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상

소설가의 고민과 일탈이 묻어나는 소설가 이문열의 책상

소설가의 고민과 일탈이 함께 묻어나는 소설가 이문열의 책상
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90여 편의 소설을 내며 한국의 사회상을 조명해 온 소설가 이문열. 최근 장편소설 『변경』을 재출간하고 ‘오랜 숙제를 해결해 후련하다’고 말했습니다. 작품 속 물건과 남다른 추억거리를 볼 수 있는 그의 공간을 찾았습니다.
한국 사회를 통찰하는 소설가의 집념
소설가 이문열
한국인은 역사의식이 유난히 강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에서도 현대사는 가장 해석의 논쟁이 뜨거운 영역입니다. 불과 반세기 전 과거이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현대사를 문학에서 다루기는 무척 까다로운 일입니다.
소설가 이문열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룬 장편소설『변경』(전 12권)을 재출간했습니다. 1998년 처음 출간된 이 작품은 2003년 절판됐다가 최근 1년 동안 수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1960년대를 제대로 이해해야 1980년대, 2000년대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작가의 신념 때문입니다.
1977년 등단 때부터 25편의 장편, 6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써 온 작가는 30년 전 이천에 터를 잡았습니다. 1998년 설립한 작가들의 창작 공간 ‘부악문원’ 옆 자택을 찾았습니다. 창 밖으로 너른 잔디가 보이는 전원 주택입니다. “아이구. 서울에서 예까지 왔네. 잘 왔심니다.” 그의 소설에서 자주 접했던 경상도 사투리였습니다.
"내가 글이라면 많이 썼는데 물건은 별로 없어요. 물건이나 노리개를 좋아하고 애착을 가지는 걸 한문으로 완물(玩物)이라 카는데, 완물상지(玩物喪志)란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너무 좋아하면 사람의 큰 뜻을 잃는다'는 의미지요. 내 고향 경북 영양에는 특히 그런 풍조가 강해요. 그래도 몇 가지 추억이 되는 물건들을 소개하지요."
소설가 이문열의 책상
첫 번째 작가의 물건소설 「금시조」의 발단, 붓과 벼루
붓과 벼루 사진
"등단할 때도 이런 생각을 했지요.
글을 쓴다는 게 평생 후회할 비참한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다른 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즘엔 글쟁이로 살아온 게
'해 볼 만한 일이었다' 싶어요."
「들소」, 「시인」 등 그의 몇몇 작품은 예술가의 인생과 철학적 사유를 담았습니다. 그 중 「금시조」는 서예가 고죽(古竹)에 대한 소설인데요. 작가의 젊은 시절부터 취미였던 붓글씨가 작품 구상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젠 글씨를 쓰지 않지만 붓과 벼루는 그의 서재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게 중국 단계석이란 돌로 만든 벼루입니다. 붓은 40~50년 됐을기고. 글씨를 잘 쓰지는 몬합니다. 해서(楷書) 다음에 횡서(橫書)를 배워야 하는데 해서에서 그만 뒀어요. 그래도 '어디 가서 휘호 정도는 쓸 줄 알아야지'란 생각에 노력은 했지요. 내가 소설을 그리 쓰고 나니까 남들은 서예에 대해 엄청 잘 아는 줄 알더라고. 하하."
「금시조」를 읽으면 마치 작가가 주인공의 삶을 산 듯 예술가의 고뇌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작가는 자신의 업(業)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며 살았을지 궁금했습니다.
"나라고 왜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다른 작가들 보면 '문학에 목숨을 건다'든지, 문학을 종교처럼 의지하기도 하는데 난 아니었어요. 등단할 때도 이런 생각을 했지요. 글을 쓴다는 게 평생 후회할 비참한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다른 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게 의심하고 후회도 하면서 길을 걸어 왔는데, 나이 예순이 넘어서 보니 작가로서 나만큼 누린 사람도 적더라구요. 요즘엔 글쟁이로 살아온 게 ‘해 볼 만한 일이었다’ 싶습니다."
두 번째 작가의 물건문학상보다 더 기뻤던 '바둑 1위'
"엎치락뒤치락 했는데 결국 내가 이긴거라. 통쾌해서 여기 저기 전화해서 오늘 내가 우승했다고 자랑했어요.
문학상을 많이 받던 시절인데
문학상 받을 때보다 더 기쁘더라고. 하하"
바둑 1위 상장 사진
문학만큼이나 한 때 열정을 뒀던 것, 바로 바둑입니다. 20여 년 전 문인 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일은 지금도 작가의 자랑거리인데요. "이게 1등한 증거"라며 조훈현 씨가 사인한 바둑판을 펼쳐 보였습니다.
"1990년대에 바둑을 3급으로 한창 재밌게 둘 땝니다. 기원에 가면 동료 작가들이 한 판 붙자고 해요. 잘 하고 싶은데 연습할 시간은 없고 억지로 두면 자꾸 지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나도 이문열 이겼다’ 카는거라. 그러니 화가 나가지고 언젠가 일망타진을 해야겠다고 별렀지. 마침 문인 바둑대회가 열린다길래 이때다 싶었지요."
바둑 실력은 '홧김에' 불이 붙었습니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글도 안 쓰고 좋아하는 술도 끊었습니다. 바둑 관련 비디오와 책을 섭렵하며 오직 바둑만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3급 이하 팀에서 우승했습니다. 1~2급에서 우승한 송 영 작가와 결승전을 치르게 됐습니다.
"내가 낮은 급수니까 3점을 먼저 놓고 시작했어요. 엎치락 뒤치락 했는데 결국 내가 이긴거라.(웃음) 통쾌해가지고, 여기 저기 전화해서 오늘 내가 우승했다고 자랑했어요. 문학상을 많이 받던 시절인데 문학상 받을 때보다 더 기쁘더라고. 하하"
오래 전 일인데도 마치 엊그제 일 같나 봅니다. 작가의 웃음소리가 소설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시원했습니다.
