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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재소설

《거기까지》틈새 - 1

 

<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거기까지>틈새 - 1<마당을 나온 암탉 />의 황선미 작가의 새로운 청소년 소설 <거기까지>틈새 - 1

우산을 접고 들어서는데 주방에서 아줌마가 빤히 보는 게 느껴졌다. 안으로 갖고 들어오지 말라는 눈치인 줄 알지만 나는 문을 조금 열고서 우산의 물기를 털어 보이는 제스처로 대충 무시하고 원탁으로 돌아섰다. 원탁에는 이미 임자가 있었다. 앉자고 들면 의자 다섯도 가능한 자리를 혼자서 차지하고 고개를 처박은 채 김밥을 먹고 있는 여자애. 애라기에는 좀. 십대 같지만 전체적으로 불량스러워 보이고 분명히 학생도 아닌 것 같다.

나보다 먼저 온 아는 얼굴이 없었다. 처음으로 걔들을 아쉬워하며 아무 의자나 잡아 앉는데 은근히 속이 꼬였다. 벽에 붙여놓은 긴 탁자 아니면 원탁이 전부인 여기서 뭘 먹는 방법은 딱 두 가지. 긴 탁자에서 벽을 쳐다보며 먹거나 원탁에서 마주 보고 먹거나. 내가 속이 꼬인 건 먹는 방법 때문이 아니라 창밖이 보이는 원탁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는 것 같은 아줌마는 뚱한 얼굴로 묵묵히 김밥을 말고 있었다. 일행이 없는 손님은 저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앉기도 전에 아줌마든 아저씨든 단체 손님 자리라며 제지한다. 여기 메뉴를 종류대로 다 시켜도 혼자라면 벽을 보며 앉게 마련인데 이건 무슨 경우람. 손님이 별로 없기는 해도. 딸은 아닌 것 같고 혹시 단골한테는 봐주기도 하나.

창문이 원탁 쪽으로만 있어서 거길 보자니 걔를 흘끔거리는 꼴이라 나는 괜히 좁은 가게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몰랐는데 맨 안쪽 구석에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정도의 문이 있고 그 앞에 남녀 신발이 있었다. ‘창고’라는 쪽지가 붙어 있지만 문 옆에 쌓아놓은 반투명 플라스틱 상자의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아줌마 아저씨의 방이 아닌가 싶다. 엄마도 철 지난 옷이나 치워야 할 것들을 저렇게 처리하는 편이다. 이 좁은 공간이 방과 주방, 원탁이 놓인 쪽과 긴 탁자가 놓인 쪽으로 알뜰하게 나뉘어 가게이자 곧 집이었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비위가 상한다. 저기는 분명 구덩이처럼 작을 테고 저런 방에서는 부둥켜안고 자야만 할 것이다. 덩치 크고 웃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아줌마랑 나이가 훨씬 적어 보이고 다리까지 절면서 온갖 심부름을 다 하는 아저씨가.

“뭐 먹을 거야?”

주방에서 삐딱하게 고개를 빼고 아줌마가 물었다. 내가 그래도 손님인데 저런 태도는 정말 예의가 아니다. 매번 돈 내고 욕먹는 기분. 아무리 손맛이 좋다고 해도 구덩이 같은 방에서 자고 나와 대강 만드는 것들인데. 제대로 손이나 씻을까. 아, 차라리 보지 말걸. 내 인생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몰라야 할 것을 알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는 걸 아는데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니 편하게 살기는 진즉에 글러먹었다.
참을성을 꿀꺽 삼키듯 아줌마의 표정이 비틀리는 순간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라면을 주문했다. 그때 도진이 들어섰고 원탁에 앉았던 여자애가 계산을 하고 나갔다.

등짝까지 다 젖어서 들어온 도진은 여자애가 계산하고 우산을 챙겨서 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내 쪽에서는 여자애를 똑바로 볼 수 없기에 도진이 넋을 놓고 쳐다보는 게 멍청해 보였지만 녀석이 저 정도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항상 진지하고 지적이고 싶어 하는 애니까. 여자 얘기 같은 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해 입 다물어버리는. 그런 애가 눈을 떼지 못했다면 여자애의 어떤 면이 충격적이거나 아주 이상하다는 거다. 허접한 겉옷으로 휘감았어도 뒤태가 늘씬한 걸 보면 충격적으로 예뻤나. 궁금했으나 녀석이 아줌마한테 다가가 나직하게 주문하는 걸 보는 순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김밥 두 줄요?”

