 나와 있었다.
성구를 다시 부르는 데는 봉필영감의 의뭉스러운 계산속도 한몫 거들었다. 점순이 나이 열여섯이고 점순이 밑에 끝순이는 이제 겨우 여섯 살이다. 앞으로 4년은 더 성구를 일꾼처럼 부려먹은 다음 성례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끝순이가 열 살이 되고, 아무리 어려도 최소한 그 나이는 돼야 다시 어디 가서 성구처럼 미래의 끝순이를 데려갈 데릴사위를 구할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실 열 살이면 너무 어려 사람이 붙을지 알 수 없다. 봉필영감 욕심대로라면 점순이의 키와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끝순이가 열두 살이 될 때까지는 성구를 사경 없는 머슴으로 붙들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성구는 이 집의 큰딸이 시집을 가고 점순이가 열두 살 적에 데릴사위로 들어왔다. 그 전에 뜨내기 일꾼 두 녀석이 헛머슴을 각각 일 년씩 살고 갔다. 애초 약조를 사경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 자란 딸을 주는 것이라 두 녀석 다 한 푼 사경을 받지 못했다. 점순이의 키는 지금도 고만만한데 그때는 더 작았다.
성구는 다시 봉필영감 집으로 불려가 처음 데릴사위 약조를 할 때처럼 단단히 약조를 했다. 성구가 약조를 받은 게 아니라 봉필영감이 성구한테 다시 약조를 받았다.
“니 이쁘다구 다시 부른 거 아니다.”
그러면 논에 일이 급해서 불렀슈?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난번 니가 한 행동을 보면 그냥 내쳐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그간 정리를 생각해 내가 참자 하고 너를 불렀다.”
어디 또 얘기해 보슈.
그런 심사로 성구는 봉필영감 앞에 눈만 멀뚱멀뚱하고 앉았다.
“쟤 나이 열여섯이다.
조금만 더 자란 다음 성례시키겠다고 하면
너 아니어도 장정들이 마당 가득 줄을 선다.”
어디 마당뿐이겠슈? 저 한길까지 내서겠쥬.
“그래서 말인데, 너 지난번 약조대로 이 집 데릴사위 노릇을 계속하려면
일 열심히 하는 건 둘째 치고 우선 어른 공경하는 범절부터 익혀야 할 게다.
나한테도 그렇고, 점순이 어미한테도 부모처럼 깍듯해야 한다, 그 말이다.
약조할 수 있겠니?”
“예. 지난번엔 지가 잘못했구만요.”
“쉽게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정말이구만요.”
“그리고 또 하나 약조를 해야 한다.
지난번 일이 있은 마당에 다시 불렀으니 일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겠구만요.”
“또 그리 쉽게 대답하지 말고.”
“일이야 지금도 동네 상일꾼인데요 뭐.”
“그리고 나도 너에게 앞으로 다른 말 나오지 않게 단단히 약조를 하마.”
“무슨 약존데요?”
“마당가 추녀 기둥에 지금 점순이 키를 재놓았다.
거기에서 많이도 말고 두 치만 더 크면 이번 가을에라도 성례를 시켜주마.
그 자리도 기둥에 표시해두었다.”
“두 치요?”
“그래 두 치.”
성구가 아무리 모자라 보여도 그 두 치가 점순이가 스무 살이 아니라 스물다섯이 되어도 자라지 못할 키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구는 알았구만요, 하고 순순히 약조했다. 그러자 봉필영감 얼굴이 대번에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너는 나한테 단단히 걸린 거다. 그런 기색이라는 걸 성구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구는 그 약속을 쉽게 해주었다. 지난번 그 일이 있고 고향 마을에 갔을 때 꾀돌이 삼보가 점순이의 키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닌 비책을 일러주었기 때문이었다.
장인 사타구니를 잡은 일로 흠씬 두들겨 맞고 고향으로 오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지 말지 꾀돌이가 말해주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점순인가 뭔가 그 영감 딸이 너를 좋아해?”
“그건 틀림없어. 지난번 사단이 난 것도 사실은 점순이가 부추겨서 일어난 일이니까.”
“장인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지라고 딸이 시켰단 말이야?”
“그렇게 시킨 건 아니지만, 쇰지를 잡아 뽑으라고 시켰거든.”
“그럼 다 된 거야. 콩단만한 점순이 키 클 때 기다려봐야 해도
안 진 하늘에 별따기고, 너 재 너머 기태 어른 알지?”
“알지, 우리 동네에 그 양반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럼 그 양반이 어떻게 장가를 들었는지도 알지?
