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공감 있고없고

잔소리의 미학

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1화, 잔소리의 미학KBS 역사저널 그날 PD의 세대공감 있고없고 1화, 잔소리의 미학

“ 한국 사람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의사소통 욕구도 강하다.

그 말하는 법을 서로의 공감대 위에 발전시켜 나간다면 좀 더 즐거운 일상이 되지 않을까. ”

지금 우리는 : 현상 바라보기

설 연휴를 앞두고 가장 우려하는 것은?

명절 스트레스 유발인자, 잔소리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1,546명을 대상으로 한 올해 2월 조사에 따르면 명절 스트레스 1위가 친인척의 부담스런 잔소리에서 오는 정신적 부담이라고 한다. 설문 대상자 중 미취업자의 경우에는 취업과 관련된 잔소리를, 미혼 직장인은 결혼에 관한 잔소리를, 기혼 직장인은 출산에 관련된 잔소리를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로 꼽았다. 인생의 각 단계 별로 어른 세대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일간지 기사를 검색해보니 20여 년 전의 신문은 명절 스트레스라는 기획 코너를 통해 주부들의 명절 노동을 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하면서 여성들만이 감당해야 하는 명절 노동의 과다함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여성들의 과다한 명절 노동이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명절 스트레스이라면 친인척의 잔소리는 21세기 들어 새로이 급부상한 스트레스 유발 인자인 셈이다.사실 어른들의 잔소리는 동서고금 늘 있어 왔다. 그런데 왜 요즘엔 그 잔소리를 나를 위한 조언으로 듣지 않고 정신적 부담으로 해석하고 꺼리는 것일까?

그때와 오늘 : 눈 높이 맞추기

1990년대 : “대발이 아버지”의 참견질

최고 시청률 64%의 진기록 '대발이아버지' 신드롬의 주인공 사랑이 뭐길래

1991년 11월부터 1992년 5월까지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최고 시청률이 64.9%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받은 등장인물은 이순재가 맡아 연기한 ‘대발이 아버지’이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그는 집안 식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고 참견한다.

모델 지망생인 딸이 청바지 입는 것조차 버럭 화를 내며 반대할 정도. 이순재씨는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대발이 아버지 인기에 힘입어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중랑 갑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13대 선거에서는 낙선의 쓴 맛을 봤던 그가 재기에 성공한 것은 ‘대발이 아버지’ 덕분인 것은 자명하다. 그렇게 25년 전만 해도 ‘잔소리 대마왕 대발이 아버지’는 당시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 요즘 세대들은 ‘대발이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2010년대 : ‘덕후’ 신드롬

능력자들
마이리틀텔레비전

서울연구원이 작년 7월에 발표한 ‘광복 70년, 서울은 어떻게 변했을까’ 조사에 따르면 1960년 서울 가구 절반은 단칸방에 거주했다. 단칸방에 산다는 것은 개인생활이 없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이다. 1970년대 들어서 가족오락의 절대강자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가정은 한 대의 TV를 소유했다. 채널선택권은 많은 경우 가장이 갖기 마련이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같은 드라마, 같은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공통의 화제를 나눴다.

그러나 서울연구원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는 방 하나 당 거주인구는 1.11명으로 약 1명이 방 한 개씩을 쓰는 걸로 파악되고 있다. 자기만의 방이 생기니 부모님이 쓰는 안방에 다 같이 모여 TV를 보던 시대는 끝이 났다. TV가 두 대 이상인 집도 많고 TV가 없어도 컴퓨터와 태블릿, 휴대폰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각 개인별로 자신이 선호하는 컨텐츠를 따로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TV 채널 수도 엄청나게 늘어났고 유튜브 등 새로운 컨텐츠 소비방식의 등장, 싸이월드와 블로그 시대를 거쳐 개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의 확산으로 개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자기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개인 별로 취향이 세분화되자 주목받는 단어가 ‘덕후’ 라는 말이다.

