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달문의 숨은 조선사

아버지를 찾아서

광대 달문의 숨은 조선사 9. 아버지를 찾아서
9.아버지를 찾아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추운 겨울, 창덕궁 대한문 앞에 선 달문이 히죽 웃는다. 달문 : 살다가 보니 궁궐에도 초대를 받아보네. 달문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자 수문장(1화에 나왔던 그 수문장)이 호통을 친다 수문장 :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얼씬거리느냐! 썩 물러가라. 달문 :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청 떨어지겠네. 여기가 어디긴? 나라님이 사는 궁궐이지. 수문장 : 맞다. 이곳은 나라님이 사시는 곳이라 너 같은 놈이 올 곳이 아니다. 달문 : 초대받아서 왔는데요? 수문장 : 뭐라고?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그때 수문장의 등 뒤에서 관복 차림의 선비(지난 화에 등장한 그 선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비 : (어험!하는 헛기침 소리와 함께) 그 자는 초대를 받아서 온 것이 맞네. 수문장 : (무심코 돌아서다 깜짝 놀라며) 이번에 대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신 분이 아닙니까? 선비 : 그렇다네. 저 자를 데리고 들어오라는 주상전하의 분부가 계셨네. 그렇게 달문은 머쓱해하는 수문장을 뒤로 한 채 궁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앞장서 걷던 선비에게 묻는다. 달문 : 그나저나 어쩐 일로 저를 궁궐로 초대하셨답니까? 선비 : 멀리 청나라까지 다녀오느라 고생했으니 화산대(火山臺)를 구경하라고 하셨습니다. 달문 : 화산대요? 선비 : 네. 매년 연말에 궁궐에서 하는 불꽃놀이를 화산대라고 부른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의 시작을 맞이하기 위한 행사이지요. 화산대를 보고 저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가라고 하셨습니다. 얘기를 나눈 두 사람이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지지난 화에 나온 규장각 앞의 연못) 옆에 화산대가 설치되어 있다. 신하들이 모여서 웅성대는 가운데 규장각 앞에 선 정조와 박제가의 모습이 보인다. 달문이 꾸벅 인사를 하자 정조와 박제가도 아는 척을 한다. 박제가 : (고개를 조아리면서) 전하. 이제 시작하겠사옵니다. 정조 : 그리하게. 박제가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군복을 입은 군기시 관리가 화승 끝에 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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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이 발사통에 닿자 하늘을 향해 불꽃이 날아가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달문은 불꽃을 보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다. 달문 : (혼잣말로) 올해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선비 : (달문의 중얼거림을 듣고 고개를 돌려)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던가요? 달문 : (씩 웃으면서) 그런 셈이죠. 끝이라는 게 사실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릅니다. 선비 : 참으로 맞는 얘기입니다. 뒷짐을 진 선비가 달문과 나란히 서서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그리고 불꽃놀이가 잦아들자 선비가 달문에게 말했다. 선비 : 이제 슬슬 떠나실까요? 달문 : 그럽시다. (갑자기 생각난 듯) 가다가 잠깐 들릴 곳이 있어요. 선비 : 어디를요? 달문 :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을 잠깐 보려고요. 장면이 바뀌고 달문과 선비는 어느 초가집 앞에 서 있다. 마당에는 자리를 깔고 앉아서 돗자리를 만드는 허생원이 보인다. 옆에는 책이 한권 놓여있어서 허생원은 틈틈이 책을 보고 있다. 선비 : 이 자는 누굽니까? 달문 : 한때 세상을 미워했던 허생원이라는 분입니다. 마음을 바로잡고 글공부를 새로 시작한 모양입니다. 선비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달문은 발걸음을 돌린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어느 초가집이다. 물통을 짊어진 소녀(더위 편에서 얼음을 구하려던 소녀)가 장작을 패던 아버지에게 말한다. 소녀 : 아버지. 몸도 성치 않으신데 그만 하고 쉬세요. 아버지 : (웃으면서) 아니다. 어린 네가 힘들게 옥바라지를 했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느냐. 걱정 말거라. 달문 : 저 소녀는 전옥서에 갇힌 아버지에게 줄 얼음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답니다. 선비 : 그래서 얼음은 구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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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문 : (씩 웃으면서) 제가 힘을 좀 썼지요. 딸의 지극한 정성을 본 아버지가 개과천선을 했답니다. 선비 : 삶을 새로 시작하는 셈이군요. 달문 :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야말로 새로 시작한다는 말과 잘 어울리지요. 달문이 발걸음을 떼자 선비가 같이 가자며 허둥지둥 뒤따라간다. 달문이 간 곳은 시내의 떡 가게다. 삼월이와 남편이 아이 1,2를 비롯한 손님들에게 열심히 떡을 팔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다. 달문 : 삼월이는 노처녀였다가 가뭄이 심해지는 바람에 나라에서 혼수를 줘서 혼례를 치렀지요. 시장에 떡 가게를 열었다고 하더니 장사가 잘 되나봅니다. 선비 :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함께 오순도순 새롭게 시작했군요. 저도 저런 배필을 얻고 싶습니다. 달문 : 꼭 그러시길 바랍니다. 이제 한군데만 더 들렸다가 가도록 하지요. 선비 : 그러시죠. 두 사람의 발길이 도착한 곳은 어느 바닷가다. 초가집이 있고, 유구국으로 갔다가 돌아온 할아버지 김원진이 물고기가 가득 든 광주리를 들고 들어선다. 그러자 부엌에서 손녀 김용덕이 뛰어나온다. 김용덕 : 할아버지! 파도가 심하게 쳤는데 괜찮으셨어요? 김원진 : 그럼! 우리 손녀 줄려고 고기 많이 잡아왔다. 팔닥팔닥 뛰는 고기를 본 김용덕의 눈이 커진다. 김용덕 : 우와! 진짜 크다. 김원진 : 이걸로 오늘 저녁을 먹자꾸나.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웃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달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걸 본 선비가 말한다. 선비 : 이제 어서 가시지요. 달문 : 그러시죠. 두 사람이 떠나는 기척을 느낀 김용덕이 싸리담장 밖을 쳐다본다. 김용덕 : 누가 왔다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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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은 깊은 산골에 있는 허름한 초가집에 도착한다. 약속이나 한 듯 걸음을 멈춘 두 사람. 달문이 선비에게 말한다. 달문 :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그 덕으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죠. 하지만 진정 기쁨을 얻은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선비 : 그 덕이 모인 게 맞는 것 같군요. 아버지를 만나면 또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겁니다. (초가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입니다. 어서 가보시지요. 마침내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달문이 문 앞에 선다. 달문 : (떨리는 목소리로) 아, 아버지. 그러자 문이 털컹 열리면서 누군가 나온다. 아버지 : 누가 왔는가?
ㆍ글 │정명섭
ㆍ그림 │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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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2-1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