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네 번째 이야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기획특집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그 후 이야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황순원에게 그의 제자와 후배 소설가 들이 바치는 「소나기」 오마주. 「소나기」의 감동과 여운을 이어갈 소년과 소녀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획특집 : 「소나기」 그 후 이야기 4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 이혜경
바위에서 해 뜨는 쪽으로 스물한 발짝. 숫자를 헤아리며 한 발짝씩 걸을 때마다 한 해씩 나이 먹는 듯했다. 스물하나, 지금 그의 나이가 딱 그랬다.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발이 멈춘 자리엔 누렇게 말라버린 풀과 청미래덩굴뿐. 눈 아래, 명절 앞둔 마을은 조용한 듯 분주하다. 밭 자락엔 수숫단이, 그루터기만 남은 논엔 볏단들이 쌓여 있다. 함지를 이고 들길을 걷는 사람, 공터에 모인 아이들. 아이들은 아마도 제기를 차고 있을 것이다.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집 감나무의 가지가 전에는 초가지붕의 끝자락에 초승달처럼 걸렸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더 가운데 쪽으로 옮겨진 것 같다. 하긴, 감나무가 가지를 여럿 뻗을 만한 시간이 흘렀다.
마른 풀 위에 앉아 점퍼 안 호주머니의 담뱃갑을 꺼낸다. 한 개비 집어 손바닥에 톡톡 친 다음 불을 붙인다. 공장에서 형들에게 배운 담배가, 어느새 인에 박혔다. 집에 들어선 건 점심 무렵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담배 생각이 났다. 바람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어른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어느새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어린애라 봉분도 못 올리고....... 사립문으로 들어선 아버지는 바짓가랑이를 툭툭 털며 말했다. 매캐한 기운이 콧구멍을 간질였다. 에취, 마당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재채기를 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사발을 들고 나왔다. 아버지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는 아버지에게서 땅바닥으로 눈길을 돌렸다.
단발머리도, 빛나서 더 커보이던 눈동자도 그대로인데 뭔가 부족했다. 간이 안 든 국물을 떠넣은 듯 밍밍했다. 제가 그린 그림을 골똘히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볼이 허전했다. 보조개! 그림을 그리던 돌의 뾰족한 부분을 찾아 치켜들었다. 점을 찍으려다 주춤했다. 어느 쪽이었지? 허수아비를 흔들어댈 때 소녀의 볼에 살포시 패었던 보조개. 거기에 새끼손가락을 찔러 보고 싶어서 얼굴이 달아올랐는데,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헷갈렸다. 오른쪽 볼을 먼저 돌로 꾹 눌렀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기껏 찍은 점을 손가락으로 흩트렸다. 아무래도 왼쪽이었던 것 같다. 쿡!
“뭐하냐? 밥 먹어야지.”
어머니가 부엌에서 상을 들고 나왔다.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가 꽁초를 툭, 마당으로 내던졌다. 기껏 공들인 그림을 손바닥으로 쓸어 버렸다.
언젠가 담배 피우는 어른이 되어 있을 거란 건 꿈도 못 꾸던 어린 날....... 흐르던 생각이 뚝 끊긴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땐 지금보다 키가 작았다. 자연히 걸음폭도 달랐을 것이다. 성큼성큼 바위로 다가간다. 보폭을 줄여서 천천히 걷는다. 하나, 둘, 셋.......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발밑에 밟히는 것 같다. 스물한 걸음에서 멈춘 채 내려다본다. 감나무 가지가 아까보다 지붕 가장자리로 조금 비낀 듯하다. 누르스름한 벌판에 까치밥으로 남긴 감의 주홍빛 무늬가 환하다. 두더지 지난 것처럼 발치가 아주 조금 도도록한 것도 같다. 거기라고 믿기로 한다. 산 어귀에서 구절초라도 몇 송이 뜯어올 것을. 연보랏빛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도라지꽃은 보랏빛, 언니가 좋아하던 꽃. 나리꽃은 빨간 빛, 내가 좋아하던 꽃. 노랫가락이 바람결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도라지꽃은 보랏빛, 그 애가 좋아하던 꽃. 오래전에 불렀던 동요를 고쳐 흥얼거리다 만다. 거긴 편안하지? 여긴......, 말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으며 깊은 숨을 쉰다.
동네에서 중학교에 간 사람은 세 명이었다. 아침 햇발이 아주 낮은 각도로 들판에 퍼질 무렵이면 마을 어귀에서 만나서 산을 넘었다. 산길은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바위 근처에 오면 소년은 짐짓 뭉그적거렸다. 두 동무에게 뒤처져서 살짝 손으로 바위를 쓸고 지나는 버릇이 들었다. 그날도 바위를 향해 손을 뻗치는데, 앞서 가던 동무가 돌아보며 말했다.
