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끝없는 허공을 묵묵히 걷는 사자에게

끝없는 허공을 묵묵히 걷는 사자에게 윤후명의『돈황의 사랑』
4월은 역시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때문에 5월로 접어들면서부터 내내 생각했습니다. 저 햇살 속으로 사라질 수만 있다면 참 좋겠어. 당신(윤후명 작가)이 기자 시절 맡았던 취재물 ‘단절의 현장’을 떠올리며 한줌의 햇살만 있으면 그런 현장 속이라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맥이 빠지면 세검정의 ‘근대화 수퍼’에 들러 사이다 한 병을 마시면 기운이 날 것이고, 강원도의 너와집 같은 곳에서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 다시 가슴이 뿌듯해질 것이고. 그렇게 나를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얄팍한 멋도 거대한 의미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픈 발로 사막을 걷고 있는 ‘서울의 소녀’를 찾아 나서는 일은 그야말로 ‘단절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누란의 소녀’를 연상하며 ‘서울의 소녀’를 찾아 나선 것이 잘못이었는지요?
세종문화회관 우측 벽면의 비천상 사진
△ 세종문화회관 우측 벽면의 비천상(피리 부는 여인)
‘서울의 소녀’를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인 듯 보였습니다.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선 저는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선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들어섰습니다. 3시 15분의 햇살을 기분 좋게 온몸으로 받으며 건물 정면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의 벽면 양쪽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는 두 개의 비천상을 하나하나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했습니다. 당신이 들었던 피리소리와 상황소리를 기대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저에게도 천녀의 옷깃을 바람에 날리며 가슴에 안은 공후를 맑게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당신처럼 그 자리에서 말없이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멀고먼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천녀의 노랫소리커녕, 공후소리커녕, 언젠가 시골 장터에서 들었던 약장수의 피리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건너가시지 말라고 하였어도 그대는 물을 건너 가셨네.
빠져서 목숨을 잃으니 앞일을 어찌하오.
발길을 돌려 세검정 소림사를 찾아가는 길 내내 공후인의 슬픈 노랫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처음엔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떠올랐고, 병든 어머니가 떠올랐고, 군대 간 아들이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까마귀 떼가 나는 눈밭에 홀로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이웃나라 노인이 떠올랐고, 종이를 반으로 접은 것처럼 굽은 등으로 하루 종일 밭을 매고 있는 어머니 고향의 노파가 떠올랐고, 어느 날 느닷없이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버린 아들의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모두 당신처럼 깊이, 또 넓게 애끓는 이별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림사 오르막 길 사진
△ 말할 수 없이 잠잠하고 호젓하고 다소곳한 느낌의 소림사 오르막 길
소림사 계단 사진
△ 오밀조밀 잘 짜여진 무대장치 같은 소림사 계단
고즈넉한 풍경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행복감을 심어주는 모양입니다. 아직 먹중들 사이에서 슬프게 오락가락하는 사자였던 시절의 당신이 ‘서울의 소녀’와 자주 다니던 소림사는 생각보다 대로에서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그런데도 무척 다른 세상 같았습니다.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그렇다고 고상하지도 않은 간판에서 눈길을 떼고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려다보는 순간 아! 하고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더군요. 한껏 물이 올라 번진 4시 48분의 햇살 때문인지 말할 수 없이 잠잠하고 호젓하고 다소곳한 느낌. 저는 그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이런 생각을 했지요. 이 길목에선 슬픈 모습으로 오락가락 하는 사자들이 그나마 낮잠을 청하며 잠시라도 슬픔을 내려놓을 수 있었겠구나.

당신이 떠남을 염두에 두고 오르내렸던 소림사의 계단은 오밀조밀 잘 짜여진 무대장치 같았습니다. 늘 떠남을 획책하면서도 늘 좌절해왔던 영원한 시간의 계단. 떠남과 만남이 어쩌면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당신의 말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잘 형상화시켜 놓은 장소 같아 저 역시 여기가 어디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당신이 ‘서울의 소녀’와 언제까지나 말놀이를 하고 있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냉수 떠놓고’ 올린 가난한 결혼식 중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겠지요?
소림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의 세검정에 있는가. 중국의 승산 기슭에 있는가.
소림사는 세검정에도 승산에도 있지 않다.
그러면 어디 있는가.
바로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인 것이다.
소림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길 건너편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혹시나 당신이 지난날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던 허름한 길가 술집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줌인을 누르자 과거를 재현하듯 제 눈앞으로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분위기가 당신이 들려준 세검정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의 허름한 길가 술집은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더군요. ‘단절의 현장’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세검정 사진
△ 윤후명 작가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의 세검정
바위산 사진
△ 자하문 터널 위 힘이 넘친 필치로 쓸어 내린 듯한 바위산
하지만 저는 당신이 꽤나 많이 지나다녔다는 거리를 구석구석 사진으로 담으며 어느 정도 단절의 안타까움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연유에선지, 새나라 자동차 공업사 뒤 공터에 쌓아놓은 검은 폐타이어를 보며 검은 루핑의 지붕을 떠올렸고, 대산노래방 유리문을 열고 거리로 튀어나온 한 소녀를 보며 당신에게 노래를 들려준 공후 노인의 손녀를 떠올렸고, 여흥이 남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훔쳐보며 소녀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소녀의 얼굴 속에 돈황의 사랑과 서울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비천무를 올려다보며 기대했던 공후 소리가 소녀에게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던입니다.

