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봄봄하다 - 전상국

 

기획특집 봄봄 그후이야기, 봄봄 이어쓰기 강원도출신의 다섯명의 소설가가 두 주인공의 그 후 이야기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쳤습니다. 2016년 봄, '나'와'점순이'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김유정 문학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1화 봄봄하다-전상국기획특집 봄봄 그후이야기, 봄봄 이어쓰기 강원도출신의 다섯명의 소설가가 두 주인공의 그 후 이야기를 다양한 상상력으로 펼쳤습니다. 2016년 봄, '나'와'점순이'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김유정 문학의 감동과 여운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1화 봄봄하다-전상국

“점순이 갸가 시집 안 간다네.”

“거 먼 소리야? 즈 아버이가 정해들인 데릴사위1) 칠보는 으쩌구?”

“칠보가 즈 아버이 거시길 할아버지! 소리 나게 움켜잡았다니 그 딸루서 그럴 만두 하지.”

“아니, 즈 아버이 거시기 하구 지 시집가는 거 하구 뭐가 어때서? ”

“허긴, 둘이서 거시기 잡구 쌈한 일만 해두 그래. 욕필이 영감이 먼저 칠보 거시길 잡았다는 게야. 그러니까루 영감이 칠보한테 내 거시기 움켜쥔 거 다 용서하구 성례시켜 줄 테니 일이나 잘 하라구 했다잖아.”

“까탄2) 은 밤낮 일만 하다 말테냐며 칠보 꼬드겨 쌈 붙인 점순이 고것에 있다니까.”

“뭬라구, 열여섯 밖에 안 된 것이 사낼 꼬드겼다구?”

“칠보가 뭉태 찾아와 그러더래. 점순이 고것이, 성례 안 시켜 주면 즈 아버이 쇰3) 이라두 잡아채랬다구. 이 바보야, 그러면서.”

“머여, 그래 놓구선 고것이 이제 와서 성례 안 허겠다? 시상에, 우트게 그런 일이.”

점순이, 내 얘기가 그렇게 동네방네 떠돈다는 거 다 알구 있다. 날개 �어두 퍼지는 게 소문이다. 야학당 부녀회 여자들두 내 얘길 하다가 내가 들어서니까 모두 입을 꽉 다물고 딴청을 핀다. 사람들은 열여섯 살이 으떻게 부녀회 회원이냐구 그런 걸루두 수군거린다. 그건 야학당 선상님이 내가 성례는 안 했지만 집안에 신랑 될 사람과 함께 살고 있으니 부녀회 회원이 분명하다구 그랬다는 걸 몰라서들 하는 얘기다. 난 야학당 부녀회두 나가지만 기에 리를 하면 길, 하고 글 배우는 야학에두 나가는 학생이기두 하다. 부녀회든 야학이든 난 금병의숙4) 나가는 게 젤루 좋다. 야학당에선 배우는 것두 많지만 마을 사람들이 사는 이런저런 얘길 들을 수 있는 게 증말 좋다. 수아리골 근식이가 즈네 집 솥 빼 들구 들병이5) 따라 서울 갔단 얘기두, 실레말 만복이가 소장수한테 계약서 쓰구 마누라 팔어 먹은 얘기며 마을에 든 들병이가 뭔 짓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것두, 음짓말 춘호 처가 한들 이주사한테 몸 팔아 남편 노름빚 갚았다는 그런 소문두 야학당에서 다 들었다. 모두가 집 �구 땅 �어 똥꾸멍 째지게 못 사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사람으루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엄벙덤벙 저지른 그런 얘기들이다. 그런 얘길 하다 보면 울아부지 욕 하는 사람들두 많다. 울아부지가 김도사집 마름6)이라 울아부지헌테 땅 떼인 사람들은 입만 열면 울아부지 욕이다. 딸만 넷인 울아부지가 데릴사윌 여럿을 갈아 들여 골 빼먹는다는 얘길 하다보니까 욕을 안 할 수 �을 게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울아부지가 마을에서 욕을 젤루 잘한다. 그날, 칠보가 울아부지하구 거시기 움켜 잡구 싸우던 날두 야학당 선상님이 실실 웃으면서 울아부지 욕 하는 걸 먼 종이에다 적는 걸 내가 울 넘어루 다 봤다. 을마 전에 내가

“선상님, 그때 울아버지 욕하는 거 머하러 적었어유?””

