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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상

민족적 서정시의 대가, 신경림 시인의 책상

민족적 서정시의 대가 신경림 시인의 책상
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가난한 사랑 노래」「농무」등 교과서에 실린 서정시의 작가 신경림 시인. 1970, 80년대에 민주화에 앞장선 문인으로도 알려진 인물입니다. 한 때는 구속과 감시로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강한 신념과 낙관적인 천성으로 버텼습니다. 시대적 변화를 이끌었던 그의 삶을 느껴 보세요.
민주화에 헌신했던 젊은 날...
그의 생에서 사회를 읽다
신경림 시인의 책상
봄의 아름다움이 짙어 가고 있습니다. 봄의 달인 4월은 역사적인 달이기도 합니다.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 때문인데요. 민주화 투쟁은 당시 무수한 희생을 낳았지만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치열하게 이어진 민주화 운동에는 꽤 많은 문인들도 참여했습니다. 신경림 시인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가난한 사랑 노래」「농무」「갈대」등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 유명한 시인은 향토적 정서와 서민적 삶의 고락, 한국의 전통적인 민요적 리듬을 살린 서정시의 주인공입니다. 4월을 앞두고 그가 사는 서울 정릉 집을 찾았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 눈가와 입가에 웃음 주름이 있는 그에겐 어린아이처럼 맑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민주화 운동, 열심히 한 건 아냐. 잘 하는 사람들 속에 좀 끼었지 뭐." 장난스레 말하는 그는 대화 내내 유머러스했습니다.
시인은 1979년부터 정릉에 살고 있습니다. 11년째 쓰고 있는 방은 시집이 빼곡히 꽂혀 있었습니다. 시집 시리즈를 얻으면 번호대로 꽂아 유지하는 깔끔한 성격이랍니다. 시인은 "물건 욕심이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소개할 물건이 있다"며 기자를 방으로 이끌었습니다.
신경림 시인
첫 번째 작가의 물건치열했던 투쟁의 작은 보상, 4.19 문화상
4.19 문화상 사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유롭고 좋은 시절이 훨씬 빨리 왔어.
그때 당한 일들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진 않아.“
1970, 8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시인. 사회운동에 열정을 쏟았지만 수없이 구속되고 감시받는 고된 날들이었습니다. 문학 활동을 하면서 귀하게 아꼈던 책들도 대부분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낙관적인 천성과 자신의 노력에 대한 강한 신념 때문이었지요. 그는 흔들리지 않고 민주화의 이념을 심는 데 젊은 시절을 바쳤고 훗날 민주화와 시민운동에 관련된 여러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 중 사단법인 '4월회'가 수여한 '4.19 문화상'은 특별히 아끼는 상입니다. 민주화에 기여한 인물, 단체에게 주는 상으로 시인은 2001년 제 2회 수상자였습니다.
시인이 사회운동에 한창이던 30, 40년 전에 꿈꾸었던 사회는 지금과 얼마나 비슷할까요. 시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유롭고 좋은 시절이 훨씬 빨리 왔다"고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내가 한창 민주화 투쟁했을 때는 이런 시절이 오리라 생각 못 했어. 지금은 표현의 자유, 만남의 자유가 있잖아. 1970, 80년대는 아무도 우리 집에 오질 못해. 이렇게 기자가 와서 취재도 못 한다고. 대학에 강연하러 가면 미리 경찰들이 와서 청중을 막고 강의실을 폐쇄해 버려. 신문에 내 시가 실려도 신경림이란 이름이 지워지고 시만 나온 적도 있지."
힘들고 억울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시인은 담담하게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당한 일들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진 않아."
시인은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군가가 보수, 또는 진보 단체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다 좋거나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면 안 돼. 나를 담당하는 형사들은 대부분 굉장히 착했거든. 나에게 형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내 활동과 시를 존경하지만 자기 직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지금 우리 사회는 증오가 너무 많아졌어. 과거에 비해 이만하면 많이 좋아진 편인데도. 개인들과 사회의 좋은 면을 보는 습관이 필요해."
두 번째 작가의 물건그리운 평양의 추억, 2007년 남북정상회담 사진
”북한 문학은 사라진 순우리말을 보전하고 있어. 통일이 된다면 순우리말 문학을 연구해 보고 싶어“.
2007년 남북정상회담 사진
충북 충주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늘 외지로 나가고 싶었다는 시인. 1980년대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세계를 마음껏 다녔습니다.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북한'입니다. 2005년엔 남북작가회담으로, 2007년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 이수훈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화배우 문성근, 작가 조정래, 국악인 안숙선 등과 함께였습니다. 당시 함께 갔던 수행원들과 찍은 사진은 가장 아끼는 물건입니다.
그 때 머물렀던 평양은 고즈넉한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평양의 경관이 잊히질 않아. 버드나무가 많아서 옛날엔 '유경(柳京)'이라 불렸다더군. 평양에는 물도 많아. 남포에 댐이 있어서 평양과 남포 사이엔 호수처럼 되어 있지. 남포에 가니까 어린 시절 보던 쪽배가 떠다녔어. 옛날의 전통적인 쪽배. 고요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있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였어. 시민들이 많지 않아 활기는 없었지만, 참 좋았어."
