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과 2012년 여름, 나는 그곳에 당도했다. 여행 중이었고, 그곳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미슐랭 판 아틀라스 유럽 지도 위에 정삼각형 또는 역삼각형 형태의 동선으로 진행되는 열흘 또는 보름간의 여정 중 한 곳이었다. 첫 번째 방문은, 파리에서 출발하여 부르고뉴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리옹에서 동쪽 알프스 쪽으로 방향을 틀어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북쪽으로 베리덩과 렝스를 지나 동북쪽 국경지대로 나아가는 길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파리에서 동북쪽 벨기에 국경 쪽으로 직행해서 샤를루아와 나뮈르, 브뤼셀을 거쳐 도버해협 연안의 앙베르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두 번 모두 샹파뉴 지방의 거대한 황금빛 들판과 검푸른 아르덴 숲을 지나가는 행로였다. 샴페인의 명가(名家) 모엣-샹동의 산지(産地)인 에페르네이(Epernay)라는 푯말을 지나기 훨씬 전부터 사방은 완만한 구릉으로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고, 구릉과 구릉 사이 한 줄기 노래자락처럼 새겨진 오솔길이 눈에 띄곤 했다. 나는 달리는 자동차의 창문을 활짝 열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드넓은 구릉과 수줍은 듯 사라지는 오솔길과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야에서 흘려보내며 휘파람을 불 듯 입술을 모았다. 입술 사이로 귀에 익은 시편들이 흘러나왔다.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 아르튀르 랭보, 「나의 방랑 생활」, 김현 옮김
렝스(Reims) 전후, 하늘과 들의 경계가 아득하게 멀리 펼쳐진 샹파뉴 지방의 지평선과 그 사이 경쾌하게 피어오른 뭉게구름들을 이리저리 감상하다가 어느 순간 깜짝 놀랐다.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입가에 흘러나와 중얼거리고 있는 시들을 품었던 날들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리와 있는 것일까.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흘려보낸 것일까. 아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돌아보기 아득했다.
오 계절이여, 오 성(城)이여!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나는 그 어떤 것도 피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경이로운 연구를 했다.
- 아르튀르 랭보, 「굶주림」,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두 해에 걸쳐 찾아간 그곳은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내로 불리는 세기의 방랑자, 아르튀르 랭보가 태어나고, 영원히 묻혀 있는 샤를르빌-메지에르(Charleville-Mezieres). 이곳은 파리 동북쪽으로 239km 떨어져 있고, 벨기에 국경과는 10km, 벨기에 수도인 브뤼셀과는 150km 떨어져 파리보다 오히려 가까웠다. 첫 방문 때에는 샹파뉴 지방의 주도인 렝스에서 여장을 푼 뒤, 다음 날 아침 일찍 샤를르빌-메지에르로 향했다. 랭보의 고향 마을인 샤를르빌-메지에르가 아닌 렝스에서 묵은 이유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출발한 그날의 여정이 멀었던 것이 이유였지만, 결정적으로는 그곳에 대성당이 있기 때문이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노르망디 루앙의 대성당, 아미엥의 대성당, 샤르트르의 대성당,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 투르의 대성당 등, 나는 탑이나 등대, 다리만큼이나 대성당의 존재성을 기려왔다. 렝스의 지붕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대성당 옆 작은 호텔 5층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샤를르빌-메지에르로 출발했다.
△ 샤를르빌-메지에르로 가는 길. 샹퍄뉴의 산지.
한여름 아침 공기는 축축했고 하늘은 금세 비라도 쏟아질 듯 온통 잿빛이었다. 샹파뉴 지방에서 아르덴 지방으로 진입하자 국경지대 특유의 육중하고 무뚝뚝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렝스에 이르는 동안 경고처럼 수시로 길에서 마주쳤던 전투지 푯말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 세계사 교과서에서 눈에 익혔던 알자스로렌의 지명들이었다. 그 길은 아르튀르 랭보의 아버지를 이끈 길이기도 했다. 아르튀르가 태어나던 1854년은 보불전쟁이 한창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국경지대에 주둔 중인 군대의 대위로 아르덴 지방과 멀지 않은 프랑슈-콩테 지방의 돌(Doll) 출신이었다. 여름밤이면 군악대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역 앞 공원에서 공연을 펼쳤다. 프레데릭 랭보(Frederic Rimbaud) 대위는 구경나온 비탈리 퀴이프(Vitalie Cuif)라는 마을 처녀와 사랑에 빠졌다. 이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가져,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고, 이어 딸 둘을 낳았다. 그러나 전시 중인 군인의 신분이었던 랭보 대위는 가정다운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평생 집 밖에서 떠도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문학사는 아비 없이 자라야 했던 가난한 어린 천재들을 문학으로 이끈 스승이 있었음을 명시하고 있는데, 알베르 카뮈에게는 장 그르니에가, 아르튀르 랭보에게는 조르주 이장바르 선생이 그들이다.
