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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상

자유영혼의 청년작가, 박범신의 책상

자유로운 영혼의'청년 작가' 박범신 작가의 책상
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소설가 박범신은 독자의 연령층이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작가입니다. 등단한 1973년부터 변화하는 시대상을 통찰하며 인간 본연의 욕망을 뜨겁게 그려냈지요. '떠남'에 대한 갈망이 묻어나는 그의 책상을 만나보세요.
자연의 본성을 닮은 문학가,
순수한 젊음의 소설을 추구하다
박범신 작가의 책상
계절이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매섭게 춥던 바람도 한결 온화해졌고요. 나무들은 힘차게 하늘로 가지를 뻗어 꽃피울 준비를 합니다. 사람의 인생을 이 시기에 빗댄다면 청춘(靑春)이라 하겠지요. 10, 20대의 젊은 시절, 힘이 넘치고 큰 꿈을 품는 때를 가리켜 청년기(靑年期)라고도 합니다.
나이 일흔에도 '청년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박범신. 문단에 발을 들인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청년'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의 소설에는 세상의 억압에 치열하게 맞서 내면의 본성을 지키는 인간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인간 본연의 에너지, 사랑과 욕망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문학에 대한 애정은 청년 시절과 다름없다'는 그를 방문했습니다. 1989년부터 살고 있는 서울 평창동 저택이 서울 집필실입니다. 일주일에 4~5일은 논산에 있지만 주말에는 여기서 가족과 지냅니다.
그의 방은 햇살이 잘 드는 이층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노(老)작가는 장난스럽게 창틀 위에 올라앉아 말했습니다. "난 물건에 별로 애착이 없어요. 사람에 대한 욕망이면 몰라도. 뭘 찍을지 기자가 알아서 찾아봐요."
박범신 작가
첫 번째 작가의 물건"한 때 목수가 되고 싶었지..." 직접 깎은 나무통
직접 깍은 나무통 사진
"나무를 깎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비슷한 점이 많아. 무형의 이미지를 유형의 물체로 형상화하는 것.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주관하거든. 글도 처음 시작할 때는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지만 쓰는 과정에서 완성되어 가는 거니까..."
작가의 책상에 30년 넘게 놓여 있는 나무통. 혈기왕성했던 서른다섯 살 쯤 직접 깎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 나무 깎는 걸 보고 자랐어요. 우리 큰 매형이 목수였거든. 나도 다시 태어나면 목수가 되고 싶어. 지금도 기운만 있으면 목공소를 차리는 것이 꿈인걸."
둥그스름한 나무통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이랍니다.
"나무 깎는 것이 왜 좋으냐면, 몰입할 수 있어서야. 난 무언가에 몰두하는 게 좋아요. 이것이 손에 칼을 쥐고 속을 파내는 거야. 기계로 파는 게 아니야. 내가 옛날에 목공 배웠을 당시엔 손으로만 작업했거든. 논산에 가면 마음 착한 목수가 한 분 계셔. 지난 가을엔 그분에게 배우면서 의자 하나 짰지. 더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없네. 일흔 살 되면 한가해질 줄 알았더니만."
작가의 목공예 취미는 글쓰기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무형의 이미지를 유형의 물체로 형상화하는 것. 그게 공통점이지요. 나무를 깎다 보면 내가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가잖아.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주관하는 것이거든. 글도 처음 시작할 때는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잖아. 쓰는 과정에서 완성되어 가는 거니까. 난 내 문장이 만들어내는 형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려요. 그런 노동이 갚진 거지요. 소설도 노동에 가까워요."
두 번째 작가의 물건마음의 목적지, '히말라야 산' 모형
"늘 이곳을 마음에 품고 살지.
히말라야는 초월적인 세계야. 그곳을 다녀와서는 죽음이란 게 두렵지 않아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지."
히말라야 모형 사진
몸은 서울과 논산을 오가지만, 마음은 늘 한곳에 있습니다. 2년 전까지는 거의 매년 다녔다는 히말라야 산. 작가의 후배 소설가 박민규는 작가에게 히말라야 모형을 선물했습니다. 작가는 손바닥 위에 모형을 올려놓고 "이곳을 늘 마음에 품고 산다"고 합니다.
"논산 집에는 거실 한가운데에 히말라야 사진을 확대한 것이 있고, 서울 집에는 요 모형이 있지. 히말라야에 대한 그리움을 자꾸 상기시키죠."
