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상

‘도시‘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공간 - 정이현 작가

‘도시’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공간, 소설가 정이현의 책상
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대중적이고 언어 표현력이 풍부한 정이현 작가는 사실적인 내용과 현실적인 캐릭터로 독자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특히 2, 30대 여성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도시녀들의 공감대 형성이 시작되는 곳, 정이현 작가의 책상에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 단순한 책상이 좋다"
소설가 정이현
도시에는 늘 새로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최신 문물이 유입되고 하루가 다르게 새 건물이 들어섭니다. 유행이 급속도로 퍼졌다가 금방 사라집니다. 신문 1면의 사건, 화제가 되는 이슈도 도시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바삐 이동합니다. 출근이 시작되는 새벽부터 술자리로 지새우는 밤까지, 도시의 이미지는 늘 유동적입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 「삼풍백화점」, 「달콤한 나의 도시 」 등 도시의 이야기를 써온 소설가 정이현. 그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서울 역삼동으로 최근 새 집필실을 옮겼습니다. 책상 앞 창문으로 강남 일대가 펼쳐집니다.
“이 작업실이 참 좋아요. 도시의 건물들을 보며 작품 모티브를 상상하기도 하고요. 날씨에 따라 정직하게 변하는 하늘도 볼 수 있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답게 작업실은 단순합니다. 책상과 의자, 작은 책꽂이, 1인용 소파가 전부입니다. 그 가운데에도 작가의 삶을 말해주는 물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소설가 정이현의 책상
첫 번째 작가의 물건'탄생의 기쁨을 축하하는' 故 박완서 작가의 선물
박완서 작가의 선물 사진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이 주신 엽서예요.
이 선물을 주신 날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지금은 추도식에서 가족이나 작가들과
선생님을 추억해요.
선생님께서 주신 또 다른 선물이죠."
"물건을 아끼거나 수집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 엽서는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그림 엽서에는 한 아이가 부모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이야, 자라서 엄마 아빠의 기쁨이 되어라’ 라고 곱게 쓴 필체가 보입니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이 주신 엽서예요. 제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이 엽서랑 금일봉을 함께 들고 집에 오셨어요. 저를 참 많이 아껴 주신 분이죠. 임종 전 찾아 뵙지 못했는데, 그날 이 선물을 가져오신 게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두 작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고인은 정 작가의 현대문학상 수상작 「삼풍백화점」을 심사한 심사위원이었습니다. 그 후 종종 식사나 커피를 함께 하는 친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나이에 비해 젊으셨어요. 작품 이야기보단 연예인, 남자 배우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소녀 같은 분이셨죠."
매년 고인의 추도식 때는 고인의 가족, 문인들이 함께 모인다고 합니다. 사망 3주기가 지난 지금, 추도식은 슬픔을 조금씩 벗어나 정다운 분위기의 모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고인에 대한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그 시간이 "고인이 남겨준 선물" 같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을 의미하지만, 작가에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문학에 빗대면 소설의 출발점 아닐까요? 죽은 이의 유품을 보면서 새로운 추억, 이야기가 탄생하니까요. 저는 영원한 엔딩은 없다고 생각하고, 소설의 결말도 늘 열어 놓는 편이에요. 가장 극적이거나 허망한 순간 이야기가 끝나게 하죠. 영화로 치면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이후 ‘제 2부’를 상상할 수 있는 결말, 그것이 제 소설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영원한 엔딩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설의 결말도 열어 두는 편이에요. 그 다음이 어떨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가 상상하게 되는, 그런 소설이 전 좋아요.'
두 번째 작가의 물건'미소를 짓게 하는 힘' 아이의 이름을 새긴 펜
"작업할 때 펜을 보면서 아이들 생각도 하고,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도 해요.
아이들에게 응원을 받는 느낌이에요."
펜 사진
심플한 필통에서 유난히 큰 펜이 돋보입니다. 육각형 모양의 굵은 주황색 펜. 빛나는 은색 뚜껑에는 2개의 영문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작가의 딸들 이름입니다.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쓴 『사랑의 기초』 출간 후 동료 작가들이 선물한 펜인데요. 두께가 굵지만 그립감이 좋고 잉크도 잘 나와 사인할 때 주로 쓴다고 합니다.
육아의 시간은 작가에게 매우 힘들었습니다. 딸들이 연년생이라 더욱 바빴지요. 그 때 동료들이 ‘너에겐 아이들이 있잖아, 힘내’라며 펜을 선물해 줬습니다.
