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병원 앞에서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에 윤이 문자를 확인하며 욕을 또 주루룩 내뱉었다. 학원 안 가고 뭐하느냐는 걔 엄마 문자였다. 윤은 학원 들어갈 때마다 엄마 휴대폰에 확인 문자가 뜨는 데를 다니고 있다.
나는 화실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윤이 ‘너 누구랑 싸워?’ 하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무시했다. 누구랑 싸우는 것보다 더 문제가 경찰서에 갖다 바쳐야 되는 확인서다. 겁은 안 난다. 경찰이 말할 때도, 담임이 심각하게 강조하는데도 이상하게 우스웠다. 다만 엄마 모르게 이걸 처리하는 게 고민이다.
화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이 편지를 한 통 주면서 묘한 웃음을 보였다. 입구가 봉해진 봉투였다.
“그런 여자 친구가 다 있었어? 멋지더라.”
해리가 떠올랐다. 짐작대로였다.
여기를 알고 있는 줄 몰랐다. 기하. 걔를 통해서라면 해리는 내 집은 물론이고 학교며 요즘 내 상황까지 다 알 수도 있다. 둘은 어떤 관계일까. 저번에 본 해리는 기하 이름 정도만 아는 것 같았는데.
봉투에는 기차표와 메모지가 같이 들어 있었다.
18일 8시 45분 용산역
뮤. 첫 번째 부탁이야. 같이 가줘.
토요일 아침이다. 여행이라도 가나. 목매고 쳐다보는 기하도 있는데 왜 나일까. 부담스럽고 불편하다. 해리하고는 어떤 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무심코 도착역을 보았다. 순간, 속이 뜨끔했다. 사면동과 연결된 모든 것에 나는 피가 굳는다. 해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거길 가겠다고? 이제 와서 거기는 왜. 도대체 왜.
날마다 머리가 무거웠다. 담임은 나를 볼 때마다 경찰서에 가져갈 확인서를 강조하고, 해리가 보낸 기차표는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엄마는 자주 술에 취하고, 기회를 엿보는 들개들도 신경 쓰이고. 생뚱맞게 오늘 아침에는 엄마가 오십은 먹은 사람 같은 얼굴을 해가지고 중얼거렸다. 기회다 싶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인생은 힘들잖아.
화실 가기 전에 틈새에 들렀다. 윤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오랜만에 왔는데 시간이 지났건만 윤은 오지 않았고, 원탁은 이미 다른 사람들 차지였다. 긴 탁자에도 자리가 별로 없어서 나는 윤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건너편 병원을 무심코 쳐다보곤 했다.
멀뚱히 있기가 그래서 작은 4B연필을 꺼내 전단지 뒷면에 전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 뒷면이 아까워서였다. 그걸 다 그리기도 전에 낯익은 애 둘이 다가왔다. 복도 끝이나 학교 체육관 뒤 같은 데서 나를 흘깃거리며 저희끼리 숙덕거리던 애들. 드디어 겪어야 될 게 온 모양이다. 나쁜 예감은 늘 적중한다.
“잠깐 좀 보자.”
나는 잠자코 벽을 보았다. 나갈 수밖에 없을 거다. 얘들 뒤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몰라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위기다. 당연히 다칠 거고 최악의 경우, 학교도 포기해야 될 거다. 이런 싸움은 이겨도 져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고 이겨도 져도 얘들한테서 못 벗어난다.
“알았는데, 나 경찰서 문제라도 해결하고 보면 안 되겠냐?”
애들이 픽 웃었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까지 나를 보았다. 상황을 감지한 아줌마 표정이 당장 변했고 더 버티면 문제가 복잡해질 것 같아 나는 걔들을 따라 나갔다.
건너편 병원을 흘깃 보았다. 아직 불이 켜진 저기서 그는 오늘도 편안하시겠지. 여기는 경찰에 바칠 확인서도 모자라 싸움판까지 보태질 판인데.
골목으로 갈수록 애들이 하나둘 붙더니 재개발 예정으로 철거 중인 동네까지 오자 열 놈이 넘게 모였다. 다른 교복 애들까지 있는 걸 보면 폼이나 잡는 것들이 아니다. 나를 두고 무슨 상상들을 했기에 이렇게 거창할까. 불량한 인상을 주는 상처도 어이없게 얻었고 길거리에서도 가능하면 싸움을 피하는 쪽이었다. 나의 마이너스 요인은 항상 관자놀이 흉터. 친구를 해친 대가로 평생 치러야 할 형벌의 증거.
주머니 속에서 진동 상태의 휴대폰이 울렸다. 보나마나 틈새에 도착한 윤이다. 걔들이 저희끼리 몇 마디 하는 동안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심코 넣은 4B연필이 손에 잡혔다.
“너 같은 애를 왜 이제 알아봤을까.”
모르는 애는 아니었다. 2학년이고, 볼일이 따로 없어서 상관없이 지냈을 뿐 애들을 끌고 다니는 걸 본 적도 많다. 무사히 잘 지내고 싶었는데. 얘한테 걸리면 돌이킬 수 없다. 언제나 그랬다. 나한테 벌어지는 일은 반성문 쓰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빗나간 화살인 줄 알면서도 어디에든 날아가 박혀야만 했다.
“경찰 조사 받아? 전적이 좀 있냐 너?”
“재밌는 물건이네.”
“그것부터 들어보자. 어떤 레벨인지.”
애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여기서 멀쩡히 나가기는 틀렸다. 윤이 온다고 해도 무슨 도움이 될까. 어차피 하나밖에 못 잡는다. 오래 버티지도 못한다. 단시간에 딱 한 놈.
“알 거 없어. 사적인 거라.”