“니들 아냐? 몇 해 전 동네 떠난 윤 초시네, 그 서울 애......, 그 애가 묻힌 곳이 바로 이 근처라더라. 어쩐지, 혼자 여기를 지날 때면 으스스했어. 이상해서 엄마한테 말했더니 그래서 그럴 거라고.......”
“정말? 너도 그랬냐?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혼자 겁먹은 게 아니어서 기쁘다는 듯 다른 애가 맞장구쳤다. 동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소년도 덩달아 말했다. 나도! 소녀가 묻힌 곳에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그러느라 바위를 그냥 지나치며 호주머니 속에 든 조약돌만 만지작거렸다. “정말? 너도 그랬냐?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혼자 겁먹은 게 아니어서 기쁘다는 듯 다른 애가 맞장구쳤다. 동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소년도 덩달아 말했다. 나도! 소녀가 묻힌 곳에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그러느라 바위를 그냥 지나치며 호주머니 속에 든 조약돌만 만지작거렸다. 그날, 청소당번이라는 핑계로 동무들을 먼저 보냈다. 다른 때보다 걸음이 느려졌다. 청미래덩굴에 발목이 걸렸다. 다음엔 걷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깐 미안했어. 제 마음을 꺼내듯,
호주머니에서 조약돌을 꺼냈다.
봐, 이 조약돌! 나 여태 갖고 있잖아.
개울물에 닳아 동글납작하던 조약돌은
소년의 손에 길들어 반들거렸다.
이 바보!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소나기 삽화
아주 짧은 기간 마을에 머물렀을 뿐인데, 내려다보는 마을 곳곳에 소녀가 있었다. 마을의 유일한 기와집이었던 윤 초시네 집은 기왓골마다 돋은 풀이 말라서 빈집이라는 걸 드러냈다. 그 집을 사서 이사 온 사람은 두 해를 못 살고 떠나갔다. 새로 샀다는 사람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업구렁이가 담장 너머로 나가는 걸 보았다는 둥, 지신이 들떴다는 둥, 무성한 말이 빈집을 에워쌌다.
“거, 윤 초시 영감 내외도 오래 못 사실 것 같던데....... 정든 집 떠나는 뒷모습이 꼭 짚검불 한가지야.”
“터 잡고 살던 곳 떠나시려니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가뜩이나 상노인인데. 손자가 그리 됐다니 뒤를 안 봐줄 수도 없었을 테고, 참 안됐어요.”
“그러게, 그 손자라는 사람도 마음고생 어지간했던 모양이야. 얼굴이 누렇게 뜬 게, 보기 딱하더라고. 도시로 나가 제법 살다가 그리되었으니 더 힘들겠지. 게다가 고명딸까지 창졸간에 보냈으니. 상 치르랴, 이사하랴, 혼이 다 나간 사람 같더라니까.”
“윤 초시 손주며느리, 산에서 내려오는데 다리 힘이 다 풀렸는지 비칠거리던 걸요. 눈두덩이 두꺼비처럼 소복해져서게....... 하기야 하나뿐인 딸을 묻고 떠나려니 오죽했겠어요.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더니 어쩌면 그렇게.......”
마당가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부모의 이야기가 사립을 넘었다. 소년은 집으로 들어서는 대신 슬그머니 발길을 돌렸다. 마을 한복판, 기와집 앞마당 대추나무의 잎은 무심하게 반짝였다. 절반쯤 붉어진 대추 몇 알이 나무 아래 떨어져 있었다. 대추를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호두알이 든 호주머니는 대추알 덕분에 더 불룩해졌다.
소녀가 묻힌 곳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봉분이랄 수도 없는 흙무더기가 드러나 있었다. 윤 초시 손주며느리가 놓고 갔을까. 구절초 다발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연보랏빛 꽃잎은 초가을 볕에 끝동이 조금씩 말렸다. 그 옆에 호두 세 알을 나란히 놓고, 대추도 꺼냈다. 절을 해야 하나, 잠깐 망설였다. 명절에 성묘할 때면 산소 앞에 제수를 진설하고 나란히 서서 절했다. 돌아가신 조상에게나 절하는 거지,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에겐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서서 호두와 대추만 내려다보았다. 오랫동안 땅속에 있다가 파헤쳐진 흙에선 마르다 만 흙냄새가 은은히 풍겼다. 누군가 억센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제 등판에서 소녀의 스웨터로 황톳물이 옮아갈 때, 어쩐지 자기 마음도 한 조각 묻어간 듯했다.
