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거기까지》화살 - 1

 

<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 <거기까지> 화살 - 1<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 <거기까지> 화살 - 1

오랜만에 나타난 나를 애들이 경계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라서 나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아예 무시하는 부류와 슬슬 피하는 부류, 그리고 나를 주목하기 시작한 애들도 있었다. 나쁜 징조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검은 테 안경을 벗었다. 몸에 힘을 주었고 누구든 건드리면 초반에 끝장낼 각오를 하고 지내야만 했다.

담임이 호출했다. 당연히 일장 훈시를 들어야 했고 벌로 일주일 교내 봉사를 할당받았다. 엄마가 찾아와 뭐라고 했나 몰라도 처벌 수위가 낮았다. 엄마는 진짜로 엄마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더 이상 혜인을 보지 않았다. 여전히 걔는 좋은 애다. 전화는 더 안 하지만 나는 걔가 나를 훔쳐본다는 걸 알고 뭔가 말하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언뜻언뜻 혜인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미안하고 가슴이 시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쏘아버린 화살처럼 한번 엇갈리면 되돌리지 못하겠다.

두 통의 해리 문자. 스팸처럼 찍혔던 ‘오랜만이다 연락해’를 보낸 번호가 해리 전화였다. 두 가지 부탁이 있다고. 그 말뿐인 짧은 문자를 나는 그냥 덮어버렸다. 고작 1년 알았고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을 친분 없이 지냈는데 뭘 부탁씩이나. 어이없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일일까 봐 거부감부터 생겼다.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엄마와 옆방 식구로 지냈고 할당받은 처벌을 무사히 치러냈고 습관처럼 윤의 문자가 왔고 화실에 꼬박꼬박 나가서 점점 더 복잡하고 섬세한 그림을 그렸다. 더는 틈새에 가지 않았고 도진이나 기하 생각도 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11월이 가고 있었다.

<거기까지 /> 꽃 -4

종례를 마치고 나가는데 담임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뜻밖에도 경찰이 와 있었다. 그리고 대뜸 CCTV 이야기를 꺼냈다. 병원에 피해를 입힌 범인으로 내가 확인됐단다.

“김무? 이름도 참! 너, 피트니스클럽에도 잠깐 다녔던데. 그때부터 뭔가 계획했나?”

머릿속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경찰을 쳐다보고 담임을 곁눈질로 보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길거리 카메라에 찍힐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걸 통해서 그동안 나를 추적했던 모양이다. 나쁜 예감이 이런 식으로 확인될 줄 몰랐다. 무슨 배짱으로 일을 저질러놓고 너무 태평했다.

“도난당한 건 없다면서요.”

도난. 그 말이 무겁게 나를 눌렀다. 담임이 내 편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를 흘깃 보는 눈초리는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있었다. 길거리를 떠돌 때도 위탁 가정에서도 뭘 훔치는 짓만큼은 안 했다. 나라도 나를 그렇게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소용이람. 위탁 가정에서도 나는 도둑으로 몰린 적 있었고 지금도 담임은 나를 그런 애로 단정하는 게 분명하다.

“너, 왜 그랬어?”

담임이 물었다. 경찰만 없으면 한 대 치고 싶은 얼굴이었다. 잠자코 있으려다 엄마를 생각해서 대강 얼버무렸다. 나 때문에 학교 와서 틀림없이 더 안쓰러운 처지가 됐을 김난희. 나 때문에 편의점 사장을 협박하고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을 기다린 사람. 하나뿐인 가족.

“치료를 제대로 안 해줘서요. 여기 덧나서 무지 고생했거든요.”
“에라잇! 겨우 그런 걸로.”

기어이 담임 손이 올라갔지만 차마 때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찰은 달랐다.

“새벽 3시에?”

순간 나를 보는 담임 얼굴이 달라졌다. 철딱서니 없는 애 취급이다가 이것 봐라, 하는 경계의 눈초리가 확실히 드러났다.

