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인공의 여로

이스탄불,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이스탄불,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오르한 파묵의 버스 순례와 야샤르 케말의 바람 부족 연대기
2013년 10월 1일 아침 6시 55분, 이스탄불 아타 튀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두 번째였다. 파리에서 모집된 다국적 여행자들 틈에 끼어 처음 발을 들여놓은 후 4년 만이었다. 그때 나는 보스포러스 해협과 할리치 만(金角灣)을 사이에 두고 유럽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넘나들며 터키식 영어를 구사하는 가이드가 이끌고 보여주는 대로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 성당과 톱카프 궁전 등을 돌아보았었다. 평소 항공편과 숙소, 교통편 예약까지 직접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여행 방식과는 다른 형국이었다. 낮에는 여러 인종들과 어울려 옛 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 시대의 영화(榮華)를 뒤쫓느라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개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오르한 파묵이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호명했던 공간들과 자전 에세이 『이스탄불』에 새겨놓았던 흑백 사진들의 잔상을 안고 밤거리들을 흘러 다녔다. 그래봐야 기껏 구도심에 자리 잡은 대학가와 그란 바자르 언저리였다. 갈라타 다리 건너 탁심 광장 근처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탁심 광장에서 갈라타 타워에 이르는 신시가지
△ 탁심 광장에서 갈라타 타워에 이르는 신시가지
갈라타 탑에서 이스틱랄 대로를 관통해 탁심 광장에 이르는 베르올루 구역은 오르한 파묵의 공간이었다. 그는 그곳 지한기르의 파묵아파트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살았고, 보스포러스 해협과 할리치 만으로 이어지는 좌우 비탈진 골목들은 그의 유년기 놀이터이자 산책 공간이었다. 10월에서 12월 사이, 수시로 이스탄불에 드나들면서, 이번엔 작정하고 이스틱랄 대로 옆 아파트를 얻어 짐을 풀었다. 지척에 파묵의 순수박물관이 문을 열고 있었다. 좌우 비탈로 거미줄 같은 골목들을 거느린 1.5km 직선 길이의 이스틱랄 거리는 매일 밤이 축제였고, 새벽 서너 시까지 이방인들의 함성 속에 유흥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오래전 파리 센 강 옆 대학가 생미셀의 6층 아파트 고미다락방에서 체류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밤이면 밤마다 아파트 아래 카페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 이방인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이곳 이스탄불 베이올루 이스틱랄 거리는 내가 머물고 있는 아나톨리아 고원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탁심 광장
△ 탁심 광장
오늘날 베이올루라고 하는 대로이자, 공화국 이후에는 이스틱랄 대로라고 불릴 그랑 루 드 페라는 1843년에도 지금과 거의 비슷했다. 네르발은 메블레비하네를 지나가면서 이 대로를 파리에 비유한다. 유행하는 옷들, 세탁소들, 금은방들, 깨끗한 진열장들, 사탕 가게들, 영국과 프랑스 호텔들, 찻집들, 대사관들, 시인이 프랑스 병원(오늘날의 프랑스 문화원)이라고 했던 곳을 지나면 그 장소는 놀랍고, 충격적이며, 두려운 형태로 끝나고 만다. 왜냐하면 오늘날 탁심 광장이라고 부르는, 어린 시절 이후 내가 그 근처에서 살았던 나의 세계의 중심인 가장 넓은 광장을, 네르발은 마차와 쾨프테, 수박이나 생선을 파는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터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오르한 파묵, 『이스탄불』, 이난아 옮김, 민음사
나는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런던이나 뉴욕, 더블린이나 파리에 갈 때에는 그곳을 무대로 쓴 소설 한 권씩 품고 가라고 권유하곤 한다. 예를 들면, 더블린에 갈 때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뉴욕에 갈 때에는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과 『브룩클린 풍자극』을, 런던에 갈 때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나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또는 『두 도시 이야기』를, 그리고 파리에 갈 때에는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이나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또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 등이 그들이다. 사실 파리의 경우는 너무 많아서 한두 권 고르는 것이 괴로울 지경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서두에 묘사한 대로 파리의 팡테옹 언덕에 번져 있는 골목들을 쫓아가보는 것.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흔적을 따라 몽마르트의 골목들을 들고나는 것.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나 『순수 박물관』에 소개되어 있는 대로 이스탄불의 현장 속에 들어가 보는 것.
내가 나고 자란 도시 이스탄불. 12년 만에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소리 없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누구나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의 부름을 받는다지 않는가. 죽음이 나를 고향으로 이끈 듯하다. 처음 이곳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오로지 죽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후일 나는 사랑과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 도시에 대한 나의 기억만큼이나 아득하고 잊혀진 무엇이었다.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카라」, 『내 이름은 빨강』, 이난아 옮김, 민음사
처음 다국적 여행자 그룹의 일원으로 이스탄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안내자는 죽기 전에 보아야 할 이스탄불의 거창한 곳들로 차례차례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보고 싶고, 오래 서 있고 싶은 곳은 이들 위대한 명소들 옆, 또는 이면에 자리 잡은 사생활의 장면들이었다. 예를 들면, 파묵의 소설 곳곳에 시간을 뛰어넘어 출몰하는 이런 구체적인 장면들.
