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거실은 어떤가?
가족이 중심이 되어야 할 이곳에 텔레비젼과 소파가 주인공이 되어 있다.
거실 본래의 역할인 소통과 위안이 회복되어야 한다.
팍팍한 인생에 힘이 되어 줄 그런 곳으로...
똑같은 아파트지만, 똑같은 집은 아닙니다.
인생은 늘 불안하다.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대중 속에 있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과 인생이 덜 불안하다고 믿고 싶어한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대부분은 거의 똑같은 평면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가족의 삶과 무관한 아파트 평면 속에 살면서 남들이 하는 대로 공간을 꾸민다. 그런 공간에서는 결코 우리의 개성을 살릴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아파트라는 집이 그 누구의 삶도 오롯이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여는 있지만, 대화가 없네요.”
지금 우리의 거실은 어떤가? 너무나도 뻔한 말일지 모르지만, 가족이 중심이 되어야 할 거실은 이미 텔레비전이 떡 하니 주인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 텔레비전이라는 주인의 주변으로 가족들은 버릇처럼 모여든다. 그렇게 앉아 있으려니 반대편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소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족이 하루 동안의 소박한 일들에 대해 대화하며 다독여주어야 할 공간이, 가족과 텔레비전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는 텔레비전이 거실에 있기에 가족들이 모여 둘러앉아 모이기라도 한 모습을 두고 우리 가족은 가족적이고 화목하다고 생각해 버린 지 오래다. 오호통재라!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텔레비전으로도 모자라 스마트폰이라는 또 하나의 복병을 만났다.
소통과 위안이라는 거실의 본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본래 자신의 가장 편안한 천성이란, 가족들이 서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전제가 되면서 시작이 된다. 그리고 그런 가족 간 소통을 통한 위안이 따뜻하게 다가가야, 팍팍한 인생에 힘이 되는 거실을 완성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거실을 만들 수 있을까. 거창한 공사는 필요 없다. 가구와 소품의 배치를 바꾸고 새로운 가구 아이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거실에서의 가족 행복과 행운을 만들 수 있다.
“대화를 부르는 소파 배치를 ㄱ(기억)하라”
소파를 ㄱ자로 놓는 것은 가족간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배치다.
“대화를 부르는 소파 배치를 ㄱ(기억)하라”
우선 가족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중요하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으로 향한 눈을, 가족의 얼굴을 대할 수 있는 시선으로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파의 배치가 중요한데, 일자형 소파에 앉아 가족 모두가 반대편 텔레비전이나 벽 또는 창문을 보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긴 소파에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쪼르르 앉아있는 모양새는 생각만 해도 적막하기 짝이 없다.
소파는 카우치형 소파처럼 ㄱ자형이 좋다.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을 정면에서 마주보는 것 보다는 약간 사선으로 비켜서 마주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편안한 것이 사실이다. 가족 간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비스듬히 비켜 앉아 있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편하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구조이다. 한 가지 더,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가족을 소파에 앉아 등으로 맞이하지 말고 초대하는 손님을 대하듯 정면에서 맞이하는 것이 올바른 소파의 배치이다. 그러니까 소파에 앉아서 현관이 대각선 깊은 안쪽에서 멀리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이다. 소파에 앉아 현관에서 들어오는 가족을 보기 위해 고개를 뒤로 돌려야 하는 구조라면 배치를 바꾸는 것이 좋다.
소파를 ㄱ자로 놓는 것은 가족간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배치다.
“테이블로 가족간의 대화 가능성을 높여라”
거실의 테이블은 오랜만에 부부끼리 차 한 잔을 하기에도 매우 색다른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제 부엌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보자.
똑같은 테이블이더라도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테이블로 가족간의 대화 가능성을 높여라”
몇 년 전부터 거실에 자리 잡은 인테리어 트렌드 중 가족 간의 소통을 위해 좋은 팁이 있다.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인데, 거실 한쪽에 큰 테이블을 두는 것이다. 큰 테이블의 의자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거나 도란도란 이야기하기 좋은 구조로 가족을 모이게 하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해 봄직하다.
때로 회사에서의 잔업을 해야하는 경우(아 싫다), 다소 소란스러울 수는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거실의 큰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는 것이 홀로 방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 그 뿐인가. 가끔은 큰 발코니 창을 가까이 두면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부부간에 밤늦은 대화를 하거나 차나 와인을 마시면서 꺼내기 힘들었던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있다. 이렇게 테이블이라는 가구의 배치 하나만으로도 가족이 마주보게 모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거실의 테이블은 오랜만에 부부끼리 차 한 잔을 하기에도 매우 색다른 공간이 될 수 있다. 이제 부엌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보자.
똑같은 테이블이더라도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천정 속 숨겨진 20cm에서 가족의 희망을 찾아라”
지나치게 낮은 천정은 답답한 공간을 만든다. 답답한 곳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거실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 지어진 아파트나 빌라의 경우 이 층고가 낮은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기존 천정을 철거하고 공사를 하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 선뜻 하기도 어렵다.
우물 천정 시공의 모습. 우리가 볼 수 있는 천정 위에는 약 20cm 정도의 여유공간이 있다는 사실.
조명 부분만 우물처럼 파내도 거실은 넓어진다.
이럴 때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 ‘우물 천정’ 시공이다. 천정은 보이는 마감 위쪽으로 전기나 설비가 있는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활용해서 거실 가운데 부분의 조명 공간을 위로 20센치정도 올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전체적인 높이가 높아진 것은 아니지만 조명 부분이 높아짐으로써 공간의 높이가 풍성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천정을 이렇게 부분적으로 높이는 공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높이가 높았던 조명을 요즘 나오는 높이 2센치미터 정도의 얇은 LED조명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거실은 가족들이 더 있고 싶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층고가 높을수록 꿈이나 이상도 더 높아진다고 하니 천정을 조금 높임으로 해서 가족의 희망도 솟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 집이 아니면 아무리 우물 천정 공사라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그럴 땐 조명을 바꾸는 것도 방법. 조명을 높이 달면 그만큼 천정도 높아지는 법이다.
박성준건축가
“모든 인테리어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을 토대로 방송, 강연, 저서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람을 향하는 인테리어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으며, JTBC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방영 중), Story on [THE HOUSE](2013) 등 인테리어 방송에 출연하여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테리어 시공, 컨설팅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으며, 저서로는 [운명을 바꾸는 인테리어 tip 30]을 통해 “집이 인생을 만든다”는 생각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