“간단한 파손이라도 저쪽에서 세게 나오면 처벌받아야 돼요. 점잖은 저명인사라 이 정도죠.”
“아, 네. 다행이네요.”

실소가 나올 뻔했다. 티브이에만 나오면 저명인사인가. 내가 아무리 배운 게 짧아도 그 말이 붙을 자리가 아니라는 건 안다.

“훈방쯤으로 정리가 될 겁니다만, 조건이 있어요. 찾아와서 정중하게 사과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게 어딥니까. 다 학생의 미래를 위해 배려하시는 거죠.”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나는 입술을 안으로 말고 힘껏 깨물었다. 내 미래를 위해 그가 걱정을 다 하셨단다. 이참에 그를 한번 똑바로 보는 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경찰서 문도 안 넘게 해준다지 않나. 그에게 그 정도 한 게 죄가 되는 줄 몰랐지만 말이다.

“11월 25일. 날짜를 지정하셨어요. 워낙 바쁜 분이고, 환자도 많아서. 너 말야, 김무. 그것 참! 부르기도 어렵네. 똑바로 해. 그런 분 만난 거 행운으로 알고 말야. 반드시 그분 확인서 받아서 나한테 가져오고.”
“학생 혼자서 가도 됩니까? 아니면, 부모님이나 제가……”
“부모님이랑 가야죠. 부모 책임도 있는 거니까.”

경찰이 내게 사건 경위와 고소인의 조건이 명시된 종이 한 장을 건네고 갔다. 그의 뻣뻣한 등에 나는 예의상 고개를 숙였고 담임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날짜를 재차 강조하며 병원에 사과했다는 증거를 자기한테 먼저 보여주고 경찰서에 내라고 했다.
복도 끝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애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먹잇감이 될 것 같다. 최상은 피해가는 거고, 최악은 무사히 졸업하기 틀려지는 거다. 지금은 셋이지만 쟤들 뒤에 얼마나 더 있을지. 더 이상 같이 싸워줄 편도 없는데. 불행은 꼭 친구를 데리고 온다더니 겪어내야 될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앞으로 열흘. 정말 그에게 가야 되나. 부모 책임도 있으니 부모와 같이 찾아가라. 어떤 부모랑 누구를 찾아갈까.

문자가 왔다. 윤이다.

도진이 옥상에서 뛰어내렸대. 장수병원 623호.

“뭔 소리야.”

전화를 하려다가 욕이나 들을 게 뻔해서 가방만 챙겨가지고 뛰었다. 나를 쳐다보던 애들이 놀라서 비켰을 만큼 다급했고 걔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윤의 문자가 계속 도착했다. 지금 거기 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옥상에서 뛰어내린 게 벌써 일주일 전이란다. 위급 상황을 넘기고 지금은 입원실이라고. 자기도 도진 문자를 받고서야 알았단다. 도진의 문자를 뒤져보았다.

무. 지금 이 현실이 꿈이라는 걸 증명할 수는 없을까.

이런 애가 마음에 안 들고 이따위 말이 싫을 뿐이지 이게 도진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얘는 이런 방식으로 살고 이렇게 힘들어하고 자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나 보다. 나만큼 외로운 애. 그것도 이제 알겠다. 유학 갔다 실패하고 온 애한테 친구가 남아 있을 리 없지. 이쪽에도 저쪽에도 낄 수 없는 것도 나랑 마찬가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는 참 다르고도 비슷하다.

병원 앞에서 기하랑 마주쳤는데 그 자식이 먼저 모르는 척 지나가버렸다. 벌써 들어갔다 나왔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굳이 아는 척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가버리니 감자라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진보다 더 싫은 놈인데 그래도 마음이 쓰인다.

