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재소설

《거기까지》먼지 - 1

 

휴대폰 없이 일주일.

나 스스로 유리방에 갇혔다. 사방이 트여 있으나 결코 열리지 않을 유리 보호막 안에서 나는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누가 알아채려고도 하지 않아 마치 투명인간처럼 겉돌았고 무중력 세상의 외톨이가 된 듯 내 걸음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자주 숨이 막혔고 울고 싶었고 실제로 말라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무’일까. 재주 많으라고 이런 이름을 붙여줬다고는 했지만 엄마 같은 사람이 나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을 리 없다. 애들은 소 울음소리로 나를 놀려댔고 선생들도 처음 본 내 이름을 그냥 봐 넘긴 적이 없었다. 어떤 애는 아예 자기 마음대로 지어 불렀다. 무보다는 뮤가 더 좋아. 너도 좋지.

내가 부정의 증거라는 걸 알지만 그게 어디 내 탓인가. 드라마 같은 사랑에 빠졌다고 믿은 열일곱 살짜리 여자애와 무책임했던 대학생이 저지른 잘못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벌을 고스란히 내가 받아야 하나. 그들은 뭘 잘못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매 순간 어떤 벌을 확인하며 사는지 관심도 없다.

아무리 억울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이 나를 붙잡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상한 환상이 자라났다. 나를 두르고 있는 유리벽에 보이지 않는 플러그가 대기 상태로 꽂혀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 감상적이지만 어쨌거나 거기 기대서 유리방을 견뎠다. 수리 맡긴 휴대폰이 살아나면 환상이 먼지처럼 흩어져버릴지도 몰라 차라리 유리방의 칩거를 기꺼이 견디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나보다 내 손에 독이 퍼지고 있는 걸 노려보는 중이다. 나는 나 때문에 날마다 무너지고 있는 엄마를 느끼면서도 무시하고. 혜인이 뭔가 말하려는 듯 쳐다본 적 있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걔를 무시하기도 다시 쳐다보기도 쉽지가 않다. 뭐든 한 번 꼬여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박또박 적어 보냈을 윤의 문자. 보나마나 하루에 한 번씩 뭐든 보냈을 거다. 그리고 어쩌면 더스티. 그사이 어떻게든 기하가 휴대폰을 찾아갔다면 몰라도. 이런 것들에 대한 환상으로 나는 유리방에서 질식하지 않고 근근이 버틸 수 있었다.

유일하게 열고 나온 문이 화실이었다.

이나마도 없었다면 못 버텼을 거다.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던 내 인생에서 이건 처음 하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학교는 일주일의 반을 결석해도 화실은 빠지지 않았다. 비록 사진 쪼가리를 모방하는 그림이라도 나는 순진하게 집중했고 사진에 없는 선과 색이 나타나는 것에 선생은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심각해 보이는 손등을 걱정해줬다.

“그러지 말고 병원에 좀 가지.”

피도 안 섞인 선생도 이러는데 엄마는 나를 후벼 파야 직성이 풀리는지 어쩌다 한마디를 해도 넌덜머리가 나게 했다. 나 같은 아들은 나도 골치가 아팠을 것 같기는 하다. 우리는 가끔 마주 앉아서 밥도 먹고 한집에서 자고 화장실 앞에서 부딪칠 뻔도 했지만 되도록 겹치지 않고 건드리지 않고 숨도 가능하면 다른 쪽을 보면서 쉬었다.

“학교 때려치우는 건 그렇다 치자. 어차피 네 인생이니까. 근데 병원비 떼먹는 건 뭐냐, 새꺄! 그거 얼마나 된다고. 나한테 전화 오잖아! 거둬준 공을 이따구로 갚는 새끼가 어딨어?
애초부터 말썽이더니 끝까지 날 엿 먹이네, 저게.”

