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헤테로토피아를 창조하는 여정

주인공의 여로 - 이효석의 천일마의 여정을 따라서주인공의 여로 - 이효석의 천일마의 여정을 따라서

「벽공무한」의 주인공 천일마의 여정을 따라서

이효석의 「벽공무한」1)은 천일마가 경성역에서 친구들의 환송을 받으며 신경행 급행열차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음악평론가이면서 문화사업가인 서른다섯의 천일마는 「현대일보」 사장의 부탁을 받고 교향악단을 초빙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가려는 길이다. 뚜렷한 직업과 사회적 지위가 없는 천일마는 자신을 환송하기 위해 나온 능보(의학박사), 종세(신문기자), 훈(소설가)과 같은 친구들 앞에서 위축감을 느낀다. 세 시 반 신경행 급행차를 탄 천일마는, 기차 안에서 사랑에도 실패하고 마지막 혈육인 어머니마저 잃은 자신의 삶을 찌그러진 가시덤불의 반생이라고 생각한다.

옛 만주국의 수도 장춘(長春)

  • 신경행 열차에서 내다보이는 끝없는 푸른 벌판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눈을 떴을 때, 일마가 탄 열차는 봉천역(현재의 심양역)에 머무르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일마는 육칠년 전과는 달리 낡은 것과 새 것이 바꾸어지고 위대한 정리가 시작된 봉천역의 모습을 관찰한다.

차가 다시 떠나기 시작했을 때, 일마는 둑 아래에서 지나는 기차를 향해 한 사람의 만주인이 바지를 벗고 유유히 용변을 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중국인이 길에서 용변을 보는 모습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한 폭의 유모어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에서 일마의 식민주의적 (무)의식을 읽어낼 수도 있다. 이후 기차의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것은 산도 없고 시내도 없는 일방무제의 푸른 벌판뿐이다.

  • 철령(鐵嶺), 사평가(四平街), 공주령(公州嶺)을 지나 도착한 신경

이후 천일마는 철령(鐵嶺), 사평가(四平街), 공주령(公州嶺)을 지나 신경에 도착한다. 기차 안에서는 반복적으로 경찰이나 세관의 감시가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 일마의 여로가 일제의 식민지적 시선과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만주국 국무원 청사

장춘(長春)은 1932년 3월 만주국의 수도가 되면서 신경(新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후 신경의 도로에는 로터리가 설치되었고, 로터리로부터 방사선 혹은 환상으로 뻗어 나가는 도로를 따라서 녹지대가 펼쳐졌다. 근대적인 공원과 인공호수가 구축되었고 상하수도가 정비되어 수세식 변소도 설치되었다. 또한 중심가에는 독특한 개성의 현대식 건물들이 집중적으로 건축되었다. 아래 보이는 만주국 국무원 청사는 서양 고전 건축의 요소를 가진 건물 본체에 중국 전통 건축의 지붕을 설치한 것이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당시 동양 정신과 서양 기술을 결합하여 가장 앞선 문명을 건설했다고 자부하던 일본 제국의 망상적 자부심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마, 하얼빈으로 향하다

  • 하얼빈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 계통의 소피아 성당

일마는 신경역에서 내린 후에, 자기를 짝사랑하여 그곳까지 쫓아온 여배우 단영을 돌려보내고 혼자 하얼빈행 기차에 오른다. 오후 한 시에 신경역을 출발한 일마는 네 시간이 지나 하얼빈역에 도착한다. 하얼빈이야말로 「벽공무한」의 핵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얼빈은 제정 러시아의 중동철도 부속지를 중심으로 개발된 계획도시이다. 하얼빈은 중동철도의 기점으로 러시아가 만주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거점도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동양의 모스크바’로 건설된 계획도시이다.2) 하얼빈의 그리스 정교회 계통의 소피아 성당은 하얼빈이 얼마나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구적 도시인지를 잘 보여준다.

