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화문 연재소설

《거기까지》틈새 - 3

<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거기까지>틈새 - 3<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거기까지>틈새 - 3

한 번 돌아보시지. 거울 속으로라도 이쪽을 한 번 보시지 그래. 부정의 결과가 여기 있는데 그렇게 못 알아보실 건가. 아까 나를 봤을 때 아무 끌림도 없었다면, 나 정말 불완전한 놈이네. 온전히 엄마 혼자서만 떠안았어야 마땅한 증거 불충분 열성인자. 아니 우성인자일 수 있겠다. 양쪽이 다 거부한 부정에 부정을 무릅쓰고도 이렇게 빳빳이 살아남은 걸 보면. 지금 내 속을 메스껍게 하고 있는 라면처럼. 인스턴트는 고분고분 소화되기를 거부한다. 되도록 오래 속을 긁어대며 버티다 기어이 후유증까지 남기지.

그는 끝내 내 쪽으로 눈길 한 번 안 주고 구석구석을 씻으며 가끔 근육을 만들어 거울로 확인해보곤 했다. 짐작은 했지만 꽤나 이기적인 데가 있는 것 같다. 자기 몸이 자랑스러운 건지 내가 뒤에 있다는 걸 의식하는지, 아니면 본래 과장하는 면이 있는지 몰라도 나이에 안 맞게 물을 튀기고 얼굴에 물을 받으며 아아 소리까지 내니 상당히 역겹다. 방송에서 패널로 앉았을 때와 저렇게 다를까. 물소리에 뒤섞인 괴상한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소름이 돋고 끔찍해졌다. 귀를 틀어막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줄도 모르고 쥐었던 주먹을 거울에 박았을 뿐.

거울에 금이 갔다. 뭐 그렇게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모양만 그럴싸하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시설이다.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놀라서 돌아본 그의 얼굴이 몇 갈래로 조각난 채 얼비쳤고 나는 거기에 겹치는 내 얼굴을 멍하니 보다 나중에야 물에 씻기는 피를 알아챘다. 선명하고 차가운 물방울처럼 생각 하나가 또렷하게 남았다. 이제 여기는 다시 못 오겠구나.

그가 먼저 나갔다. 내가 거울을 깼다고 알리러 갔나. 세상 무서울 게 없다는 십대라서 모르는 척 피해버리기로 했나. 치사하게 명색이 의사면서 다친 애를 그냥 두고 나가. 길거리에서 환자만 봐도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보여줘야 하는 게 의사 아닌가. 그것도 가정의라면서.
어쨌거나 여기서 빨리 나가야 했다. 솔직히 겁이 났다. 이 비싼 피트니스 클럽에서 유리값을 싸게 부를 것 같지도 않고, 엄마나 학교에라도 연락하려 들면 골치 아파진다. 열일곱이면 어리지 않다고 믿었는데 아직 아닌가 보다. 이 정도에 쫄다니. 별수 없다. 나는 문제를 일으켰고 책임지기 싫으면 도망치는 거다.

샤워실에서 나오다가 나는 멈칫했다. 빨래 통에 수건을 툭 던지며 그가 또 나를 본 것이다. 그리고 내 손을 보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같잖아 하는 표정이 얼핏 느껴졌고 동시에 그 반토막짜리 말이 떠올랐다.

학생이 이 시간에.

공부 안 하고 여기 와서 말썽이냐고? 이러는 거 보니 앞날이 빤하다고? 아니면, 누구 자식인지 한심해 보이셨나? 수건으로 주먹을 감싼 채 나는 그를 빤히 보았다. 눈에 불이 당겨진 듯 홧홧했다. 똑바로 마주 볼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가 모르는 척해주기로 한 걸 감지하는 순간 속에서 묘한 오기가 꼬여 올라온 것 같기는 하다. 피식 웃음도 났지만 웃지는 않았다. 나는 문제를 일으켰고 책임지기 싫으면 도망치는 거다. 방금 전 내 결론이다. 이거야말로 내가 그의 분자라는 증거 아닌가.

증거. 글쎄, 정말 그런가.

목격자의 묵인 덕분에 나는 천천히 물기를 닦고 젖은 수건을 빨래 통에 던질 수 있었다. 그가 그랬듯이 툭. 묘하다. 그의 묵인이 나를 뻔뻔하게 만들어주었다. 도망치기는커녕 아예 유리갑옷을 차게 해주었다. 오래전 그날, 엄마도 그 사건을 묵인했다. 나를 위해 그랬을 테지만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방금 전 그가 던진 수건을 피 묻은 내 수건이 덮쳤다. 귀퉁이가 덜 젖은 채 여유가 있어 보이는 그것에 비해 내 것은 짜도 될 만큼 흠뻑 초라하게 젖은 데다 핏자국이 선명했다. 눈에 띄어봐야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얼른 속으로 쑤셔 넣으려다 그의 수건을 보았다.
시시한 드라마에는 이런 게 꼭 있다. 그런 일이 그렇게 쉬운 거라면.
빤한 드라마처럼 진짜로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것도 꽤 여러 개.

