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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연재소설 '거기까지'

《거기까지》화살 - 3

<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 <거기까지> 화살 - 3<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 <거기까지> 화살 - 3

언제 왔는지 해리가 옆에 앉아 있었다. 종착역이 머지않아 자리가 거의 다 비었고 잠든 사이에 내 옆자리 사람도 내린 모양이었다.

“머리 다쳤니?”

나는 대답 대신 붕대가 안 보이게 비니를 더 잡아당겼다. 해리는 잠자코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뭐가 초조한지 창밖을 보면서도 손톱을 계속 뜯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는 피가 날 정도로 거스러미가 뜯겨서 더 그러지 못하게 손을 툭 건드렸다. 해리가 놀라서 돌아보는데 확실히 불안한 얼굴이다. 당연하다. 지옥 구덩이가 바로 코앞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데?”

오래 참았다가 겨우 물었건만 해리는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내내 보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시큰둥하니 말했다.

“죽었대, 어제. 중환자실 있을 때 볼 생각이었는데.”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설마 그 늙은이가 죽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 문상인가 뭔가를 가는 길이라는 건가. 머리 뚜껑이 열린 것처럼 어이가 없어서 나는 해리를 노려보았다. 모르는지 무시하는지 해리는 홀쭉한 헝겊 가방을 뒤적이더니 마이크를 꺼냈다.

“내가 처음 무대에서 잡았던 거야. 정말 허접하지.”
“연락이 와? 그렇다고 가? 너, 제정신이야?”
“모르겠어. 뭐가 제정신인지.”

생각할 것도 없이 받아치는 걸 보니 해리도 이 문제를 여간 고민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나. 그러고도 연락을 하다니. 그러고도 친척이라고 예의를 차리라는 건가.

속이 들끓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멍청한 해리가 꼴도 보기 싫고 생각 없이 따라온 내가 등신 같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여지없이 또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해리가 내 손을 쥐어서 탁 쳐버렸는데 그사이에 손수건이 손아귀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을 꼬깃꼬깃 주무르며 나는 내내 창밖만 보았다.

장례식장은 시내였다. 생각 같아서는 혼자 들어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얼굴이 더 창백해지고 떨기까지 하는 해리. 더스티 팸플릿의 바로 그 표정. 두려움에서 나온 거였다.

초라한 인생을 말해주듯 장례식장도 칙칙하고 빈소에는 흔해빠진 화환 하나도 없었다. 내부에는 상복을 입은 칙칙한 사람들과 시골 노인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상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먹고 마시는 중이었다. 원래 이렇게 죽는 사람이 많은 건지 방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한 잔치가 한창이고 가끔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발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 속에서 해리는 또 단연 돋보였다. 너무 칙칙한 곳이라 그 화려함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걸을 때마다 화사한 옷자락이 흔들려서 어두운 골목으로 살아 있는 꽃이 걸어가는 것 같았다.

4호실에서 해리가 멈추었다. 해리가 나를 돌아보더니 뒤로 손을 뻗었다. 하얀 그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데 손등에 도드라진 담배빵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얼른 다가가 그 손을 꼭 쥐어주었다.

“나, 응원해줄 거지?”

알 듯 모를 듯한 소리에 고개도 끄덕여주었다. 웃을 것처럼 입이 살짝 비틀리는가 싶더니 다시 물었다.

“무슨 짓을 해도?”
“응.”

그제야 해리가 여기를 그냥 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예의를 모르는 애라고 해도 상갓집에 저런 차림일 때는 계산이 있었던 거다. 고인을 핑계로 먹고 마시던 사람들 눈에도 해리는 흥미로운 등장이고 한마디 하기 좋은 행색이라 손가락질부터 시작됐다.

“상갓집에 뭐 저러고서……”
“누구라? 지대로 찾아온 거 맞나?”

칙칙한 눈을 꿈쩍이며 다들 수군거렸다. 해리를 알아보고 맞이하는 사람은 젊은 여자뿐이었다. 부고를 전한 사람인 듯했다. 해리를 흘겨보고 욕하던 할머니는 그사이 더 초라하고 고약하게 늙어서 해리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제야 해리 존재를 알아챈 사람들이 저희끼리 수군대거나 말 좀 붙이려고 비틀비틀 일어났다.

“아이구, 작은 할아버지! 해리가 왔네요. 그렇게 찾던 손녀가 왔어요. 눈감기 전에 꼭 보셨어야 했는데.”

여자가 영전을 보며 느닷없이 우는소리를 내더니 금방 침착해져서 해리에게 손짓했다. 입구에 있는 국화꽃을 자기가 집어오기도 했다.

“해리야. 저 앞에 이 꽃 놓고 절하면 돼.”

해리는 꽃을 받지 않았다. 절도 안 했다. 신발도 벗지 않고 두어 발짝 들어가 합죽이로 늙은 사진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국화꽃을 모조리 쳐서 흩트렸다. 순식간이었다. 해리는 가방에서 마이크를 꺼내 움켜쥐었고 이를 악문 채 돌팔매질하듯이 그대로 던져버렸다. 영정사진이 깨져서 떨어지고 그 앞에 놓였던 과일들이 사방으로 튀고 쏟아졌다.

“아니, 이 무슨 짓이라!”

사람들이 놀라 일어났고 여기저기서 고함을 질렀다. 상주들이 당장 달려들었다. 할망구는 해리의 머리채라도 잡을 참이었다.

“건드리지 마!”

나는 재빨리 그들을 막았다. 해리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할망구에게 똑똑히 말했다.