"딸들 이름을 펜에 새긴 아이디어가 재치 있죠? 작업할 때 틈틈이 보면서 아이들 생각에 미소 짓기도 하고,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요."
3살, 2살 아이의 엄마인 작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내면이 더 좁고 깊어졌다"고 합니다.
"아이는 나랑 닮았으면서도 다른 세계를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타인을 더 세밀하고 깊게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 관심이 없던 인물도 다시 보게 되고요. 인간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반성도 해요. 이전 작품엔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썼는데, 그 나이에서 생물학적으로 멀어졌으니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탐구해야죠."
힘겨웠던 육아는 오히려 작가의 창작열을 불태운 계기였습니다. 소설 『너는 모른다』를 쓸 때는 10개월 동안 일일 연재와 육아를 병행해야 했기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소설을 원하고 사랑하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후 작가는 『안녕, 내 모든 것』의 에필로그에 "이 작품이 나의 최선임을 인정할 테다"라고 말합니다.
"제 작품의 베스트라기보다, 내가 얼마나 소설을 갈망하는지 깨우친 후 나온 작품이기에 그렇게 쓴 거예요. 문학인으로서의 자아를 확인하게 해 준, 힘들었지만 고마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작가의 물건'씁쓸함을 즐기는 시간' 하루 두 잔의 커피
커피 사진
"소설 끝에 주인공 은수가 빗물을 맛보며 ‘서울의 맛’ 이라고 느껴요.
맹물이지만 어떤 사람은 달콤하게 느낄 수
있는 거죠.
또 ‘달콤한’의 대상이 나일 수도 있고,
도시일 수도 있어요. 그건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어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같이 지키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루 두 잔 마시는 커피입니다. 남편도 커피 마니아여서 집에 커피 머신을 두고 부부가 함께 커피를 즐깁니다. ‘커피 없으면 일이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커피는 그의 창작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하루 4시간 정도 '뾰족'해지는 시간이 있어요. 글에 집중하고 예민할 때죠. 보통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까지 작업실에서 글을 쓰는데, 커피가 집중력을 이끌어 줘요. 제가 좀 불안함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커피를 마시면 마음도 차분해져요."
카페인 영향도 별로 받지 않아 가끔은 늦은 밤에도 커피를 마신다고 합니다.
소설가 정이현
그는 아메리카노만 마십니다. 단 걸 싫어해 카카오 75% 정도의 씁쓸한 커피를 즐기는 편입니다. 그러면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요?
"무미한 것도 사람에 따라 달게 느낄 수 있잖아요. 소설 끝에 주인공 은수가 빗물을 맛보며 ‘서울의 맛’ 이라고 느끼는 장면이 나와요. 맹물이지만 어떤 사람은 달콤하게 느낄 수 있는 거죠. 단 디저트보다 쓸 커피에서 더 스위트함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또 제목에서 나온 ‘달콤한’의 대상이 나일 수도 있고, 도시일 수도 있어요. 해석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어요."
40대에 접어든 작가는 최근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한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입니다. 문학평론가 허희와 함께 책을 소개하고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명하지 않지만 보석 같은 작품이 많답니다. 제 취향대로 고른 책, 자신 있게 독자에게 권할 거예요. 녹화를 할 때마다 독자와 더 유쾌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서 기뻐요."
또 앞으로 2~3년간은 재미있는 단편소설에 몰두할 계획입니다.
"글을 쓸 때 예전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전에는 뭔가 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이젠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다양한 주제로 매력적인 단편들을 선보일 테니 기대해 주세요."
에필로그
정이현 작가는 통통 튀는 목소리와 발랄한 웃음이 매력입니다.
작품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소녀처럼 깔깔 웃었습니다.
"2006년 조선일보에 '달콤한 나의 도시'를
연재할 때예요. 치과에 진료받으러 갔는데 대기실에서 '너 이거 보면 안돼!'라는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한 어머니가 고등학생 아들에게
제 글이 실린 신문을 치우신 거예요.
하필 그날 실린 삽화가 남녀관계의 야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었거든요.
게다가 신문에서 원본을 편집해 더 야한 느낌이
들게 했더라고요.
그날 신문사에 독자들 항의가 빗발쳤대요.
제 소설이 졸지에 19금이 되어버린 날이었죠. 하하"
'너 이거 보면 안돼!' 깜짝 놀랐다니까요. 제 소설이 19금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그냥 제가 아닌척하고 있었어요.
김지현(디지틀조선일보 기자)
사진
이강훈(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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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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