6시 30분이 되어도 햇살은 좀처럼 숨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소림사 주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저는 근대화 수퍼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샀습니다. 그러면서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았지요. 혹시 이 근처에 소주나 막걸리를 파는 허름한 술집이 있나요? 하지만 가게 주인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보며 아차! 했습니다. 허름한 술집이 아니라 오래된 술집이라고 물었어야 했던 거지요. 차라리 가게 주인이 알아먹든, 말든 그럴싸하게 폼을 잡고 취재 어쩌고 하며 돈황의 사랑이니, 윤후명 선생님이니 하고 떠들어댔다면, 혹시 가게 주인의 취미가 독서인 사람이라면, 그곳이 세검정이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했을 법도 한데 말입니다.

세검정.
당신이 세검정을 처음 찾았던 것은 1964년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일 때였다지요. 제가 망태할아버지란 말만 들어도 자지러지게 울던 아주 작은 꼬마였을 때, 당신은 자하문 고개 넘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세검정과 깊은 인연을 쌓기 시작했더군요. 가랑비가 하루 종일 안개처럼 흐르다 멈췄다 하는, 그렇다고 음산하지는 않은 날에 버스를 타고 자하문 고개를 넘는 순간 황록색에 붉은 빛을 띤 가을 잎사귀들이 무리 지어 날리는 비현실적인 느낌의 마음이 한눈에 들어왔다죠. 바로 그 느낌 때문에 세검정이 두고두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었다죠.

당신이 그런 느낌은 받은 곳이 하필이면 왜 세검정이었는지, 당신이 왜 그 10년 뒤 다시 세검정을 찾게 되었는지, 그리고 당신이 왜 지금도 바위산을 쓸어 내린 듯 힘에 넘친 필치로 그려진 그 먹이 수 차례의 붓질에 의해 겹쳐져 있어 마치 먹을 쌓아 올린 듯한 겸재의 ‘인왕재색도’를 말하며 세검정을 표현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저는 결국 자하문 고개를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아낙네가 자하문 고개를 드나들면 바람이 난다는 둥, 풍수지리설로 해석하면 역풍이 분다는 등 구실을 붙여 광해군을 몰아내고 자하문을 폐쇄했던 반정군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당신의 ‘서울의 소녀’가 바람이 났다면 돈황의 사랑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 건지? 아무튼 저는 자하문 고개를 오르며 어느새 미뤘던 숙제를 하듯 ‘서울의 소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7시 35분 자하문 고개에 이르러선 햇살이 수그러든 때문인지 ‘누란의 소녀’와 ‘서울의 소녀’를 잇는 한 마리 북청사자가 달빛 아래 춤추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당신 말에 의하면 신라 산예의 사자이기도 하고 돈황의 벽화 사자이고 한.

둥, 둥, 둥, 둥, 둥, 둥, 갈기가 흔들리며 몸이 떨린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지칠 때까지, 지칠 때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둥, 둥, 둥, 둥, 둥, 두.

춤판이 끝났을 때의 ‘돈황의 사랑’이 ‘서울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敦煌의 사랑 책 사진
돈황과 혜초 스님에 관한 이야기, 탈춤에 대한 원론, 북청 사자춤에 얽힌 일화, 누란과 미라에 대한 이야기, 소림사, 고대악기인 공후 등에 얽힌 설화적 내용들을 직접적으로 술회하면서 낯선 존재에 대한 일종의 동경과 과거 삶에 대한 기억 등을 통해 현실적 삶의 실체를 부각시킨다.
글과 사진
이평재_소설가. 1959년생.
소설『마녀물고기』, 『어느 날, 크로마뇽인으로부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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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1-1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