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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연재소설 '거기까지'

《거기까지》화살 - 4

<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 <거기까지> 화살 - 4<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 <거기까지> 화살 - 4

“당분간 오윤은 못 만날 거다.”

코코아를 주문해주며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전과 달리 어색해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나를 한 번 쳤다고 아주 만만해 보이는가 보다. 나는 일부러 더 어깨를 펴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가소롭다는 듯 그가 피식 웃었다.

“유학 보낸대. 요리학교로.”

“……”

“반항하고 있지만, 결국 가게 될걸.”

“……”

“불쌍한 자식.”

“나 때문인 거죠?”

나도 모르게 앞으로 숙이며 물었다. 어깨가 다시 좁아졌다.

“알기는 하냐?”

그가 빤히 보는 게 느껴졌다. 감히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코코아가 나오고 조끄만 잔에 새까만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물어보지도 않고 코코아나 사주며 나를 어린애 취급이고 자기는 저런 식으로 센 척이다. 내가 열한 살 때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기껏해야 일곱이나 여덟 살 더 먹었으면서. 엄청 쓰게 보이는 걸 그는 단숨에 마셨다. 그러니까 어쩐지 나이랑 상관없이 어른처럼 보이기는 했다.

“머리는 좀 어떠냐?”

나는 코코아만 빤히 보았다. 진짜로 내 머리를 걱정하는 걸까. 이런 식의 관심도 나한테는 익숙하지가 않다.

“적당히 살살 좀 살아. 너만 힘든 줄 아냐?”

이번에는 그를 보았다.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가 또 눈을 부라렸다. 이젠 확실히 알겠다. 저건 친한 사람한테나 하는 제스처다. 위탁 가정의 아저씨가 자기 아들한테 저러는 걸 본 적 있다. 그런데도 그 싸가지는 자기 엄마 지갑을 야금야금 뒤지는 버릇을 끝내 못 버렸다.

“나한테 왜 그러세요?”

“뭘?”

“패주고 싶을 거 아녜요. 나 누군지 다 알면서. 나도 아는데. 그쪽.”

“그쪼옥?”

펑키 머리의 두툼한 손이 움찔했고 내 시선은 또 탁자로 떨어졌다. 안 그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내가 함부로 하기 어려운 사람이고 또 영빈이기도 하다. 곧 찌부러져도 누구 앞에서든 기부터 세우고 보는 게 나다. 그러나 상대가 영빈이면 가장 낮은 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펑키 머리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손에 진땀이 고이는 침묵이었다. 시원한 곳으로 나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그러기도 어려웠다.

“김무. 알지. 내가 왜 안 그러고 싶었겠냐.”

그가 또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코코아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만 다 느낄 수 있었다. 코코아는 벌써 다 식었다. 분명히 맛도 없을 거다. 그는 점원을 불러 에스프레소를 한잔 더 주문했다. 그리고 그게 나올 때까지 자기 손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놈으로 컸는지 보고 싶더라.”

윤에게 내 이야기를 듣고 진짜 김무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그래서 베네치아로 들어갔다고 했다. 조끄만 잔에 윤이 가출했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진작부터 일자리 제안이 있었지만 결정은 그때 했다고. 터무니없이 들렸지만, 나 때문이었단다.
나는 윤이 가출한 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작 간 데가 지방의 기능 고등학교였단다. 펑키 머리는 거기서 조리과 실습을 도와주는 사람이었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가 그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너 왜 그러고 살았냐? 패주기도 어렵게.”

그와 시선이 마주쳤고 순간 눈알이 뜨거워졌다.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처음이다. 나는 입술을 안으로 말고 아프게 깨물었다. 그래도 떨리는 속이 진정되지 않아 손바닥으로 입술을 세게 문질렀다. 목구멍이 뻐근해지도록 밀고 올라오는 소리 때문에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나더러 어쩌라고. 왜 저런 얼굴로 저런 목소리로 저렇게 쳐다보느냐 말이다.

“너를 보면 꼭 나 같아서.”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토해지는 숨이 파르르 떨렸다. 그도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모든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

“그게 말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머리가 어질하고 다리가 꼬였다. 약 먹을 때를 놓쳐서 욱신거리던 상처 부위가 팽팽하게 부어오른 느낌이었다. 벽을 붙잡고 헛구역질하는 나를 펑키 머리가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지폐 두 장을 쥐어주었다.

“딴 데 가지 말고, 집에 가.”

착한 아이 걱정하듯 그가 말했다.
나는 엉겁결에 받은 돈을 멍하니 보다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엉켜 기분이 아주 거지 같았다.
약을 거른 탓인지 추워서인지 택시에서 내리니까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는데도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미치겠다. 너무너무 하찮고 짜증나고 머저리 같다. 해리가 용감했던 것에 비하면 지지리 못났고 비열하고 자존심도 없다. 그걸 알아채고 펑키 머리가 나를 얕잡아 본 것만 같다.