그렇게 물으니까 선상님이,

“재밌잖아요,”

그랬다.

“욕이 머가 재미 있어유?”

그러니까 이번엔 선상님이 글쎄 내 말엔 대꾸두 않구 생뚱하니 이런 걸 물었다.

“점순씨, 국수 언제 먹을 수 있어요?”

선상님은 야학당 아이들한테는 언제나 얘 쟤를 하면서 열여섯 살 나한테는 꼭 점순씨 점순씨 한다. 그래서 내가 점순씨 그렇게 부르면 부끄럽다구 하니까 선상님이 그랬다.

“점순씬 부녀회 회원이잖아요. 부녀회 회원들은 모두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합쇼를 해야 맞습니다.”

선상님은 은젠간 나한테,

“점순씨, 이름이 왜 점순입니까? 얼굴에 점도 없는데…”

했다.

그때 난 낯짝이 뜨거워 혼났다. 가슴까지 팡팡 뛰면서 선상님 얼굴두 쳐다볼 수가 �었다. 그런 걸 나헌테 물어본 사람은 데련님(우린 선상님을 데련님이라구 부르는 걸 더 좋아한다)이 츰이다. 허지만 난 그때 데련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었다. 왜냐면 낯짝엔 �는 점이 내 응데이7)에 아주 크다랗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아부지가 내 이름을 점순이라구 지었다구 한다. 그래야 담에 아들을 낳을 수 있다구 했지만서두 우리 집 대문 새끼줄엔 여태꺼정 빨간 고추는 한 번두 안 걸렸다. 아이고, 얘기가 딴 데루 흘러 가구 말았다. 데련님이 국시8) 언제 먹을 거냔 말에 내 주둥이에서 쏙 튀어나온 고 눔에 고 말.

“나 시집 안 갈 테야유!”

내가 한 말에 내가 더 놀랬다. 시집 안 간단 생각을 지금꺼정 단 한 번두 해본 적이 �으니까 말이다. 근데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진짜루 모르겠다. 그냥 여자애들한테 은제 시집 가냐구 하면 시집 안 간다고 하는 그런 걸루 한 말인지두 모른다. 근데 데련님이 시집 안 간다는 내 말에 깜짝 놀라는 거였다. 야학당에 있던 다른 사람들두 어머 어머 무슨 일이야? 하며 모두 내 입을 쳐다보는 거였다. 그때 나두 내가 한 말에 다시 놀랐다. 그렇게 놀란 바람에 또 엉뚱한 소릴 해버렸지 뭐냐. 그땐 증말루 내가 미쳤었나부다.

“이뿐이두 죽을 때까지 시집 안 간다던데유.”

수작골 사는 이뿐이가 자긴 절대루 시집 안 간단 말을 나한테 한 적이 있다. 이뿐이는 요즘 야학당에 공부하러 잘 나오지두 않는다. 맨날 혼자 산 속을 헤매고 다니고 있다는 거 나는 잘 안다. 데련님하구 그랬대는 소문 땜에 이뿐이가 요즘 많이 힘들어서 그런 거다. 그 일루 도사댁 마님이 데련님 서울 올라가라구 했다는 얘기두 들었다. 나두 사람들 그 귓속 얘기가 맞는가 싶어 은젠가 이뿐이한테 곧바루 물어봤다.

