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끝까지 있고 싶으면 있고. 그치만 너네 집 멀잖아?”
“왜 그래야 돼?”
내가 퉁명스레 대꾸하자 도진이 눈을 끔뻑이며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저럴 때 보면 저 밋밋한 얼굴 뒤에 여우가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공부 좀 했다는 것도 믿어진다.
“아줌마. 치즈라면요!”
기하 목소리가 커졌다. 저번부터 뭐가 안 풀리나 싶게 신경질적이었는데 오늘도 꽤나 긴장돼 있다. 클럽 때문일 리는 없고.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만 클럽에 같이 가주기를 바라는 사람한테 까칠한 건 정상 아니다. 게다가 중간에 나오는 건 상관없지만 같이 가기는 해야 한다니.
“뭐가 왜? 중간에 나오는 거? 같이 가주는 거?”
“다.”
“그래야 하니까. 더스티 공연이야.”
“아.”
“아아? 설마, 관심도 없어?”
기하가 지갑에 잘 꽂아두었던 초대권을 눈앞에 꺼내 보였다. 멤버 얼굴이 인쇄된 커플 초대권. 유치한 도안에 문신처럼 화장한 보컬 때문에 퇴폐적 으로 느껴지는 그걸 들이대고 기하는 아랫입술이 하얘지도록 깨문 채 나를 쏘아보았다. 숨소리마저 거슬리는 게 이 자식 지금 단단히 틀어져 있다. 내가 더스티에 관심 없다고 저렇게 성질내는 거라면 이상하다. 아주 이상하다.
솔직히 나는 클럽에도 가본 적 없고 당연히 클럽에 어떤 그룹들이 활동하는지 알 턱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할 필요도 없고 그것 때문에 내가 모자란 놈으로 보이는 것도 싫다. 솔직히 저번에 기하가 클럽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더스티라는 그룹을 처음 알았고, 기하가 유일하게 좋아하 는 팀이자 그중 유일한 여자 멤버에게 꽂혔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나 돌아서면서 까먹었다.
“걸 그룹도 아니잖아.”
도진이 한마디 했다가 기하의 험악한 눈초리를 받았다. 가늘고 작지만 기하 눈 속에는 사람을 기죽이는 힘이 있다. 그런데도 엉기는 애는 도진이 유일 할 거다. 눈치가 빵치인지 집요한 건지, 매가리 없는 나직한 목소리로 외국 애들 흉내 내듯이 양손을 들고 진지하게 상대를 설득해보려고 애쓰는 가엾 은 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대와 뭔가를 공유할 때는,”
“조용히 해라.”
기하가 도진 가슴팍까지 김밥 접시를 밀어붙이며 입을 막았다.
“야. 같잖은 지식인. 공부든 뭐든, 내가 너보다 낫거든.”
도진은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꿈틀하고 김밥 하나를 집어먹었다. 둘은 충돌 직전에 멈춘 적이 많다. 둘 다 잘난 척하려다 충돌하고 기하의 억압이 결국 도진을 제압해서 멈추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기하가 도진을 깔아뭉개고 싶어 하는 건 틀림없다. 둘은 나보다 먼저 이 자리에서 만난 사이고 절대 친구로 안 보이지만 마주 앉아서 밥도 잘 먹는다.
“야, 지식인. 내가 체크한테 더스티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거 같냐?”
탁자에 팔꿈치를 올리며 기하가 웅얼거렸다. 어금니로 짓이기듯 말하는 폼에 도진은 입도 뻥긋 못했다. 싸움질하는 부류도 아니면서 지독한 면을 저렇 게 드러내는 애가 기하다. 기껏 클럽에 놀러가는 문제로도 얼마든지 날카로워질 수 있는 애. 저런 애한테 기가 잡히지 않으려면 내 관자놀이 흉터는 아주 험악하게 얻어진 것이라야 하고 손등의 흉터에도 동네 깡패쯤은 녹아웃 시켰을 정도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친구의 죽음에 얽힌 비겁한 흔적 이거나 친구가 당한 끔찍한 일 때문에 얻은 치욕의 증거라는 사실은 철저히 감춰지는 게 낫다. 영원히.
“9시 50분에 블랙콜 앞에서 보자. 거기, 10시 전 입장은 무료야. 저쪽 뮤즈웨딩홀 지하 알지?
웬만하면 교복은 좀 벗고.”
나는 피식 웃기만 했다.
“난 누굴 좀 만나고 가야 돼.”
얘기가 다 됐다고 생각했는지 기하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리드미컬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즈라면이 나왔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났다. 병원에 불이 꺼졌다. 나는 가방과 도면 통을 한꺼번에 쥐고 밖으로 나왔다.
“야, 김 무!”
기하의 갈라지는 목소리가 닫히는 문에 댕강 잘렸다. 우산을 놓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아마도 이 구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을 피트니스 클럽까지 뛰다시피 와서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 데 이십 분쯤 걸렸다. 그가 와 있기를. 여기 하루 이용료가 라면 스물너덧 그릇 값이나 된다. 병원에 불이 꺼질 때를 기다렸다 여기 와서 그를 본 건 고작 두 번이었다. 내가 전철을 갈아타며 한 시간이나 걸려서 화실에 오는 건 일주일에 두 번. 피트니스 클럽에서 그를 본 건 이주일 전 목요일과 지난 화요일뿐이었다. 벌써 마지막 주. 회원권 만료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몇 번이나 올지 몰라도 한 달 치 회원권은 끊어야 입장이 가능했다. 망설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거금이라 돈 마련할 방법이 학원비를 빼돌리는 것뿐이었지만 망설인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것 자체가 갈등이었다. 그러나 자석이 끌리는 것처럼 나는 실행했다. 마음먹은 것을 이렇게 빨리 과감하게 해치우기는 처음일 거다. 혹시 들킨다 해도 나는 엄마의 하나뿐인 아들이고 그 사실은 내가 막판에 써먹을 카드지만 가능하면 엄마가 모르고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사물함은 내 껍데기를 욱여넣기에는 너무 작았다. 책가방에 도면 통까지 들고 오는 고등학생에게 따로 주는 사물함도 없고 여벌로 속옷을 챙겨올 입장도 아니라서 여기만 오면 내가 뭘 대단히 잘못하는 것 같고 자꾸만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된다.