다만 북한 문인들과의 짧은 만남은 아쉬운 기억입니다.
"처음 방북한 건 2005년에 남북작가회담 할 때였지. 문학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하며 술도 엄청 마셨어. 그 때 만난 작가들을 다시 보고 싶었는데 한 사람도 다시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지.
2007년 다시 방북했을 때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 교수와 시인만 나왔어. 북한 당국 눈치를 보는지 대화를 잘 못 하더라고. 그 사람들 불편할까봐 문학이나 사회 이야기는 못 꺼냈지. 백석이나 이용악 같은 월북 시인 작품 이야기도 못 하고..."
시인의 소원은 언젠가 다시 북한 땅을 밟아 보는 것입니다.
"통일이 돼야 하는 이유는 경제이익뿐 아니라 문화의 통합 때문이야. 남한, 북한 각각의 문화는 반쪽짜리 문화지. 북한 문학은 남한에서 사라진 순우리말을 보전하고 있거든. 북한에 다시 가면 그런 점을 연구하면서 여행해 보고 싶어."
세 번째 작가의 물건등산은 나의 힘, 아웃도어 장비
''
”밖에 못 하는 이야기를 실컷 떠들고 싶어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어.
안종관, 현기영 등이 쭉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야“
여든 한 살의 시인은 무척 건강합니다. 집안일을 혼자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데 무리가 없는데요. 건강 비결은 '등산'입니다. 6년 전에는 75세 나이로 히말라야도 등반했습니다. 등산을 시작한 시기는 1979년. "밖에서 못 하는 이야기 실컷 떠들고 싶어서" 산에 올랐다고 합니다.
"30, 40년 전에는 술집에서 사회문제 이야기하면 종종 구속됐어. 그래서 시인들끼리 산에 가서 실컷 이야기하자고 했지. 그래서 산에 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취미가 됐네. 희곡작가 안종관, 소설가 현기영 등은 그때부터 쭉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야."
물건 욕심이 없지만 등산장비는 직접 샀을 정도로 애착이 강합니다. 감녹색의 등산가방과 검정 스틱이 꽤 멋스러운데요. 히말라야에 갔을 때도 사용한 장비랍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집 앞 북한산에 오를 때 씁니다.
"북한산에는 자주 가. 계절의 변화가 이만큼 아름다운 곳이 흔치 않거든. 금강산도 가봤지만 그에 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봐서 내가 이 나이에도 늘 웃고 낙관적으로 사는 것 아닐까."
'시인을 관두고 10년 동안 고향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 내가 쓰는 시에 대해 회의가 들어서 그랬는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더라고. 그때 결심했지.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말이야.'
시인은 시집 『농무』를 낸 순간부터 자신이 바라는 시인의 상에 충실하게 살아왔습니다.
"1956년에 등단했다가 시인을 관두고 10년 동안 고향에서 살았지. 내가 쓰는 시에 회의가 들어서 그랬을거야. 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더군. 그래서 결심했지. '나뿐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다'. 그 생각으로 『농무』에 실린 시들을 썼고 지금까지 그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지. 앞으로는 인생론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에도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일부 있지만 아직 못 쓴 것들이 있어. 곧 집필할거야."
돌발질문작가와 나누는 엉뚱문답
시 쓸 때 어떤 습관이 있나요?
꼭 새벽에 써야 해. 가장 정신이 맑을 때인 4시나 5시쯤 쓰지. 시를 쓸 때는 결벽증이 있어서 꼭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해. 옛날에 술 많이 마실 때도 시 쓸 땐 2~3일간 술을 안 마셨어.
머리 속에서 시를 품고 있다가 거의 완성되면 금방 쓰지. 타자는 아주 잘 치는 편이야. 내 나이대의 작가들은 양손에 한 손가락씩 쓰는 '독수리 타법'으로 치는데 난 1980년대부터 타자를 배웠기 때문에 쉽게 치지.
좋아하는 단어는 어떤 것인가요?
'살구'. 어릴 때 고향에 꽃이 정말 많았어. 그 중에 살구꽃이 제일 많았지. 우리집에도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꽃향기가 아주 좋아. 옛날엔 정릉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마당에 큰 살구나무를 심었어. 그런데 가족 중 나랑 어머니(2001년 작고)만 살구를 먹고 아무도 안 먹더라고. 살구가 참 맛있는데 왜 요즘은 안 파는지 몰라.
지난해 여름에 인도의 라다크라는 곳에 갔는데 그곳의 명산물이 살구야. 마음껏 사먹고 기념으로 살구 비누도 샀지. 옛날 생각 많이 났어.
최근에 재미있게 웃었던 기억은 어떤 것인가요?
간통죄가 폐지됐잖아. 그랬더니 아웃도어 관련 주가가 오르더라고...그 소식 듣고 엄청 웃었어. 어떻게 그런 발상이 있나 싶어. 나도 등산을 자주 가니까 아는데 남녀 등산객들이 정말 많이 오지. 여자들은 혼자 오는 경우도 많고. 아무튼 요즘은 '등산복'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그 생각이 나서 웃네. 하하.
에필로그
시인은 젊은 시절 늘 형사들이 감시하며 따라다녔지만, 형사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입니다.

"명절이었어. 고향에 가는데 형사가
따라와야 하잖아. 형사가 어디선가 차를 빌려 오더라고. 나하고 형사하고 뒤에 앉고 앞엔 운전수가 운전해 줘서 편하게 갔지.
고향에 내려갔는데 형사가 불고기를 사줬어.
그 땐 제일 좋은 음식이 불고기였거든.
그러면 고향 사람들이 '와, 신경림이가 서울 가더니
출세했구나' 하고 인사를 하지.
옆에 있는 사람이 형사인 줄 알면 냅다 도망가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런 소소한 추억들이 있어."
고향에 가는데 형사가 따라와야 했는데 나하고 형사는 뒤에 타고 운전수가 운전을 해 줬지 그리고 형사가 불고기를 사줬어. 고향 사람들은 신경림이가 서울가더니 출세했구나 했지.
김지현(주간동아 객원기자)
사진
이강훈(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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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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