고작 의자 열두 개가 전부인 코딱지만 한 가게에서 저렇게까지 하는 꼴이라니. 다른 건 먹지도 않는다는 걸 아줌마도 알 텐데. 밋밋한 얼굴에 특징 없이 걸린 안경도 느끼한데, 더 정떨어지는 건 저 매가리 없는 말투다. 목소리 깔고 높낮이도 없이 말하는 걸 듣자면 소름이 돋는다는 걸 언젠가는 꼭 알려주고 싶을 만큼 나는 저 자식이 싫다.
도진이 원탁에 자리를 잡았고 나도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잠자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고 나는 가끔 빗물로 얼룩진 창문 너머 건너편을 흘깃거렸다. 일곱 시. 아직 병원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느닷없이, 역시나 매가리 없는 말투로 도진이 물었다. 자기 목소리가 약하다는 걸 아는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주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나는 또 길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어?”

녀석은 다시 물었고 나는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뭘 어쩌자는 게 아니라 녀석과 있다 보면 자연스레 이렇게 된다. 이번에는 이 문제에 꽂혀 인터넷 검색을 실컷 해본 모양이고 알아낸 만큼 누구라도 붙잡고 떠들고 싶을 테지만 나는 이 자식의 헛소리에 맞장구쳐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때마침 아저씨가 배달통을 들고 들어왔고 원탁으로 라면과 김밥을 가져다주었다. 나란히 놓인 그것들이 우리를 친구처럼 보이게 할지 몰라도 천만에. 우리는 그저 이 원탁에 앉기 위해 암묵적인 협상을 유지하는 사이랄 수 있다. 도진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분명히 그렇다. 우리는 절대로 남의 밥그릇에 젓가락을 대지도 않을뿐더러 뺏어먹는 일 같은 건 생각조차 안 한다.

대강 끓였건 손을 안 씻었건 노른자가 반쯤 익은 상태로 나온 라면은 입맛을 당겼다. 역시 나는 인스턴트와 궁합이 맞는다. 시작부터 인스턴트였을 것이다. 영양이나 태교 따위가 고려됐을 리 없으니 계란 든 라면이면 군말할 것 없다. 배곯는 애들을 위해 계란 하나를 통으로 넣어주는 아줌마. 인정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나는 세 젓가락에 라면 한 그릇을 끝내고 입안의 열기를 한숨으로 식히며 다시 길 건너편을 보았다.

젠장. 또 혓바닥을 데고 말았다. 오늘따라 퇴근이 늦다. 돈 벌어서 다 어디에 쓰려고 저렇게 오래 붙어 있는 걸까. 하긴,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거라고 했다. 판매 왕까지 된 대단하신 내 엄마가. 돈 때문에 일생일대의 좌절을 겪고 나서야 돈이 곧 성공이라는 걸 알았다고 나더러도 돈 안 되는 그림 따위는 취미로 잠깐만 허락한다고 했다. 내가 학교 빼먹고 돌아다니고 종합학원에 돈만 갖다 바치는 게 그림 때문이라 믿었는지 일주일에 두 번은 봐주기로 한 것이다. 아직은 돈 구할 능력이 없어서 나는 엄마와 그렇게 타협했다. 엄마는 내가 홍대 근처를 고집하는 바람에 이쪽에 남다른 소질이라도 있는 줄 알고 보험 설계할 때도 은근히 써먹는다. 공대 나와도 취직 어렵다니 예술 하는 건 말려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소질이 영 그쪽이라. 사실은 제 꿈이 화가였거든요. 애라도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해야죠.

“양심적 병역 거부?”

라면 그릇을 치우러 왔던 아저씨가 도진에게 걸려들었다. 자기 쪽으로 몸을 숙여가며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처럼 구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만 것이다. 그러나 아저씨는 도진을 빤히 보다가 그릇만 가져갔고 도진은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서너 번 씹고 삼키는데 참 묘하게 그 짧은 동안에 찌꺼기를 꼭 입술에 남겨 기어이 남의 비위를 뒤집어놓는다.