△ 샤를르빌-메지에르역. 랭보의 부모님이 첫 만남을 가진 곳.
△ 샤를르빌-메지에르에 있는 랭보 서점
선생님.
행복하시겠습니다. 선생님은 샤를르빌에 계시지 않으니까요!
제가 나고 자란 이 도시는 다른 어떤 소도시보다도 훨씬 황당한 곳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저는 아무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메지에르 옆에 딱 붙어 가지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작태들로만 무성합니다. 지금 이 거리에는 이삼백 명의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며, 이 기특한 도시 주민들은 적에 포위된 메츠나 스트라스부르의 주민 못지않게, 겉만 번지레한 기사(騎士)처럼 차리고 온통 침을 튀기며 지껄이고들 있습니다.(중략) ‘멋대로 뒤뚱거려라.’ 이것이 제 주의입니다. 모르는 나라에 있는 듯합니다.
- 아르튀르 랭보, 이장바르에게 보낸 1870년 8월 25일 편지
(앙리 마타라소 피에르 프티피스, 『아르튀르 랭보』, 아셰트출판사, 파리)
편지에서 보듯 중학생 시절부터 랭보는 샤를르빌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했다. 샤를르빌-메지에르는 랭보 시대에는 샤를르빌과 메지에르가 별개였고, 1996년 행정도시로 통합이 되었다. 아르덴 지방의 주도이지만 소읍의 규모로 2011년 현재 이곳에는 5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시청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보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11시 경. 도심을 오가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창마다 덧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전시 중 군대가 한바탕 쓸고 간 것처럼 정적마저 엄습했다. 마리오네트 축제의 도시로 알려진 이곳의 번화가로 이어지는 골목에 만국기가 펄럭이지 않은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태극기도 눈에 띄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르자 랭보의 이름을 딴 건물이 있었다. 복합건물의 외양인데, 살펴보니 일종의 서점이었다. 들어가 도시 안내를 받아볼까 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랭보 서점 사거리에서 레퓌블리크 거리와 나폴레옹 거리 중 어느 쪽을 걸을까 방향을 보다가 나폴레옹 거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세 걸음 떼자 마침 서점 건물과 연달아 지어진 12번지 건물 외벽에 랭보가 태어났다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시인이자 탐험자, 1854년 10월 20일 이 집에서 태어나다."
시인이자 탐험가. 생가에 새겨진 간단한 생의 이력답게 랭보는 16살부터 시를 무기로 세상에 나아가고자 꿈을 꾸었다. 나폴레옹 거리를 주욱 걸어 나가자 파리의 마레 지구에 있는 보주 광장에 이른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흡사한 건물과 광장이 나왔다. 적벽돌과 석재로 건축한 르네상스풍의 저택이 넓은 사면 광장을 중심으로 서 있는 것이 일품인데, 파리의 보주 광장과 쌍을 이루고 있었다. 광장에서 벗어나자 뫼즈강변에 랭보 박물관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원래 물방앗간이었던 곳에 세워진 건물로 뒤칼 궁전과 광장이 건축될 때 함께 구성된 것이었다. 랭보에게 바쳐져 개장한 이 박물관에는 랭보의 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절창 「모음들」의 친필이었다.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터질 듯판 파리들의 검은 코르셋
어둠의 灣(만) E, 기선과 천막의 순백
창 모양의 당당한 빙하들, 하얀 왕들, 산형화들의 살랑거림
- 아르튀르 랭보, 「모음들」, 김현 옮김
뫼즈 강가의 랭보 박물관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옛 물방앗간 건물의 높은 계단을 올라 웅장한 외벽을 마주하고 난간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면 가만 가만 흐르는 강물 소리가 마치 살랑거리는 시의 속삭임 같았다. 미소년 랭보가 습작시를 써서 파리의 베를렌에게 보낸 뒤 하루하루 답장을 기다리며 조각배에 몸을 싣고 비스듬히 누워 강물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강물 위에 비치는 태양과 강물 속에서 흔들리는 수초, 그리고 그의 눈과 마음을 물들이는 형상들. 바로 이곳은 랭보의 걸작 장시(長詩) 「취한 배」가 쓰인 무대였다. 케 랭보(랭보 강둑)를 따라 뫼즈강변을 걸어내려 갔다. 길 건너에 랭보네 가족이 1869년부터 1875년까지 살았던 집이 보였지만, 발길을 늦춘 채 강둑에 기대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나는 보았네, 별들이 떠 있는 군도를!
