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가을하다」

기획특집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그 후 이야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황순원에게 그의 제자와 후배 소설가 들이 바치는 소나기 오마주, 소나기의 감동과 여운을 이어갈 소년과 소녀의 다섯 가지 이야기가 펼처진다.

기획특집: 소나기 그 후 이야기 1
가을하다 - 전상국
빛 하늘, 오늘도 티 없이 쩡쩡 가을하다. 이 년 전 그 하늘처럼.
소녀가 갈대숲 한가운데 갈대꽃으로 피어 있다. 현수는 우우 떼 지어 우거진 갈대꽃을 꺾는다.
“저 산 밑에 있는 갈대꽃은 이것보다 꽃 색깔이 더 흰 것 같아.”
현수가 건넨 갈대꽃 다발을 받아들며 소녀가 말한다. 소녀의 눈길이 산자락 햇살 자오록한 억새밭에 가 있다.
‘“저건 갈대가 아니라 억새야.”
‘”같아 보이는데 갈대랑 억새는 어떻게 달라?”
“이 갈대보다 저기 있는 억새꽃이 더 희게 보인다고 말했잖아. 그거야, 갈대꽃은 이렇게 갈색으로 좀 엉성하지만 억새는 꽃이 은색 아니면 흰색이라 이것보다 더 가을해 보이는 거야.”
현수는 중학교에 들어간 뒤 가정방문을 왔던 담임선생님한테 갈대와 억새가 어떻게 다른지를 들어서 알고 있다. “갈대와 억새가 다른 게 또 있어. 갈대는 마디가 있고 억새는 그게 없다는 거. 그리고 억새 보다는 갈대 키가 이만큼 더 크게 자라.”
현수는 발돋움으로 키를 부썩 키운 뒤 머리 위로 손까지 높이 쳐들어보였다.
ㆅ ㆅ ㆅ ㆅ…….
소녀의 웃음소리가 가을 하늘에 탱글탱글 굴러 퍼진다.
“나는 오빠보다 키가 작으니까 억새 할래. 오빠는 갈대고.”
현수는 억새밭의 억새꽃으로 눈부시게 피어난 소녀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를 잠깐 생각한다. 이년 전 그때 소녀의 이름을 알아두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현수의 입속에 낱말 하나가 고인다. 가을하다. 가정방문을 왔던 담임선생님이 마을 앞산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아, 가을하구나!
가을. 그 가을 날 소나기 맞은 것 때문에 소녀가 많이 아팠다. 그리고 그 가을을 마지막으로 소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
가을아, 가을하다.
그러나 지금 소녀는 자줏빛 칡꽃을
한 아름 안고 현수 옆에 서 있다.
소녀의 단발머리 목덜미가 멀끔하니 가을하다.
그때처럼 여전히 분홍 스웨터 차림이다.
현수는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의
얼룩진 붉은 무늬를 찾는다.
그러나 현수는 분홍 스웨터가 아닌,
가정방문을 왔던 담임선생님의
흰색 블라우스를 생각하고 있다.
그때 선생님의 흰색 블우스 앞가슴에 달린
푸른 색 브로치가 매우 가을했다.
소나기 삽화
“현수 오빠, 오늘도 소나기가 왔음 좋겠다.”
“소나기가 와도 너는 안 올 거잖아.”
현수의 목소리가 불퉁스럽다.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왔을 때도 소나기는 오지 않았다. 현수는 개울둑을 내려가 개울 폭이 넓은 물가 자갈밭에서 되도록 얇고 둥근 조약돌을 주워 든다.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하얀 조약돌 말고도 지금 현수의 책가방 속 에는 스무 개도 넘는 조약돌이 들어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무심코 주워 집에 숨겨놨던 것들이다. 오늘은 그 조약돌 모두를 버릴 생각으로 가방에 넣고 나온 것이다.
“가을아, 이거 봐라.” 현수는 방금 물가 자갈밭에서 주운 조약돌을 수면에 스치듯 힘껏 물수제비를 뜬다. 하나 둘 셋 넷……. ㆄㆄ,ㆄ,ㆄㆄ…ㆄ…… 조약돌은 수면을 여섯 번이나 튀긴 뒤 물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현수는 서둘러 다시 개울둑으로 올라선다.
“우와!”
