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으로 간 문학

백석의「산곡」과 화가 이인이 만나다.

[산곡]화가 이인, 한지에 혼합재료, 2012년, 90x180cm
산곡 - 백석 -
돌각담에 머루송이 깜하니 익고
자갈밭에 아주까리알이 쏟아지는
잠풍하니 볕바른 골짜기다
나는 이 골짝에서 한겨울을 나려고 집을 한 채 구하였다
집이 몇 집 되지 않는 골 안은
모두 터앝에 김장감이 퍼지고
뜨락에 잡곡 낟가리가 쌓여서
어니 세월에 비일 듯한 집은 뵈이지 않었다
나는 자꾸 골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골이 다한 산대 밑에 자그마한 돌능와집이 한 채 있어서
이 집 남길동 단 안주인은 겨울이면 집을 내고
산을 돌아 거리로 나려간다는 말을 하는데
해바른 마당에는 꿀벌이 스무나문 통 있었다

낮 기울은 날을 햇볕 장글장글한 툇마루에 걸어앉어서
지난 여름 도락구를 타고 장진(長津) 땅에 가서 꿀을
치고 돌아왔다는 이 벌들을 바라보며 나는
날이 어서 추워져서 숙국화꽃도 시들고
이 바즈런한 백성들도 다 제 집으로 들은 뒤에
이 골안으로 올 것을 생각하였다
화가의 한마디
백석은 평안북도 어느 골짝에서 한겨울을 날려고 집을 한 채 구하였다. 나는 양평 어느 골짝에서 한 인생을 지켜내려고 집을 한 채 짓고 있다.낮 기울은 날을 햇볕 장글장글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보고 있다.
화가 소개
화가
이인 (1959 - )
이인 화가는 한국의 민화나 조각보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통 도상과 색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색(色)을 화두로 일상의 모습을 화폭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그림은 한지에 반복적으로 덧칠되는 색을 사용한다. 그 색이 빚어내는 미묘한 파장은 대중의 심금을 파고드는 마력을 가진다.
작가 소개
작가
백석(백기행) (1912 - 1996 )
백석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많은 시를 남겼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여 바라다보는 고향은 대개 회상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백석은 자신의 어린 눈에 비쳐진 고향의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환기되는 정서의 순화를 의도하고 있다. 또한, 마을의 민속을 재현시키면서도 언제나 객관적인 입장에 섰으며, 그 마을의 자연과 소박한 주민들의 원초적인 삶의 리얼리티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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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9-0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