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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거기까지》먼지 - 2

 

휴대폰 없이 일주일.

그제야 떠올랐다.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 기하가 저번에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무슨 웨딩홀 지하라고. 돌아서는 나를 윤이 툭툭 쳤다.

“여, 여기로 오, 와. 여얼씨도, 개조탱구리…… 하아실 끝나면 그, 그때자나. 재수뻑가……”

윤은 나한테 레스토랑 명함을 주며 욕을 한 사발 뱉었고 딸꾹질도 믿을 수 없는지 아예 넓적한 테이프를 꺼내 붙였다. 그 위에 마스크까지 덮고 나한테 손가락을 쫙 펴 보였다. 열 시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 시간까지 오라는 건지, 지나서 오라는 건지 아무튼 열 시. 내가 거기를 찾아갈 일은 없겠지만 알아들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말하기가 고통인 윤이 불쌍하다. 우리한테는 아주 당연하고 아무것도 아닌 말하기가 얘한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니. 그나저나 화실이 열 시나 돼야 끝난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말 따위 꺼낸 적 없는데. 기하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도 그렇고.

베네치아.
내가 찾아갈 곳은 블랙콜.

블랙홀이겠지. 근처에 웨딩홀은 하나뿐이고 큰길에 있어서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웨딩홀의 별관 쪽 지하에다 뒷골목으로 입구가 나 있고 간판은 진짜로 ‘블랙콜’이었다. 오타가 아니었다.

입구에 ‘클럽 데이’를 강조하는 공연 포스터가 요란하게 붙어 있고 입장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꽤 모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대단한 클럽 같지는 않았다. 입구로 다가가자 종업원처럼 보이는 청년이 아직 입장이 안 된다며 막았다. 오늘은 무료입장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입장할 거 아니고, 더스티 멤버 좀 만나려고 왔는데요.”

청년은 들은 둥 만 둥. 내가 안 비키고 한 번 더 말하자 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뭐 이런 게 왔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야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지만 저쪽에서는 우습게 들릴 말이었다. 입장도 안 하고 밴드 멤버를 좀 보겠다니. 돈 내고 들어가서 밴드 음악을 즐기는 것도 여기서는 만난다는 뜻일 텐데. 하지만 가진 거라고는 달랑 동전뿐이다. 근처에 있던 또래 여자애들이 눈치를 주고받으며 픽 웃었다. 걔들이 우습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화장을 했고 차려입는답시고 모양은 냈지만 앳된 얼굴도 가리지 못했고 촌스럽기가 민망할 정도다.

“죄송하지만, 저한테는 중요한 일이라서요. 휴대폰 찾으러 왔다고 말씀만 전해주시면 돼요.
그쪽에서 먼저 연락한 거라 아실 거예요.”

그제야 청년이 나를 다시 보았다.

“아, 적어드릴게요.”

나는 근처를 두리번거리다 마침 담벼락에서 떨어져 밟힌 포스터 하나를 주웠다. 하필이면 더스티 포스터였다. 문신처럼 화장한 여성 멤버가 맨 가운데서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누군가의 발자국에 찍힌 얼굴이 안돼 보였다. 고사리무늬 같은 게 한쪽 얼굴에서 이마로 이어져 있는 게 꼭 꿈틀거리며 자라는 식물에 이 여자가 갇혀버릴 것만 같다.

포스터 뒤에 또박또박 적었다.

안기하 휴대폰 찾으러 왔어요. 공연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이 정도만 해도 알아보겠지, 생각하다 마저 적었다.

김무.

“꼭 전해주세요. 부탁합니다.”

나한테서 이렇게 예의바른 태도가 나올 줄 몰랐다. 별수 없다. 지금은 이거라도 챙겨야 될 판이라. 그새 기하가 찾아가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시라도 구겨버릴까 봐 꽤 오래 지켜보았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가 헛소리나 하게는 안 생겼는지 유용한 정보까지 던져주었다.

“1부 공연도 11시 반에나 끝나.”

1부가 있으면 2부, 3부도 있다는 건가. 1부가 그 시간에 끝나면 밤새도록 노는 날이라는 거다.

“11시 반까지 기다려야 되나요?”
“그거야 알아서 해야지.”

분명히 지금 저 안에 있을 테니까 말만 전하면 될 걸. 잠깐 나와서 휴대폰 주는 게 뭐 어렵다고 까다롭게 군다. 더스티가 1부 내내 공연하는 것도 아닐 테고. 부루퉁한 심정으로 나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입장을 시작하면 말 붙이기도 어려워진다.

“11시 반에 다시 올게요. 메모 좀 꼭 전해주세요.”

청년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이런 데 문지기도 이 시간에는 끗발이라는 게 생기는지 힘이 제대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밸이 꼴려도 티 내지 말아야지, 메모라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 나만 곤란해진다.

골목이라 바람이 더 스산했다. 손이 차가워지니까 손등이 더 욱신거린다. 어디 가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햄버거 가게 같은 데서 구석 자리쯤 차지해도 된다. 하지만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종업원들은 그런 부류를 잘도 알아챌뿐더러 무엇보다 남들이 옆에서 먹어대는 게 고역일 거다. 라면으로 겨우 달랜 배만 폭삭 꺼지고 말지. 피트니스 클럽에 들어가면 시간 보내기도 좋고 씻을 수도 있는데 이용기간이 어제로 끝나버렸다.

그제야 생각났다.

윤. 베네치아.

내가 이렇게 단순하다. 조금 전 일을 이렇게 까먹고 있다니. 역시 나는 의사씩이나 되는 그보다 단순하고 열등한 엄마를 더 닮은 게 분명하다. 다행히 나한테는 교통카드도 있고 베네치아에 가면 뭐든 먹게 될 것이다. 윤이 나를 거기 못 데려가서 안달인 이유가 뭘 좀 먹어보라는 거였으니까.