작가가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초월적인 세계지. 불멸의 존재랄까. 그곳을 다녀와서인지 죽음이란 게 두렵지 않아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자기 존재가 완전히 소멸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야.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거든. 누군가 죽어도 그 사람의 에너지는 남아 있다고 봐요. 소나무에 붙으면 소나무가 되는 거고, 꽃에 붙으면 꽃이 되는 거고...과학 이론에 '에너지 불멸의 법칙'이란 것도 있잖아?"
작가는 젊은 후배들과 등정할 때도 "제일 마지막까지 올라간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히말라야 가면 해발 3천~4천 미터까지 일주일 넘게 걸어가야 하잖아. 후배들은 금방 지쳐. 30대에 왕자 복근 새겨진 젊은이들은 처음엔 나보다 훨씬 강하지. 일주일 쯤 지나면 다 누워 있어. 난 일주일 후에 더 잘 가는데 신기하지? (웃음)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 젊은이들은 자연을 두려워해요. 등정 몇 달 전부터 북한산 가서 열심히 훈련해. 나는 아무 것도 준비 안 해. 난 힘들고 고통스러울 거라는, 길에 대한 공포감이 전혀 없어요. 두려움이 없으면 자연이 날 받아준다고 날 봐요. 자연을 두려워하면 자연이 날 안 받아줘요. 그런 담대함이 언제 생겼느냐 하면 우리 마을에서 나 혼자 중학교 다닐 때야. 8 km가 넘었으니까 왕복 너덧 시간 동안 걸어서 학교에 갔거든. 그 때 내 육체의 DNA에 인내력이 내장된 게 아닌가 싶어. 절대 빈곤의 시대에 대지가 준 선물이지.
둘째로 난 운동은 전혀 안 하지만 자연스럽게 살아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오욕칠정을 내 안에 가두는 법은 거의 없죠."
세 번째 작가의 물건절필의 시기를 회상, '한터산방' 목판
한터 산방 목판 사진
"절필했던 시기에 김성동 작가가 찾아와서 다시 힘내서 글 쓰라고 이걸 놓고 갔어.
이 목판이 늘 내 등 뒤에 있는데 이걸 볼
때마다 절필하고 가졌던 성찰의 시기를 회상하곤 해요."
50여 년 글을 써 온 작가에게도 절필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1993년부터 3년 동안이었지. 일종의 문학적 자기 죽음을 선언한 거예요. 그로부터 용인의 한 외딴방에 칩거했는데, 그 마을 이름이 '한터'였어. 넓은 터라는 이야긴데, 난 큰 밭은 아니야. 굳이 비유하자면 산 속의 단단한 바위랄까.(웃음) 그 때 『만다라』를 쓴 김성동 작가가 찾아와서 이걸 놓고 갔어. '한터산방'이라 쓴 간판이야. 다시 힘내서 글 쓰라고."
작가의 친한 동료 문인 김성동은 목판 위에 직접 글씨를 썼습니다. 그리고 목판을 인사동에 가져가 조각하고 칠을 해 선물했다고 합니다.
"이 목판은 항상 내 등 뒤에 있어. 그 때 마음을 회상하지요. 절필 후 가졌던 내 성찰의 시절이고. 문학적 죽음과 새로운 출발이 함께 있던 시기였어요."
지금도 작가로서 한계를 느낄까 궁금했습니다.
"그렇지. 사실 최근작『소소한 풍경』도 아주 힘들 때 쓴 거야. 읽어 보면 박범신이가 힘들었구나, 느낄 거야. 그래서 절필 이후엔 시간의 문제,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뤄 왔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갈망의 3부작이라 하는 『촐라체』, 『고산자』, 『은교』거든. 각각 소재는 매우 다르지만 존재론적인 문제를 가진 소설들이죠. 시간은 사람을 어떻게 훼손하나, 시간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무언지 파헤쳤죠. 작년까지도 사실 글쓰기 힘들었는데, 이번 봄부터 『문학동네』에 치매 걸린 노인들에 대한 소설을 연재할 거예요. 새 작품으로 다시 힘차게 시작해 보려고."
'내가 사랑했던 것은 사람 자체라기 보단 누군가의 그림자 같아요. 어떤 초월적인 존재이지. 그래서 항상 내 주인공들과 연애하며 살아요. 소설을 쓰고 나면 가슴에 묻어버리지. 은교는 내 가슴 속에 묻어있어, 평생.'
작가의 소설에는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거나 욕망하는 인간상이 나옵니다. 작가에게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대상이 있었을까요?
"아깐 사람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 나이에 되돌아보니 내가 사랑했던 것은 사람 자체라기 보단 누군가의 그림자 같아요.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겠지. 그래서 실제 사람이라기보다, 항상 내 주인공들과 연애하며 살았어요. 언제나 그렇거든요. 뜨거운 연애죠.