열광하는 하늘이 항해자에게 열려 있는 섬들을,
그대가 잠들고 유배된 곳은 끝없는 밤이던가?
수많은 황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생기여
정말 난 너무 울었네, 새벽은 비통하고,
달은 온통 끔찍하며 태양은 참으로 가혹하네
쓰라린 사랑은 황홀한 마비 상태로 날 부풀려 놓았지.
오 나의 선체가 산산조각 나기를! 오 내가 바다에 이르기를!
내가 유럽의 물을 원한다면, 그것은
검고 차가운 웅덩이, 그곳에서 향기로운 황혼녘에
숨을 가득 웅크린 한 아이, 5월 나비처럼
가냘픈 배 하나 띄워 보내네.
- 아르튀르 랭보, 「취한 배」
△ 랭보 박물관 내 랭보의 집.
△ 랭보의 행로가 첨단 미디어 아트로 구현됨.
케 아르튀르 랭보 7번지. 4층 아파트의 2층에 랭보네 가족이 6년간 살았다. 어머니와 형, 여동생 둘이 기거했다. 15살부터 21살까지 이 집에 사는 동안 랭보는 시에 모든 것을 바쳤고, 끝을 냈다. 벽돌색 철문을 안으로 밀었다. 문이 열렸지만 선뜻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고 통로와 그 너머 뜰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현재 이 집은 옛 물방앗간 건물인 랭보 박물관의 부속 건물로 개별 입장이 안 되고 박물관을 통해 입장이 가능했다. 랭보네 가족이 살던 2층뿐만 아니라 전 층이 박물관 별채로 랭보 생가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밖에서나 안 뜰에서나 건물은 허름해 보였으나, 시인이자 탐험가로서의 랭보의 족적을 보여주기에는 텍스트와 이미지 배치가 세련되고 첨단적이었다. 랭보네 집 창가에서 뜰을 내려다보았다. 개암나무인지 좁은 뜰 가에 훌쩍 자라 솟아 있었다.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見者)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을 추구합니다.
자신 속에 모든 독소를 걸러내어 오직 그 정수만을 간직하려는 것입니다. (중략) 그는 미지에 도달합니다.
- 아르튀르 랭보
무엇에 쫓겨서였을까. 서둘러 파리로 돌아올 일이 아니었는데, 나는 랭보네 집을 나와 곧바로 파리로 향했다. 그리고 이년 뒤 여름, 다시 샤를르빌로 갔다. 처음 갔을 때 놓쳤던 랭보 무덤과 샤를르빌-메지에르 역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랭보가 20년 지기 친구 들라에와 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노트를 끼고 들과 숲과 강으로 산책을 나가, 시를 쓰고 들려주곤 했던 아르덴 숲의 정경을 살펴보기 위해, 또 베를렌과 함께, 또는 혼자 런던을 오고가던, 그래서 랭보 노선(路線)이라 불러도 좋을 벨기에 국경 넘어 나뮈르, 브뤼셀, 앙베르, 도버해협까지 달려가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시(詩)를 무기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고 떠났으나, 궁극적으로는 시를 버리고 열사(熱沙)의 북아프리카 오지에서 생(生)을 불사른 채, 죽어서야 비로소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탐험가의 운명을 새겨보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내 꿈의 영웅, 현대(modernity)라는 영토의 주인을 되찾기 위한 방랑의 내용이자 형식이었다.
* 필자 주 : 이 글을 위해 『지옥에서 보낸 한 철』(김현 옮김, 민음사), 『La Vie d’Arthur Rimbaud(아르튀르 랭보의 생애)』(Henri Matarasso Pierre Petifils, Hachette, 1962), 『Une saison en enfer(지옥에서 보낸 한 철)』(A. Rimbaud, Hachette, 2012)를 참고했다.
시(詩)를 무기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고 떠났으나, 궁극적으로는 시를 버리고 열사(熱沙)의 북아프리카 오지에서 생(生)을 불사른 채, 죽어서야 비로소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탐험가의 운명을 가졌던 랭보…
- 글과 사진
- 함정임_소설가,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4년생.
소설『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동행』, 『행복』, 『당신의 물고기』, 『아주 사소한 중독』,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춘하추동』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인생의 사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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