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화 - <힐링과 파워 워킹> 슬모의 회사. 슬모와 이대리(*2화 등장)가 사무일로 바쁜 모습들 그려진다. 슬모는 주로 복사 용지 갈고, 직원들에게 서류 가져다 주고, 회의실 세팅하고.... 이대리는 충혈된 눈으로 데스크탑 작업을 하고, 과장에게 보고하고, 회의실에서 사람들에게 프레젠테이션하는 등의 일들. 그러한 이미지들 사이로 텍스트로 ‘바쁜 회사 생활 중’ 이라고 표기된다. - 슬모의 회사 옥상의 정원. 슬모와 이대리가 나른하게 벤치에 앉아 대화 나눈다. 이대리: 아... 지친다. 우린 왜 항상 이렇게 힘들게 지내는 걸까요? 슬모: 그러게요... 힝... 이대리: (좀비처럼 묘사) 뭔가 힐링이 필요해.... 힐링~~ 슬모: (혼잣말) 힐링이라... 옥상 생활자들과 옥상 평상에서 기분 좋게 떠드는 이미지 삽입. (*지난 화 중 적당한 이미지 삽입) 슬모: (이대리 보며) 그럼... 저랑 어디 좀 같이 가실래요? 이대리: (응? 어디?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 - 슬모와 이대리, 옥상 문을 열고 올라온다. (*옥상 생활자들이 있는 건물) 이대리: (쫙 펼쳐진 풍경 보며) 와~ 여기 좋네요! 슬모: 헤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좋아요. 이대리: 진짜? 기대 돼~! 슬모, 쨔잔- 하고 방 문을 여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다. 텅 빈 방 안. 슬모: 응? 다들 어디 갔지? (하며 두리번 거리는데) 이대리: 슬모씨, 여기, 여기! 슬모, 이대리 쳐다보면, 방 문 한 귀퉁이를 가리키고 있다. 발견하기도 힘들게 조그맣게 붙어 있는 쪽지. [ 우리 한강에 운동하러 감. 관심 있으면 따라 오시든지~ ] 슬모, 쪽지를 보고는 “운동이란 걸 하는 사람들이었나...” 중얼거리고- 슬모: (이대리 보며, 눈 반짝이며) 대리님, 혹시 자전거 잘 타세요?
- 한강 고수부지 전경. 산책을 나오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달리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 그 중 요정, 필녀, 난보, 사자가 파워 워킹을 하고 있다. 빠르고 힘 있게 걷지만 뭔가 버거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 다소 웃겨 보인다. 필녀: (헉헉 대지만 힘차게) 우린 너무 운동 부족이었어! 다들 더 빨리!! 요정: (숨 차다) 아오... 지금도 빨라~~ 사자: (숨 차다) 좀 쉬다 가면 안되냐... 난보: (숨 차다) 오랜만에 운동하니까 조, 좋네... 그 때, 난보를 뒤에서 들이박는 자전거 한 대. 난보, “커헉~” 하며 튕겨나는데, 모두들 뒤돌아보면 슬모다. 뒤에는 이대리가 탔다. 모두들: 슬모~!! 슬모: 헤헤, 저 따라 왔어요. 라이딩 복장을 완벽히 갖춰 입은 슬모. 모두들 슬모의 복장과 자전거를 보며 중얼댄다. “대박.”, “완전 선수 복장...”, “이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니..” 등등 내뱉고, 슬모는 으슥하며 괜스레 포즈 잡아주고, “자주 달려서요, 헤헤” 중얼댄다. 난보는 튕겨나 저 뒤에서 “나, 나는 신경도 안쓰냐...” 말하고- (*한 컷에 표현되는 연출) - 슬모, 요정, 난보, 필녀, 사자, 그리고 이대리가 함께 한강 고수부지를 천천히 걷는다. 슬모는 자전거를 끌고 오고- 슬모: 어쩌다 운동하러 나오실 생각들을 했어요? 사자: 필녀가 다이어트 한다고 해서 같이 나왔어. 필녀: (브이 하며)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말이지. 난보: (이대리 보며) 그런데 이 아리따운 여성분은 누구...? 슬모: 아차! 소개가 늦었네요. 이지연 대리님이세요. 힐링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같이 왔어요. 헤헤. 이대리: 반가워요~ 모두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난보: (이대리 어깨에 자연스레 팔 올리며) 저에 대해서도 들으셨으려나~ 모두들, “또, 또...”, “이제 그만 좀.. 난보야..” 등등 중얼대는데- 뜻밖에 이대리가 난보의 팔을 과격하게 꺽어 버리며- 이대리: 물론이죠. 스, 킨, 쉽을 매우 좋아하신다고~ 난보: (고통스러워 하며) 아아~~~ 아파~~ 사자: 큭, 임자 제대로 만났네.