키가 숫돌마냥 자라지 않는 사람 키 클 때 기다려봐야
너는 그 집 여섯 살짜리 막내딸 열두 살 될 때까지 헛머슴 사니까 기태 어른 본받으라고.”
아하, 성구는 비로소 무릎을 쳤다. 봉필영감이 다시 보자는 말에 순순히 따른 것도 삼보의 말을 듣고서였다. 기태 어른은 총각시절 옆집의 열여섯 먹은 딸과 여름이면 늘 같이 소를 먹이러 다니곤 했다. 산에 손을 풀어놓고, 부근 밭에서 일하다가 해질녘에 소를 끌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 해 여름이라고 했다. 맑은 날이 갑자기 안개가 끼며 음랭해지자 기태 총각은 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날씨만 음랭하지 비가 올 것 같지도 않고 안 올 것 같지도 않은 일기였다. 비도 내리지 않는데 그냥 소를 끌고 가기가 뭐해 기태 총각은 좀 더 기다리자는 심정으로 낮 동안 햇볕이 따뜻하게 달구어놓은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치듯 앉았다. 그러자 두 팔을 겨드랑이에 넣고 입술을 오돌오돌 떨던 옆집 월순이가
“알지, 우리 동네에 그 양반 모르는 사람이 있나.”
하면서 콩 잎사귀에 작은 개구리가 올라앉듯 기태 총각의 넓적다리에 폴짝 올라앉더라고 했다.
그날의 일은 아니지만, 그해 가을 기태 총각이야말로 월순이 아버지와 오빠에게 지게작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는 일로 늦가을에 성례를 했다. 꾀돌이 삼보가 그 얘기를 해준 것이었다.
“그 집 딸 열여섯이면 시집 갈 나이 되었네.
춘향이도 열여섯에 이도령을 만났고, 우리 동네에도 열여섯에 시집 장가간 사람 숱하다.
그러니 안 크는 키를 키울 생각 말고
그 집 딸 엉덩이와 허리도 넓다며 그거나 더 넓힐 구구를 해라.”
다시 봉필영감 집에 들어온 성구는 여름 내내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했다. 한 번도 꾀를 부리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엔 소가 둘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 봄 이후 저 눔이 정말 마음을 잡았구나, 하고 봉필영감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럴수록 성구는 더 열심히 일했다.
늦여름 논에 피를 뽑고, 밭에 강낭콩 걷어 들이고, 감자를 캘 때쯤 성구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봉필영감의 점순이 내외단속도 그만큼 느슨해졌다. 또 성구가 일만 열심히 할수록 논가와 밭가로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이 바보, 언제까지 일만하고 말텐가”
타령도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음랭한 날이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먼 산의 안개가 몰려오고 날까지 오슬오슬해지는데 점순이가 밭가로 점심을 가져왔다.
“이 바보, 언제까지 일만하고 말텐가?”
성구가 점심을 다 먹고 나자 점순이가 그릇을 챙기며 툴툴댔다.
“니두 춥지?”
“누가 춥다고 했나? 일만 하고 말거냐고 했지?”
“추우면 여기 와 폴짝 앉아봐. 그러면 나도 니 말대로 일만 하지 않지.”
“증말루?”
“그래. 증말루.”
그날 하루만의 일은 아니었다. 천둥과 번개가 잦으면 비가 내리는 법이었다.
그해 늦가을까지도 점순이의 키는 늘 그만만 했다. 대신에 눈에 띄게 허리가 늘어났다. 제일 먼저 눈치를 챈 것은 점순이 어머니였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봉필영감 역시 딸의 배가 불렀다고 동네 사람들 다 보는 앞에 우리 집 처녀 애 뱄소, 하고 지난번처럼 성구를 팰 수도 없었다.
그해 가을 거두미를 모두 끝낸 늦가을 볕 좋은 날, 성구와 점순이의 잔치가 있었다. 지난 봄 추녀 아래 봉필영감이 표시해준 점순이의 키 눈금자리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정말 손톱만큼도 자라지 않았다.
끝순이는 콩단 같은 점순이 어릴 때보다 더 작아 팥단만 했다.
“이구, 내가 내 꾀에 넘어갔지.”
봉필영감의 한숨소리였다.
〃 작가소개 〃
이순원 소설가
1958년생
소설 『수색 그 물빛무늬』 『은비령』, 『19세』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워낭』 등
『봄봄』
1935년 발표된 단편소설 「봄봄」은 김유정 문학의 본령인 해학과 향토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점순이와 혼례를 약속하고 데릴사위로 들어간 ‘나’는 차일피일 혼례를 미루는 장인 봉필영감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담판을 지을 요량이었던 ‘나’는 장인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엔 지게막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게 되는데요.
이야기는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