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 <이사 가는 날> 오래 되어 보이는 주택 집 앞에 이삿짐 트럭이 정차 되어 있다. 트럭 앞, 주택을 바라보며 서 있는 슬모. 애잔한 표정으로- 슬모NAR 오늘은 이사 가는 날. 정든 우리집을 떠나 아파트로 간다. 슬모母 (트럭 앞 좌석에서, 분위기 깨며) 빨리 타, 이것아! 슬모 (엄마 보며) 알겠어~! (다시 주택집 보며, 과도한 애잔함) 안녕, 내 방, 우리집. (돌아서고) - 대규모 단지 아파트 전경. 나름 널찍한 슬모의 집 안. 이삿짐을 나르는 슬모와 슬모의 아빠, 엄마 모습 보인다. 기분 좋게 짐을 나르는 슬모의 얼굴 보이며- 슬모 이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우린 스스로 짐을 나르기로 했다. 하지만... (무거운 짐상자를 들고 가며 낑낑대는 모습) 현실은 무거워 쓰러질 것 같다는.. 거... (결국 힘이 빠져 짐상자를 쿵 바닥에 떨어트리며 쓰러지고, 헤롱대는 모습) 에고... 더 이상은 못해.... 슬모, 바닥에 퍼져서 헤롱대는데, 슬모의 위로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들. 슬모, 고개 돌려 그림자의 주인공을 쳐다 보는데. 필녀, 난보, 요정, 사자가 서 있다. 난보 (브이 하며) 쨔잔~~ 필녀 (의기양양하게) 도와주러 왔지~~! 반갑지?!! 슬모 (필녀 와락 껴안으며) 완전, 완전요!! 으헝~~ 필녀 수, 숨 막혀~
다들, 슬모를 보면서 피식 웃고- - 슬모, 필녀, 난보, 요정, 사자가 다함께 땀 흘리며 이삿짐을 나르는 모습들 보여진다. 그중 필녀가 짐상자를 바닥에서 쭉 밀어 방 안으로 들어가며- 필녀 헤헷, 요즘 아파트들은 문턱이 없어서 편하다니까. 그런데 난보가 옷더미들을 한가득 들고 비틀비틀 들어오다가 필녀 쪽으로 우당탕 넘어진다. 으아악~ 비명 지르며 함께 넘어지는 난보와 필녀. 그 소리에 슬모, 요정, 사자가 뛰어 들어와 둘을 쳐다본다. 사자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필녀 (옷더미들 속에서 머리 쏙 내밀며) 난보 너 죽을래~~?! 나한테 억하심정 있냐~~?!! 난보 (옷더미들 속에서 머리 쏙 내민다) 헤헤... 무거워서... 슬모 (피식 웃으며) 그럼 이참에 좀 쉬다 할까요? 아빠, 엄마도 잠시 나가셨는데. - 중천에 떠 있는 해, 인서트. 거실 창가 쪽에 앉거나 드러누워 있는 모두들. 요정 그나저나 집이 좋네~ 새 건물 같은데? 슬모 (웃으며) 오래된 집에서 너무 길게 살다보니 새 집으로 이사 오게 됐어요. 사자 (둘러보며) 그래서 다 최신식이었구나... 모던/스마트한 집 곳곳의 모습들 보여진다. 필녀 그럼 뭐해. 문턱도 없고 깨끗한 맨바닥에서 넘어지는 놈도 있는데~ 난보 에이~~ 진짜! 미안해요, 미안해! 그럴 수도 있지 거참~~ 필녀 (입 삐죽 거리고) 사자 (주위 둘러보며) 그래. 요즘 지어지는 집들은 다 문턱이 없지. 문이 있는 곳에 문턱이 없는 바닥 모습들 보여지고- 요정 (냉장고에서 맥주 꺼내와 마시며) 방의 경계가 없어지는 거지. (필녀, 난보 보며) 필녀랑 난보처럼.
