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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거기까지》틈새 - 4

<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거기까지>틈새 - 4<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거기까지>틈새 - 4

“학원 등록 안 했다며.”

엄마가 중얼거리며 식어버린 미역국을 떠먹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보호자 번호를 아무거나 적었는데. 학교를 통해서 전달됐나. 학원까지 일부러 찾아갈 사람이 아닌데. 그걸 알고도 저렇게 차분할 건 또 뭐람. 정말 착한 엄마라도 될 작정인가.

“야. 그날, 내가 뭔 소리 했어?”

또 한 숟가락. 건성으로 숟가락질하며 엄마가 또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아, 그날. 텔레비전 박살 낸 날. 우리한테 ‘그날’로 공유될 건 그뿐이니까. 정신 줄 놓기 전에 그의 이름을 내게 똑똑히 심어주고도 생각 안 나는 모양인데 뭘 감지한 걸까. 어떤 빌미도 흘리지 않았는데. 들켜도 겁낼 건 없지만 가능하면 몰랐으면 좋겠다. 이건 엄마와 상관없이 내 문제고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끝내면 된다. 어차피 그에게는 더 가기 어려울 거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나는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알았고, 더 분명한 게 필요하면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근거도 확보했다.

안경집의 머리카락들. 그거면 정확해질 것이다. 잠들기 전에 냄새를 맡아봤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한 사람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면 그만의 독특한 냄새도 있지 않을까. 묘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내 손가락 냄새인 것도 같았다. 진실을 확인하면 뭐가 달라질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나는, 뭔가 달라지기를 원하나. 모르겠다.

“학원 다녀.”

“내가 알아서 해.”

“나쁜 애들은 그때 그걸로 됐잖아.”

엄마가 나를 슬쩍 보았다. 나도 모르게 찡그렸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곧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고 엄마를 뚫어져라 보았다. 엄마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간단했다. 나를 걱정한답시고, 하필이면 그걸 끄집어내서. 엄마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다. 뒤통수가 따끔거리고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일에 대해 저렇게 말해도 되나? 저토록 무심하게?

그때 그거.
혹시나 했는데 엄마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어떤 식의 기억일까. 내가 사면동 그 촌구석 악동들 때문에 관자놀이가 찢어진 피해자였다? 영빈을 보호하려다 같이 철로 밑 수로에 처박혔다? 아니다. 엄마는 나도 가해자라는 걸 그때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엄마를 견디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날 내가 한 짓을 엄마가 봤다는 것이다. 나를 뒤따라왔으니까. 그런데 보고도 묵인했다는 것. 그때는 너무 어렸고 무서워서 내가 한 짓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실이 아닐 거라고 나쁜 상상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같이 수로에 처박혔고 상처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오래 아팠으므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진짜가 나한테 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진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덮이기를 간절히 원했고 엄마의 묵인이 나를 막아준 셈이었지만, 그래서 없어질 문제가 아니었다. 결코. 그랬다면 악몽 따위는 꾸지 않겠지. 여전히 나는 그날이 떠오르는 것조차 두렵다. 가끔은 이 모든 게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곧 뼈가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철이 들수록 분명해지는 죄의식 때문에 힘들었고 엄마가 그걸 보고도 묵인했다는 게 악몽 같은 약점이 돼버렸다. 엄마가 잊어버렸든 기억하든 상관없이 그건 내 양심의 덫이었다. 나라는 애한테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걸 저런 식으로 꺼내다니.

“이제 와서 잘못되면 억울하잖아.”

역시나 엄마는 옆방 가족으로 만족해야 될 사람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분명히 말해줬다.

“나쁜 애가 바로 나야.”

“내 덕에 피해간 줄이나 알아.”

메마른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갈라졌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깨물어지고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엄마한테 사정없이 뺨을 맞던 그날처럼. 속이 뜨거워지고 진땀이 솟구쳤다. 여기서 빨리 피하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할 것만 같다.

문이 부서져라 처닫고 뛰는 동안 등짝이 다 젖었다. 숨 고르기를 하고 또 하고. 이럴 때 울 수 있으면 더 빨리 안정될지도 모른다. 내가 우는 건 금기였다. 모두 싫어했고 무섭게 다그치며 막았다. 울면 밥 없다. 울면 네 엄마 안 와. 우니까 그 모양이지. 넌 울 자격도 없어. 내 인생을 망쳐놓고 울긴 왜 울어. 다 너 때문이야. 너만 안 생겼어도 그렇게 끝장나지 않았을걸. 태어날 때부터 징그럽게 울더니. 네가 울면 딱 그 자식처럼 보인단 말이야.
엄마를 공격하기 싫다. 아무리 원망스럽고 싫어도 나한테는 유일하게 기댈 가족이다. 혼자가 어떤 것인지, 길거리 생활이 어떤지 일찌감치 겪어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볼륨을 최대로 키워 이어폰을 꽂았다. 김동률의 목소리에 지배당하는 순간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긴장을 누르고 나를 지켜야만 할 때. 그의 노래는 주문처럼 나를 다독이면서도 나 같은 애는 다가갈 수 없는 부류가 엄연히 있다는 걸 느끼게 한다. 꼭 혜인처럼.