미안하지만 얘도 나만큼이나 등외급이 분명하다. 큰 슈퍼마켓 외동에 유학까지 갔다 왔다는 것도 의심스럽지만 윤이 그렇다고 하니 사실이기는 할 거다. 제정신으로 봐주기 어려울 뿐 윤은 거짓말은 모르는 애다. 도진의 문제는 갔다가 돌아왔다는 거. 흔하게 들어본 아이비리그나 하버드 같은 데는 고사하고 다니던 고등학교도 못 마치고 와서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주제라는 게 얘가 우리에게 네이버 지식인이 된 이유다. 전문적이지도 정확한지도 알 수 없는 정보를 주워 담고 다니면서 똑똑한 척 구는 불쌍한 놈. 우리가 귓등으로 흘려들어도 화를 내거나 실망하지 않으니 기특한 놈이고. 그래서 충돌 없이 나는 아직 도진과 이 원탁에 앉아 있을 수 있다. 틈새. 우리 사이에는 그게 있다. 마치 이 분식집처럼.

번듯하고 큰 건물 사이에서 용케 버티고 있는 이 분식집이 우리한테는 ‘틈새’로 통한다. 간판이야 언제 붙였는지 알 수 없게 낡은 ‘제일 분식’이지만 분식을 제일 맛있게 하건 ‘스마일 분식’이건 그냥 큰 건물 틈새에 끼어 있는 분식집일 뿐이다. 여기에 중국집이나 카페가 있었다고 해도 나는 들락거렸을 것이다. 나한테는 그냥 여기가 필요할 뿐이다. 길 건너편이 보이는 이 원탁 자리가. 여기 앉기 위해서라면 냄새 나는 아저씨나 아까 그 여자애와 동석하는 것도 상관없다.

“무. 병역이 누군가를 총으로 쏘겠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찬성해?”

나는 한숨을 포옥 쉬며 눈을 감고 몸을 뒤로 젖혔다. 녀석에게 이런 행동은 생각해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젠장. 이번에는 덴 자리가 두 군데라 아무는 데 시간 좀 걸리겠다.

“무. 찬성한다면, 이유가 뭐야?”

나는 도진을 빤히 보았다. 제발 나를 저렇게 부르지 말기 바란다. 안 그래도 못마땅한 이름이 이 녀석 입에서 매가리 없이 나오면 더 존재감을 상실하는 것만 같다. 공기 중에 연기처럼 풀어져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안타깝고 모자란 한 글자. 고작 이런 이름이나 지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하긴, 생각이라는 걸 할 처지도 아니었을 거다.

“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좋냐?”

“당연히 반대 의견을……”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기하가 들어왔다. 도진과는 달리 눈이 가늘고 콧날이 반듯해서 분명한 인상을 주는 애다. 머리도 좋은 것 같다. 자기 말로는 전교 1퍼센트 성적에다 아르바이트로 주가 조작을 한다나. 저 자식 성적이 일등이든 꼴등이든 알 바 아니지만 어린 주제에 돈 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건 쪼끔 신경이 쓰인다. 비밀이랍시고 털어놓은 건데 나로서는 얘가 가끔씩 밥값을 책임져주니 따져 물을 필요가 없을 뿐이고 훔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애라 주가 조작이라는 뻥도 훔칠 만한 어떤 물건쯤으로 짐작하고 있다.

“야. 체크. 10시부터다. 중간에 나오는 건 상관없는데, 같이는 가줘야겠다.”

아주 건방진 놈이다. 말하는 싸가지도 지 마음대로에다 결론지어 지껄이는 것도 아주 웃긴다. 나를 처음 봤을 때 관자놀이에서 귀 뒤쪽으로 길게 난 흉터가 멋있다고 했다. 손등에 꿰맨 흉터가 체크 모양이라고 아예 나를 그렇게 부르는 놈.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나불대지만 적어도 도진처럼 비위 상하지 않으니 그냥 그러라고 놔둔다. 그렇다고 내가 얘를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얘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뭐 상관없다. 우리는 그저 여기서 벽이나 쳐다보며 김밥, 라면 따위를 꾸역꾸역 먹지 않으려고 이 원탁을 확보한 일회용 관계일 뿐. 그런데도 얼마 전부터 클럽에 같이 가자고 조르니 살짝 헷갈리는 중이다. 그것도 도진이나 윤은 빼고 나한테만.

작가소개

황선미 작가 사진

황선미(1963~)

소설가

<소설>
『나쁜 어린이 표』 , 『마당을 나온 암탉』 ,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 『푸른 개 장발』 , 『과수원을 점령하라』 , 『주문에 걸린 마을』,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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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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