너 데련님하구 그랬대지?9)

근데 내가 뭐, 왜 그랬냐구 따져 물은 것두 아닌데 이뿐이가 갑자기 잉잉 울음을 터뜨리는 거다. 그러더니,

“나 죽을 때까지 시집 안 간다,”

그랬다. 데련님과 그랬다면 데련님한테 시집가야 하는데 이뿐이는 데련님네 종이라 그게 안 되니까 그런 말을 했을 거다. 이뿐이가 데련님과 그랜 일로 즈 어머이한테 매두 엄청 맞았다는 거 나는 다 알구 있다. 이뿐이가 너무 불쌍하다. 그래서 이날은 내가 일부러 데련님한테 이뿐이 맘을 요맨큼이라두 전해주구 싶어 시집 안 간단 말을 했는지두 모른다. 데련님 땜에 이뿐이가 얼마나 힘들어 하구 있는지 알구나 있느냐구, 그렇게 막 퍼대구 싶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점순씨 왜 울어요?”

근데 데련님은 이뿐이가 시집 안 간다는 내 말엔 대꾸도 않구 오히려 나한테 왜 우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그때 이뿐이가 시집 안 간다는 말을 하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뿐이 처지가 불쌍해서 그런 거지만 사실은 나두 이뿐이처럼 데련님을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던 거다. 난 이뿐이처럼 키두 크지 않구 이뿌지두 않지만 데련님을 속으루 되우 좋아했다. 그러니까 괜히 데련님이 야속하고 미울 수밖에. 그래서 나두 모르게 눈물이 쿡 났을 거다. 내가 데련님 앞에서 시집 안 가겠다고 한 거두 나두 잘 모르는 그런 맘이 홀라당 튀어나왔는지두 모르겠다. 말 속에 10) 있다구 했다. 데련님이 야학당 부녀회에서 우리한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앞으룬 시상이 많이 바뀔 거라구. 결혼두 아부지 어머이들이 정해놓은 대루 하는 게 아니라 남자 여자가 서루 좋아서, 서루가 연모(사랑과 같은 말이랬다)해서 신랑각시가 되는 그런 세월이 금방 올 거라구 했다. 서울에선 실지루 양반 쌍껏 가리지 않구 사랑을 하구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신랑각시가 된다구 말이다. 데련님이 이뿐이한테두 그런 얘길 했으니까 이뿐이가 데련님과 그랬을 게 틀림이 �다. 그래서 나두 그렇게 11) 시상이 올 때까지 시집 안 갈 거라고, 아마 그런 내 맘을 한번 얘기하구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기두 하다.

근데 일이 크게 나구 말았다. 말은 �바닥 베는 칼이라지만, 내가 데련님 앞에서 무심코 한, 나 시집 안 간단 그 말이 그렇게 새낄 무섭게 칠 줄 나는 증말 몰랐다. 마을 어른들은 나만 보면 코를 헹 풀어 제치거나 어허 참 시상에! 이러면서 아주 벌레 씹은 낯이다. 덕돌 어머이두 나를 보더니 뭔 혼잣소릴 하며 쌩하니 지나간다. 저눔의 지즈배12)가 사내놈 하나 또 잡아 처먹겠구나. 덕돌 어머이가 뭔 얘길 하는지 나는 알구 있다. 을마 전 있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늙은 총각 덕돌네 집에 열아홉 살 먹은 나그네가 하나 들었다. 덕돌 어머이가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나그넬 살살 13) 덕돌이 하구 결혼을 시키기까지는 증말 잘한 일이다. 근데 글쎄 고것이 신랑 덕돌이 바지저고리만 달랑 훔쳐 가지구 도망을 쳤지 뭐냐. 낭중에 알구 보니까 글쎄 고것이 한들 물레방앗간에 즈 병든 남편을 숨겨놓고 와 그짓14) 결혼을 한 거였다. 그러니 장가갔다고 좋아하던 덕돌이 닭 좇던 똥개 상이 될 수밖에. 그 날 뒤루 덕돌이 즈 집 방구석에 이불 뒤집어 쓰구 자빠졌으니 즈 어머이 속이 으떻겠는가 그 말이다.

덕돌이두 덕돌이지만 나야말루 증말 큰일 났다. 내가 시집 안 간다고 한 그 말이 산 넘구 산 넘어 실성한 사람처럼 맨날 산 속을 허매구 쏘다니는 이뿐이한테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이뿐이가 날 찾아와 도끼눈을 하구 따졌다.

“점순아, 너두 데련님 하구 그랬지?”

