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요즘 가장 '핫'한 철학자 강신주 박사. 철학을 개념으로만 느꼈던 사람들에게 '삶 속의 철학'을 설명하는 학자입니다. 대중 강연에서의 모습과 똑같았던, 날카로운 통찰력에 유머가 녹아 있는 그의 공간을 만나보세요.
정직한 철학자의 인생, 글과 소리에서 답을 찾다
대한민국은 지금 인문학 전성시대입니다. 역사, 철학을 쉽게 설명하는 강연과 베스트셀러가 넘쳐납니다. 예전에는 대학에서 주로 공부했던 인문학이 지금은 일반인의 관심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가운데 '철학'에 대한 대중의 이목을 붙든 사람은 강신주 박사가 아닐까 합니다.
강 박사는 대중에게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철학에 대한 책을 써 왔습니다. 『철학 vs 철학』,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상처받지 않을 권리』, 『강신주의 감정수업』 등 30여 권입니다. 2011년부터 2년 동안 대학로에서 개최한 《강신주의 다상담》에서는 일상의 고민을 철학으로 속 시원하게 풀어냈지요. '톡 쏘는 철학 멘토'로 불리는 그는 8년째 광화문에 집필실을 두고 있습니다. 철학자의 공간에는 어떤 물건이 있을까요?
첫 번째 작가의 물건 ㅣ 시에서 '진짜 마음'을 찾다 ? 김선우 시인의 시집
"시집을 좋아해요.
시는 간결하잖아요.
진심이 응축돼 있어서 시가 좋아요."
그는 친한 친구인 김선우 시인의 시를 가장 아낍니다. 김 시인의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에 나온 시 '이 봄날, 누구세요'를 소리 내어 읽어 주었습니다.
"내가 가진 책 중에 가장 좋아요. 이 사람의 시는 '진짜'라는 느낌이 들었거든. 진짜란 거짓 없이 자기 경험을 솔직 담백하게 꺼내는 걸 말해요. 그게 아프더라도 말이지. 우리나라 문학 대부분에서도 '진짜'를 느끼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이 책이 귀해요. 난 시집을 좋아해요. 시는 간결하잖아요. 소설은 반을 읽어도 전체를 알까 말까인데, 시는 진심이 응축돼 있지. 시도 좋고, 사람도 좋아요."
그는 '진짜'를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강연장에서 '진짜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어떤 작품이 내 마음을 확 울릴 때가 있죠? 그 땐 굉장히 아파요. 자기 마음의 진짜를 들춰내는 거죠. 누군가가 철학을 고상하고 지적인 것으로 포장해 온 반면 난 인문학의 본령을 밝히려고 했어요. 듣는 사람을 불편하고 아프게 만들지라도 그 사람의 진실한 모습에 접근한 거죠. 어줍잖은 위로 대신.
인문학은 책에만 있지 않아요. 책은 실제 경험을 유도할 때 의미가 있지 독서 자체가 간접 경험은 아니죠. 영화랑 소설 많이 본다고 인생이 성숙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서 독자나 청중의 '직접 경험'을 이끌어내는 게 내 가치관이에요."
두 번째 작가의 물건 ㅣ 유일한 수집벽 ? 클래식 음반
"섬세한 사람들을 좋아해요.
감정에 순수한 사람들.
내 감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감정을
그대로 내뿜는 사람들이랑 함께 있으면
정말 즐거워요."
그의 방에는 인터뷰 내내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수집벽이 별로 없는 그가 유일하게 모은 음악CD입니다. "이거 다 모았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10장 세트 중에 일부가 없으면 그게 블랙홀처럼 계속 신경 쓰인다니까요. (웃음) 아마존닷컴이랑 중고샵 다 뒤져서 겨우 찾아낸 거예요."
음질이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세트를 완결하기 위해 샀다는데요. 알고 보니 클래식 애호가입니다.
"쇼팽의 에뛰드도 좋아하고, 특히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0번 A장조 D.959 2악장은 딱 내 음악이에요."
때로 음악은 철학과는 다른 섬세함으로 다가옵니다. 음악을 들으면 작곡가의 마음 상태가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땐 작곡가의 감정으로 내 마음이 조절되는 것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래선지 감성이 섬세한 사람들과 잘 통한다고 합니다.