  • 하얼빈의 대표적 서구식 호텔

동시에 하얼빈은 20세기 전반 러시아, 영국, 미국,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전이 펼쳐진 무대이기도 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반영하듯, 이효석이 하얼빈을 방문했던 1939년 당시 하얼빈의 인구분포는 매우 혼종적이었다.3) 일마는 하얼빈을 국적과 인종의 진열장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다. 하얼빈에서 친구 벽수를 만난 후, 일마는 이미 전보로 예약해 놓은 모데른 호텔로 향한다. 모데른 호텔은 하얼빈을 대표하는 키타이스카야가(街)에 위치한 대표적 서구식 호텔이다.

  • 키타이스카야가(街)

일마가 완전히 구라파의 한 귀퉁이인 하얼빈에 머물며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나아자와 같은 백계러시아인들이다. 볼셰비키의 탄압을 피해 하얼빈으로 온 백계러시아인들 중에는 지식인이나 예술가가 높은 비율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로 인해 하얼빈시와 거류지는 오랜 러시아적인 생활의 최후 성채가 되었고, 하얼빈에는 음악, 노래, 시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일마는 키타이스카야가(街)에 있는 모데른 호텔에 머물며 주로 캬바레나 극장 등을 오간다.

일마보다 몇 년 전에 키타이스카야(현재의 중앙대가)를 먼저 찾았던 홍종인은 �애수의 하르빈�(「조광」, 1937년 8월)에서 키타이스카야에서 나는 라스꼬리니꼬프를 많이 보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1896년 개발 당시 ‘키타이스카야’로 불렸던 이 거리는 1925년 지금의 중앙대가로 이름이 바뀌었다. 천일마도 그를 낳은 이효석도 더 이상 하얼빈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그들이 사랑했던 키타이스카야 거리와 모데른 호텔은 그대로이다.

벽공무한이 그리는 만주와 러시아

1932년 3월 만주국이 성립되고, 1935년 3월 23일 동지철도가 만주국에 매각되면서 하얼빈의 러시아 사회는 쇠퇴한다. 사람들은 서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간신히 생활하였고 철도 수입이 점점 적어짐에 따라 더욱더 빈약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하얼빈에 사는 러시아인의 지위는 거의 기아 수준까지 떨어졌다.4) 이를 반영하듯 「벽공무한」에 등장하는 러시아인들은 모두 불우한 처지이다. 만주리와 할빈에서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읜 나아자는 백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캬바레에서 일급 일원도 못 버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아자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소녀 에미랴는 고아로 혼자 지내며 마약에 중독되어 지금 병까지 든 상태이다. 일마는 백계 러시아인들이 자신처럼 사회 경제적으로 불행한 ‘쭉정이’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이 순간 키타이스카야 거리는 국제적 쭉정이의 진열장이 된다. 자신과 나아자는 쭉정이라는 같은 계급이기 때문에 결합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쭉정이의 사상은 일마가 하얼빈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벽공무한」에서 오랫동안 하얼빈에 거주한 벽수는 하얼빈에 온 일마에게 만주는 복잡한 구렁이라고 말한다. 벽수의 ‘복잡한 구렁’이라는 표현처럼, 하얼빈은 ‘구라파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일 뿐만 아니라 ‘범죄와 공포의 공간’이기도 하다.

