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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후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사람의 별」

기획특집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그 후 이야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황순원에게 그의 제자와 후배 소설가 들이 바치는 소나기 오마주, 소나기의 감동과 여운을 이어갈 소년과 소녀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펼처진다.

기획특집: 소나기 그 후 이야기 2
사람의 별 - 박덕규
얼마가 지났을까.
엄마가 이마를 짚어보고, 아빠가 볼에 입을 맞추고 간 뒤.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잠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부시다. 마당에 널린 빨래들이 가지런하다. 파란 하늘 아래 논밭들이 싱싱한 기운으로 되살아났다. 무서운 흙탕물로 넘쳐나던 개울물도 이제 평온한 흐름을 되찾았다.
징검다리 건너 소년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개울 한가운데 선 소년은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쪼그리고 앉은 소년이 물을 움켜쥐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손을 흔들어 본다.
“어, 어!”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방바닥에 누운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누가 몸을 묶은 게 아니다. 기운이 빠져 나간 몸에서 내 의식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머나먼 별에서 희미한 기운이 내뿜어지는 게 보인다. 그 기운이 온 세상을 덮어 버렸다. 내 몸 위에 그림자 하나가 일렁거리는 게 느껴진다. 그림자의 실체는 하늘에 있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태양을 등 뒤에 두고 허공에서부터 천천히 선회하며 내릴 곳을 찾고 있다. 마을 밖을 어른거리고 집을 덮쳐오는 새의 그림자는 몸집보다 더 거대하다. 내 몸이 그걸 알고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본 새다.
“저 새를 돌려보내야 한다!”
나는 몸부림친다.
“저 새를 돌려보내야 한다!”
나는 힘차게, 눈까풀을 밀어냈다.
그동안 몇 차례 고비는 있었지만 그때마다 잘 넘어갔다.
처음에 돌멩이를 주워 날릴 때, 손에 맞춤하게 쥐어져 오는 쾌감에 팔매질에 힘이 들어갔다. 하마터면 소년의 뒤통수를 맞힐 뻔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 바보!”
소년은 용케 이튿날에도 개울로 나와 주었다. 소년은 내가 묻는 걸 단번에 대답했다. 잘 알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어눌한 대로 뭔가 자기 진심을 다 드러내고 싶다는 느낌이 재미있었다.
이곳은 우리가 오래 전 잃어버린 세상 같았다.
하늘과 구름, 햇빛과 바람, 물과 돌…….
내 어렴풋한 기억 속에
이런 것들은 모두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여기, 익숙해 보이는 이런 것들이
실은 그냥 그렇지 않았다.
그 속에 어떤 것들이 있었다.
나는 물속에 손을 넣었다. 거기 뭔가 살아 움직였다.
그 살아 있는 것들을 만지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라 했다.
소나기 삽화
피라미…….
송사리…….
소금쟁이…….
나는 이런 생물들의 이름을 되뇌어 봤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이 제 이름을 들은 듯 내 손등을 간질이곤 했다.
소년은 그러는 내 모습을 신기해했다. 내 가늘고 흰 손에도 눈길을 주었다. 나는 불쑥 돌멩이를 던지고 싶어 주먹을 쥐었다. 그때도 위기라면 위기였다.
“이게 뭐지?”
나는 얼른 손을 펴 보였다.
“비단조개.”
여러 번 외운 거지만 내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비, 단, 이라는 말이 물속에 사는 생물에 쓰이는 말이라는 걸 금세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게 또 조개라는 말과 합쳐져 그렇게 어감이 좋아질지 몰랐다. 이름을 불러주면 이름에 맞는 빛깔과 향기가 생기는 거라고 어디선가 배운 듯도 했다. 어쨌거나 말 둘이 하나가 되어 희한한 말맛이 났다.
소년하고 어쩌다 함께 벌판을 내달리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함께 다녀도 되는 건지, 좀 이른 게 아닌가, 매일 일기를 쓰며 되물었다. 아무리 물어도, 안 된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답을 나 스스로 일부러 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대신 스스로 감정을 미루는 연습은 자꾸 했다. 소년 얼굴을 그리다 지우고 그리다 지우고 했다. 며칠 개울에 나가지 않아 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개울에 나가면 소년을 만났고, 나는 묻고 소년은 답하고 그랬다.
“이건 뭐지?”
“마타리꽃.”
이상한 냄새가 나는 꽃이었다.
“그건?”
“도라지꽃!”
두 번째 위기는 여기였다. 나는 그 보라색이 싫었다. 그래서 갑자기 그걸 팽개치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내 아득한 기억 속에 그 색깔은 아름다운 것들이 마지막 사라질 때 남긴 어떤 기운 같았다. 그때 세상은 뿌연 안개 속에서 높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크고 작은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내 표정을 본 소년이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나는 미안했지만, 그냥 뿌리치듯 돌아서서 뛰고 말았다. 요행히 소년이 곧 뒤따라 왔다. 나는 안도했다. 소년은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미안해졌다. 우리는 꽃들 사이, 풀들 사이,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 사이를 뛰어다녔다.
위기는 그렇게 넘어갔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실은 소년을 만나고부터 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소년은 꽃을 뿌리친 나를 따라왔다. 이곳 소년들은 나처럼 가는 몸과 하얀 피부를 지닌 소녀를 선망하는 듯했다. 소년은 그런 중에도 더 순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소년과 함께 벌판을 달려도 좋은가. 정말 좋은가.
“아!” 나는 비탈길에서 미끄러진다. 나무를 붙들고 간신히 몸을 지탱한 나를 소년이 잡아 올린다. 그 나무가 칡덩굴이라 했다. 소년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오더니 내 무릎에 난 상처에 액을 발라준다. 송진이라 했다. 소년은 아는 게 참 많았다.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벼슬하는 선비 가문의 가난한 후손 집에서 태어나 이 마을에 와 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 이 나라 이 민족이 처한 현실도 잘 몰랐다. 그게 당연했다. 나는 지구인이 아니었으니까.