소녀의 탄성이다. 소녀가 들꽃 사이로 뛰어다닌다.
“오빠, 나도 이제 이 꽃 이름을 안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
현수는 길가 묵밭에 피어 있는 쑥부쟁이를 꺾는다. 그리고 산비탈까지 올라가 쑥부쟁이처럼 짙은 연보라빛 벌개미취도, 개울가 둑에 샛노랗게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산국도 꺾었다.
“이건 쑥부쟁이, 이건 개미취야. 그리고 이건 산국, 사람들은 이것들을 그냥 들국화라고 부른단다.”
현수는 가정방문을 왔던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현수는 선생님이 들국화의 여왕이라고 말한 구절초란 들꽃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학교를 오가는 이십 리 산길에 띄엄띄엄 피어있는 구절초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그 꽃을 혼자 보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구절초는 정말 가을하다! 낱말은 그 안에 품고 있는 뜻이 넓고 깊을수록 잘 옮는다.
“우와, 이 냄새, 정말 가을하다.”
소녀는 자신의 가슴에 안긴 쑥부쟁이와 개미취 그리고 산국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오빠, 저기 노란 꽃, 저것도 산국이야?”
현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기다린다. 가을이도 저 노란 꽃의 이름을 알고 있다.
“아, 맞다. 오빠가 저건 마타리라고 했지. 마타리, 이름이 참 예쁘다.”
마타리, 현수는 마타리를 보면 선생님한테 얘기 들은 마타하리란 이름의 미녀 스파이 생각이 났다. 젊은 나이에 프랑스군에 잡혀 총살당했다는, 독일과 프랑스를 오간 이중 스파이 마타하리. 현수는 건너편 강둑의 마타리를 보면서 그날 선생님한테 하려다 만 질문을 생각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마타하리, 그 스파이도 선생님처럼 예뻤어요?”
현수는 머릿속의 가을한 생각을 지우기라고 하듯 큰 소리로 소녀를 부른다.
“가을아, ……아…….”
어느 소리든 산울림은 애틋하다.
현수는 누렇게 익어 꼬투리가 툭툭 터지기 시작한 콩밭 한가운데 서 있는 허수아비를 바라본다. 봄날 아버지가 나무 작대기로 밭에 구멍을 뚫으면 자신은 그 속에 두 서너 개의 콩을 넣고 흙을 덮었다. 다음 날 와 보면 땅속의 콩알이 없다. 산비둘기들이 나뭇가지에 숨어 콩 심은 걸 잘 봐뒀다가 새벽에 내려와 파먹는다고 했다. 콩 싹이 나오고 줄기에 잎이 돋기 시작하면 산에서 고라니가 내려와 농사를 망쳐 놓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나 짐승의 피해를 막는 방법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는 것이다.
“선생님, 저 허수아비 아들 이름이 뭐게요?”
그날 현수는 가정방문을 온 담임선생님한테 이런 우스개 말놀이 질문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들꽃 이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 고맙고 재미있어 그런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현수! ……ㆅ ㆅ ㆅ ㆅ.”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닌 소녀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소녀와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 몹시 혼란스럽다. 그 눈치를 챈 것인가, 소녀의 목소리다.

“오빠, 왜 자꾸 선생님 생각만 해?”
“으응, 그건 선생님 생각이 가을이 생각이니까.”
“ㆅ ㆅ, 오빠, 그 말 참 가을하다.”
현수는 햇살 속에 반짝이는 개울물을 내려다보며 담임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왔던 날을 생각한다. 짙은 감색 스커트에 흰색 블라 우스를 받쳐서 입은 선생님이 마을에 나타나자 갑자기 마을 전체가 환해졌다. 마을 꼬마 아이들이 누런 콧물을 훌쩍이며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문호리에서 양평읍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현수 한 사람뿐이라 현수 담임선생님이 마을에 나타난 것은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큰 사건이었다. 가지울 입구 참외와 수박을 심었던 덕쇠 할아버지네 밭이 보인다. 현수는 올 여름에도 마을 아이들과 참외서리를 했다. 그러나 덕쇠 할아버지가 몸이 아파 원두막을 지키지 않아 참외서리는 처음부터 재미가 없었다. 덕쇠 할아버지네는 호두나무도 많이 심어 서울 동대문시장 사람들이 호두 사러왔다. 현수는 이년 전 소녀에게 주기 위해 호두를 따던 생각을 하며 호두나무 밭을 지나간다. 길가 여기저기에 호두 껍데기가 널려 있다. 다람쥐는 나무 열매 중에서 호두를 가장 좋아해 호두가 누렇게 익는 초가을이면 다람쥐들이 많이 바쁘다. 나무에서 직접 호두를 따 탁탁탁 이빨로 깨먹는다.