도진은 그야말로 꼴이 가관이었다. 머리를 친친 동여맸고 오른쪽 팔과 다리는 깁스를 해서 미라가 따로 없었다. 멀쩡한 쪽도 상처투성이. 손톱만 겨우 나온 그 손가락으로 꼭꼭 눌러서 문자를 보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다 나왔다. 입도 못 움직여서 손톱밖에 안 보이는 그게 유일한 소통법이었다. 잘 눌러쓰라고 병원에서 반창고로 전화기를 누르기 좋은 위치에다 아예 붙여주었단다.

“얘 안 죽은 거 맞아?”

윤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자로 썼다. 죽다 살았대. 큰 나무로 떨어져서 이 정도. 나무는 부러지고.

“옥상에서는 왜 떨어졌냐? 안 무섭디?”

윤— 거기까지 가는 건 괜찮았는데, 떨어질 때 무서웠대.
도진— 거기서 거기까지 한발 차이였어. 죽는 거.

“미친놈.”

윤— 그러지 마. 환자한테.
도진— 나는 내 현실을 증명하고 싶었어.

“끝까지 잘난 척이지. 그래. 너 똑똑하다.”

윤— 똑똑한 건 맞는데 이번엔 멍청했어.

나는 윤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고 도진은 묵묵부답. 윤이 그런 소리도 한다는 게 기특해서였는데 아픈 애한테는 좀 미안했다.

“기하, 병원 앞에서 봤는데.”

이번에는 둘 다 묵묵부답. 윤이 고개를 저으며 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뭔가 있나 보다. 그날, 나는 윤을 끌고 나왔고 둘은 노래방에 있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더 있었나 보다.

“기하 때문이야? 걔가 너더러 죽으라대?”

왜 눈치 없이 그러느냐는 듯 윤이 찡그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욕이 또 한 다발. 도진이 웃으려다가 죽는소리를 냈다.

“뭐 이런 븅들이 있어? 그런다고 그러고, 그러라는 놈은 또 뭔데?”

어이가 없지만 남자애들이 멱살잡이를 하다 보면 별소리가 다 나오게 돼 있다. 그동안 기하가 도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런 소리쯤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저보다 못나 보이는 도진이 유학 간 게 기회의 낭비라고 생각한 애였다. 걔도 참 안됐지만 더 문제는 도진 같은 애가 그런 소리를 소화시킬 타입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결국 기하는 병원 앞까지 왔다가 그냥 간 거였다.

도진— 찾았어?

윤이 얼른 가방 속에서 프린트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총을 겨눈 병사 포스터가 기다란 원기둥에 붙어 있는 그림인데 포스터가 원기둥을 두르고 있어서 병사의 총구가 결국 자기 뒷목을 겨누고 있는 형상이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문구가 붙은 반전광고인데 공모전 수상작이었다.

도진— 대신 전해줘.
윤— 기하가 받을까.
도진— 받아야 돼.

역시 검색의 달인 도진이다. 저렇게 처매고 누워서도 인터넷에서 이런 걸 찾아오게 하다니. 소심하게 이런 식으로 복수하나 싶었지만 결국 둘이서 해결할 일이었다. 윤과 나는 도진에게 들어온 음료수를 골고루 골라먹고 새콤한 귤도 몇 개 까먹고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자가 떴다.

도진— 무. 우리 친구 맞지?
윤— 아님 뭐?

나는 미라 같은 도진을 보고 윤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별 생각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해놓고.

“그래 가지고 날 위해 싸워줄 수 있냐? 그 정도는 돼야 친구지.”
윤이 놀란 눈을 해가지고 나를 쳐다보았다. 얘들은 너무 순진하거나 곧이곧대로 들어서 참 답답하다.
“다 낫거든 그때 한번 생각해보자.”

도진은 문자를 더 보내지 않았다. 자기 아들을 문병 와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뜻밖인지 도진 부모는 몇 번이나 또 오라고 했다. 기하 말이 맞는가 보다. 큰 슈퍼마켓의 부자 사장님 같지 않았다. 아들이 옥상에서 뛰어내린 충격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 작가소개 /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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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3-2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