경계하지 않게끔 나는 2학년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해줬다. 걔가 이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고 몇 발짝 앞에 있다. 틈을 내줬으니 걔가 실수한 거다. 모르긴 해도 몸집은 작아도 지독하고 날랠 것이다.
말이 짧다 싶었는지 뜨악해하던 애들이 순식간에 치고 들어왔다. 나는 뭔가에 등짝을 찍히고 엎어지며 곧장 놈에게 달려들었다. 눈이 튀어나오게 터지기도 했지만 목표물을 놓치지 않았다. 예상대로 거칠고 잽싼 놈이라 죽을힘을 다해 붙잡았고 기어이 무르팍으로 명치를 짓누르고 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4B연필을 쳐들었다. 끝장내고 말 것이다. 나를 건드린 놈도 나도 같이 여기서 끝이다. 내 목덜미로는 벌써 피가 흘러내리고 놈의 얼굴은 연필로 찍기 적당한 곳에 있었다.
“그만해!”
어른들의 고함 소리와 호각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며 건장한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얼핏 펑키 머리를 본 것 같았다. 그가 내 팔을 비틀었고 반항하는 나를 후려갈겼다. 정신을 놓치면서 나는 펑키 머리를 끝까지 보았다. 역시 그랬다. 영빈의 이름으로 나를 잡으러 온 영도 형이었다.
응급실에서 정신이 들었다. 멍한 상태에서도 온몸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게 다 느껴졌다. 나는 누운 채 내 상황을 점검했다. 링거를 맞는 중이다. 발은 움직일 수 있다. 팔뚝에 붕대. 머리가 두툼한 걸 보니 어디 찢어졌나 보다. 엄마 말소리가 들려서 얼른 눈을 감았다.
“왜 하필 걔가. 어쩌다가 연결된 거야. 도대체 우리 팔자는 왜 이래. 너 때문이냐, 나 때문이냐……”
아무리 짜증이 나도 그렇지 환자 가슴팍에다 수건 같은 걸 냅다 집어던진다. 그리고 속이 뒤집어져라 한숨. 푸념은 해도 도망 안 치는 걸 보니 진짜 엄마가 되기로 한 거 맞다. 미안하다. 잘해보고 싶었는데 나는 도무지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애들이 무사히 살아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윤이 올 줄 알았는데 응급실에서 나갈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문자도 없었다. 펑키 머리가 올까 봐 걱정이었으나 그 역시 오지 않았다. 아마도 윤이 그를 불렀을 것이다. 나를 후려 팼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나를 위기에서 구했고 아찔한 사고도 막았다. 나는 충분히 4B연필을 무기로 쓸 수 있었다. 나를 구제해주기 바랐던 도구를 나를 끝장내는 무기로 쓸 뻔했으니 아직 멀었다. 쓸 만한 생각이라는 걸 언제쯤이나 하게 될까.
그나저나 윤의 문자가 없는 건 이상하다. 휴대폰을 빼앗기지 않고서야 이럴 애가 아니다. 짐작은 된다. 아들에게 안테나를 꽂은 부모가 이 상황을 모를 리 없고 안다면 가만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통원 치료도 가능한데 엄마가 기어이 병실을 잡아 나를 가두었다. 보험 설계사라 입원 치료로 얻을 혜택을 따져보고 결정한 것인데, 그 바람에 나는 귓병 검사를 받아야만 했고 엄마는 자기 아들에게 어지럼증이 있다는 걸 17년 만에 처음 알게 됐다. 게다가 정신과 상담까지 권유받았고. 병원은 엄살쟁이가 되라고 강요하는 데다. 귓병은 몰라도 정신과 상담은 개가 웃을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 것 같은 엄마 얼굴이 꼭 열일곱 소녀 같았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잠자코 집까지 왔고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혼자서 술 마실까 봐 신경이 쓰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밥만 차려놓고 또 방에 박혀버렸다.
병원에서 잠만 잔 탓에 너무 일찍 일어났다. 창밖이 아직 어두웠다. 어둠이 익숙해지니 방안이 훤히 다 보이고 정신도 또렷해졌다. 토요일. 해리 때문이다. 도대체 그 지겨운 곳에 왜 가려는 걸까. 나까지 데리고. 나만큼이나 징그럽고 싫을 텐데. 아니, 걔는 나보다 더할 것이다.
가야 되나. 무시할까. 내가 안 가면 혼자라도 갈 셈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된다. 돌지 않고서야 죽어라 멀어져도 모자랄 판에 이제 와서 제 발로 찾아가겠다니.
결국 옷을 챙겨 입고 쪽지를 남겼다. 바람 쐬고 올게.
천천히 갔어도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광장 오른쪽 화단을 보았다. 나무 밑에 검은 형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인다. 간밤의 추위와 어둠이 아직 고여 있는 것처럼. 딱 한 번 저기서 나도 저렇게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우울하다.
어디론가 바삐 가야 될 사람들과 피로하고 때에 찌든 부랑자가 확실히 구분되는 대합실에서 나는 해리를 금방 알아보았다. 빨간 모자에다 화사한 색깔이 직조된 코트를 입어서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애가 더 잘 보였다. 해리도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창백하고 무표정하다. 더스티 팸플릿의 바로 그 표정. 우리는 인사도 없이 나란히 앉았고 승차 시간이 될 때까지 그냥 기다렸다. 그리고 뚝 떨어진 자리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며 사면동으로 향했다.
그동안 해리는 문자 하나만 보냈다. 고마워.
해리한테 궁금한 게 너무 많았으나 물어보기도 그렇고, 어쩌자고 여기를 따라왔는지 후회를 해봐야 소용도 없어서 다 포기하고 잠이나 잤다. 이거 역시 쏘아버린 화살이다. 분명한 건 하나. 해리가 거기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을 거라는 짐작.
/ 작가소개 /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