이스탄불 전경
△ 이스탄불 전경
천 개의 이슬람 사원의 도시 이스탄불
△ 천 개의 이슬람 사원의 도시 이스탄불
쉴레이만 사원 옆에서 할리치 만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 이스탄불로 들어오는 배들의 돛이 마치 나에게 인사를 보내듯 나부끼고 있었다. 돛들은 할리치 만의 바다처럼 회색 안갯빛을 띠고 있었다. 플라타너스와 삼나무들, 마을의 지붕들, 가슴을 저미는 황혼, 아랫동네에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사원 뜰에서 노는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한데 엉겼다. 그것들은 내가 다시는 이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살지 못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순간, 수년 동안 나를 떠나버렸던 연인의 얼굴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탈길을 내려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 오르한 파묵, 앞의 책
조이스에게 더블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파묵의 소설은 모두 이스탄불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이스탄불은 파묵의 도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소설과 삶에 압도적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파묵이 부려놓은 서사적인 장면들을 들여다보면, 옛 이스탄불,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에 열광했던 플로베르와 위고, 네르발 등에 의해 자각되고 강화되는 듯하다. 그의 소설이 이스탄불을 무대로 하고 있음에도 처음 펼쳤을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고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눈』을 펼치면 맨 앞에 네 개의 헌사가 박혀 있는데, 로버트 브라우닝과 스탕달, 도스토예프스키와 조셉 콘래드의 문장들이다. 그의 하버드대 강연록인 『소설과 소설가』에 자주 언급되는 작가들은 플로베르와 도스토예프스키, 프루스트 등이다. 터키의 야샤르 케말이나 아지즈 네신의 소설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구분될 정도로 파묵의 그것은 서구의 서사 방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실과 더불어 그가 서사 언어로 지속적으로 교직해내는 이스탄불의 다국적 특성을 간과할 수 없다.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을 한 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동시에 터키적인 것과 터키 밖의 것이 자연스럽게 혼재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독감에 압도되었다. 그것은 지리도, 언어도, 관습도 모르는 나라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내 얼굴 위로 비친, 책에서 뿜어져 나온 빛 속에서 허름한 방들, 폭주하는 버스들, 지친 사람들, 희미한 글자들, 사라진 마을과 사람 들, 유령들을 보고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여행이 있었다, 항상 여행이 있었다. 모든 것은 여행이었다. (……) 썩어가는 도시의 냄새는 바다와 햄버거, 화장실과 배기가스, 휘발유와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버스 터미널로 나를 이끌었다. (……) 나는 알 수 없는 시간에 아무 버스나 골라잡고 올라탔다. (……) 나는 수많은 버스에 올라탔고, 수많은 버스에서 내렸다. 수없이 많은 터미널을 돌아다니며 버스에 올랐고, 버스에서 잠을 잤다. 밤낮으로 버스를 탔다.

- 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이난아 옮김, 민음사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이스탄불 공과대학생인 화자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버스를 타고 터키의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내용이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오직 책에 씌어 있는 의미를 찾아 밤낮 없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버스 표류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지난 해 10월 초, 이스탄불에 두 번째 당도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주인공처럼 버스를 타고 가능한 한 터키 전역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이스탄불을 벗어나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종횡무진 달려볼 생각이었다. 아나톨리아 고원에도 머물고, 흑해와 에게해, 동지중해에도 닿을 것이었다. 국경을 넘어 베네치아에도 넘나들며 「내 이름은 빨강」을 떠받치고 있는 대립된 두 세계, 동양과 유럽, 곧 터키 이슬람 회화의 수호자인 궁중 세밀화파와 서구로 표상되는 베네치아의 인간 중심적인 세속화파 현장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파묵의 소설 『눈』의 무대인 동부 국경지대와 동남부 야샤르 케말의 『바람 부족의 연대기』에 등장하는 투르크메니스탄 유목민의 터전이었던 추쿠로바의 숲과 골짜기까지 돌아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터키에서의 3개월이 주어져 있었다.
중앙 아나톨리아
△ 중앙 아나톨리아
아나톨리아 고원
△ 아나톨리아 고원
그는 에르주름에서 가까스로 카르스행 버스에 올라탔다.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버스 여행은 이틀 동안 계속된 눈보라를 뚫고, 중간 기착지인 에르주름 버스 터미널에 그를 데려다 놓았다. 손에 가방을 든 채, 지저분하고 질퍽질퍽한 복도에서 카르스행 버스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알아보는데, 누군가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가 곧 출발하려 한다고 일러주었다. (……) 버스가 출발한 직후, 창가의 그 사내는 ‘어쩌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에 차서 눈을 크게 뜨고 에르주름 주변의 변두리 마을을 바라보았다. 작고 초라한 구멍가게들, 빵집, 허름한 찻집 같은 것을 훑고 있을 때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 오르한 파묵, 『눈』, 이난아 옮김, 민음사
버스 여행 오디세이아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은 1994년 발표되어 실질적으로 파묵을 터키를 넘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그는 『내 이름의 빨강』(1998)으로 동서양의 교차로인 이스탄불과 터키의 정체성을 16세 오스만 왕조를 무대로 더욱 치밀하게 그려냈다. 이어 발표한 소설이 『눈』(2002)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독일로 망명해야 했던 주인공 카가 12년 만에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 귀국, 이스탄불에서 동부 국경마을 카르스까지 버스길에 오르는 행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사흘 낮, 사흘 밤 내리는 설원에 펼쳐지는 이 여로형 서사시는 오늘의 터키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 즉 근대화의 주역들인 케말주의자들과 그에 반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대립과 혼전 양상을 폭설로 고립된 카르스의 사흘간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이스탄불만을 고집스럽게 소설화했던 파묵이 『새로운 인생』으로 버스 여행을 시작해 국경지대의 『눈』으로 끝을 보고 있는 셈이다.
