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 달문의 숨은 조선사

자연과 함께 시를 즐기다

광대 달문의 숨은 조선사 5. 자연과 함께 시를 즐기다
인왕산 중턱의 계곡. 남녀노소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르신: '허허'(즐거운 듯 기쁘게 웃는다) 여기가 적당할 것 같네.
'펄럭' (돗자리를 펼친다)
달문: 계곡이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ㅎㅎ
이곳에서 시를 한 수 읊으면 세상사는 시름을 잊을 수 있다네. 그게 바로 풍류가 아니고 뭐겠는가? '허허허'
달문: 그렇네요
청지기(시종): 이놈들!
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뒤로 청지기(시종)가 멀리서 뛰어 다가온다.
청지기: 이곳에서 뭐 하는 것이냐! '헉헉'(급하게 숨을 몰아 쉰다)
어르신: 시회를 열려고 합니다.
청지기: '헉헉' 뭐??
*시회(試會): 조선시대 선비들이 경치 좋은 야외에서 각자 지은 시를 낭독하고 품평하던 모임. 후기에 접어들면서 중인과 평인들도 시회를 열었다.
청지기: 천한 것들이 감히 사회를 연다고? 조금 있으면 양반들의 시회가 이곳에서 열릴 것이니 썩 물러가라. '휙휙' (파리 쫓는 듯이 손을 흔든다)
어르신: 예?
풍류를 즐기는데 천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먼저 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쫓아내는 법도는 또 어디에 있답니까?
청지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곱게 말로 할 때 물러가거라. 안 그러면 아랫것들을 시켜서 혼쭐을 내놓을 것이야.
'불끈' (어르신 화가 나서 주먹을 강하게 쥔다. 몸이 부들부들 떤다)
달문: '소근 소근' (어르신에게 귓속말을 한다) 저기...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일단 물러나십시오.
어르신: 자네가?
달문: 제가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광대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대신 제가 자리를 지켜드리면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어르신: 그렇게 하겠네. 그럼 일단 우리는 산 중턱에 내려가서 기다리지.
계곡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짐을 챙겨 자리에서 물러난다.
청지기: 진작 그럴 것이지. '하하'
달문: 나리.
소인은 흥을 돋궈주려고 따라 온 광대입니다. 있다가 오시는 사회에서 재주를 부릴 것이니 소인은 좀 남겨주십시오. '꾸벅' (청지기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청지기: 광대라...
청지기: 하긴, 광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진 않지. '훗'
양반: 정말 절경이네. 절경이야.
노란 옷을 입은 뚱뚱한 양반이 부채질을 하며 여유 있게 걸어온다.
청지기: '싹싹' (아첨을 떨며 두손을 파리처럼 비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까 왔을 때 천한 것들이 시회를 연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아랫것들을 시켜서 쫓아버린다고 하니 전부 가버렸습니다.
양반: 잘 했네. 천한 것들이 감히 시를 쓰다니, 말세로군. 말세야.
양반: 잘 했네. 천한 것들이 감히 시를 쓰다니, 말세로군. 말세야.
'HAHAHAHA HAHAHOHO' (마주보고 즐겁게 웃는 양반과 청지기)
달문:......(달문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반응이 없다)
청지기: 시회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광대를 한 명 불렀습니다.
양반: 어허! 어찌 시회에 천한 광대를 불러들인단 말인가?
'탓' (조용히 있던 달문 발을 굴러 도약을 한다)
'부웅' (그리곤 둘의 머리위로 뛰어 오른다. 화들짝 놀라는 양반과 청지기)
'휘리릭 착!' (공중에서 앞으로 한 바퀴 돌은 후 멋지게 착지하는 달문, 양반과 청지기는 달문의 재주에 말문이 막혀 굳어있다)
달문: '씨익' 비록 핏줄은 천하지만 광대로서는 조선 제일이고, 풍류로 따지면 천하제일이지요.
양반의 시회가 열리고, 달문은 공으로 저글링을 하며 재주를 부린다. 양반과 청지기는 그 모습을 보며 즐겁게 웃는다.