세 번째 작가의 물건『오디세이아 서울』 주인공, 만년필
만년필 사진
"판매 부수가 높다든지, 출판기념회 할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박수쳐 주는 것도 오히려 불안했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내 독자를
내가 믿지 못했던 거지…. 당시엔 그런 두려움이 늘 있었어요."
작가가 22년째 애지중지하는 만년필이 있습니다. 만년필 회사에서 선물 받은 은장 만년필입니다. 1993년 발표한 『오디세이아 서울』의 주인공이지요.
"소설 속 화자가 만년필이에요. 여러 명의 '주인'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하듯 서울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거든. 1990년대 서울 사람들의 군상을 담은 이야기지요. 그 때 만년필 회사에서 펜 선전해 줘서 고맙다고 이걸 보내왔어요. 지금도 사인할 때 씁니다."
작가와 펜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그도 펜을 놓고 싶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인데요.
"이 소설 나왔을 때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90년대입니다. 하지만 비판도 많이 받았던 시기라 늘 좋지만은 않았지요. 왜 '책 장례식' 한 거 기억나시죠. 그 후론 판매 부수가 높다든지, 출판기념회 할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박수 쳐 주는 것도 오히려 불안했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내 독자를 내가 믿지 몬했던 거지. 사람들이 헹가래쳐 줄 때 위로 번쩍 띄웠다가 밑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중상 아니면 사망이잖아.(웃음) 당시엔 그런 두려움이 늘 있었지요."
'글만 써야지요. 『변경』이 나왔으니 마음이 좀 후련하네요.앞으로 아직도 자기 검열에 걸려 있는 1980년대를 새롭게 조명해 볼 겁니다.'
혈기왕성하게 글을 썼던 시절에 오히려 고뇌가 많았다는 작가. 1998년 처음 출간된 『변경』을 5년 만에 스스로 절판시킨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불안했던 지난 시절을 고백하는 작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습니다. 작가는 이제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내 나이가 벌써 예순여섯입니다. 이 나이에 어차피 전업(轉業)은 몬할 거 아입니까. 글만 써야지요. 『변경』이 나왔으니 마음이 좀 후련하네요. 앞으로는 아직도 '자기 검열'에 걸려 있는 1980년대를 새롭게 조명해 볼 겁니다."
돌발질문작가와 나누는 엉뚱문답
과거로 돌아가는 것,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과거로 가서 소설가 말고 다른 거 해보고 싶어요. 남들이 권유한대로 정치를 해 볼 수도 있고… 일관되게 공부를 해서 학문을 하나쯤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부악문원에서도 예전엔 인문학 수업을 깊게 했거든요. 철학이나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내 학문을 정립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루 중 글이 가장 잘 써지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보통 저녁 시간이 제일 능률적입니다. 구체적으론 밤 8시부터 새벽 2시 사이쯤이지요. 하지만 생산 능력 이상으로 주문을 받게 되면서부터는 그런 시간대를 따져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집필이라는 작업은 매우 정적이에요. 도중에 자리를 뜨면 일이 토막이 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편이에요. 주위에 자연도 많은데 통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운동 부족이 됐네요.(웃음)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어떤 것인가요?
딱히 좋아하는 거라기 보다…내 소설에 가장 많이 나온 두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구해서 알아냈다고 하네요. 하나는 ‘신산스럽다’. 고생하고 괴로울 때 쓰는 단어지요. 다른 하나는 ‘환하다’. 꼭 빛이 밝을 때만 말하는 게 아니고, ‘환한 아름다움’ 처럼 무척 좋은 것을 강조할 때 많이 씁니다.
에필로그
최근 작가에게 행복한 일이 생겼습니다.
밀양시에 '이문열 길'(가칭)이 조성되는 것인데요.

밀양초등학교를 나온 작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배경으로 밀양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영남루(보물 제 147호)에서
삼문동 솔밭길까지의 1km 구간이 작가의 문학을 기념해 새롭게 단장할 예정입니다.

"처음에는 영화 '밀양'에 나온 전도연 길, 송강호 길
옆에 만드는 줄 알고 ‘예쁘고 잘생긴 배우 길 옆에 내 길 있으면 뭐하냐’고 싫다 캤지.
그런데 밀양 시장이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겠다
카더라고. 직접 가봤는데 아주 맘에 들어요. 허허."
예쁘고 잘생긴 배우 길 옆에 내 길이 있으면 뭐하냐 싶어 싫다캤지. 그런데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겠다 카더라고. 직접 가봤는데 아주 맘에 들어요. 허허
김지현(디지틀조선일보 기자)
사진
이강훈(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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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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