“가을아, 다람쥐와 호두 얘기 해줄까?”
“다람쥐와 호두 얘기, 그것두 선생님이 해준 거야?”
“아, 아니, 우리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기야.”
다람쥐는 겨울 양식을 위해 호두를 산기슭 여기저기에 묻어 저장한다. 호두를 땅에 묻을 때면 다람쥐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저렇게 생긴 구름 아래에다 호두를 묻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은 수시로 모양이 바뀌거나 사라져버린다.
“그게 뭔 얘긴지 알겠느냐? 짐승은 자기 먹은 만큼 종자를 퍼뜨린다는 그런 뜻이니라.”
사람들이 심지 않았는데도 산 여기저기에 밤나무며 호두나무가 자라는 이유를 일깨워주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현수는 하늘을 쳐다본다. 아까까지 없던 구름이 하늘에 빠르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소나기라도 내리려는 것인가, 바람기마저 가을하다. 현수는 밭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는 호두열매를 발로 툭 걷어찬다. 호두 껍데기가 사람 뇌처럼 생겨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호두를 열심히 까먹던 생각이 난 것이다.
“가을아, 넌 머리가 좋을 것 같아.”
“오빠가 나 머리 좋은 걸 어떻게 알아?”
“알아. 네 눈을 보면 그게 다 보여.”
현수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보고 싶은 것이 보인다. 감은 눈 속에 소녀의 가을 가을한 눈이 보인다. 현수는 메밀밭을 지나가고 있다. 주로 산비탈 거친 밭에 많이 심는 메밀은 여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두는데 열매가 모가 져 원래 이름이 모밀이었다고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숙제를 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을 다음 시간까지 읽어오라고.
“오빠, 그 소설 읽어봤어?”
“아니, 아직.”
“그거 슬픈 얘기는 아닐 거야. 꽃이 폈을 때는 슬픈 일이 안 일어날 거니까.”
현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아름다운 꽃이 폈을 때도 슬픈 일이 일어난다. 개울가 갈꽃은 물론 산기슭 산국이 유난히 흐드러지게 핀 그날 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던 이야기를 들었다.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현수는 메밀밭에 들어가지 않고도 메밀꽃 냄새를 맡는다. 개울물이 불어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널 때 소녀에게서 나던 냄새처럼 메밀꽃 향기 가을하다. 현수는 호두밭 언저리 무밭에서 무 하나를 뽑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아, 맵고 지려.”
무를 뽑지도 않았는데 소녀가 진저리를 친다.
이 년 전 수숫단이 있던 밭에 아무것도 없다. 지난 해 겨울에 수숫단 속에서 사람 하나가 죽은 뒤 수수농사를 그만뒀기 때문이다. 마을에 가끔 나타나 집집을 돌며 ‘여기 영식이 왔나유?’ 이렇게 묻고 다니던 실성한 여자가 어느 날 수숫단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어떤 남자한테 버림을 받아 그렇게 미쳤다고 했다. 자기를 버린 영식이란 그 남자를 잊지 못해 그처럼 마을을 떠돌다 죽었다는 얘기였다.
“그 여자 진짜 바보다. 왜 미쳐, 영식이만 사람인가?”
현수가 혼잣소리로 중얼거린다. 곧바로 소녀의 목소리다.
“치, 오빠 웃긴다. 그럼 다른 사람이 영식이가 될 수 있다는 거야?”
현수가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영원한 건 없단다.”
