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절정이었던 지난 여름, 소설 『자랏골의 비가』의 작가 송기숙과 함께 이 소설의 배경지인 전남 장흥의 ‘자랏골’(포곡마을)로 떠났다. ‘자랏골’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송기숙은 지난 40여 년간 소설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 개선하고자 했다. 이번 여정은 이러한 정치의식을 문학적으로 실천해 온 그의 삶의 궤적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실천은 당대의 사회적 모순과 병행했고, 그 양상은 변화하는 작가 의식의 발전 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해방과 함께 6·25전쟁, 유신체제,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시대의 산증인으로 당대의 사회적 모순과 이와 결부된 그의 삶 자체가 작품의 소재이자 배경이 되었다.
입구에서 본 자랏골은 ‘높은 산이 울타리처럼 빙 둘러 마을을 싸안고 있어 소쿠리에 밤알 담아 흔들어 놓은 꼴로 옹기종기 집이 몰려’있는 소설 속 그대로였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을 한가운데 왕릉처럼 덩실하게’ 양문이 묏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양문이 묏등은 진짜 양문이의 묘가 아니다. 다만 작가가 소설 『자랏골의 비가』에서 ‘양문이 묏등’으로 묘사한 후부터 마을 사람들도 그저 ‘양문이 묏등’이라 부르고 있다.
2년 전 묏등 주위에는 커다란 도래솔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당시 마을 어른의 도움이 없었다면 묏등의 존재 자체를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야 겨우 묏등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묏등’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 장흥
한 눈에 묏등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절반 이상의 도래솔이 베어져 있었다. 아마도 소설의 주요한 배경으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최근 독자 방문객이 증가하여 이들을 위한 배려로 마을에서 그러한 듯하다.
작가는 해방 후의 우리 근대사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적 배경으로 ‘양문이 묏등’을 재구성했다. 그는 ‘묏등’을 중심으로 양문이와 자랏골 사람들의 지배, 피지배 구도를 설정하여 우리 근대사에서 지배계급이 민중을 탄압하고 있는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송기숙의 문학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주제는 지배계급에 의해 억압받고 소외된 민중이라는 개념이다. 그의 작품에서 민중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이지만, 이 같은 소외 현상을 비판하며 개선하려는 낙관적인 사관을 지닌 인물들로 묘사된다. 그는 문학 전반을 통해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며, 그 민중의 궁극적 염원인 보다 나은 자기 생활에 대한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화가 우선임을 삶과 작품을 통해서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암태도 주민들의 소작쟁의를 주제로 한 『암태도』, 동학농민운동을 그린 『녹두장군』,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월의 미소』 등을 차례로 소설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자랏골의 비가』는 모두 1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시간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18년부터 4·19혁명 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기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전라도 벽지의 한 마을인 자랏골에서 묘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3대에 걸친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농민들의 문제이기 이전에 양문이와 자랏골 사람들의 지배와 피지배 문제이다. ‘묏등’으로 대변되는 지배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민중의식의 발현과정이 3대에 걸쳐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어느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변혁의 주인공을 이름 없는 민중으로 상정했다. 또한 소설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적재적소에 다양한 인물들을 제시한 점이 특징적이다. 따라서 저항의 주체이자 주인공은 자랏골 민중 전체로 볼 수 있다.
사건은 자랏골의 유일한 대학생이었고 나중에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김태율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김태율은 집을 떠난 지 10년 만에 홀연히 덩실한 사각모를 쓰고 마을에 나타난다. 동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고 좋아하지만, 태율의 등장은 이 마을 전체의 3대에 걸친 비극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그의 아버지 고당영감이 아들에게 독립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마을 한가운데 있는 땅을 양문이에게 팔았던 것이다.