가슴이 철렁했다. 병원비. 그 전화가 올 줄이야. 그것도 하필 엄마한테. 몇 천 원 때문에 이런 추적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그런데 그게 저렇게 흥분할 일인가. 나야 켕기는 게 있다지만 엄마한테야 병원비쯤 문제랄 것도 없을 텐데. 그동안 겪은 일에 비하면 껌도 아니다. 혹시 병원비 말고도 뭔가 알아차렸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고따구로 살 거면, 제발 이제라도 우리 안 보고 말자. 뭐 좋은 인연이라고 다 늦게 너 같은걸.”
“바늘 도둑은 무슨. 내가 뭐 훔쳤대? 그게 지금 맞는 소리라고.”
“뭐 인마! 그래, 이게 나다!”

느닷없이 뒤통수에 손찌검이 떨어졌다. 순간 눈에서 불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나는 침을 삼키며 머리카락을 움켜쥐기만 했다. 여지없이 비어져 나오는 진땀. 본능적인 이 반응은 나만의 독일지도 모른다. 더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아직도 내가 함부로 때릴 수 있는 어린애로 보인다면 엄마가 실수하는 거다.

“곱게 알아들을 것이지, 사람답게 살게 해줬더니만.”
“알았으니까 그만해.”

어금니로 깨문 말도 통하지 않았다. 참았던 걸 다 해부치기로 작정했는지 엄마의 거친 입은 도무지 닫힐 줄을 몰랐다.

“너, 내가 우습지? 너 같은 자식, 감방에 처박히게 그냥 둘걸!”

머리가 뻐개질 듯이 아팠다. 사정없이 머릿속을 뚫어버리는 무기가 바로 내 속에 있었던 거다. 나는 닥치는 대로 옷을 챙겨 입었다. 겉옷을 꿰고 도면 통을 짊어지는데 또다시 손찌검. 나는 엄마의 양팔을 꼼짝 못하게 움켜쥐었고 기어이 뱉어버렸다.

“제발 그만하라고. 겨우 이 정도면서! 말해줘? 나 아니었어도 결국 버림받게 돼 있었다고!”

눈이 허옇게 커지고 진저리치는 얼굴을 더 볼 수가 없었다. 엄마를 떨쳐버리고 뛰쳐나왔다. 모든 걸 다 가진 듯 당당해 뵈던 그의 아내에 비하면 더 싫고 더 초라하고 더 무식하고 더 마음에 안 드는 엄마. 그것도 사랑이라고 믿고 나만 안 생겼으면 인생이 꼬이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 바보. 바보라서 화가 나고 나 때문에 미치겠고 그게 다 그 때문인 것 같아 돌아버리겠다.

교통카드와 푼돈 얼마. 주머니에 그게 전부였다.

휴대폰도 없다. 이미 어두워졌는데 갈 데가 없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할까. 유치하게도 무사히 잘 살아내자는 다짐을 뭘 믿고 했을까. 적어도 나 때문에 속상해한다고 믿었는데 이렇게 환상 하나가 깨지고 만다. 모든 게 엉망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중3 담임 문제로 엄마가 이사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희망적이었다. 엄마는 실적이 좋아졌고 나는 나를 모르는 애들과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가 텔레비전에 얼굴만 안 내밀었어도. 그렇다. 모든 게 거기서부터 꼬였다. 내 인생을 뒤흔드는 나비의 날갯짓. 고상한 척하던 면상에 화장품 병을 집어던지던 엄마 심정이 이랬을까. 그래 봐야 그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브라운관 너머의 보호막 속에 있었다. 제기랄. 지금껏 겪은 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나 아직 스무 살도 안 됐는데. 주민등록증도 없는 미성년자인데.