펑키 머리에게 약점을 잡혔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영빈에 대해 말하지 못한 것. 그걸 고백했어야 했다. 피하지 말고. 아까 목구멍까지 기어오른 말을 꺼냈어야만 했다. 그런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용서를 빈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결국 내 문제니까. 나를 가장 괴롭히는 원인. 그걸 알면서도 못했다. 겨우 이 정도다. 나도 내가 형편없다는 걸 아는데 남들이 모를까.

추운데도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이불을 덮어쓰고 현실에서 달아나듯 잠에 빠졌다. 엄마가 들어와서 뭐라고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들리지 않았고 입을 떼기도 어려웠다. 혹시 내일도 눈이 떠진다면 생각은 그때 하기로 했다. 오늘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

<거기까지 /> 화살 - 4

나는 다시 일어났고 내 현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엄마는 나갈 준비를 하고 내 앞에 약봉지만 탁 놓았다. 또 화가 났는지 밥상을 차린 흔적도 없었다.

“담임이 전화했더라. 넌 거기가……”

말을 딱 끊고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젓는 엄마를 빤히 보았다. 어느 정도 엄마도 아는 거다. 내가 뭘 하고 다녔는지. 담임 전화를 받았으면 그의 이름도 들었을 거고.

“엄마.”

나도 당황했고, 엄마도 그랬다. 엄마. 이 말을 거의 한 적이 없다. 마음속에서는 단 한순간도 엄마가 아닌 적이 없는데 입에 담아본 적이 없었다. 나한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 내가 네 엄마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해. 대신 같이 좀 가줘.”

“어떻게 해결해? 경찰서가 그렇게 만만한 덴 줄 알아?”

“같이 가주기만 하면 돼.”

“어디를? 설마, 거기?”

거기. 아마도 엄마는 그의 병원을 떠올린 듯하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결국 침착해졌고 마침내 얼굴이 굳어졌다. 엄마도 분명히 알고 있다. 어쩌면 더 알고 있을지도. 나보다 어른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술을 마셨나. 그럼 의심할 여지가 없나. 이런 의심 정말이지 기분 더럽다.

“유전자 검사하는데.”

엄마가 이번에는 입만 뻥긋거리다 말았다. 내가 그런 말 꺼내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나는 안경집을 열어 보였다. 불안하게 나를 쳐다보는 엄마와 달리 나는 담담하게 전했다.

“나도 알아야 되잖아. 엄마랑 상관없이 이건 내 권리야.”

엄마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분명히 전과는 다른 표정. 내가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엄마는 외출했고 나는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떠먹었다. 그리고 화실로 갔다.

처음으로 더스티 멤버로서의 해리를 그려보았다. 얼굴에 드리워졌던 고사리를 모두 걷어 넘겨 머리카락이 되게 하니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해리가 정말 예쁘기는 하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던 애. 그런 것도 사랑이라면. 해리의 말이 생각났다. 뮤. 나랑 가족 할래.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또 상담실로 불려갔다. 그리고 전학을 권유받았다. 엄마가 내일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학교에서 전화를 하겠지만 내 입으로 꼭 전하라고 강조하는 담임을 나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던 걸까. 무사히 잘 지내지 못할 만큼 잘못한 게 뭐였을까, 도대체. 아니면, 학교라는 데가 무사히 잘 지낼 만한 가치가 없었나. 나라는 놈에게 학교가 너무 과분했나. 혜인이 다가왔지만 나는 그냥 돌아섰다.

엄마가 피하지 못하게 일부러 엄마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을 골랐다. 생명과학연구소.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렇게 거창한 문턱을 넘게 된다는 건 일단 만족스러웠다. 비용이 좀 과했지만 절차가 복잡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엄마가 참아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계속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확실히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한테는 엄마고 나이도 훨씬 더 먹었지만 겪어보지 못한 일에 걱정하는 얼굴은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알아보기는 해야 되잖아. 그뿐이야.”

“그뿐이야? 하긴, 네가 뭘 하겠니.”

엄마 전화기가 울렸다. 아직 운도 못 뗐는데 담임이었다. 담임이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엄마는 지레 낮은 자세로 전화를 받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결과 어디로 받을 거예요? 아니면, 직접 방문할 거예요?”

나는 문 쪽을 보고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적어온 주소를 내밀었다. 인터넷 덕분에 이런 거 알아내기란 식은 죽 먹기다.
받을 사람 이름도 또박또박 적어주었다.
최송은.

/ 작가소개 /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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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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