‘어떤 취미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란 뜻의 일본말 오타쿠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최근의 대중문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현상 중 하나이다. 이는 TV 프로그램에도 반영되어서 작년 11월부터 MBC는 특정 취미활동에 전문가 경지의 지식을 갖고 열정을 보이는 일반인들을 소개하는 [능력자들] 이란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또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유명인들이 출연해서 각자의 전문분야와 취향들을 1인 방송의 형태로 전달하고 있다.

TED식 잔소리의 미학 기꺼이 듣고자 하는 자발성과 세련된 유머, 적절한 시간

TED

‘개인’보다는 ‘우리’를 앞세워 살아온 나이든 기성세대에게는 개인의 취향이 강조되는 지금의 현실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에 이르는 동안 젊은 세대의 개인 영역은 갈수록 세련되어지고 정교해지는데 나이든 어른세대는 그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 채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왔다. 게다가 세상의 다양한 지식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축적되고 있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나이든 기성세대는 이를 따라 잡기가 힘들어진다. 아는 게 힘인데 아는 게 없으니 발언권이 약화되고 자녀 세대들에게 종종 무시당하기도 한다. 무력감을 느끼는 그들이 잘 아는 게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살아온 과거의 방식과 살면서 가장 공을 들인 존재, 그들의 자녀들이다.

즉, 그들에게 덕후의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아마도, 자녀 덕후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어른들은 익숙한 발언권을 재확인하고 기꺼이 행사하려고 한다. 자녀의 직장 일과 취미생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뭐라고 이야기 나눌 재료가 없으나 자녀의 일상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낼 소재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들은 대화를 한다는 생각으로 잔소리를 시전한다. 과거의 세계관에 입각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방식에 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취업과 결혼, 자녀문제에 대해 아는 체 하고 간섭한다. 유머도 없고 딱딱하고 일방적이다. ‘내가 살아봤더니 이렇다’ 라는 설교 조가 대부분이다. 촌스럽고 지루하며 목소리도 큰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권위주의 시대의 수직적 의사소통방식에 익숙한 그들의 조언은 이내 부담스런 잔소리로 읽힌다.이 지점에서 멘토와 꼰대가 갈린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사람들은 멘토를 간절히 찾아다니지만 꼰대는 기를 쓰고 피한다. 조직 내 회의석상 또는 회식자리에서 조언이랍시고 개인의 취향과 사생활에 대해 참견하는 장광설을 잘못 풀어내면 꼰대 취급 받으며 기피인물 1순위에 오른다.

최근 각광받는 강연회 형식인 TED를 살펴보자.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관련 강연회에서 시작된 TED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하려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TED 강연 영상을 살펴보다 보면 강연자들 대부분이 유머를 곁들여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고 있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8분이라는 시간제한도 있다. 지루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기꺼이 듣고자 하는 자발성과 세련된 유머, 적절한 시간제한!
이 지점에서 일방적인 잔소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김혜남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장은 잔소리를 일종의 나르시시즘으로 해석한다. 내 생각에 맞춰야 한다는 어른들의 무의식이 표출되어 나오는 것이 잔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과 나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예전 집단사회에서는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이에서는 어른의 잔소리가 문제시 되지 않았으나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경계를 지키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잔소리에 대해 방어본능이 발동된다고 말한다. 발언권을 잃어가는 어른들의 나르시시즘에서 표출되는 잔소리.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심리를 강하게 표현하는 젊은 세대. 둘의 충돌과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앞으로 우린 : 한걸음 더 다가가기

새로운 방식의 말 걸기가 필요하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보다.

1997년 발표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우리나라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나치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 귀도와 어린 아들 조슈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가슴 뭉클한 부성애를 다뤄 1999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의 격찬을 받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아들 조슈아를 데리고 힘든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귀도는 아들을 상대로 세상사 어려움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 수용소 생활은 단지 게임일 뿐이고 최초로 1,000점을 따면 탱크를 준다고 말한다.

그의 의사소통 방식은 잔소리와 참견이 아니라 놀이와 보상이었다.

