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상

친절한 아트 스토리텔러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책상

친절한 아트 스토리텔러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책상
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다수의 미술해설서를 펴낸 이주헌 평론가. 그의 실제 모습은 책에서 보여준 화법만큼이나 따뜻하고 친절했습니다. 그림 좋아하던 소년이 미술 이야기꾼으로 성장한 스토리, 헤이리에서 여섯 식구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의 공간에서 만나보세요.
화가를 꿈꾸던 소년,   미술이 주는 행복을 책에 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책상
'그림을 보면 참 행복해. 글을 쓰는 것도 즐거워.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다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 예술로 인한 행복을 남에게도 전할 수 있었으면...'
그림 잘 그리고 글재주 있었던 소년은 40여 년 전 이런 고민을 품었습니다. 기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미술전문기자가 되었고, 미술 에세이스트, 갤러리 관장을 지내면서도 오직 한 가지에 몰두했습니다. '대중에게 미술을 재미있고 친근하게 전하는 것'. 읽기 쉬우면서도 풍부한 미술 지식을 담은 책을 쓰는 이주헌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1995년에 낸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1, 2』는 30만 부 이상이 팔리며 그를 세상에 알렸고 이후 『역사의 미술관』, 『지식의 미술관』,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정겨운 풍속화는 무엇을 말해줄까』 등은 다양한 미술 장르를 마치 이야기책 읽듯 친절하게 소개했습니다. 그의 책을 읽고 읽고 "어렵게만 느끼던 미술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거나 "그림 뿐 아니라 작가의 생애, 화풍, 당시의 역사 등 다양한 인문/예술적 배경지식을 습득하게 됐다"는 독자가 많습니다.
작가는 헤이리 예술촌의 한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아내, 네 명의 자녀들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서 10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단순한 삶을 살 수 있어 현재의 집이 가장 좋다는 그의 집필실을 찾았습니다. 그의 방은 이층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성'이라며 그가 웃었습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첫 번째 작가의 물건자식을 무한히 아꼈던 아버지의 유품, 나무 연필꽂이
아버지 유품 사진
"제일 오래된 물건 중 하나인데, 아버지 유품이에요. 볼 때마다 가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곤 하죠."
"물건을 한 번 쓰면 오래 쓰는 편이에요. 책상은 갤러리 학고재 관장할 때부터 20년 넘게 썼고, 아직도 아이폰 3G를 쓰고요. 그 중에서도 이 연필꽂이는 제일 오래된 물건 중 하나예요."
책상 한구석에 두꺼운 나무 연필꽂이가 놓여 있습니다. 통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살린 듯 지금 봐도 세련된 디자인인데요. 두껍고 무거워서 실용적이진 않지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30년 이상 쓰고 있는 이 물건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쓰던 유품입니다.
"제가 고1 때 돌아가셨어요. 신문사 기자셨는데 언론 탄압에 투쟁하시다가 해직기자가 되셨죠. 그 후로 생계를 위해 문학 번역을 많이 하셨어요. 1970년대에 한창 외국 문학이 소개됐는데 원래 일본어로 쓰인 성서이야기, 세계문학전집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셨죠. 아버지가 소리 내어 한국어를 불러주면 그걸 제가 받아 쓰기도 하고, 원고지 뒷면에 그림을 그리며 놀기도 하고... 그때 쓰시던 연필꽂이라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요."
아버지를 향한 작가의 그리움은 애틋합니다. 갓난아기 시절에는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제가 말도 못하던 아기였을 때 아버지가 저를 번쩍 들어안고 노시는데 갑자기 제가 오줌을 싸더래요. 그런데 아버지가 저를 내려놓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입을 벌려 오줌을 받아내셨어요. 어머니가 놀라셔서 그릇이랑 걸레를 들고 왜 오줌을 입으로 받았냐 하니까 아버지가 '갑자기 애를 내려놓으면 놀랄 거 같아서'라고 말씀하셨대요. 그만큼 아버지가 저를 아끼시고 따뜻한 분이셨죠. 제가 학교 들어가서는 심심하지 않게 늘 읽을거리를 갖다 주셨고요."
어릴 때부터 책과 인연을 맺게 해 준 아버지. 재치있는 입담과 풍부한 해설을 깃들인 그의 글 실력은 아버지의 영향 덕택이었습니다.
두 번째 작가의 물건글 쓰다가 지치면 마음껏 그린다, 전자 스케치북
"글을 쓰다가 답답해 그림을 그리면 숨통이 트여요.
그림을 꿈꿨었는데 이루지 못한 걸
이룰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요."
전자 스케치북 사진
집필실에선 주로 글을 쓰지만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 지치면 그림 전용 태블릿을 만지는 것이 작가의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아날로그보다 편리하고 다양한 기법을 시도할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이든 유화든 다양하게 그릴 수 있어요. 물감을 찍어서 번지기도 하고, 두텁게 바르거나, 크레파스나 펜으로 그리기도 하고. 이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섞을 수도 있고요. 또 스무 번까지는 그린 걸 취소할 수 있어요. 화면을 확대해서 아주 디테일한 부분도 손댈 수 있고요. 다만 인쇄의 아쉬움은 있죠. 해상도의 한계가 있어서 아주 크게 인쇄하면 색감이 떨어져요."
작가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본 프쉬킨 동상, 어릴 적 아버지 잎에 오줌 싸던 기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레이션도 보입니다. 그 중 보랏빛 꽃을 그린 사연이 특별한데요.