구름 몇 점이 동동 뜬 하늘 가장자리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들판 곳곳의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저녁밥 지을 시간이었다. 그새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사립문 밖을 자주 내다보셨을 것만 같았다. 이젠 안 아프지? 잘 있어. 속으로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바위까지는 꼭 스물한 걸음이었다. 산을 내려오는데 땅거미가 스름스름 따라왔다. 어귀에서 올려다본 산엔 그새 그늘이 짙게 어렸다. 밤이면 산짐승 울음소리가 검은 들판에 길게 번졌다. 밤에 방에서 들어도 섬뜩했다. 무섭겠구나, 혼자 산 속에서 들으면 얼마나 더 무서울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벌써 하늘나라에 가 있을 거야. 잘못 한 거 없는 어린이인데다, 착하기까지 하니 벌써 하늘나라로 올라갔을 거야. 파르스름한 하늘가에 저녁별 한 점 반짝였다.
“왜, 속이 안 좋으냐?”
밥술 뜨는 속도가 한결 느려진 소년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중학교를 마친 뒤 소년은 삼촌의 소개로 도시의 공장에 취직했다. 사람도 집도 자동차도 많은 곳이었다. 사람들의 걸음마저 빨랐고, 부딪쳐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지나쳤다. 얼이 빠졌다. 기계 소리 때문에 목소리도 커졌다. 일을 마치면 파김치가 되어 공장 위의 천장 낮은 다락방에 쓰러지기 일쑤였다. 기계를 껐다는 걸 아는데도 귓전에선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월급봉투를 받은 주말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어묵이나 호떡을 사먹는 즐거움이 고된 나날에 반딧불처럼 반짝였다.
외출했던 동료가 팔에 책을 끼고 들어섰다.
“웬 책이냐?”
“응, 옆 가발공장 여자애들 있잖아, 전에 떡볶이 같이 먹은 애들. 오다가 보니 포장마차에서 이걸 보고 있더라.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깨끗이 보고 꼭 돌려달라더라.”
쉬는 날, 점심 먹고 식곤증에 널브러져 있던 동료를 표지의 예쁜 여자애가 일어나게 했다. 얼마나 많이 돌려보았는지, 표지 끝동이 나달거렸다.
“야, 예쁘다! 그런데 왜 이 동네엔 이런 예쁜 애가 없냐. 다들 메주 덩이 같구만.”
“인마, 예쁜 애들은 부모 잘 만나서 학교 다니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데서 일하거나.”
그 말을 한 동료는 휙, 짧은 휘파람을 뱉었다.
“왜, 내 눈엔 예쁜 애들만 많던데. 니들 눈엔 안 보이냐?”
화보를 넘기던 동료들이 옥신각신하는 소리에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았다. 흰 블라우스에 감색 점퍼스커트 차림의 여학생이 미소 짓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볼우물이며 분꽃 씨앗처럼 까맣게 영근 눈동자가 영락없는 그 서울 애였다. 살아 있다면 지금 꼭 이럴 것이다. 쌍둥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진 아래에 적힌 이름을 유심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윤 씨는 아니었다.
잡지에서 슬쩍 그 페이지를 찢어낼 때, 그 소리가 확성기를 거친 것처럼 크게 들렸다. 난생처음 한 도둑질이었다. 뜯긴 했지만, 감출 데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접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나 살짝 펼쳐 볼 수 있었다. 일을 하다가도 작업복 호주머니에 든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공장은 사람보다 기계가 더 중요한 곳이었다. 동료의 손가락을 자르고도 이내 기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갔다. 기계의 부속품 취급을 받는 동안 오그라들었던 마음은 그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아침볕 받 는 나팔꽃처럼 펴졌다. 그 얼굴 하얀 서울 애, 제 등에서 묻은 흙물을 그 애가 그토록 소중히 여겼다는 걸 관리자들이 알 리 없었다.
언젠가 연기처럼 달아난 조약돌을 대신하던 종이쪽은 접힌 자국이 닳았다. 옥상의 빨랫줄에서 작업복을 걷는데 우툴두툴한 게 만져졌다. 헤실헤실 풀린 채 뭉친 종이 부스러기가 호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다. 호주머니를 뒤집어 털어냈다. 말라버린 종이 부스러기는 시나브로 흩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오랜만에 온 집은 이전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그래도 도시에선 느끼지 못한 아늑함이 있었다. 약 먹은 병아리처럼 자꾸만 눕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쓰러져 잠들었다 일어났다. 두어 시간 눈을 붙였을 뿐인데, 아주 오랫동안 잠들었다 깨어난 듯했다. 어쩌면 한 생을 건넌 듯했다. 우리도 도시로 가기로 했다. 늬 아버지가 집 내놓으셨다. 상을 내가면서 어머니가 흘린 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산을 내려온다. 산 어귀, 연보랏빛 구절초가 쓸쓸하게 흔들린다.
작가 소개
이혜경
이혜경 (1960~)
소설가
소설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 『꽃그늘 아래』 『틈새』 『너 없는 그 자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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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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