이대리: (난보 밀쳐내고는) 그런데 필녀씨는 날씬한데 왜 다이어트를 해요~ 필녀: (이대리 손잡고는 눈 반짝 거리며) 정말요?? 이대리: (필녀의 과한 반응에 부담스러워) 하하... 지금도 이쁘세요... 필녀: 실은 이렇게 파워 워킹이라도 하면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이대리: 아, 그거 뭔지 알아요~~ 사실 별 효과가 없는데도 괜히 안심하게 되잖아요. 그죠? 필녀: (폭풍 공감 끄덕인다) 바로 그거에요! 아무 것도 안하면 불안해서!! 난보: (대뜸) 대리님이 필요하다고 했던 힐링도 그렇지 않나요? 모두들, 난보를 쳐다본다. 난보, 꺽였던 팔이 아파 주무르고 있다. 이대리: 그게 무슨...? 난보: 힐링이라는 거, 그것도 비슷하잖아요. 다들 힐링, 힐링 하지만 사실은 잠시 위로만 될 뿐이지, 진짜 힐링은 되지 않잖아요. 이대리: ....... 슬모: 그래도 우린 그 위로라도 필요하지 않나요? 오늘 회사일 하느라 진짜 힘들었단 말예요... 요정: 물론 필요하지. 다들 버티면서 살고 있으니까... 위로 없이 어떻게 살아가겠어. 사자: (풀밭 가리키며) 우리 저기 앉자. 모두들, 사자가 가리킨 곳에 풀썩 앉아 한강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한강 야경. 난보: 힐링이 필요하다는 건 아무리 물질적으로 충족됐다 하더라도 정서적, 혹은 정신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걸 의미해. 지금 이대리님처럼. 이대리: ....맞아요. 경제적으론 큰 문제 없죠. 하지만 힘이 들어요... 슬모: 왜... 그럴까요? 이대리: 소진되어서.... 그런 거 아닐까? 난보: 조금 거칠긴 해도, 에바 일루즈는 돈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집착’이라는 편집증적인 마음의 상태가 사람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거죠. 에바 일루즈의 얼굴 이미지와 ‘집착’이라고 크게 쓰여진 텍스트 이미지 삽입. 요정: 그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감정이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 거야. 사자: 그래서 사람들은 힐링이 필요한 상태가 되는 거지. 이때 주목받게 된 게 바로 인문학이야. ‘인문학 人文學’ 이라고 쓰여진 텍스트 이미지와 그 주위로 인문학 열풍과 관련된 뉴스 혹은 기사 이미지들 삽입.