잠결에 문자 알림 소리를 몇 번 들었다. 확인하지 않고 가물가물 짐작만 해보았다. 너무 피곤해서. 오늘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주 먼 길을 돌아온 기분. 틈새에 간 게 어제 같고 학교 갔던 건 며칠 전처럼 아득하다. 생생한 건 갈라진 거울로 겹쳐지던 그와 내 얼굴. 물소리와 뒤섞인 끔찍한 울림. 그리고 피. 소름이 돋았다. 아직도 손이 욱신거린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나를 찾아대는 걸까. 번번이 시간을 못 채우고 나오는 걸 경고하려는 화실 선생. 첫날부터 나는 도중에 나오는 학생으로 찍혔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화실이야 핑계고 목적이 따로 있으니 어쩔 수 없었는데 그래도 선생은 내게 호의적이다. 착한 반항아 같단다. 고맙기도 하셔라. 물론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림을 좋아한다. 어쩌면 나중에 갤러리 큐레이터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좋겠다. 갤러리 큐레이터. 말부터 죽이지 않나. 사실은 뭘 알아서라기보다 전시회에서 그림보다 더 눈에 띈 큐레이터가 있어서 해본 생각이다. 세상에 그런 일자리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어쨌거나 무사히 어른이 된다면.

반장의 모임 공지. 양로원 봉사활동 차원에서 플래시몹을 준비하는데 점수에 민감한 애라 누구 하나라도 빠져서 자기 점수에 문제가 생길까 봐 늘 전전긍긍이다. 어쩌면 혜인. 저번에 다투고 나서 문자 한 번 날리지 않았다. 걔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마 인내심이 바닥나서 먼저 지쳐버렸을 수도. 아, 기하. 더스티인지 뭔지 때문에 단단히 돌아버렸을 거다. 그래. 그 자식이라면 문자를 날리고도 남을 거다. 뭐가 단단히 틀어졌던데 문자 정도로 성이 차려나 모르겠다. 그래 봐야 자기 사정이지.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다고. 하지만 왠지 껄끄럽다. 뱉지도 삼켜지지도 않는 가래처럼. 뭐 상관없다. 어차피 더는 틈새에 가지 않을 것이다. 피트니스 클럽에 두 번쯤 더 가도 되지만 그를 안 보면 틈새도 끝이다.

아침에 확인해보니 윤이었다. 얘라면 더 볼 것 없다. 별거 아닌 것들을 맞춤법 안 틀리게 또박또박 보내는 애. 착한 애들은 이런 데서도 표가 난다.

“왜 그러고 다녀? 열두 시 넘어서 들어오면, 내가 신경 쓰이잖아.”

웬일로 밥상을 다 차려주며 잔소리다.
나는 엄마가 있어도 알아서 차려먹는 걸 당연하게 알고, 옆방에 있으면서 전화로 말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엄마다. 늦잠 잘 때는 그런 식으로 모닝콜도 해준다. 지금도 ‘엄마’라서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김난희인 ‘나’가 신경 쓰이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다.

“웬 미역국?”

“먹어둬.”

“미끈거려.”

“싫어도 먹어. 그게 원래 싫어도 먹어두는 거야.”

싫어도 먹어둘 건 뭐람.
엄마는 일 년에 한 번쯤 이런 억지를 부린다. 몸 상태가 나빠지면 특히 그러는데 요맘때가 그럴 즈음이다. 미역국이 생일을 의미한다는 것쯤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증상이 가을에 주로 나타난다는 거 말고는 날짜도 일치한 적 없고 내 생일은 12월 끄트머리, 물론 엄마 생일도 아니다. 다만 막연히 내가 이맘때 태어난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고 그게 사실일까 봐 이런 증상과 현상이 싫다. 엄마는 나를 두 번 버렸고, 낳자마자 출생신고를 안 했다는 것까지 확인되면 세 번이나 거부한 거다. 미역국에는 엄마도 나도 손대지 않았다.

“사무실 나가지 마.”

커피를 마시던 엄마가 나를 힐끗 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말해놓고 나니 괜한 소리를 한 것 같다.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마.”

먹던 게 목구멍에 걸렸다. 괜한 소리에는 괜한 소리가 답이라는 건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아침이다. 안아서 키워준 적도 없으면서. 이러면 내 피가 더 싸늘해진다는 걸 모르시나. 나는 고개를 처박고 꾸역꾸역 밥만 밀어 넣었다. 이런 상태로 더 먹으면 체한다는 걸 알지만 먹는 게 중요했던 기억 때문에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는 습관이 나한테 있다. 시설에서의 몇 년간. 나의 첫 번째 유배지에서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아이였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골치 아픈 애였다.

“너, 울고 싶은 거지?”

말꼬리를 늘이는 게 왠지 장난스럽다. 정말 왜 이러나 싶어 엄마를 빤히 보았다. 볼이 움푹해진 게 진짜로 어디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요즘 보험 계약은 술로 하나. 허구한 날 취해서 들어오니 저러고도 남지.

“내가 우는 거 봤어?”

“안 울어도 알아. 얼굴이 퉁퉁 불었잖아.”

숟가락을 탁 놓고 책가방을 짊어졌다. 엄마가 진짜 엄마처럼 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엄마는 늘 하던 대로 나는 나대로 지내는 게 우리가 안전하게 가족으로 사는 방법이다. 엄마는 나를 두 번이나 유배시켰고 나는 엄마를 용서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가족이어야 할 때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엄마도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이 받아들이는 건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이해는 해도 용서가 안 되는 걸 보면.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아니다. 사랑하게 될까 봐 신경 쓰이고 증오하게 될까 봐 겁난다. 엄마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기댈 곳이 여기뿐이다.

작가소개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5-12-14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URL 공유시 전체 선택하여 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