호라산에서 왔도다. 우리 어깨 위 빛나는 인장들. 늑대 무리처럼 이 세상 서쪽, 동쪽으로 가득 흩어졌도다. (……)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드높은 파도와 함께 떠다녔다. 이 해변에서 저 해변으로 밀려다녔다. 수많은 성, 도시, 마을을 다녔고, 수많은 인종, 혈통들이 우리와 섞였다. 우리는 한 시대와 더불어 살았다.

- 야샤르 케말, 『바람 부족의 연대기』, 오은경 옮김, 실천문학사
이번에 이스탄불에 도착하면서 마음먹었던 터키 버스 여행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내가 주로 머문 곳은 아나톨리아 중부 고원, 카파도키아 지방의 카이세리. 4천 미터에 육박하는 에레지예스 산이 오래전 불을 뿜어 고원을 덮어버린 탓에 사방 척박하기 그지없는 불모의 땅과 기이한 바위투성이 환경이었다.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같은 동아시아 교민이 살아남아 있지 않았고, 이슬람의 전통이 강한 지역으로, 대학 캠퍼스에도 히잡을 쓰고 등교하는 여학생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스탄불은 국제도시라서 이동과 소통이 무리가 없지만, 수도인 아나톨리아 중심부의 앙카라와 남부 동지중해안의 휴양도시 안탈랴, 서부 에게해 연안의 이즈미르나 셀축(에페소), 카파도키아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여행지를 제외하면 영어 소통이 불가능하다. 웬만큼 터키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전문 가이드 없이 개별 자동차 여행이나 버스 여행이 용이하지 않다. 더욱이 내가 터키로 떠나기 전부터 발발한 시리아 내전으로 국경지역인 동부에는 밀려드는 난민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었고, 한국인 여행자에게는 일주일 단위로 동부 여행 자제 메시지가 도착했다. 터키는 영토로 보면, 남한의 7배에 달하는 광활한 대륙이다. 터키 국내 여행은 주로 비행기와 버스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버스를 이용할 경우,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할 때에는 최소 6시간에서 열 시간을 훌쩍 넘기는 장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스탄불에서 멀리 또 가까이, 비행기와 버스를 타고 수시로 파묵과 야샤르 케말이 전하는 터키의 서사 현장을 돌아보았지만, 내 행동 반경은 동부 국경지대를 제외한 아나톨리아 고원과 에게해 및 지중해 연안에 그치고 말았다. 일반 투어리스트 코스가 아닌, 파묵과 케말이 낸 소설의 길을 따라가기에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모험이 필요했다. 희망처럼, 뒤에 남겨 놓은 길이 있으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다.
동지중해안의 휴양도시 안탈랴 콘얄티 해안
△ 동지중해안의 휴양도시 안탈랴 콘얄티 해안
아다나와 안탈랴에 이르는 동지중해안
△ 아다나와 안탈랴에 이르는 동지중해안
수백 년이 지났다. 우리는 조각조각 나뉘었고, 숫자는 줄어들었고, 검은 텐트들은 해졌다. 높은 산, 물, 땅, 평원, 나라들에 이름을 붙이며, 우리 발자취를 남겼다. 아나톨리아에서는 카이세리 산, 아으르 산, 넴룻 산, 빈보아 산, 질로 산을 보았다. 또 아나톨리아에서 크즐 강, 예실 강, 카사르야, 세이한, 제이한 강을 보았다. 아나톨리아 평원, 소금호수, 붉은 기운이 감도는 노란 포도로 유명한 에게 평원…… 모두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많은 강물, 평원, 산들에게. 아나톨리아 모든 곳에 우리 발자취가 남아 있다.

- 야샤르 케말, 앞의 책
* 이 글을 위해서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순수박물관』, 『눈』, 『이스탄불』, 『소설과 소설가』(이상 이난아 옮김, 민음사), 야사르 케말의 『바람 부족의 연대기』(오은경 옮김, 실천문학사), 아지즈 네신의 『일단, 웃고 나서 혁명』(이난아 옮김, 푸른숲)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글과 사진
함정임_소설가,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4년생.
소설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동행』, 『행복』, 『당신의 물고기』, 『아주 사소한 중독』,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춘하추동』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인생의 사용』 등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4-07-22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URL 공유시 전체 선택하여 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