관객들도 귀도의 이 시도에 설득된다. 비극적인 상황을 다룬 영화이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유쾌하게 이 영화를 즐기고 감동받는다. 결국 어린 아들 조슈아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아버지를 회고한다.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2006년 발표된 [미스 리틀 선샤인]이다. 이 영화는 어느 괴짜 가족의 어린이 미인대회 참가를 둘러싼 우여곡절을 다룬 가족 코미디 영화이다. 등장인물 중에는 자신의 꿈인 파일럿이 될 때까지 말을 안 하겠다는 침묵서약을 하고 필담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10대 아들 에드윈이 등장한다. 하지만 파일럿이 될 수 없는 색맹이라는 걸 알게 된 에드윈은 크게 낙담한다. 이때 가족들은 어느 누구도 섣부른 조언과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위로의 장면은 이렇게 표현된다. 낙담한 에드윈이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때 그의 어린 여동생 올리브가 뒤에서 다가온다. 7살짜리 여자 아이는 말없이 오빠와 어깨동무를 하고

말없이 오빠와 어깨동무를 하고 한참 동안을 같이 있어 준다.

가족들은 이 모습을 뒤에서 말없이 바라본다. 에드윈은 말문을 트고 가족들과 여행길에 다시 나선다. 여동생의 그 행동만으로 위로와 진심이 전해진 것이다.

7살 올리브와 가족들이 에드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섣부르게 개입하기를 자제한 것처럼 말을 걸 시기를 현명하게 판단해야한다. 섣부른 말 걸기는 상대에 대한 성급한 판단이 되며 그것은 상호간의 공감대 형성을 방해한다.

필요한 것은 그 때를 위한 기다림이다.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는 또 다른 기다림이 필요하다. 오랜 기간 살아온 방식이 축적된 그들에게서 단 시간 내에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힘들다. 다만, 자녀 덕후인 그분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캐릭터가 바로 ‘나’임을 생각해보자. 그분들의 잔소리에 귀를 막는 대신, 커다란 진심의 자잘한 파편 같은 잔소리들이 전달하는 부모님의 따듯한 마음을 느껴보자. 부모님이 ‘나’ 라는 캐릭터의 덕후라 생각하면 귀엽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능력자들]에 나온 출연자들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갈 수도 있다. 그 토대 하에 공감을 향한 이야기를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감 플러스 추천 메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와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보다.

  • 사랑이 뭐길래
  • 1991년 11월-1992년 5월 방영
  • 연출 : 박철
  • 극본 : 김수현
  • 출연 : 최민수, 하희라, 이순재, 김혜자 외
  • 전형적인 보수적인 아버지인 대발이의 가정에 당찬 신세대 며느리 지은이 시집오면서 벌어지는 가족 이야기!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윗세대가바라보는 아버지상을 공감해보세요.
  • 능력자들
  • 2015년 11월 ~ 현재
  • 기획 : 조희진
  • 연출 : 이지선, 허향
  • 출연 : 김구라
  • 유명인 위주의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덕후’ 일반인들이 출연하여 자신들의 장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능력자들’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덕후’ 문화가 가진 흥미로운 장점을 공감해 보세요.
  • 인생은 아름다워
  • 1997 드라마, 코미디
  • 감독 : 로베르토 베니니
  • 출연 :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스치, 마리사 파더레스 등
  • 나치수용소를 배경으로 아들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재치와 사랑을 그린 영화‘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아이를 배려하는 아버지의 재치있는 소통 방식을 배워보세요.
  • 미스 리틀 선샤인
  • 2006년 코미디, 드라마, 모험
  • 감독 : 조나단 데이턴, 발레리 페리스
  • 출연 : 스티브 카렐, 토니 콜렛, 그렉 키니어, 폴 다노, 아비게일 브레스린, 알란 아킨
  • 7살 올리브의 가족이 어린이 미인선발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여곡절을 다룬 가족 코미디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을 통해 삼대의 사려깊은 소통 방식을 배워 보세요.
황범하_KBS PD연출 『역사저널 그날』 『다큐멘터리 3일』 『명작 스캔들』외 다수
일러스트
JB(영화), 신명환(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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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4-0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