들어가면서 안을 훑어보았다. 그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쁜 공기 한 움큼이 쑥 들어오는 듯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자주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긴장한 탓에 힘을 쓰지 않아도 찐득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그의 곁에는 오늘도 트레이너가 있었다. 배도 안 나왔고 근육도 제법 있는데 트레이너를 쓸 만큼 자기 관리를 하는 남자. 키는 중간쯤. 175 정도 되겠다.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와 달리 얼굴에 웃음기가 없고 무게를 이용할 때마다 이상한 신음소리를 낸다. 퇴근 후에 피트니스 클럽에서 ‘긍정적인 시간’을 보낸다더니 긍정적이라는 게 저런 것인가 보다.
멀찍한 데서 기구를 사용하며 집요하게 그를 스케치했다. 곁눈질로 거울로 때로는 정면으로. 절대로 그가 모르게. 이 피트니스 룸은 한 면만 창문이고 나머지가 다 거울이라 그를 훔쳐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상대도 알아차릴 수 있으니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적당한 시선 처리도 필요하다. 안 보는 척하면서 적당히 다 볼 수 있는 구조가 나한테만 유리한 게 아니다.
여기서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당연히 그는 나를 짐작도 못했다. 그런데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고 목구멍이 조여들어서 숨 고르기를 해야만 했다. 나한테는 차가운 피가 섞여 있어서 진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굉장히 당황했고 감정적이었고 가슴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오그라들고 아파서 구석 쪽 기구에 앉아 오래오래 문질렀다. 눈물이 난다면 바로 그런 때일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은 우는 법을 모른다. 그날 적당히 나를 추스르게 해준 이 증상은 일종의 내 껍데기다.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전인자에 기생하게 된 지독한 보호막. 엄마가 철저하게 가르쳐준.
“엉덩이 좀더 빼고 앉아서, 등 똑바로 세우고.”
랫풀다운을 잡아당기는데 트레이너가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지적해주고 지나갔다. 올바른 사용법을 배운 적 없어서 내 자세가 엉성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돌아보는데 하필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얼굴. 이런 건 생각해본 적 없다. 못 볼 것을 보고 만 듯 얼른 고개를 돌렸고 그도 나를 지나쳤을 뿐이었다.
“학생이 이 시간에.”
중얼거리듯 흘린 말. 십칠 년 만에 처음 그가 내게 한 말이 그거였다. 반토막짜리 영혼 없는 그 소리에도 나는 한동안 정지 상태가 됐다. 이러지 않으려고 다잡아먹은 마음 따윈 소용없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남자인지 한 번 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미 여러 번이 됐지만, 몇 번을 마주친다고 해도 바람처럼 지나가는 행인처럼 무덤덤하게 봐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설사 갑자기 심장이 변화를 일으킨다 해도 나는 얼마든지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유치하게 울먹이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 반토막짜리가 목구멍에 돌멩이처럼 박혀버렸다.
그대로 샤워실로 가서 찬물을 뒤집어썼다. 극도로 긴장하거나 울고 싶을 때 내 몸은 비정상적으로 땀을 방출한다. 울어야 빠질 것들이 쌓였다가 전신의 땀구멍으로 미친 듯이 삐져나오는 거다. 이나마도 안 되면 죽고 말겠지. 퉁퉁 불어서. 내 속이 온통 눈물바다가 돼서 심장을 절이고 피를 절이고 생각마저 절이다 끝내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불행의 증거 하나만 화석으로 남기겠지.
분사되는 물줄기 아래서 나는 반토막짜리 말을 떨쳐내려고 몸뚱이를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그런데도 머리는 아주 또렷하게 움직였다. 어른이 되면 내 목소리에서도 그런 톤이 날까. 다리에 털이 많은 건 비슷하던데, 종아리 근육이 바깥쪽으로 발달한 것도 하체가 단단한 것도.
샤워꼭지를 잠그는데 그가 거울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심장이 뜨끔했고 나도 모르게 피하려 들었다. 그러다 샤워꼭지를 꼭 쥔 채 거울 속으로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다시 샤워꼭지를 틀었다. 온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뜻밖이라 무섭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저 도둑놈처럼 숨 쉬며 거울 속의 벌거벗은 그를 훔쳐보기만 했다.
등이 널찍하고 어깨근육이 단단해 보인다. 물기가 미끄러지는 피부는 그가 얼마나 잘 먹고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소름이 돋았다. 저 단단한 어깨에 매달렸던 어린애는 내가 아니었고, 저 가슴이 안았던 여자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몇 번이나 저 팔에 안겼을까. 설마 딱 한 번이었을까. 진짜 인스턴트처럼 그렇게. 건강 프로그램에 가정의 전문가 패널 자격으로 나온 그를 보고 엄마가 넋을 잃었다가 화장품 병을 집어 던졌을 만큼, 한동안 끊었던 술에 빠져 울었을 만큼 아직도 엄마를 뒤흔들 수 있는 남자. 그 바람에 나는 나를 부정했던 존재를 찾아낼 수 있었고 여기까지 와 있다. 한 번도 물은 적 없지만 한 번도 잊은 적 없던 내 구성의 절반을 봐야만 해서.
작가소개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