"섬세한 사람들을 좋아해요. 하루 종일 '센치'한 사람들 말고 감정에 순수한 사람들. 내가 웃겨주면 따라 웃고 따뜻하게 대하면 고마워하는. 내 감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감정을 내뿜는 사람들이랑 함께 있으면 정말 재미있어요. 주위에 예술가 친구들이 많은 것도 그래서인 것 같고."
세 번째 작가의 물건 ㅣ 소유욕을 사라지게 하는 물건 - 목탁
"이건 진짜 목탁이에요.
두드려보면 모든 헛된 욕망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의 방에서 가장 특이한 물건. 스님의 목탁입니다. '똑, 똑 또르르르...' 깊은 밤 산사에 온 듯 분위기가 묘해졌습니다. 언젠가 강연을 갔을 때 행사를 주최한 스님이 '강연료가 적다'고 하자, '그럼 선물로 목탁을 달라'고 해서 받았다며 씩 웃었습니다.
"거의 빼앗아 오다시피 한 거죠. (웃음) 근데 이건 진짜 목탁이에요. 모조품은 이렇게 맑은 소리가 안 나요. 두드려보면 모든 헛된 욕망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니까."
좋아하던 물건도 가끔 버린다는 강 박사. 그토록 좋아하던 시집도 김선우 시인의 책 몇 권 말고는 없습니다. 《김수영을 위하여》,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등을 쓴 이후 시집도 남들에게 줬다고 합니다.
그에게 남은 한 가지 욕심은 책 쓰기입니다.
"책은 강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내가 죽어서도 남잖아요. 그래서 다작을 할 수 있었죠. 나 같은 경우는 지독하게 외로워서 글을 썼어요. 글은 사람과 거리 두기를 할 때 써지니까. 남들에게 주목 받는 거? 욕심 없어요. 대신 스스로의 글을 냉정하게 들여다봐요. 내가 내 책의 가장 강력한 독자니까."
우직하게 앞길을 가면서도 섬세한 감성과 통찰력을 놓지 않는 강신주 박사. 그는 어떤 철학자로 기억되고 싶을까요?
"정직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다상담》 할 때도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에너지를 다 바쳤죠. 끝나고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상담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면 '아, 오늘도 정직했구나' 하고 느꼈어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철학자로 남고 싶어요. 낚시꾼처럼."
돌발질문 ㅣ 작가와 나누는 엉뚱문답
하루 중 글이 가장 잘 써지는 때는 언제인가요?
새벽 3~4시.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가 글 쓰는 시간이에요. 주로 저녁에 강연을 하는데 강연하고 집에 와서 바로 자면 돈만 버는 사람 같잖아요. 그래서 밤에 집중해서 글을 쓰죠. 그러니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오전에 전화하면 안 되요. (웃음)
'진지하다'의 진지. '참 진'에 '소리개가 잡을 지'예요. 꽉 잡는다는 뜻이죠. 김수영 시인도 진지라는 단어를 여러 번 강조했어요. 삶이 진지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동감해요. 그런데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잡지 못하죠. 위험할까봐. 온몸으로 부딪쳐 배낭 여행을 하는 것처럼 삶도 진지하게 겪어야 해요.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미래를 갈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어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딱히 생각이 없는데, 과거엔 미련 없어요. 대학생 때 사람을 무척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사람 만나는 건 일방통행 같은 거라 한 번 들어가면 힘든 일이 생겨도 물러설 수가 없더라고. 젊을 때는 그런 시행착오랑 유치한 일들로 남들을 많이 힘들게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과거는 돌아가기 싫어. 마흔여덟 살 된 지금이 정말 좋아요.
강 박사는 대학시절 화학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공대생이 철학으로 방향을 튼 이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앞길을 선택했다고 하네요.
"어느 순간부터 열역학 책 밑에 철학 책이 있더라고요.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고. 그렇게 자연스레 철학을 하게 된 거 같아요. 마치 여행가듯이.
힘들 때 많았죠. 그럴 땐 등산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산을 오를 때 힘들면 아래를 보면 되잖아요. 내가 지금껏 올라온 길을. 그렇게 하면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어느 길이 좋을지 모르면? 자기 감각을 믿으면 되요."
- 글
- 김지현(디지틀조선일보 기자)
- 사진
- 이강훈(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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