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상

섬진강 시인의 책상 - 김용택 시인

작가의 책상 김용택 시인 편
책상(冊床) : [명사]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거나 할 때에 앞에 놓고 쓰는 상. 
어린이에겐 책상은 놀이 공간, 학생에겐 공부하며 미래의 꿈을 키우는 곳이죠. 작가에겐 더욱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체험과 생각, 상상력을 텍스트로 세상에 내놓는 존재죠. 책상은 작가의 가치관이나 상상력이 돌아다니는 놀이터이자,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하는 태초의 장소인 셈입니다. 책상 위에 있는 책이나 연필과 액자 등 소품들은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꽁꽁 감춰 놓은 창작의 비밀을 알려줄 단서가 될 수 있겠죠. ‘작가의 책상’에선 멋진 작품이 태어나는 태초의 공간, 상상력과 창작이 노니는 작가의 책상을 통해 우리 시대 작가들의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상상력의 놀이터, 작가의 책상
작가의 책상 상세이미지1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날 전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김용택 시인과 그의 책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뉘 집 큰일 날 때마다 / 남의 일이 곧 내 일이어서 / 누가 뭐라 안 해도 각자 모여들어 / 곡식과 품을 보태어 일 추리고 / 두레와 품앗이가 성하니……’( [섬진강13]중에서)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서른 편이 넘는 [섬진강] 시리즈를 통해 자연과 서정, 공동체의 삶을 때론 순박하게 또 때론 투박하게 그려내며 현대인의 지친 일상을 토닥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꽃처럼 웃을 날이 있겠지요] [그 여자네 집] [그래서 당신],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 대표 서정 시인으로 사랑받고 있죠.

 하지만, 그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때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쭉쭉 뻗은 고층 아파트는 ‘자연’, ‘서정’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서재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시인의 책상을 마주한 후에야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습니다. 시인이 시를 통해 이야기했던 공동체의 위대함,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 등 가치가 그의 책상 이곳저곳에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죠.
작가의 책상 상세이미지2
“저는 시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가족입니다.”

 책상을 본 첫인상은 ‘평범하다’였습니다. 책상 중앙엔 컴퓨터 한 대와 주변엔 빼곡하게 쌓인 책들, 글쓰기 흔적이 보이는 다양한 프린트물과 안경이 놓여 있습니다. 꼼꼼하게 살핀 끝에 결국 김용택 시인의 창작의 비밀, 시상(詩想)의 중심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빠짐없이 시인 가족들의 사진이나 가족들의 얼굴 그림이 있었거든요.

 책상 정면에는 젊은 시절 아내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책장 한 귀퉁이에는 딸과 아내가 소파를 등지고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진이 다른 한구석에는 청소년 시절의 모습을 한 딸아이의 모습이 있습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가족들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시인은 “저는 시인이기 전에 가족입니다.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들이죠.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시인은 대부분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냅니다. 집 안에 화초 하나, 그림 하나 놓을 때도 아내와 상의하고, 시를 쓴 후 제목을 정할 때는 가족회의를 할 정도입니다.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의 [정]은 치열한 가족회의를 낳았던 대표적인 문제작(?)이죠. 가족회의 때는 [미수금]이란 이름이 우세했다고 하는데, 시인은 “지금도 미련들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진메마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는 가족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장성해 도시로 나가니 자주 볼 수가 있어야죠. 이곳에 이사를 온 후 얼굴을 보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정말 잘한 결정이죠. 저에겐 시인보다는 아버지로서, 가족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몰려다니는 문우들이 없습니다. 술자리나, 모임을 즐기지 않죠.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냅니다. 뭐든 가족과 함께하는 게 즐겁습니다.”

1948년 섬진강 자락 진메마을에서 태어난 시인은 전주로 나오기 전까지 평생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가 경험한 자연과 삶을 글로 표현하다 보니 ‘섬진강 시인’이 된 거죠. 그에게 그를 시인으로, 문학가로 만들어준 고향과 자연보다 귀한 건 가족이었습니다.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가족과 공통체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시인이기 전에 가족입니다.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아들이죠.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공동체입니다.”

