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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대 영화

과학일 필요는 없다 - 마션

과학일 필요는 없다 마션과학일 필요는 없다 마션

SF영화는 과학이 아니다.

SF영화는 과학이 아니다. 과학일 필요도 없다. 어디까지나 상상과 허구이다. 그래서 과학이란 말 뒤에 픽션을 붙였다. 인간이 우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간이 달에 가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낼 만큼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우주 전체로 보면 그 정도는 티끌에 불과하다.

저 광활한 우주,
은하계와 그 바깥의 세상을 어찌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있으랴. 영원한‘신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우주를 상상하고 가정한다.
아주 조금씩 알아간다. 이제 인간이 화성에까지 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 <마션>은 최초로 그곳에 갔다 사고로 혼자 남은 한 남자의 생존기이다. 원작인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앤디 위어의 소설에 붙은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란 부제 그대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도 입증된 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하기는 했지만 역시 SF영화다. 아직 인간은 화성을 가보지 못했다. 무인우주선이 보낸 정보로 중력, 공기, 토양의 상태를 알아냈지만 그것을 100% 확신할 수 없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이 화성에서 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지만, 그 물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 다만 과학과 자료를 믿는다면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마션>이 SF영화가 아닌 과학다큐멘터리나 탐사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상상이고 허구이다.

여기에 정색을 하면서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며 “이것은 말도 안 된다”느니, “저것은 억지다”라고 분석하고, 오류를 검증하려고 덤비는 일은 어리석다. <마션>보다 어마어마한, 다른 은하계와 블랙홀, 웜홀로 들어가 시간의 길이가 다른 세계까지 가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황을 맞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인터스텔라>도 그렇다. 꿈을 현실로 착각하고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과학자라면, 우주공학자라면 재미 삼아 그렇게 따져보는 일도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런 소설과 영화 앞에서 과학자일 필요는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관객과 독자는 과학자가 아니다. 얕은 과학적 지식으로 영화와 소설의 상상이 주는 재미를 스스로 반감시킬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하는 그 상상이 어느 날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과학은 그 엉뚱한 상상을 따라가면서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과학은 이미 많은 것들을 그렇게 했다. 그러니 지금의 과학적이란 잣대야말로 우주에 대한 상상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엉터리라도 영화가 마음대로 상상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과학에는 귀중한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소설에 나오는 과학적 설명이나 이론들을 하나하나 따져본다든가, 그것들을 영화가 제대로 다루었는지 따지는 것 역시 피곤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마션>에서도 수많은 과학적 이론과 기술들이 등장한다. 산소 만들기, 물 만들기, 통신 수단, 식물재배 등등. 일지 형식의 6백 쪽에 달하는 소설은 아주 구체적인 공식과 방식까지 세밀하게 제시한다. 부지런한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중에는 상당히 검증된 객관적인 것들도 있다. 영화 <마션>은 그것마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축약된 이미지로 대신한다. 글과 영상의 차이일 것이다. 조금 더 친절하게 자막으로라도 설명을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어차피 영화는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과학은 허울에 불과할 뿐, 진짜 알맹이는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니까.

<마션>은 처음 선언했듯이 낯선 곳에 혼자 고립된 인간의 생존기이다.

무대만 다를 뿐, 이런 이야기는 <로빈손 크루소>에서부터 <캐스터 어웨이>까지, 소설과 영화에 무수히 등장했다. 그리고 무대가 우주공간으로까지 확장된 것도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두 가지 매력을 가진다. 하나는 호기심, 또 하나는 기대이다. 호기심은 공간에 대한 것이고, 기대는 인물에 대한 것이다.

공통점도 있다. 주인공 모두 그곳이 어디든 인간의 놀라운 집념과 잠재력으로 온갖 절망과 공포를 극복하고 생존에 성공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자세와 유머를 잃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한다. 식량을 구하고, 불을 만들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을 물리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 무엇보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진다.

<마션>의 주인공 마크도 결국은 로빈손 크루소이다. 장소가 지구가 아닌 먼 우주, 환경이 전혀 다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설사 누군가 그의 위치와 존재 사실을 알아도 구조나 도움이 거의 불가능한 ‘화성’이지만 무인도의 로빈손 크루소와 공통점과 조건이 같다. 최초로 화성 탐사팀으로 6일 만에 모래폭풍으로 부상을 입고, 동료들은 떠나버린 화성에 홀로 남은 후 무려 5백여 일을 견디며 마침내 동료들에 의해 구조되기까지, 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천재과학자여서도, 화성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한 식물학자여서도, 강한 체력의 소유자여서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스스로 살아 돌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어이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타’가 되는 꿈도 꾸었다.

그래서 그는 주어진 여건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문제를 하나씩 꼼꼼하게 해결하고, 끈기를 가지고 생존에 최선을 다했다. 감자를 심어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는 물과 공기를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무인화성탐사선이 남겨놓은 옛 통신장비인 패스파인더를 찾아 송수신에 32분이 걸리는 스틸카메라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지구와 교신을 시도한다. 구조되기까지 그는 5백여 일을 버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주의 해적, 화성의 정복자를 자처하면서 ‘생활’을 한다. 화성의 농부를 자처하고, 환경에 순응하고, 신의 섭리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운다. 마치 감자 재배를 가능하게 해준 박테리아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그도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간다. 그에게 시간은 은총이 아니라, 저주이다.

소설 『마션』

『마션』은 소설이고 영화이다. 과학이나 우주 개발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가 마침내 긴 시간의 생존 투쟁을 이겨내고 무려 19개월의 우주비행을 연장하면서까지 지구로 향하던 헤르메스를 되돌려 화성으로 온 아레스 탐사대 동료들에 의해 구조될 때까지의 모습을 <마션>은 비장미나 처연함이 아닌 유머와 재치로 그려낸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소설도, 영화도, 마크도, 그를 도운 사람들도, 관객도 무거워 쓰러졌거나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이런 설정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마션>은 어디까지나 허구라는 것.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마크처럼 화성에서 5백일 이상 살아남을 사람은 없다.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마크의 말처럼 무려 30억 달러짜리 우주선(MAV)의 장치들을 모두 뜯어내 깡통으로 만들고, 아레스 탐사대 동료들이 명령을 어기면서 목숨을 걸고 비행기간을 19개월이나 연장해 그를 구하러 되돌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십중팔구 그의 생존 사실을 절대로 세상에 알리지 않을 것이고, 그냥 죽은 걸로 영원히 묻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마션>은 소설이고 영화이다. 과학이나 우주 개발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연히 생명과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십 억 달러짜리 우주선도 망가뜨리고, 다시 쏘아 올리고, 동료들은 19개월이 넘는 우주비행의 고통과 희생도 기꺼이 감수할 마음이 되어있다. 지구촌이 마크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그의 구출에 가슴을 졸이고 기도한다. 탐사대 동료들인 루이스, 베크, 조한슨, 마르티네스와 미 항공우주국장 샌더스, 화성탐사계획 총책임자인 카푸어, 제트추진연구소의 사람들까지 모두‘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그 흔한 악당조차 한 명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마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때문에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명, 가족이 곧 세상이고, 우주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설명과 상상력이 엉터리라 하더라도 영화와 소설은 이처럼 딸을 다시 만나기 위해 다른 은하계로까지 간 <인터스텔라>의 쿠퍼를 지구로 돌아오게 만들고,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화성에 고립된 <마션>의 마크를 구해낸다. 한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명, 가족이 곧 세상이고, 우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우주와 맞바꾸는 선택. 비록 그것이 허구이고 상상 속의 모습일 뿐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마크의 말처럼.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 ,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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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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