윤의 문자를 보았다. 궁금하지도 않고 봐야 빤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를 기다리지 않고 가버렸다는 내용. 우는 것 같은 이모티콘. 우리가 뭐 좋은 사이라고 얘는 나한테 시시콜콜 이런 걸 다 보내는지 모르겠다. 도둑놈이 너 가만 안 둔대. 클럽에 지식인만 데려갔어. 나 무시하는 거 맞지. 어차피 가도 엄마한테 들키면 죽음이야. 셰프가 너 한 번 데려오랬어. 틈새에서 만난 애들 중에 그나마 정이 가는 건 윤뿐이다. 윤이 좋아서는 아니다. 얘를 보고 있으면 심장이 움직이는 것 같다. 바보 같아서 안쓰럽고 바보 같아서 짜증 나고 바보 같아서 막 패주고 싶다. 그리고 영빈이 생각나서 피하고 싶다. 그런데 또 재미있다. 대한민국에서 욕을 가장 빨리 아주 잘하는 놈일 것이다. 최악의 재주에다 구제불능 병이다.

얘를 처음 만난 곳도 틈새였다. 우연히 동시에 들어가는 바람에 원탁에 같이 앉게 됐다. 아저씨가 나를 윤의 친구인 줄 안 것이다. 앉자마자 윤이 내게 처음 한 소리가 씨바눈까리좆가치창새기 어쩌구 하는 욕이었다. 같이 앉았다고 성질내는 줄 알고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면서도 어이가 없어 쳐다보았 고 윤은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연신 고갯짓으로 미안해하는 걸 보여서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병인 줄 짐작은 했는데 어찌나 황당하고 창피하던지. 정작 아저씨 아줌마는 들은 둥 만 둥, 몇몇 사람은 그저 웃기만 해서 윤이 거기 단골이라는 걸 알았다. 곧이어 기하가 들어왔고 도진이 들어와서 우리는 그렇게 마주 앉게 됐다. 하필 그날따라 긴 탁자의 자리가 하나도 비지 않았던 것이다.

윤은 매일 저녁 셰프에게 간다. 요리를 배운다지만 주방에 잠깐 얼씬거리는 거고, 그럴 수 있는 건 얘네 부모가 아들을 위해 그런 기회도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윤은 거기로 가기 전 틈새에서 꼭 떡볶이를 먹는다. 기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전에 꼭 틈새에 들른다고 했다. 배가 든든해야 배짱도 생긴다나. 그 누군가는 늘 비밀이고 그게 아르바이트와 관계가 있다는데 나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뭐든 훔치는 자식 이랑 뭘 공유해봐야 좋을 리 없을 테니까. 도진은 미국 고등학교 공부 가르치는 데를 끝내고 검정고시 학원에 가기 전에 거길 들렀다. 검정고시 학원은 알겠는데 미국고등학교 공부를 도대체 어디서 누가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그런 게 진짜 있는지 뻥인지도 알 수 없다. 걔 하는 걸 봐서는. 아무튼 도진은 다시 미국으로 가서 아이비리그나 하버드 학생이 되는 게 목표인 애다. 우리가 거기에 모일 수 있는 공통점이란 시간뿐이었다. 6시에서 7시 사이. 그렇게 우리는 틈새의 애들이 된 것이다.

“야. 김 무.”

교문 앞에서 혜인이 가로막았다.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그저 삐딱하게 걔를 보기만 했다. 화내면 받아주고 때리면 맞아줘야 할 판이지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비위 맞추느라 쩔쩔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수학을 만점 받는 것만큼이나 불가능이다. 우리가 다툰 이유도 혜인의 그때 기분을 맞춰주지 못해서였기 때문에 그걸 또 걸고넘어진다면 할 말이 없을 터라 삐딱하게 방어막을 치고 나름 눈치를 보는 거였다.

“너 진짜로 나 무시하더라.”

표정 하나는 일진 못지않다. 이런 애가 공부도 잘하고 착하기까지 하다는 걸 누가 믿을까. 그리고 걸핏하면 운다는 걸. 나한테 먼저 사귀자고 했을 만큼 엉뚱하고 자기가 그러자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고 믿어버리는 단순한 애. 나야 아이스크림 같이 먹고 영화도 같이 보자는 혜인이 싫을 까닭이 전혀 없었지만 혜인이 나와는 아주 먼 동네 애라는 걸 문득문득 느껴야만 했다. 꼭 김동률 노래처럼.

“미안. 나한테 일이 좀 생겨서.”

“그놈의 일은 손가락에 생겼니? 끝장내려다가, 누나가 참기로 했다.”

느닷없이 혜인이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치마가 펄럭 들려서 속옷이 보일 만큼 망신스럽게 킥을 날리고도 양이 안 차는지 목을 조이려고 매달렸다. 애들이 보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주말에 시간 내. 일러스트 전시 있어.”

“너는 뭐 그렇게 시시하게 사람을 봐주냐. 너무 쉽잖아. 여자애가.”

“그러게. 너한테만 이런단 말이지, 내가.”

“나한테만?”

“주말까지 물먹이면 알지?”

혜인이 손가락으로 목 베는 시늉을 하며 흘겨보았다. 그리고 이내 눈이 가늘어지도록 웃었다.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하는 친구다. 자존심 깨나 상했을 텐데 이 정도로 봐주니 고마울 따름이고. 혜인은 내게 처음인 좋은 여자다. 여자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동갑이라도 누나 같을 수 있고, 어려도 엄마 같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귀여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놀라운 애. 이런 애가 있어서 나는 가끔 착하게 잘, 무사히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분명히 나와 잘 지내보려고 찾아냈을 일러스트 전시회. 내내 딱딱해져 있던 속이 혜인 덕분에 풀어졌다. 그날 꽃이라도 사주고 싶다. 장미가 좋겠다. 빨간 장미.

주말은 상상도 못할 미래가 아니었다. 겨우 하룻밤 뒤에 맞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상적인 하루였다. 혜인과 일러스트 전시회에 가기로 했고, 약속 장소 근방의 꽃가게에 먼저 들를 참이었고, 양로원 봉사활동도 가게 돼 있는 고등학생의 평범한 날들 중 하루. 그랬다.
기하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작가소개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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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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