슬모: 하긴... 다들 인문학 인문학 외칠 때가 있었어요. 이대리: 나도 한 때 인문학 강의 들으러 쫓아 다녔었지. 요정: 하지만 인문학이 그런 것처럼, 일회적인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힐링은 없어요. 인문학도 힐링도, 쨘하고 완성되는 마술이 아니니까. 필녀: 단지 순간적인 마음의 안정을 줄 뿐이죠. 내가 실제론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하는데도 파워 워킹을 하면서 안심하는 것처럼. 이대리: 그럼... 어떻게 해야 진짜 힐링이 되는 건가요? 난보: .......책. 슬모,이대리: (의아한) 책...이요? 난보: 책을 읽는다는 것. 반복해서 책을 읽는 것만이 힐링의 가능성을 열어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힐링의 가능성은 없어. 사자: 난보가 그랬었지, 아마? 슬모: (의아해하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자: 어머, 몰랐구나? 사실 난보는 꽤 부잣집 아들이야. 전혀 부족할 것 없는 생활을 했었지. 과거의 난보 모습 이어진다. 명품 쇼핑하는 난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난보, 으리으리한 집 풀장에서 선탠(일광욕)하는 난보... 하지만 표정은 모두 무표정이다. 사자: 그런데도 난보는 계속 공허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 들었었어. 필녀: 그 때 우리들을 만나 책을 읽게 된 거지. 옥상 방 안에서 다함께 책을 읽는 모습. 그중 난보는 특히나 무엇에 홀린 듯 열심히 책을 읽는 모습이다. 슬모: 그랬구나... 난보 선배한테 그런 시기가 있었는지 몰랐어요. 난보: 힐링이라는 건... 자기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해.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치열하게 책을 읽는 자세에 대해서 쓴 책이 있어. 그 책 제목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야.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표지 이미지 삽입 (*사진이 아닌 그림 이미지) 이대리: 제목이 강렬하네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난보: 그렇죠.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손을 자르라는 의미에요. 그말인즉슨, 다른 누군가에게서 힐링을 얻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더 돌아보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거죠. 진정한 힐링의 가능성은 거기에 있는 거에요. 이대리: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라... 난보: 그리고 책을 통해서 세상을 변혁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사사키 아타루가 전하는 힐링인 거죠.
슬모: 와.... 난보 선배 짱 멋있네요.... 사자: 실없는 놈처럼 보여도 할 건 해. (웃음) 그 때, 요정이 병맥주와 과자를 사와서 “자, 이제 힐링 푸드 타임~~” 소리치고, 다들 “언제 갔다 왔대~”, “맥주다~!” 등등 소리치며 환호한다. 원형으로 앉아 가운데 맥주와 먹을 것들을 세팅하고, 즐기는 모두들의 모습. 이대리: (난보에게) 아까 팔 많이 아팠죠? 난보: 뭐 그냥 부러질 것 같이 아픈 정도? 이대리: (웃음) 고마워요. 좋은 얘기... 난보: (쑥쓰러운 듯) 인생 뭐 있겠어요~~ 한 잔 합시다! 병맥주 들자, 다들 “나도, 나도” 하면서 함께 병맥주 들고- 모두들 쨘 부딪히며- 아름다운 한강 고수부지의 야경 위로- 다함께: 진정한 힐링을 위해~~!!
난보의 철학 코멘트
자기로부터 더 이상 좋은 것이 생성될 수 없다고 여길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과 의식은 바깥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최근 힐링 담론이 바깥에서 모종의 진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힐링의 유행에는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를 버리고 이미 주어진 '형식'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을 알렉상드르 꼬제브는 '스놉'(속물)이라 명명한 바 있다. 비록 자신의 내용은 공허하되 소비를 통해서나 형식만을 추구함으로써 타인의 인정을 얻고자 하는 이 방식엔 공교롭게도 '자기'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힐링'이 과연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오늘날과 같은 조건에서 니체가 나로부터 좋은 것을 생성하지 못하게 될 때 문명이 허약해진다고 진단했던 생각은 새삼 귀한 울림을 전해준다. 우리 스스로 좋은 것을 생성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힐링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한 마디
프리드리히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읽으신다면 스스로 좋은 것을 생성해 진정한 힐링으로 가는 단서를 얻으실 수도 있으니 천천히 살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 글
- 안종준
- 그림
- 김지혜
- 감수
- 김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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