 시인은 가족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가족은 가장 귀한 공동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가족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이 말하는 공동체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공동체란 마음과 몸을 함께 움직이며 생명을 가꾸고 함께 나누는 활동입니다. 예전 농촌공동체가 건재했을 때는 상처나 아픔 등 시련이 생길 때 사람과 자연 속에서 치유할 수 있었죠. 하지만 산업화, 기계화, 물질주의 등으로 공동체의 삶이 일그러졌습니다. 경제화, 분단이데올로기 등 거대 담론 속에서 일상적인 가치가 무너진 것입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인은 공동체의 붕괴를 그 무엇보다 가슴 아파 했습니다. 공동체의 붕괴를 바라보는 시인의 절망은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의 시 [뜬모와 개망초꽃] 속 어린아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저 꽃이 개망초꽃이다. 엄마는 논에 가면서 어둔 얼굴로 말했다.
나 없어도 아빠랑 살 수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나는 몰랐다.
뜬 모를 때울 때 엄마는 떠났다. ([뜬모와 개망초] 중에서)


 시인은 “[뜬모와 개망초꽃]은 우리네 농촌 현실입니다. 다문화 가족과 가난한 아이. 상실과 체념에 익숙해진 현실이죠.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있는 서럽고 암울한 현실입니다. 이 시를 쓰고 나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눈물을 많이 흘렸죠”라며 마른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시인은 가족이라는 귀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전주로 나간 것처럼, 고향 마을의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짓고 있는 ‘김용택의 작은 학교’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작은 학교에서 이웃들을 만나 공동체의 문화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시인은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30여 년을 살았습니다. ‘김용택의 작은 학교’는 시인이자 선생님,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공동체로 보였습니다.
아이들 그림사진
“아이들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자연입니다.”


 ‘작은 학교’를 이야기하는 김용택 시인은 다시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들뜬 모습입니다. 김용택시인은 1982년 ‘섬진강’으로 등단한 후에도 변함없이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2008년 교단을 떠난 후 오랜만에 아이들과 마주하는 셈이죠. 그러고 보니 책상 주변과 작가의 작업실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삐뚤빼뚤한 이제 막 크레파스나 붓을 움켜쥐기 시작했을 어린아이들의 솜씨가 분명한 미술작품이었습니다.
책상 위 11시 방향엔 “하하하” “깔깔깔”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철봉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책상이 맞닿은 오른쪽 책장 위엔 선생님의 모습을 본딴 것 같은 그림이, 윗 선반엔 부직포로 만든 인형이 웃고 있네요. 책상 주변엔 화분 하나 없었지만 아이들이 그려준 나무와 꽃은 가득했습니다.

 “이 그림은 교단을 떠날 때 아이들이 선물해준 그림이에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죠. 참 좋고 따뜻하죠? 선생님으로 있을 때, 그리고 교단을 떠날 때 아이들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모든 작품을 전부 소중하게 갖고 있죠. 이젠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돼 있겠네요.
하하하.”

 시인은 교단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책상 구석구석엔 제자들의 마음을, 정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들은 시인에게 나무, 꽃보다 더 싱그러운 자연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가족이라는 ‘귀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도심으로 나왔지만, 그의 책상에는 고향과 자연을 떠올릴만한 많은 소품이 숨겨져 있습니다. 김용택 시인이 변함없이 자연과 서정을 이야기하는 시인인 이유입니다. 그러고 보니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은 시인이 도심에서 작업한 첫 시집입니다. 시집을 여는 첫 시 [이 하찮은 가치]가 떠올랐습니다.

……
지 금 이렇게 아내가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 나는
아무런 까닭 없이
남은 생과 하물며
지나온 삶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비밀도 없어졌다.
……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이 하찮은, 이유가 있을 리 없는
이 무한한 가치로
그리고 모자라지 않으니 남을 리 없는
그 많은 시간들을 새롭게 만들어준, 그리하여
모든 시간들이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사랑이 이렇게
외롭지 않게 되었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은 ‘섬진강 시인’, ‘자연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문명화된 세상과 욕망, 욕심의 시대에 대해 날카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아파트] 라는 시에서는 낯선 아파트 숲을 거닐고 있는 시인의 쓸쓸한 자화상을 담았고요. 그럼에도 시인은 [이 하찮은 가치] 라는 시를 시집 가장 앞에 놓았습니다. 암울한 현실, 욕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가족과 공통체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에필로그
[개그콘서트] 보는 시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김용택 시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려 봅니다.
찰칵. 문을 열어주는 시인의 뒤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죠.
KBS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멋쩍어 하는 웃음을 보이며 황급히 리모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일찍 자느라 못 봐서 다시보기를 하고 있다”며 허허 웃었습니다.
시인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 중간에도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살아 있네~” 등 유행어를 섞어가며 농담을 건넸습니다.
맞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개그콘서트] 열혈 팬이었습니다.
김용택 시인은 “[개그콘서트]는 내게 있어서 중요한 일과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끝없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즐거움이 있어야 하죠.
그래야 인생이 더 재미있어 지는 거 아닙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허허허!
문미영(동화작가·기자)
사진
김은경(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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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9-1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