대뜸 이러는 거다. 내가,데련님 하구 뭘? 하니까, 데련님 하구 그러지 않구서 으떻게 데련님한테 시집 안 갈 거라고 그런 말을 했느냐구? 그거다. 내가 언제 데련님한테 시집 안 간다구 했느냐, 그냥 나 칠보한테 시집 안 간다구 했다니까, 그러니까 이뿐이가 또 이러는 거다. 바루 그거라구, 너 여섯 살 때 들인 데릴사위한테 시집 안 간다구 한 건 데련님하고 그랬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냐며 더 매섭게 따졌다. 난 증말 데련님이 내 뺨따귀 물어뜯은 적 �다구, 죽어두 그런 일이 �다구 했더니, 그제서야 이뿐이가 안심한 낯으루 돌아갔다.

봄 꿩이 지 울음에 죽는다는 으른들 말처럼 드디어 내가 한 말이 울어머이 귀까지 들어오구 만 거다. 울어머이가 내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이년아, 너 시집 안 간단 그 말, 느아부지 들으면 너 죽어,”

그러는 울어머이 된통 겁난 낯판이다. 증말 울아부지 알면 나 죽는다. 우리 언니들두 그전에 시집 안 간다구 그랬다가 아부지한테 매 맞는 거 내가 많이 봤다. 우리 큰 언닌 아부지한테 귀때기를 을마나 맞았는지 지금꺼정두 두 쪽 귀가 다 잘 안 들린다.

그렇지만 나 울아부지가 그 말 들었어두 벨루 겁나지 않는다. 너 이년, 시집 안 간다니 그게 뭔 소리냐? 그러면 나 이럴 거니까 말이다. 아부지 거시기 움켜잡은 그런 만무방15)한테 내가 으떻게 시집을 가란 말이에유, 이러면 울아부지가 어흠어흠 계면쩍어하면서 이럴 거다. 이년아, 칠보, 갸 사람이 좀 미욱하긴 해두 그만한 신랑감은 �다 �어.

그리구 칠보가 나 시집 안 간단 그 소문 들었어두 나 하나두 겁나지 않는다. 그런 얘길 들어야 지두 정신 바싹 차리구 빨랑 성례시켜 달라구 울아버지한테 조를 거 아닌가 그런 말이다. 히히, 또 모른다. 칠보가 이제 와서 시집 안 온다니 거 뭔 소리냐구 벼락같이 화를 내면서 그 큰 두 팔루다 날 번쩍 들어올려(아부지들이 애기가 귀여우면 하늘 높이 쳐들어 올리는 그런 거 말이다) 주장질을 시킬는지두. 그럼 난 간지러워 막 웃으면서 갈래유, 시집 간다니까유, 그러면 칠보가 헤벌쭉 웃으면서 나를 내려놓을 게 틀림이 �다.

근데 그건 내 생각이구,

칠보 그 멍청이가 나 시집 안 간다는 말에 그만 풀이 죽어 즈 홀어머이 사는 두룸실루 돌아갈지두 모른다. 그건 증말 안 되는 얘기다. 아니, 그래두 좋다. 그래두 나는 자신 있다. 내가 두룸실 모래재 서낭당까지 가서 호이호 호오이! 하구 입으루 꾀꼬리 소릴 내면 칠보가 금방 알아 채구 나올 거니 말이다. 칠보가 나 쳐다보는 게게 풀린 그 눈만 봐두 나는 안다.

칠보가 날 을마나 좋아하는지.

그러니까 난 아무 걱정이 �다. 사람들두 다 그런다. 성례는 안 했어두 십 년째 데릴사위면 칠보는 이미 내 신랑이라구. 신랑각시루 우리 둘이 잘 맞는다는 얘기들두 많이 한다. 칠보가 좀 미욱해두 내가 잘 맞춰 살 거라구.