  • ‘구라파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과 ‘범죄와 공포의 공간, 하얼빈

이러한 특징은 하얼빈에서 신문기자를 하는 벽수의 숙부 한운산을 통해 드러난다. 「벽공무한」에서 한운산은 대륙당이라는 규모 있는 약방을 운영하는 부자이지만, 중국이나 만주백성들을 등골부터 녹여내는 약을 팔아 그러한 부를 축적하였고, 지금도 그러한 종류의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벽수의 말처럼 만주에 들어와 소위 성공했다는 조선 사람의 대부분은 아마도 다 그 같은 위험한 길을 걸은 사람들이며 조선인들에게 열린 길이라곤 그것밖엔 없다고까지 이야기된다. 나아자와 귀국한 지 달포 만에 일마는 사건 돌발 황당불이 급래희망 한벽수라는 전보를 받고, 급하게 하얼빈으로 돌아간다. 일마가 종세에게 전한 편지에는 한운산이 깽 일단에게 납치되어 몸값으로 삼십만 원을 요구받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중에 몸값 삼십만 원을 지불하고 한운산이 풀려난 후에도, 깽의 정체에 대한 비밀은 밝혀지지 못한 채 여전히 오리무중에 숨겨져 버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로 인해 하얼빈이라는 도시가 지닌 공포는 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일마의 만주행은 친구 박능보의 말처럼, 시험관 속의 액체의 변화같이 삽시간에 놀라운 변화를 일마에게 가져다준다. 자신의 삶을 찌그러진 가시덤불의 반생이라고 생각하던 일마는 할빈 교향악단을 성공적으로 초빙해오고, 이로 인해 일마의 사회적 명성은 크게 높아진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할빈 교향악단의 방문공연이 실제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작품이 쓰여지기 직전인 1939년 3월 26일 백계 러시안인들로 구성된 할빈 교향악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한 바 있으며, 당시 본격적인 교향악단이 없었던 조선에서 이들의 공연은 커다란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벽공무한」에는 할빈 교향악단이 베토벤의 작품만 너무 많이 공연을 했다며 불평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할빈 교향악단의 공연도 전반부에서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과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5)
또한 일마는 만주에서 채표(오늘날의 복권)와 경마로 큰돈을 벌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일마는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미인 나아자와 함께 경성으로 돌아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일마의 만주행은 말 그대로 인생 대반전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처럼 「벽공무한」에서 ‘복잡한 구렁’으로 표현되는 하얼빈은 ‘구라파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 ‘범죄와 공포의 공간’, ‘일마의 꿈이 실현되는 공간’이라는 혼종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하얼빈은 미셸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6)라고 할 수 있다. 일마의 여정에 나타난 지리적 상상력을 요약하자면, 구라파는 도달할 수 없는 상상의 장소(utopia)이고, 하얼빈은 가짜 유럽이자 가짜 유토피아로서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7)이다.
처음 경성(조선)은 일마가 나아자에게 조선은 커다란 빈민굴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나듯이, 가난과 제국의 힘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상세계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곧 일마의 만주행을 통해 ‘커다란 빈민굴’로까지 일컬어지던 조선은 새로운 가능성을 담지한 헤테로토피아로서 그 성격이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이국적인 멋이 넘쳐 흐르는 일마와 나아자의 신혼집과 아름다운 것은 태양과 같이 절대라는 이효석의 유미주의적 세계관이 구체화 된 녹성음악원을 통해 구체화된다고 할 수 있다.

1) 이효석은 「창공」을 《매일신보》(1940년 1월 25일-7월 2일)에 연재한 후, 다음 해에 「벽공무한」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박문서관에서 출판하였다. 「이효석전집」(창미사, 2003)을 기본텍스트로 삼았다. 인용시 본문 중 괄호 안에 면수만 기록하기로 한다.
2) 김경일 외, 「동아시아 민족이산과 도시」, 역사비평사, 2004, 284면
3) 총 인구는 517,127명이며, 조선인 6,330명, 일본인 38,197명, 중국인 439,491명, 소련인 2,548명, 무국적인(백계 러시아인) 28,103명, 기타 외국인 2,548명이다. 기타 외국인에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인 등이 포함된다. 위의 책, 292면
4) 얀소레키, �유대인�백계 러시아인에게 만주란�, 「만주란 무엇이었는가」, 박선영 옮김, 소명, 2013, 473-480면
5) 이상만, �한국음악백년 일화로 엮어본 이면사�, 「경향신문」, 1986.10.9.
6) 푸코는 공간을 일상 공간, 유토피아 공간, 헤테로토피아 공간의 세 가지로 나눈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다른, 낯선, 다양한, 혼종된’이라는 의미를 가진 hetero와 장소라는 의미의 topia가 합쳐진 용어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와는 구분되지만 동시에 일상 공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기능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면에서는 유토피아와 유사하다. (미셀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47면)
7) 「벽공무한」에 나타난 헤테로토피아로서의 성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효석의 「벽공무한」에 나타난 하얼빈�(졸고, 「현대소설연구」 58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15.4.)을 참고할 것.

이경재 교수 -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6년생
저서 다문화 시대의 한국소설 읽기』 『한국현대소설의 환상과 욕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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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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