전철로 몇 정류장. 멀지도 않고 찾기도 쉬운 곳에 베네치아가 있었다. 지나다가 몇 번 본 곳이기도 했다. 자식. 벌써부터 이런 데서 일하다니. 역시 부모는 잘 만나고 볼 일이다. 아들이 요리사가 되고 싶다니까 이런 데를 떡하니 넣어줄 수 있는 부모. 그것도 요리사 되라고 밀어주는 게 아니라 마음잡고 공부에 집중하기 전에 잠시 겪어보라고 했단다. 취미 생활처럼. 교수, 회계사쯤 되면 그런 게 물 마시듯 쉬운가 보다.

“어서 오십시오! 베네치아입니다!”

활짝 웃으며 목소리 높여 여자 종업원이 나를 맞았다. 밖에서 보기보다 안이 넓은 편이었다. 연이어 여기저기서 남녀 종업원들이 똑같은 소리를 했다. 나를 보지도 않고 녹음기처럼. 손님에 대한 일종의 매뉴얼인 셈이었다. 여기만 오면 윤이 보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 저기. 오윤 때문에 왔는데요.”

내가 손님이 아니라서 태도가 달라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여종업원은 여전히 밝고 싹싹하게 나를 테이블까지 안내해줬고 명찰에 붙은 마이크에 대고 주방에다 말을 전했다. 나중에 이런 데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맛있는 걸 매일 먹을 텐데. 하지만 고등학교도 못 나오면 어림없을 거다. 아마도.

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낯선 청년이 다가왔다. 스물다섯이나 여섯쯤. 머리가 펑키 스타일이고 양쪽 귀에 피어싱을 한 청년인데, 젖고 음식물 자국이 얼룩진 앞치마 차림이었다. 그가 몇 발짝 떨어진 데서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그 표정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내가 진짜 윤의 친구인지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방금 전에 기분 상하는 일이라도 있었는지 살짝 찡그린 것 같기도 하고. 윤이 말한 셰프라면 나를 데려오라고 한 사람이고, 그렇다면 저런 표정은 좀 아니지 않나.

“네가 그 김무?”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잠시 딴생각에 빠졌던 것처럼 그가 살짝 웃었다. 웃었다기보다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는 게 맞겠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만만해 보여서 발 디딘 얕은 물웅덩이에서 발목까지 쑥 빠져버렸던 것처럼. 그래도 인상에 비해 목소리가 참 좋다.

“그래. 저기, 윤은 접시 정리하는 중이야.
“아, 네.”
“아, 그래. 난 그러니까. 음. 아, 저녁은 먹었니?”

그가 손을 깍지 껴서 주무르며 어색하게 물었다. 말이 좀 그랬다. 대개는 처음 본 애한테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젖고 덴 자국이 많은 그의 손에서 핏기가 없어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인가. 특이한 캐릭터다. 펑키 머리나 피어싱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저런 태도. 나는 내내 찜찜했다.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와서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조금 뒤에 윤이 나타났다. 여전히 아까 그 마스크를 아직도 하고 있었다. 펑키 머리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나를 슬쩍 보고는 다시 주방으로 갔다.

“저 사람이 셰프야?”

윤이 그를 돌아보더니 마스크를 벗고 입에서 테이프도 뗐다. 불쌍하게도 입술 주변이 빨갰다. 또 한바탕 윤의 입에서 욕 다발이 터졌다. 옆 테이블을 신경 쓰며 간신히 딸꾹질까지 마치고서야 윤이 어렵게 말했다. 셰프는 아니고 스태프 중에 하나란다.

건성으로 끄덕였을 뿐 셰프니 스태프니 하는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나는 모른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고 나중에 셰프가 될 사람이라고 하면서 윤이 엄지를 세웠다. 자기 롤 모델이라나. 그리고 나를 데려오라고 한 사람이라고도 말해주었다. 정말 이상했지만 묻기가 좀 그랬다. 일할 시간이기도 하고 욕 때문에 손님들을 놀라게 할 게 뻔해서.

부모가 능력껏 꽂아줬다고 해도 윤은 막내라서 다시 주방으로 가야 했고, 곧이어 나는 보기도 처음인 음식을 테이블 가득 받았다. 모양뿐 아니라 맛도 좋아서 정신없이 먹었는데 먹을수록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음식을 먹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문하지도 않은 게 나왔으니 계산하라고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게다가 아무도 나한테 음식 맛이 어떤지 묻지 않았다. 듣기로는 ‘신 메뉴 테스트 때문에 부른다’였는데. 입맛이 워낙 저렴해서 물어본다고 해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어쩐지 주방에서 펑키 머리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열 시 반이 넘자 홀이 한산해졌고 주방이 정리에 들어갔다. 다들 너무나 분주해서 나는 그냥 일어나기도 앉아 있기도 어색한 지경이 되었다. 윤을 보고 나서야 그나마 부담스러운 기분을 다소 누를 수 있었다.

“나, 가도 되냐?”

윤이 착한 아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다음 일요일에 도진과 기하까지 다 모이게 문자를 보내겠단다. 자기 생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주방을 보았으나 펑키 머리는 자기 일에 바빠 보였다. 너무 예민했나 보다. 하긴, 나는 지금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문까지 배웅을 나와 윤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꼭 얘네 집 같다. 윤이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형이 너 또 오래. 나는 뒤를 한 번 돌아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홀도 펑키 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까 표정으로 봐서는 도대체 나를 왜 또 오라고 하는지 짐작도 안 된다. 그냥 인사인가.




/ 작가소개 /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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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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