긴장이 가라앉고 진땀이 멈추자 선득선득 한기가 느껴졌다. 이제 밤이면 제법 추워지고 오늘은 바람까지 분다. 기하를 만나야겠다. 이 상태로 집에는 못 들어간다. 최소한 옆방 가족으로라도 지내려면 며칠은 지나야 할 것이다. 돈이 필요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이게 다 길거리에서 생긴 후유증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애들과는 몇 끼니를 같이 해결해도 개인적인 걸 묻지 않았다. 어쩌다 듣는 소리도 대부분 거짓말일 게 뻔해서 믿지 않았다. 그런 거짓말이 싫었다. 내 휴대폰에 번호 입력도 걔들이 알아서 했을 정도로 나는 틈새 애들에게 무관심했다. 더스티가 아직도 그걸 가지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거면 기하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혹시나 싶어 틈새로 갔다. 그리고 벽을 쳐다보며 뜨거운 라면을 국물까지 다 빨아먹었다. 또 입천장을 뎄다. 옆에서 숟가락 꽂을 놈들도 이젠 없는데 정신없이 먹고 보는 이 나쁜 습관이 왜 안 고쳐지는지 모르겠다.

아줌마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지켰건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안 오는 건지 벌써 다녀갔는지. 묻기도 좀 그래서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다. 내가 여기서 친구도 아닌 애들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다니. 그나저나 라면 먹는 바람에 달랑 동전뿐이다. 찜질방에도 못 간다.

벌써 건너편 병원에 불이 꺼진 걸 보면 치과 원장님의 한마디가 아주 중요한 집인가 보다. 하긴, 별로 고개 숙인 적 없이 살았을 것 같은 아줌마였다. 결혼은 그런 사람이랑 하고 텔레비전에서는 건강 가정 전문가랍시고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피트니스 클럽에서는 다친 애를 보고도 그냥 가고 잘못도 묵인해주고. 참 편하게 산다. 누구는 시작부터 불행하고 누구는 무슨 짓을 해도 억세게 잘 먹고 잘사니 정말 뭐 같은 세상이다.

그때 누가 와락 달려들었다.

“야! 존나재수개조리씨바새……”

욕쟁이 윤.

욕이 이렇게 반갑기도 처음이다. 윤은 미안해서 입을 틀어막고도 한참 동안 욕을 씨불였다. 욕은 욕인데 줄줄이 쏟아져 뭉개지니 뭔 욕인지도 모르겠고 듣다 보면 웃음이 난다. 그러다가 딸꾹질. 마침표처럼 딸꾹질을 하고 나서야 윤이 활짝 웃었다. 아직도 열 살짜리처럼 웃는 애를 나는 잠시 멀거니 보기만 했다. 윤이 이렇게 생긴 애였구나.

저렇게 멀쩡하다가도 별안간 욕이 터지는 병 때문에 나만큼이나 힘들게 사는 애다. 내 생각에는 돈 잘 벌고 자식이 잘되기를 끔찍하게 바라는 훌륭한 부모 때문에 얘가 이렇게 힘든 것 같다. 틱도 엄연히 병이라던데 아픈 애더러 좋은 대학에만 가라고 한다니. 시설에 있던 애는 주기적으로 눈을 깜빡이고 아, 소리를 내는 정도였는데도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윤이 이 부분에서는 걔보다 못한 거 같다. 윤이 휴대폰을 꺼내서 나는 손을 저었다.

“휴대폰 없어.”

아하, 하는 표정이 그동안 문자 수신도 안 돼서 무지 궁금했던가 보다. 기특한 자식. 덕분에 내 환상 하나가 헛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부터 오윤을 친구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기하 요즘도 여기 오냐? 나 걔 만나야 되는데.”

윤이 고개를 저었다. 문자를 보내도 대꾸가 없단다. 내가 알기로 기하는 윤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윤을 부를 때조차 이름이 아니라 언제나 욕쟁이였다. 예사로 집적거리고 함부로 무시하고 병인 줄 알면서도 번번이 성질을 벌컥 내는 자식이 그래도 얘한테는 친구인가 보다.

“휴, 휴대폰 언제 찾아? 아, 씨바퍽!”

윤이 또 입을 막았다.

“벌써 찾았어야 하는데. 아, 기하 자식…… 혹시 너, 걔가 놀러갔다는 클럽 어딘지 알아?”

내가 기하를 자꾸 언급하자 윤이 진지해졌다. 그러더니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고 이 액정을 나한테 보여줬다. 뜻밖에 도진이다.

블랙콜.




/ 작가소개 /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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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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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