소설을 쓰는 동안 늘 열렬한 연애가 지속돼요. 『은교』를 쓸 땐 은교와 열렬하게 연애를 한 것이고. 『소금』을 쓸 때는 중년 남자와 열렬하게 연애하는 거죠. 실제 사람과 연애하는 과정보다 훨씬 생생하고 뜨거워요. 수많은 주인공들의 이름을 짓고, 생년월일을 설정하고, 환경과 상황을 다 내가 만들어 살아 있게 하는 것 아냐? 그 과정 안에 놀라운 연애가 있어요. 그 남들은 이걸 관념적으로만 이해할 뿐 별 실감을 못 할 거예요.
소설을 쓰고 나면? 가슴에 묻어 버리지. 은교는 내 가슴 속에 묻어있어, 평생. 그 맛에 사랑하고 소설을 쓰는 것이지."
돌발질문작가와 나누는 엉뚱문답
하루 중 글이 잘 써지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옛날엔 주로 밤에 썼는데 요즘은 상관 없어, 전천후예요. 이젠 밤에 눈이 침침해서 되도록 낮에 쓰려고 하지. 그래도 여전히 글쓰기에 효과적일 때는 늦은 밤이더라고. 어쩌다 하루는 '글발'이 올라서 밤을 새울 때도 있거든. 새벽에 여명이 훅 떠오를 때 정말 행복하고.
그래도 집중하기 시작하면 밤낮이 없어지는 거죠. 요즘에도 새 연재 시작할 소설 쓰느라고 거의 대문 밖을 안 나갔어. 논산에서는 아내가 없으니 점심도 거른 채 글을 써요. 밥 먹는 것보다 글 쓰는 게 재밌거든! 이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어.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글 쓸 때 특이한 버릇이 있나요?
손을 자주 씻어요. 유일한 쉬는 시간이지. 5분 씻고 들어와서 글 써놓은 걸 보면 '이거 왜 이렇게 써놨지?' 할 때도 있지. (웃음) 손을 깨끗이 씻으면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되어서 좋아요.
쓸 때는 양 손에 손가락 하나씩 해서 '독수리 타법'으로 쳐요. 『은교』 집필할 때부터 컴퓨터로 썼고 그 전엔 다 손으로 썼어요. 『은교』를 타자로 치다 보니 습관이 되더라고. 그런데 손가락 하나로 치니 원고지에 쓰는 것보다 시간이 단축되지도 않아요. 그래도 자판을 치면 문장들이 줄지어 나오는 것이 말이야, 참 신기하고 경이롭잖아. 재밌어요.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어떤 것인가요?
절필한 이후엔 '갈망'인거 같아요. 내가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지. 갈망은 욕망을 넘어서 본원적인 것에 대한 깊은 그리움, 그런 의미로 많이 쓰죠. 불멸이라든가 완전한 사랑. 신적인 존재. 그런 것에 대한 가없는 그리움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시대는 갈망이 깃들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젊은이들. 누군가를 사랑해도 상대방이 쉽게 받아 주지 않으면 포기하죠.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가 자본주의 구조에 있다고 봐요. 우리를 상위층 소비 그룹에 소속시키려고 하는. 분명 자신들도 사람의 마음에 대한 순수한 갈망이 있을텐데 그걸 알지 못해서 안타깝죠.
에필로그
작가의 방은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보통 작가의 집은 책이 너무 많아서 바닥이 내려앉을 때도 있다던데... 이층에 살면서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난 책 별로 읽지도 않아요.
(책상 뒤를 가리키며) 이건 내가 엊그제
사 온 책들이야. 40만원 어치 샀는데, 전부 다 노인 치매 간호, 노인 미술치료, 음악치료 이런 것들이지.
그냥 쌓아두면 마음이 든든하거든. 쓰다가 잘 모르면
책들이 '야, 나 여기 있어' 하고 손 흔들어 주지요. (웃음)
『고산자』를 쓸 때는 100만원어치 샀어. 옛 시대의 문화,
역사, 풍속사 관련 책을 무지 많이 사다가 뒤에 쌓아놓고 썼어. 근데 다 써보니 정독한 책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냥 내 마음 편하고 든든하라고 사다 두는 거예요."
이 책들도 내가 엊그제 사온 책들이야. 그냥 쌓아두면 마음이 든든하거든. 쓰다가 잘 모르면 책들이 '야, 나 여기 있어'하고 손 흔들어 줘.
김지현(주간동아 객원기자)
사진
이강훈(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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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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