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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용정보원에서 실시한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성우’ 가 2위를 차지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2월의 [하우&나우]에서는 ‘성우’ 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러브하우스’ 에서 “어떻게 변했을까요?” 와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에서의 “파헤쳐보자 팍팍!” 으로 익숙한 데뷔26년차 성우, 동물농장 아저씨 안지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 안지환 성우의 하루 일과 -
#0. 프롤로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하루가 알람 소리로 시작될까? 물론 울리는 시간은 각기 다 다르겠지만, 내 알람은 5시50분에 울린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뜨고 일어나는 시간은 6시 10분 정도. 일어나면 꿀물 한 잔을 마시면서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잠시 오늘 하루 일과를 머릿속에 정리한다.
#1.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다
출근길에 택시를 타서 ‘목동 SBS로 가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순간, 기사님이 뒤를 돌아본다. 라디오에서 듣던 목소리가 뒷좌석 손님에게서 나오니 그럴 수밖에 없다. 출근길은 길지 않지만, 내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는 기사님과의 동행으로 기분 좋은 아침 시간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좀 뜬금없을지 모르겠다. 유명해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뭔가의 달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딱 자신만의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름 석 자를 말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성우.
그래서 성우들 중에는 박일 선배를 존경한다. 그야말로 만능이셨다. 성우임에도, 배우 고현정 씨랑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하셨을 정도니까. 라디오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연기 폭도 넓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었다.
#2. 방금 본 것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방송국에 도착하면 작가실로 간다. 대본 나온 것을 받고, 메이크업 받고, 아침을 먹는다.
라디오가 10시에 들어가니까, 10분 전까지는 들어가서 준비를 한다.
여기서 잠깐,
생방송을 앞두고 준비시간이 단 10분?
누군가는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가능하다.
아니, 실제로 현실이 그렇다. 생방송이란 건 마지막까지 대본 수정을 봐야 하는 상황인지라, 방송 들어가기 조금 전까지도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막상 방송이 시작되면, 10분 전에 본 그 내용을 몇 십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전달하는 것이 내 일인 것이다.
그렇게 끝나면 12시. 이때는 휴일에 방송할 분량을 미리 녹음한다.
그러고 나면 동물농장 내레이션 녹음. 동물들 스케줄에 따라(!)이 일정은 유동적이다.
또한 내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 역시 나거나, 안 나거나 유동적이다.
#3. 성우와 배우의 차이
- 성우는 무슨 직업이고 어떻게 해야 성우가 될 수 있을까 -
사람들은 말한다. 성우란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들 아니냐고. 물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성우는 마이크 앞에서 연기한다. 그것이 ‘무대’ 다. 장소의 차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연기라는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연기를 하고, 사람들은 그 중에서 목소리를 발췌해 몰입한다. 다시 말하면, 목소리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 연기인 것이다. 가령 내가 브래드 피트 역을 할 때, 혹은 애니메이션의 만화 주인공을 할 때, 실제 내 얼굴이 떠오른다면 좀 곤란할 거다. 그런 의미에서 성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직업이다.
무대 말고 성우와 배우의 또다른 차이점을 찾으라면 ‘문’ 이다. 성우가 되고자 한다면 방법은 사실 하나뿐이다. 공채. 성우는 방송사의 공채를 통하지 않으면 성우협회에 등록이 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배우처럼 특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경력이 있으니까 ‘인정해 주자’ , 그런 것도 없다. 방송사마다 성우 공채가 있는 곳들이 있다. 다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공채로서 경력을 쌓으면 프리랜서 성우로 활동하기도 한다.
#4. 성우가 설 곳이 좁아졌다?
- 성우의 요즘, 그리고 미래 -
요즘 성우의 ‘무대’ 는 많이들 좁아졌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물론 윤도현이나 김남길 같은 연예인들이 내레이션을 멋지게 해내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성우들에게‘성우답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올 정도다. 누군가는 우리의 역할을 빼앗겼 다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나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 그만이라고. 실제로 내 경우 다양한 채널에서 TV, 라디오 진행을 맡아서한다. 그러나 이 역할도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나운서나 전문 DJ 들의 몫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다. 이것이 나쁜가?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언제나 시청자에게 향해야만 한다.
얼마전 <무한도전> 더빙 특집에서도 그랬다. <비긴 어게인>의 주인공을 하하가 아닌 내가 했다면 아마도 더 잘했겠지만, 시청자들이 하하의 더빙을 원한다면, 그것이 100% 옳은 방향이다.
시청자들이 전통적인 더빙 방식에 권태를 느낀다면, 우리 연기자들이 그 갈증에 맞추어 변화하고 진화하면 된다.