“또 때리게요? 때려요! 저 괴물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다 말할 테니까! 사람들이 다 알아듣게! 어디 때려봐! 때려!”

눈물과 분노가 응어리진 소리에 모두 얼어붙었다. 해리도 견디지 못하고 휘청했다. 그 말을 하려고 오늘까지 버텼던 것처럼. 나는 해리를 부축해서 거기를 나왔다. 뒤에서 온갖 잡다한 소리가 따라왔지만 우리는 돌아보지 않았고 묵묵히 거기를 벗어났다. 그렇게 다시 기차역으로 왔다.

<거기까지 /> 화살 - 3

속이 없는 인형처럼 해리가 쓰러지다시피 내 어깨에 기댔고 나는 잠자코 받아주었다. 내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걸 눈치챌까 봐 입술을 꽉 물고 콧구멍을 크게 벌려 숨고르기를 해야만 했다. 이런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몸보다 큰 힘이 나올 때는 그렇다. 이유가 있는 거다. 무대의 해리도 지금껏 그렇게 버텨냈을 거다. 얘한테 노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해리는 많이 큰 것 같다. 안 보는 사이에 아주 용감해졌다. 확실히 나보다 더.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해리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마침표를 찍듯이.

“그때, 저기 화장실에 숨어서 밤새도록 너 기다렸어.”
“……”
“나 얼마나 무서웠게.”

그 말을 하면서 해리가 내 가슴팍을 쳤다. 나는 해리를 안아주고 싶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해리는 혼자 울었고 혼자서 그쳤다. 지금보다 그때가 더 용감하고 순수했었나.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그때와는 감정이 좀 다르다. 그때는 해리를 보면 가슴이 뛰었고 아팠고 지금은 토닥이며 위로해주고 싶다.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해리는 모른다. 어쩌면 그때 같이 도망치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 그랬으면 영빈이도 아직 살아 있겠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뺨이 확 뜨거워졌다. 두껍고 큰 손에 얻어맞던 충격이 고스란히 살아났고 머리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약 먹는 걸 까먹었다.

영도. 그 형은 무슨 생각으로 거길 왔을까. 왜 나를 말렸을까. 그가 무슨 생각을 했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나다. 내 문제다.

서울까지 오는 동안 해리는 잠만 잤다. 일부러 자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럴 계획이었으면 어제 당연히 한숨도 못 잤을 것이다. 거의 내릴 때가 돼서야 해리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까 일을 잠 속에 묻기라도 한 듯이 창밖을 확인하는 얼굴이 달라졌다.

“나도 해결해야 될 게 있어.”

나도 모르게 입을 떼고 말았다. 일종의 빚처럼 나온 말이었다. 나도 뭔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봉인이 풀리면 걷잡을 수 없는가 보다. 누구한테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해리한테 하는 나 자신이 이상했으나 그걸 알면서도 멈추지를 못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 시시콜콜 다 풀지는 못했다. 그럴 말주변도 아니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해리는 블랙콜로 곧장 갈 거라고 했다.

“유전자 검사는 했어? 확인도 안 했잖아.”

헤어지기 전에 해리가 말했다.
전철역에 앉아서 내내 생각해보았다. 맞는 말이다. 그가 나의 일부라는 믿음은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착각이라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 사실을 왜 의심하지 않고 덥석 믿어버렸을까. 내가 이렇게 단순하다. 엄마를 모욕하고 싶지 않지만 열일곱에 나를 가졌다. 지금 내 나이. 나만큼이나 세상을 모르고 막막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비뚤어진 인생을 잡아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검정고시 공부도 했다지 않나. 나를 버리고라도 결혼한 사람이고 얼마 못 살고 헤어졌다. 무사히 똑바로 살려야 살 수가 없는 구성물이다. 내가. 도대체 나는 뭘까. 어디서 시작돼 지금 여기 와 있을까.

전화기에 엄마의 문자가 찍혀 있었다. 약은 갖고 나가야지.
윤의 문자는 오늘도 없다. 얘한테 분명히 무슨 일 생겼다. 보나마나 나 때문일 거고. 착한 앤데 참 미안하게 됐다.
베네치아는 저녁 장사로 분주했다. 나는 바깥에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 바깥에서도 펑키 머리가 주방에서 일하는 게 언뜻언뜻 보여서 나는 그와 부닥친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좀 할 수 있었다. 목소리 높여 인사하는 점원에게 윤이 나왔는지 물었더니 며칠 전에 그만두었단다. 확실히 문제가 생긴 거다. 나는 주방 쪽을 힐끗 보고 다시 나왔다.
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통은 몇 분 안에 답이 오는데 역시나 조용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보냈다. 미안하다.

“야. 너.”

펑키 머리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가오는데 나도 모르게 부동자세가 됐다. 다시 보니 그는 상체가 떡 벌어진 게 절대로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뺨이 먼저 그걸 기억해냈다.

“삼십 분 뒤에 갈 테니까, 저기서 기다려.”

건너편 카페를 가리키며 그가 눈을 부라렸다. 나는 어정쩡하니 서 있다가 카페로 갔다. 앉다가 생각하니 좀 그렇다. 명령이나 다름없는 소리를 듣고도 알아채지 못하고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다니. 맹하게 군 나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냥 주저앉아 있었다. 두어 번, 이제라도 가버릴까 싶기는 했다. 그런데 눈을 부라리던 그 표정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묘하게 끌리는 감정.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막상 그가 나타났을 때는 시선을 탁자에서 떼지도 못했다.

“당분간 오윤은 못 만날 거다.”

/ 작가소개 /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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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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