송기숙은 묏등 앞에서 거쿨진 특유의 목소리로 “죽일 놈들이여. 아직도 과거사는 해결이 안 되었어. 양문이 같은 놈이 지금도 비일비재해”하고 말했다. 그는 이미 작품 속 자랏골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양문이 묏등을 보는 순간 흥분한 노작가의 얼굴과 김태율의 얼굴이 겹쳐졌다. 김태율이 『자랏골의 비가』 에서 자랏골의 유일한 대학생이었던 것처럼, 송기숙도 자신의 고향에서 유일한 대학생이었다. 김태율은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목숨을 바쳤다. 송기숙은 민주화운동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송기숙은 자랏골에서 3대에 걸친 ‘40년’ 한의 상징이었던 ‘묏등’을 4·19혁명 직전에 폭파함으로써 친일 세력의 척결이라는 민족의 비극적인 과거사 청산을 주장했다. 『자랏골의 비가』에서 시작된 민중의식의 서사화는 이후에 발표된 '추적', '불패자', '도깨비 잔치', '개는 왜 짖는가' 등에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자랏골의 비가』는 송기숙에게 역사소설의 출발점인 동시에 민중의식의 발현과 민중 주체성의 자각을 형상화한 첫 작품으로 의미가 크다. 그가 민중의 주체성 복원을 염원하며 『암태도와』, 『녹두장군』까지 긴 행보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자 출발 지점이 바로 이곳 ‘자랏골’이었다.
양문이 묏등을 지나 송기숙의 생가에 도착했다. 생가의 마당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정자나무가 보인다. 송기숙은 『자랏골의 비가』 이외에도 '재수없는 금의환향', '가남약전', '만복이' 등에서 정자나무를 소재로 변해가는 고향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의 작품 거의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집에서 나오면 바로 당산나무(정자나무)가 보였다’고 묘사한 점이 특이했다. 오늘 그의 생가에서 이 의문은 간단히 풀렸다.
정자나무 아래에 서면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또한 작품에서처럼 저녁을 먹은 자랏골 사람들이 정자나무 밑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 것처럼 정겹다. 소아마비에 걸린 해룡이가 판소리를 하며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비럭질을 하고 집에 오다가 잠시 쉬러 오고, 오갈 곳 없는 떠돌이 석수쟁이 판돌이도 땀을 식히러 나오고, 곰영감, 솔골양반, 외불이, 종수, 득철 등이 모여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속 자랏골에는 마을 회관 밑에 커다란 정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풍으로 그 중 한 그루가 쓰러져서 겨우 밑동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자나무 아래에 서니 몇 자락 되지 않은 논과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즉어멈 떡을 치다가 꼬꾸라질 놈덜, 송별금이 뭣 몰라 삐틀어진 송별금이여?’하며 저마다 구수한 사투리를 한 자락씩 쏟아내며 금방이라도 소설 속 인물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들의 걸쭉한 입담이 있었기에 『자랏골의 비가』의 현장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송기숙의 문학적 상상력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내용을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의 토대에서 집요하게 탐색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들은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며 정치 지향적이다.
정자나무 한 쪽에는 들돌이 놓여 있었다. 들돌은 ‘처음부터 저절로 저렇게 둥글게 생겼는지, 누가 손을 보았는지,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유래를 알 수 없지만, 작은 들돌과 큰 들돌은 크고 작기가 신통하게 구색이 맞아 꼭 형제같이 그 자리에 나란히 눌러앉아’ 자랏골 사람들이 나고 자라서 죽어 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들돌에 이르니 자랏골의 3세대가 모두 모여 있는 느낌이다. 동학 농민군으로 활동했던 1세대 용골 영감이 머리 위로 들돌을 넘기자여기저기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아들인 2세대 곰 영감도 어느새 청년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들돌을 어깨 너머로 넘겼고, 성인으로 인정하는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3세대인 문길이도 비장하게 왼쪽 어깨 위로 들돌을 넘겼다. 자랏골 3세대인 문길이가 ‘양문이 묏등’ 폭파라는 거사를 앞두고 들돌을 들어 올림으로써 자랏골의 슬픈 노래(悲歌)는 막을 내린다.
△ 장흥
자랏골을 떠나오면서 문득 ‘민중’이란 단어가 그리웠다. 제도적으로 너무도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린 민중,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송기숙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민중은 정말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져버렸던가? 작가와 함께 자랏골의 여러 인물들의 여로를 따라 다니다 보니, 마치 작품 속 주인공들이 동시대 인물처럼 느껴졌다. 이는 작품의 배경이 실제 작가의 고향이며, 작품 속의 해룡, 해룡이 아버지, 끝심이, 판돌 등 인물도 실제 모델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작가와 함께 했기에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고, 다양한 주인공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자랏골을 떠나오면서 문득 ‘민중’이란 단어가 그리웠다.
제도적으로 너무도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린 민중,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글
- 조은숙_전남대학교 기초교육원 연구원. 1968년생
저서 『송기숙의 삶과 문학』, 『호남문학과 근대성 연구 1』(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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