근데 칠보하구 나하구 신랑각시란 소릴 듣기엔 뭔가 좀 그런 게 있긴 하다. 칠보가 내 뺨따귀를 물어뜯는 그런 일이 아직 �었으니까 하는 얘기다. 데련님과 이뿐이가 그랬다는 것두 데련님이 이뿐이 뺨따귀를 잘근잘근 물어뜯은 그 일을 두구 하는 얘기라는 거 나는 다 안다. 성례는 그렇구 그런 걸 하는 총각하구 색시가 즈덜이 그랬다는 걸 남들한테 대놓구 알리기 위해 하는 거라는데 우린 아직 그런 일이 요맨큼두 �었으니까 그게 좀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그날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에서 혼자 밭을 갈구 있는 칠보한테 눈 딱 감고 그런 말을 했던 거다. 동백꽃16) 꽃내가 환장하게 나던 그날은 이상하게 가슴이 할랑할랑, 맘두 싱숭생숭, 뺨까지 화끈화끈,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맨날 일만 하다 말테냐!

구, 칠보를 꼬신 건데 그 바보가 것두 모르구 울아버지 거시기는 왜 잡아 나꿨느냐 그 말이다.

근데 증말 큰일 났다. 요 메칠 새 칠보 거동이 되우 수상쩍다. 먼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몰라두 며칠째 행랑방에 처박혀 일절 낯판대기를 안 내민다. 새벽에 끓여야 하는 쇠죽두 안 끓이구 잎 피기 전에 산에 올라가 낭구두17) 해와야 하는데 노란 동백꽃이 다 지구 삐쭉하니 잎이 올라오는 데두 기척을 안 한다. 울아부지두 거시기 일 뒤루는 칠보 대하기를 상전 모시듯 슬슬 눈치를 보느라 칠보가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아두 아뭇 소릴 안 한다. 일만 잘 하면 성례시켜 준다고 했는데두 저 멍텅구리가 방에 처박혀 안 나오니 지금 울아부지두 애가 많이 탈 거다. 그렇다고, 저년이 철 �어 그런 소릴 떠들고 다녔다고 나를 나무라치며 올 봄 넘어가기 전에 성례를 치러주겠다고 할 울아부지가 아니라는 거두 나는 잘 안다. 그러기는커녕 울아부지가 더 참지 못하구 이놈에 새끼, 새경18) 쳐줄거니 느 집에 가라고 하면 그땐 일이 좀 이상하게 벙그러질 수도 있다, 그런 말이다.

메칠이 지났다. 근데 그 메칠이 드럽게 길다. 그렇다고 내가 헛소리 했다구, 나 시집 갈 거라구 하면서 나설 수는 �잖은가 그 말이다. 나 그렇게 시집가면 울어머이처럼 아부지한테 끽 소리 못하고 쥐여 살아야 한다는 거 잘 안다. 난 그게 증말 싫다. 신랑이랑 색시는 서루 눈을 맞추구 알콩달콩 얘길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구 야학당 선상님이 그랬는데 울어머이 울아부지 사는 거 보면 그게 이응 아니니까 이 참에 칠보씰 우리 집 워리19)처럼 내 옆에서 살랑거리게 길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걸 다부지게 맘 먹고 있는 중이다.

아, 존 생각이 하나 났다. 야학당 선상님, 아니 데련님을 찾아가 이 일을 으떻게 해야 좋으냐구 물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난 거다. 데련님 땜에 생긴 일이니까 데련님이 칠보 만나 잘 얘기하면 그까짓 거 아무것두 아니게 풀릴 수 있을 거 아닌가 말이다.

근데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 데련님이 어제 서울루 갔다지 뭔가. 다시는 데련님이 마을에 안 돌아올 거라는 얘기두 들린다.

그런데 데련님이 서울 올라가니까 증말루 존 사람이 하나 있다. 이뿐일 진짜루 좋아하는 석숭이다. 이참에 석숭이가 이뿐일 자기 색시 만들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저번 때 이뿐이가 나한테 왜 시집 안 간다는 말 했느냐고 따지러 왔다가 돌아갈 때 한숨을 폭폭 내쉬면서 한 말이 있다. 아무래두 송충이는 솔잎 먹고 살아야 할 거 같다구.