음머어-
어디선가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산비탈에 송아지 아닌 어미암소가 가을 풀을 뜯고 있다. 현수는 송아지가 있어도 이제 다시는 송아지 등에 오르지 않겠다고 마음에 다짐한다. 이년 전 소녀 앞에서 송아지 등에 올라탔던 생각이 난다. 무서웠다. 위에 탄 사람을 떼어버리려고 몸부림하며 겅중겅중 뛰던 송아지 위에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현수는 어젯밤에도 송아지 등에 올라탄 꿈을 꿨다. 꿈을 꾸면서도 이게 꿈이라는 생각을 했다. 꿈을 깨지 말아야 소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쇠등에 올라탔다. 아직 코뚜레도 뚫지 않은 어린 송아지라 사람이 자기 등에 올라탄 것이 무섭다는 듯 날뛰면서 맴을 돌았다. 어느 순간 송아지 등에 올라탄 것이 자기가 아니라 분홍 스웨터를 입은 소녀였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쇠등에 올라탄 것이 소녀가 아니라 담임선생님이다. 선생님이 올라탄 송아지가 갑자기 커다란 황소가 됐다. 황소는 선생님이 등에 올라탄 것도 아랑곳없이 쉬엄쉬엄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현수도 황소처럼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야 소가 된다고 했다. 소가 돼야 선생님을 등에 태울 수 있다. 선생님, 제 등에 타세요. 선생님이 등에 올라타야 소나기로 불어난 개울물을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 님은 이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열 마리도 넘는 황소들이 선생님 앞에 나타나 등을 들이밀었다. 선생님이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슬펐다. 슬프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줌이 마려웠다. 아니 오줌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몸속에서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가끔 어른들만 보는 영화를 볼 때 몸 어딘가가 근지러운 그런 증세의 오줌 마려움. 다른 황소들처럼 땅바닥에 오줌을 솰솰 누고 싶었다. 그러나 오줌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다가 잠을 깼다. 잠을 깨자 고추가 탱탱 곤두서 있었다.
드디어 윤초시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가기 전 살던 서당골로 올라가는 길목의 징검다리까지 왔다. 현수는 그날 소녀가 앉았던 그 징검다리 돌 위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현수는 가방 속에서 수제비처럼 둥글고 납작한 조약돌을 꺼내 징검다리 돌위 에 올려놓는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스물다섯 개의 고마고마한 조약돌이 징검다리 돌 위에 놓였다. 바로 이곳 징검다리를 건널 때 소녀 생각을 하며 물속에서 건져 낸 것들이다.
“가을아, 울 엄마가 많이 아파.”
현수는 한참 뜸을 들였다가 다시 중얼거린다.
“울 엄마가 아픈 건 내가 강돌을 너무 많이 집에 주워왔기 때문이래. 그래서 오늘은…”
현수가 징검다리 돌 위에 놓인 스무 개도 넘는 조약돌 하나하나를 주워 물수제비를 뜬다. ㆄㆄㆄㆄㆄ ㅸㅸ……, 어떤 조약돌은 열 두 개의 물수제비를 뜨면서 사라지고 어떤 것은 단 한 번으로 끝이다. ㆄ, 사라진다. 스무 개도 넘는 조약돌이 개울물에 모습을 감췄다. 가을하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 콩밭의 허수아비로 서 있던 가을이도, 갈대밭에 갈대꽃으로 하얗게 웃고 있던 오학년 단발머리 소녀도, 하늘 닮은 자줏빛 쑥부쟁이와 개미취로 핀 분홍 스웨터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ㆄㆄㆄ ㆅ ㆅ. 물제비로 웃어대던 조약돌도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오빠, 그런데 왜 조약돌 한 개는 안 버리는 거야?”
가을이다! 현수 주머니 속 하얀 조약돌이 ‘뚝딱, 가을아!’ 그런 주문이라도 왼 것인가. 징검다리 그 자리에 소녀가 앉아있다.
현수는 주머니 속 그 하얀 조약돌을 손에 쥔 채 꺼내지 않는다. 하얀 조약돌을 집에 들이지 않고 감춰 둘 집 앞 느티나무 고목에 구멍 하나를 봐뒀던 것이다.
‘오빠, 그 조약돌도 버려야 해!’
현수의 주머니 속 조약돌은 오학년 단발머리 소녀의 목소리만 기억하고 있다.
‘안 버려. 이건 네가 나한테 던진 거라 절대 안 버린다고!’
양평중학교 2학년 현수의 목소리가 씩씩하다.
그날 소나기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징검다리 사이사이로 빠져 흐르는 물소리가 꽤나 가을하다.
작가 소개
전상국
전상국 (1940~)
소설가 ·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 김유정문학촌장
소설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남이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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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7-09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