청지기: 흥취가 적당히 돋워졌으니 시 한 수 지으시지요.
양반: 흠흠 그래볼까?
인왕산을 보니까 시구가 저절로 떠오르는군.
인왕산이 내려다보이는 계곡에 앉아 벗들과 풍류를 즐기니 이 아니 즐겁겠는가? 날아가는 새들도 고개를 굽히고, 물속의 고기도 넋을 잃고 바라보네. '술술'
달문: 껄껄껄~'껄껄'(갑자기 달문이 웃는다)
청지기: '버럭'(달문을 향해 소리친다) 감히 천한 광대 주제에 어찌 그리 무엄하게 웃느냐!
'털썩' (달문이 근처에 있는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달문: 그럼 미천한 소인이 한 수 읊어보겠습니다. '�'(부채를 펴서 얼굴을 살짝 가린다)
동호의 봄 물결은 쪽빛보다 푸르네 東湖春水璧於籃
눈에 보이는 건 두세 마리 해오라기 白鳥分明見兩三
노를 젓는 소리에 새들은 날아가 버리고 楡櫓一聲飛去盡
노을 아래 산 빛깔이 강물 아래 가득하다. 夕陽山色滿空潭
'헉...' (양반과 청지기는 달문의 시조에 놀라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서 있다)
달문: 이게 누구 시인 줄 아십니까? 바로 동호에서 나무를 파는 나무꾼 시인 정봉의 시올시다. 'ㅎㅎ'
* 동호(東胡) : 오늘날 동호대교가 있는 옥수동 부근
달문: 그럼 한 수 더 읊어보겠습니다.
술에 취해서 수유를 꽂고 혼자서 즐긴다. 醉揷茱萸착自娛
온 산에 달빛이 가득한데 나는 홀로 빈 술병을 베고 자네 사람들이여, 滿山明月枕空壺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말게. 傍人莫問何爲者
나는 바라결에 백발을 휘날리는 전함사의 종이라네. 白首風塵典艦奴
이 시는 누가 지은 줄 아십니까? 바로 전함사의 종인 백대붕이 지은 취음이라는 시입니다.
* 전함사(典艦司) : 배를 만드는 관청
양반. 청지기: ........ (당황하여 땀만 흘린다)
'척' (그런 둘 앞에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달문: '두둥' (손가락으로 계속 가리키며 호통을 친다)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는데 어찌 양반과 평민을 따지십니까? 나무를 파는 정봉이나 전함사의 종인 백대붕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시를 지으면서 말입니다. 여기는 원래 시회를 열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있으니 썩 물러가시오.
'추욱'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계곡에서 내려가는 양반과 청지기)
노을이 지는 인왕산 계곡 어르신과 달문은 계곡의 끝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기애애' (아까 내려갔던 사람들이 다시 계곡에 올라와 즐겁게 놀고 있다)
달문: 어르신, 부탁 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어르신: 아까 약속했던 것 말인가? 뭔지 말해보게.
달문: 지난달까지 전옥서에 갇혀있던 옥자 춘자 쓰는 분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십니까?
어르신: 그 사람은 왜?
달문: 제 아버지입니다.
'저벅 저벅'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달문은 혼자 길을 따라 걸어간다)
역사 기록
매년 봄가을 좋은 날이면 글을 띄워 날짜를 잡고 모였다. 큰 그릇에 먹물을 담아 붓으로 종이와 비단에 글씨를 썼다. 이렇게 쓴 글을 쌓으면 사람 키보다 높았다. 그림과 글씨를 쓰면서 즐겼는데 참석자들은 두 사람 분의 밥을 지어 와서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참석자들이 서로 쓴 글과 그림을 돌아보면서 여가를 보냈다. 이경민의 희조일사(熙朝일事) 中 * 희조일사는 시인 이경민이 고종 때 쓴 책으로 양반이 아닌 평민과 중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평민과 중인들이 어울려서 여가를 보내는 시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정명섭
그림
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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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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