오늘두 칠보는 문밖에 얼씬두 안 한다. 건승으루 그러는 게 아니라 증말 무순 병이 난 게 틀림 �다. 어흠 허흠하며 울아부지 담뱃대 탁탁 터는 소리만 들어두 덜컥 겁시 난다.

아이고! 일이 별나게 터지고 말았다.

온수뜰 덕돌이가 미친 거다. 그짓 결혼한 색시가 도망간 뒤 집밖에 얼씬두 안 하던 덕돌이가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우리 색시 여기 왔나유. 우리 이쁜 색시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줘유. 이 정도면 정말 되우 실성을 한 거다. 덕돌네 어무이두 그런 아들 뒤를 따라다니면서 얘 덕돌아, 이눔아, 왜 이래, 왜 이러느냐구, 이눔아 제발… 하면서 징징 울고 다닌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우리집 칠보 생각을 한 거다. 칠보가 덕돌이마냥 마을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점순이 어딨지유? 점순이 키 안 커두 좋아유. 나 점순이한테 장가 갈래유. 그러면서 다닌다는 생각만 해두 아이구 진짜루 웃긴다. 칠보가 잠깐 뒷간 갈 때 보니까 눈빛이 좀 이상한 것두 같았다. 아무래두 안 되겠다. 소 잃구 외양간 고쳐서 뭐 하느냐, 그 말이다.

편지를 썼다. 치자에 리을하면 칠, 비읍에 오 허면 보. 야학당에서 배운 대루 썼다. 글씨 쓰기가 너무 어려워 한 줄밖엔 못 썼지만 할 말은 다 했다.

“칠보씨, 우리 빨랑 봄봄해유.”

봄봄하자구 썼다. 봄봄, 야학당 데련님하구 우리하구만 통하는 말이다. 데련님은 날씨가 좋아두 아, 봄봄하다, 노란 동백꽃 냄샐 맡으면서두 봄봄하다, 어떤 애가 뒷간에 갈 때두 너 지금 봄봄하러 가는구나, 그래두 우린 다 알아듣구 키득키득 웃었다.

근데 우리 칠보씨가 그런 걸 알 리가 �다. 봄봄은 커녕 아예 글씨두 한 줄 못 읽으니까 뭉태를 찾아가 머라구 쓴 건지 읽어 달라구 할 게 뻔하다. 허지만 뭉태두 ‘봄봄해유’가 먼지 알 수가 �을 거다. 히힛. 그럼 낭중에 칠보씨가 물동이 이구 가는 내 뒤에까지 따라와서 이렇게 물을 거다.

“그거 뭔 소리유? 봄봄하자는 거.”

그럼 난 물동일 길바닥에 내려놓구,
바보 바보! 그러면서 칠보씨 가슴에 낯을 폭 묻을 거다.

“이런 게 봄봄하는 거에유,”

하면서.

1) 처가에서 데리고 사는 사위2)‘까닭’의 방언(강원)3) 수염4) 1930년 김유정이 실레마을에 세운 야학당 이름5) 들병장수. 병에다 술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사람6)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7) ‘엉덩이’의 방언(강원)8) ‘국수’의 방언(강원)9) 김유정의 ‘산골’에 나오는 말 10)11) 좋은12) ‘계집애’의 방언(강원)13) 피어14) 거짓15) 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16) 생강나무. 잎이 나기 전 노란 꽃이 피는, 강원도 아리랑에 나오는 [동박]17) ‘나무’의 방언(강원)18) 머슴이 주인에게서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건19) 시골에서 개를 부르거나 개를 일컫는 말
전상국 작가 사진

〃 작가소개 〃

전상국소설가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김유정문학촌장. 1940년생
소설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남이섬』 등

  • 『봄봄』

    1935년 발표된 단편소설 「봄봄」은 김유정 문학의 본령인 해학과 향토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점순이와 혼례를 약속하고 데릴사위로 들어간 ‘나’는 차일피일 혼례를 미루는 장인 봉필영감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마침내 담판을 지을 요량이었던 ‘나’는 장인과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결국엔 지게막대기로 흠씬 두들겨 맞게 되는데요.
    이야기는 이렇다 할 결론 없이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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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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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