필녀,난보 (얼굴 빨개지며) 무, 무슨 소릴~~~!!!!! 슬모 우왓, 두 분 얼굴 빨개지셨네요. 난보 슬모 헛소리 하지 마~~~ 필녀 누가 이런 바람둥이랑~!! 난보와 필녀, 투닥투닥 거리는 모습- 사자 (웃으며) 슬모, 방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니? 슬모 아...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내 방이 없어진다는 건가요? 사자 뭐 비슷해. 네 방 내 방이 사라진다고도 할 수 있겠지. 더 중요한 건, 경계가 없어지면서 부엌에서의 어머니의 노동이 모든 공간으로 확대된다는 거야. 집의 전체 구조가 훤히 보이는 전경에서, 똑같이 생긴 어머니 분신들이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거실, 방 곳곳에서 청소하는 모습들. 요정 (맥주 마시며) 알게 모르게 공간이 우리들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기도 하는 거야. 집의 구조가 바뀌는 걸 보면서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구나, 뭐 그런 걸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필녀 (난보에게 헤드락 건 상태로) 앙리 르페브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그런 관점에서 <공간의 생산>이라는 책을 쓴 적 있어. 난보 (헤드락 걸린 채로) 아아~~ 풀어줘~~~ 필녀 (무시하고)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던 철학적 경향에서 벗어나서 도시나 시골 같은 공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거지. 슬모 아... 그러고보니 사람들이 요즘 공간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는데 그것도 나름의 철학적 이유가 있는 거였네요. 사자 그렇지. 예를 들어 이 아파트만 해도 주택집과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잖아? 슬모도 이제 살면서 그 차이를 더 느끼게 될 거야. 슬모, 요정, 사자의 뒤로 난보와 필녀가 헤드락 걸고 빠져 나가려는 모습들 귀엽게 보여지고- 슬모 그러고보면 아파트의 집 구조는 정말 효율적으로 딱딱 나눠져 있는 것 같아요. 이 많은 집들이 숫자가 하나하나 매겨져서 대단지를 형성하고 복도도 딱딱 나눠지고... 정확하게 구획된 대단지 아파트 이미지 표현. 요정 그래서 우리들의 삶도 점점 효율적으로 변하는 거지. 늘어나는 아파트 수만큼. 슬모 아.... 그렇구나. 슬모, 요정, 사자의 뒤로 결국 난보가 “나도 말 좀 하자~!” 하며 필녀를 밀쳐내고, 필녀는 “꺅” 하며 코믹하게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슬모, 요정, 사자, 그런 둘의 모습 보며 “니들 참 사이좋다..”, “뭐하냐..”등의 반응들. 난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옷 툭툭 털고 옷 매무새 바로 만지며- 난보 흠흠... 그래서 바로 우리가 옥상에 있는 거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공간을 변혁해야 하거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우린 아무 것도 변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슬모 (골똘히)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공간... 옥상 전경 이미지가 보여지고-
사자 (웃으며) 그래서 미셀 푸코라는 철학자는 20세기를 공간의 시대라고 했어. 공간의 변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 거지. 요정 푸코는 반지하, 다락방, 영화관 좌석, 인디언 텐트, 강의실 의자, 묘지, 목요일 오후 엄마 아빠의 침대.... 이런 공간들에 주목했어. 그런 장소들을 ‘헤테로토피아’라고 했지. 바로 위 언급한 공간들이 감성적인 이미지로 펼쳐진다. (*너무 많으면 몇 가지만) 그 위로 Les Heterotopies 라는 텍스트 이미지 표기되고- 요정 바로 그런 곳들에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거야. 우리들의 ‘옥상’에서도. 슬모 (뭔가 감동한 표정) 헤테로토피아... 현실 속의 유토피아인 거네요.... 옥상도. 난보 (슬모 머리 쓰다 듬으며) 우리가 있는 옥상이 얼마나 위대한 곳인지 알겠냐? 으응? 슬모 예, 헤헤. 요정, 슬모 머리 쓰다듬는 난보를 흘깃 쳐다보고- 사자 (일어나며) 자자, 다시 짐정리 해야지! 빨리 끝내고 밥 먹자! 모두들, 일어나 각자 짐정리 하러 흩어지고- 그 모습 지켜보는 슬모, 미소 짓는다. 슬모NAR 유토피아는 멀리 있는 게 아니었어. 아래 몇몇 장소에 대한 슬모의 나레이션과 함께 해당 이미지가 펼쳐진다. 슬모NAR 가을 바람 부는 공원의 벤치.
슬모NAR 나른한 햇살이 내리쬐는 아빠 엄마의 침대. 슬모NAR 밤새 공부했던 도서관 어딘가. 슬모NAR 친구들과 떠들었던 카페 의자. 슬모NAR 그리고... 슬모NAR 우리들의 옥상. 옥상의 전경 위로- 슬모NAR 사소해 보였지만 소중한 우리들의 장소. 그곳에서 계속 함께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 -계속
요정의 철학 코멘트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되도록이면 한 곳에 정착해서, 이웃을 만들고 삶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쌍문동 도시에서 성장하는 청년들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쌍문동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의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일정 시간 이상 지켜왔기 때문인데, 이제 도시에서 사람들의 삶이 오랜 동안 지켜질 수 있는 장소는 찾기 매우 어려워지고 있으며 유명한 음식점이나 단골가게 정도에서만 그곳에서의 삶을 문득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주택 소유는커녕 전세도 찾기 쉽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이사'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사의 방식이 자신의 삶의 흔적을 이사 간 곳에 새겨 넣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흔적을 지우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사를 갈 때마다 나의 삶의 방식은 지속되지 못하고 그 공간에 맞춰 바뀌어야만 한다. 모든 대도시의 공간이 유사하게 조성되고 있는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는 공간을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으로 나누어, 이 두 공간이 갖는 특징을 분별한 바 있다. 매끄러운 공간이 삶의 기억과 흔적들이 머물 수 없도록 조성된다면 홈 패인 공간은 삶이 소속되고 자리잡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도시화가 기억과 역사를 지우면서 새로운 구조물을 쌓는다는 점에서 매끄러운 공간적 특징을 지닌다면, 그와 함께 삶이 녹아들 수 있도록 홈 패인 공간이 생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도시 속에 삶이 홈 패인 공간은 더 많이 발명되고 고안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한 마디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함께 쓴 책 <천 개의 고원>을 읽으신다면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 글
- 안종준
- 그림
- 김지혜
- 감수
- 김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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