#5. 더빙에 관한 뼈아픈 기억
-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
다음은 KBS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그 근처에서 파는 어묵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
이걸 하나 먹고, <위기탈출 넘버원>의 더빙을 마치면 저녁 즈음이 된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더빙’ 하면 떠오르는 뼈아픈 일화가 있다. MBC 전속 성우 시절이었다.밤새 시사하고 피곤해 아침 녹음을 앞두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너무 푹 잔 것이다. 결국 지각했다.더빙실에 도착해서도 무서워서 문도 못 열고 있는데 녹음이 끝났다. 선배가 문을 열고 나와서 잔뜩 긴장해 인사를 했다. 그런데,
...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시더라. 내가 했어야 할 더빙은 내 동기가 급히 대신한 상황이었는데, 선배들은 누구 하나 그걸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던 거다. 그 순간,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내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인가? 내가 성우로서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 일을 하는데도 영향을 많이 준다. 지금도 내가 아니면 안 되는 현장, 내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 현장이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6. 모든 비결은 연습이다
- 기침하는 것까지 연습했다 -
사실 어떤 일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비결은 연습이다. 수 년의 세월 동안 원고를 새카맣게 채워가며 기침까지 연습했다. 흔히 말하는 순발력, 애드립? 이런 것은 감이 아니라 연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기회는 올 때 잡는 것이 아니라 악착같이 만드는 것이다 .
얼마 전 <마을 >이라는 작품도 원래는 내레이션 섭외가 들어왔지만, 내가 직접 제작진에 출연을 제의했다. 실은 영화감독 장진과의 인연도 그런 케이스다. 인천아시안게임에 장내 아나운서로 갔다가 그와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작년 <바라던 바다> 라는 영화를 함께하기도 했다. 뭐든 내가 도전하지 않으면, 때는 안 온다. 때는 만드는 것이다. 행운은 기회와 준비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단, 이런 것은 있다. 성우로 시작했다면 성우로서 끝까지 가본 다음에 새로운 기회에 도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뒤, ‘나는 성우다 ’ 라는 말을 비로소 제대로 할 수 있을 때쯤이 좋겠다.
#7. 성우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인가?
-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성우가 될 수 있다 -
만일 내 아이가 성우를 원한다면, 우선 ‘끼 있는 사람’ 이 되라고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좋은 목소리보다 중요한 것이 끼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이 아닌, 더 풍부한 감성으로 연기하는 사람이 되라는 조언이기도 하다.
연예인을 지망하는 학생들 중에 일부는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차선책으로 방송활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송활동도 만만치가 않다. 뭐 하나 특별하게 못 하면서, 이거 하기 귀찮으니까 다른 것 하겠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뭔가 하나, 자신의 분야는 있어야 한다. 남들보다 특별하게 잘할 수 있는 뭔가 하나.
타고난 재능도 물론 필요하다. 말은 비주얼이다. 예를 들어, 득음이란 단어를 말한다고 해보자. 득, 음, 이라는 발음이 아니라 폭포수가 쏟아지는 곳에서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는 그림이 연상되지 않나. 그런 것을 잘 전달하는 사람, 즉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성우에 적합하다.
#8. 에필로그: 오늘보다 행복한 어제를 위하여
저녁 시간, 성우 안지환으로서의 일과가 끝난다. 다음은 온전히 나로서의 시간이다. 사람을 만나거나, 다음날 일정을 고려해서 가볍게 한 잔도 할 수 있고. 집에 들어오면 자정이 좀 넘는다. 그렇게 씻고 잠들면, 다시 아침. 알람이 울린다. 그것이 나의 평범한 하루들이다.
어떤 현장을 가더라도 늘 내 이름 앞에는 성우라는 두 글자가 붙는다. 내가 다른 어떤 꿈을 꾸더라도 내 기본은 성우고,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말, 내가 지내는 하루들도 모두 성우 안지환으로서의 날들이다. 나는 모든 일에 성우로서 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느낀다.
누군가 내게 성우로서 행복한가를 묻는다면, 맞다. 행복하다.
다만 어떤 직업을 가졌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에도 힘든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힘든 오늘보다 행복한 어제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힘들더라도 내일 생각하면 ‘행복한 어제였어’ 라는 느낌이 들도록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How 성우, 사이다 정리
1. 어떻게 해야 성우가 되는 것일까?
길은 하나. 방송사 공채에 합격하는 것. 공채를 통해야 대한민국 성우협회에 성우로서 등록이 되는 시스템이다.
2. 목소리가 좋은 편이 아니면, 성우가 되지 못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목소리가 전부가 아니다.
풍부한 감성으로 연기할 수 있는‘끼’가 있고,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
3. 요즘 성우계의 분위기는 어떤가? 앞으로의 전망은?
확실히 과거보다는 좁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분야의 경계를 막론하고 비성우가 성우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성우가 비성우의 영역에 도전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4. 내 아이에게 성우라는 직업을 추천해 줄만 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하지만 딱히 하고싶은 것이 없어서 방송 쪽 일을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 ‘ 끼’ 가 있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5. 목 관리에 특별히 신경 쓰는 게 필요한가?
당연히 하면 좋겠지. 나는 딱히 안 하는 편이다. 아침에 꿀물 한 잔 정도? 다만 시끄러운 장소에 가지는 않는다. 내 목소리도 더불어 커지기 때문에 목에 무리가 간다.
안지환
1993년 MBC 11기 공채 성우
<주요 작품>
SBS TV 동물농장,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KBS 위기탈출 넘버원,
SBS 러브FM 안지환 김지선의 세상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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