"이 꽃은 제 아내를 그린 거예요. 저는 사람을 색깔로 이미지화하는 버릇이 있어요. 제 아내는 항상 보랏빛이라 생각했는데 이 꽃이 보라색, 병도 자주색에 가깝잖아요. 이걸 보면서 제 아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꽃병을 사진으로 찍고 그림을 그렸어요. 이게 좋은 점이, 사진을 화면 밑으로 불러와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가 있거든요. 나중에 사진은 지워버리고 그림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가능해요."
얼리어댑터는 아니지만 디지털의 혜택이 고맙게 느껴진다는 작가. "예술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줍니다. 자유롭잖아요. 종교는 우리를 구속하지만 예술은 우리를 개방하죠. 글을 쓰다가 답답하면 그림이 숨통을 틔워 줍니다."
세 번째 작가의 물건미술학도로의 꿈을 키워준 명화 화집
명화 화집 사진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 오신건데 제가 어렸을 땐 제대로 된 화집이 없었어요. 이걸 보면서 미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단순히 그림을 좋아했던 꼬마 이주헌이 미술학도로 성장하게 해 준 책이 있습니다. 1969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2권짜리 세계미술전집인데요. 상당히 낡았지만 지금도 가끔 꺼내 보는 소중한 물건입니다.
"제대로 된 서양미술 화집이 없던 때였어요. 명화를 보려면 비싼 달력을 사 봐야 했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아서 유럽 그림이 소개될 때였고요.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 오셔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화가로의 꿈을 키웠죠."
당시 소년이었던 작가는 화집을 보며 미술을 보는 눈을 넓혔습니다. 화가 코로, 쿠르베를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면서 따뜻한 화풍, 사실적인 묘사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전공해야겠다는 꿈을 품어준 고마운 책이죠. 덕분에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미대에 가겠다는 목표를 잃지 않았고 홍익대 서양화과에 진학했죠."
당시 품었던 유럽에 대한 동경은 후에 저술 활동에도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그는 1994년 당시 학고재 관장에게 1,100만원을 선인세 명목으로 빌려 가족들을 데리고 유럽 미술관 기행을 갔습니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미술 에세이 한 권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도박'이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그 정도 결단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림을 보며 느꼈던 행복, 그 충만감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어린이를 위한 미술 해설서를 계속 펴내고 있고요. 지금도 제 활동에 영감을 주는 참 고마운 화집이죠."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행복, 그 충만감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그림 대신 글을 통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공감해 하면 그것이 또 그렇게 기쁘더라고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가장이 되어 늘 결핍감이 있었다는 작가. 그림 그리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 시절에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 와닿았습니다. '문학은 위로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미술이 자신에게 준 것은 위안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예전보다는 예술이 주는 혜택을 일반 독자들도 풍성하게 받아들이는 걸 실감해요. 현재 미술 에세이 시장이 점점 커지고 대중을 위한 미술평론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경쟁심이 생기냐고요? 전혀요. 실력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서주니 반갑고 제가 그 1세대라는 점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중과 미술을 친근하게 잇는 문화소통자의 역할을 확장해갈 겁니다."
돌발질문작가와 나누는 엉뚱문답
하루 중 글이 가장 잘 써지는 때는 언제인가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바로 글을 쓰는 편입니다. 특별한 외부 활동이 없으면 오전에 글을 쓰고요. 젊을 때 기자로 5년 일했기 때문에 써야 할 때느 장소, 시간 가리지 않고 씁니다. 쓰다가 자주 일어나 서성이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거나 여러 책 집필을 한꺼번에 하는 버릇이 있지요.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어떤 것인가요?
위로, 사랑, 포옹. 이런 따뜻한 단어들이요. 너무 뻔한가요? 미술을 볼 때도 따뜻한 점이 먼저 느껴지거든요. 저는 '쿨'한 사람이 못 되요. 쿨하려면 좀 삐딱해야 하는데 전 수평적인 사람이거든요. 솔직하게 말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죠. 그래서 멋이 없는 건지. (웃음)
최근 재미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6개월 된 아기고양이를 키우는데 그 녀석이 노는 모습이 웃겨요. 자기 나름대로 주인이랑 '밀당'을 하지만 먹을 것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거든요. 정말 귀여워요. 중 1인 막내딸이 원해서 샀는데 사길 참 잘 한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워 봤고 동물이랑 노는 걸 좋아합니다.
에필로그
자녀가 넷인 작가는 일산에 살다가 10년 전 헤이리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사교육 시설과 동떨어져 있어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작가는 오히려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운 것이 교육 비결이었다고 뿌듯해 합니다.
"첫째는 학원을 안 보냈고 둘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목공일을 했어요.
우리 집 콘솔이랑 책상 하나도 둘째가 만든 거죠.
학원 없이도 스스로 공부해서
자식 셋이 미대에 갔답니다.
자연 속에서 더 풍부한 감성을 느끼고 스스로 알아서
제 길을 찾아가는 자식들을 저는 믿어요.
다행히 아내도 저와 교육관이 같아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큰 문제가 없었죠."
여섯 식구가 예술의 전당에 가서 음악회를 보고
저녁 먹고 돌아오는 길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작가.
가족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의 주름진 입가에서 넉넉한 웃음이 묻어났습니다.
현관 입구에 있는 가구 보이죠? 저희 둘째가 만든 거에요. 하고 싶어하는 것을 시키자는 게 저희 부부의 생각이에요.
김지현(주간동아 객원기자)
사진
이강훈(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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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2-3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