시골에 오고 며칠 뒤 나는 심하게 앓았다. 아빠 엄마가 일하러 나간 그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새가 마당에 내려왔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고, 새가 내 머리맡에 와서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 나는 먼 별에서 살다 지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가 살던 별은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다 자연의 세계를 모두 잃어버렸다. 식물과 동물이 죽어갔다. 그러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별의 주인들도 종족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별의 주인들은 새로 태어날 새 세계를 찾아내야 했다. 그들은 우주 곳곳으로 탐사선을 보냈다. 나는 그런 탐사단의 일원이었고, 내 탐사 지역은 지구였다. 나는 응축된 유전자로 사람 몸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는 지구에서 살아 어른이 돼야 했다. 어떤 조건도 버틸 수 있어야 했다. 어른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내 별의 유전자가 알 수 없는 성질로 불쑥불쑥 드러났다. 그 때문에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그런 것들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지 몰랐다. 가장 큰 문제는 소년이었다. 소년을 대하는 내 마음이었다. 자꾸 그려지고 만나면 설레고 기쁘고 그러다 싫고 하는 내 감정이었다. 그날만 해도 아침에 분홍 스웨터와 남색 스커트를 입을 때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끼어드는지 몰랐다. 이 감정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고 힘겨웠다. 아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괴롭고 힘겨운 것도 아니었다. 아, 나는 놀랍게도 지구의 한 소녀로 살아 있었다. 나는 설레고 외롭고,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지구의 어린 소녀였다. 이 시간을 견디면, 이 시간을 견뎌 어른이 되면, 내 별의 주인들은 이제 하나둘 이 지구로 와서 지구인들과 어울려 살며 미래를 열 수 있게 된다.
지구인들은 느낌과 실제, 생각과 현실 이 둘들 사이에 무엇을 진정으로 힘겨워 하는 걸까.
나는 적어도 지구인들이 힘겨워한다는 것 중에 느낌, 생각 등의 총체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참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듯하다. 이 사랑의 시간을 잘 견뎌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드디어 지구인으로 살아내는 것이고, 이렇게 어른이 되면 우리 별 동포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임무 수행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내 몸은 그렇지 않다. 지구인들의 삶은 그렇게 손쉬운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느낌, 생각의 세계 못지않게 실제와 현실의 세계가 있었다.
그날 산을 내려오는데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 보랏빛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지구의 한 귀퉁이 순박한 소년이 살고 있는 시골 벌판은 내 별에서 많은 생명이 사라져 갈 때와 같이 보랏빛이었다. 곧이어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고, 빗줄기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소년은 벌판 한가운데 둥근 지붕 집을 가리켰다. 원두막이라 했다. 비가 새는 원두막에 올라 오돌오돌 떨었다. 소년이 겉옷을 벗어 내게 덮어 주었다. 소년은 다시 아래로 뛰어 내려가 수숫단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 혼자 비를 피하기 미안해 소년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우리는 좁은 수숫단 안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소년의 몸에서 무럭무럭 김이 솟았다.
소나기는 멎었으나 집으로 가는 도랑에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소년이 업히라고 등을 내밀었고 나는 그냥 자연스레 소년 등에 몸을 얹었다. 어색해서 몸을 딱 붙이지 못했지만, 구수했다. 도랑을 건너가던 소년이 몸이 기우뚱할 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소년의 목에 매달렸다. 등에 아예 착 달라붙었다. 거기서 잠깐 졸았던 듯도 싶다. 위험한 별에서 살다 유전자로 응축돼 지구인으로 다시 살아온 오랜 동안 그렇게 평온한 시간이 언제 있었던가 싶다.
며칠 졸음이 줄어들지 않았다. 엄마가 타온 감기약을 먹고 나니 더 그랬다. 아빠는 맥없이 혀만 찼다. 나는 소년 등에 여전히 업혀 있지 않나 싶게 좀 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살던 별과 지구를 오고가는 혼돈에 빠지곤 했다. 온몸에서 열이 났다.
“서툴러서 일을 그르쳤구나.”
큰 새가 속삭였다.
“아니에요.”
나는 도리질쳤다.
“이걸 보렴.”
큰 새는 눈에 익은 스웨터를 펼쳐 보였다. 내 분홍 옷이었다. 비 맞은 옷을 엄마가 빨래해 마당에 널어놓은 것이다. 나는 새를 올려다봤다. 새는 분홍 옷에 묻은 얼룩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년 등에 업혔을 때 물이 밴 자국이다. 그게 빨래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네 임무!”
큰 새는 쇳소리를 냈다.
“아.”
나는 절망했다. 말문이 막혔다.
내가 살던 별에서는 이런 흔적을 남기는 관계는 있을 수 없다. 내가 지구인으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바로 그거였다. 드러내야 할지 감춰야 할지 모르는 미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바로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어서 그 별은 이제 생명을 후손에 이어가지 못하는 멸망의 별이 되어간 것이다.
“사랑.”
나는 사랑, 이라는 감정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드러내지도 감출 수도 없는, 분명하지 않아도 소중한 그런 감정, 이런 감정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새는 단호했다. 날개를 펼쳐 내 몸을 실으려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죽음만 남은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한다. 새는 내 분홍 스웨터를 집어 던지려 했다. 나는 소리쳤다.

“이 옷만은 가져갈게요!”
작가 소개
박덕규
박덕규 (1958~)
시인 · 소설가 · 평론가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함께 있어도 외로움에 떠는 당신들』 , 평론집 『문학공간과 글로컬리즘』 등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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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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