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철학

결혼과 철학

철학한답시고 글 안종준 / 그림 김지혜
철학한답시고 06화 명절과 철학-1
06화 - <명절과 철학> 추석을 맞이한 슬모, 요정, 필녀, 사자, 난보. 각자의 집에서의 모습들이 보여진다. [전 부치는 슬모](텍스트 표현), 친척들과 집에서 전을 부치고 있는 슬모 모습. “하하, 잘 지내셨죠? 저도...” 등등의 대화들. 웃고는 있지만 지쳐 보인다. [차례 지내는 요정](텍스트 표현), 친척들과 차례를 지내는 요정 모습. 진중해 보인다. [조카들과 놀아주는 필녀](텍스트 표현), 어린 조카들과 놀아주는 필녀 모습. 필녀에게 여러 명의 아이들이 매달려 즐거워 한다. 필녀, “그만 좀 떨어져, 이것들아...” 등등의 대사. 지쳐 보인다. [용돈 빼앗기는 사자](텍스트 표현), 어린 친척들에게 용돈주고 있는 사자 모습. 사자, “맛있는 거 사먹어~” 하자, “요즘 이걸로 뭐 사먹어요? 더 주세요.” 하는 어린 아이들. 사자, 순간 열 받아 머리가 사자 갈기처럼 뻗치지만 어쩔 수 없이 용돈 더 준다. [화투 치는 난보](텍스트 표현), 친척들과 화투를 치는 난보 모습. “명절엔 역시 화투지.” 하는데, 다른 친척이 “쓰리고!!” 하면서 싹쓸이하고, 난보는 절망스런 모습. 슬모, 열심히 전 부치는 중인데, 친척 중 누군가가 “아이구~ 슬모 이제 처녀 다됐네. 시집 가야겄다.” 말하고, 슬모는 “하하~ 벌써 결혼이라뇨...” 대꾸한다. 요정, 차례를 지내고 정리 중인데, 친척 중 누군가가 말한다. “너도 슬슬 다른 여자 만날 때 되지 않았냐? 새장가 들어야지.”, 요정, 멋쩍게 “하하, 네...” 대답하고. 필녀에게 어린 조카들이 달라붙어 있는데, 친척 중 누군가가 다가와 “필녀 애인은 있니? 시집 갈 때 지났잖아~” 말한다. 필녀, 순간 돌로 굳어버린다. 필녀에게 붙어 있던 어린 조카들은 “어? 누나 딱딱해졌어.”, “돌인가?” 등등의 대사 내뱉고. 사자, 어린 아이들에게 용돈 다 주고 지갑 넣으려는데, 친척 중 누군가가 다가와 “사자도 얼른 결혼해~ 그래야 애들 용돈도 더블로 주고 그러지. 하하~” 말한다. 사자는 또 순간 열 받아 머리가 사자 갈기처럼 뻗치지만 꾹 참는다. 난보, 화투 정리 중인데, 친척 중 누군가가 “넌 대체 언제 결혼하려고 그러냐? 맨날 그 철학 한답시고 옥상에만 가지 말고!”. 다그친다. 난보는 순간 열 받지만 꾹 참으며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할 때 되면. 하하~” 말한다. [결혼 해야지~ 결혼 해야지~ 결혼 해야지~] 라는 대사가 반복되서 표현되고, 슬모, 요정, 필녀, 사자, 난보, 모두 눈이 핑핑 돌거나 머리 아픈 표정들 동시에 표현된다.
철학한답시고 06화 명절과 철학-2
-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추석의 밤. ‘끼이익’ 소리가 나면서 옥상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가 보여진다. 슬모다. 통화 중인 슬모. 슬모(휴대폰 들고) 휴... 왜 다들 나만 보면 결혼 얘기를 하시나 몰라... 상대방(목소리만) 나도 똑같아~ 우리도 이제 결혼할 때가 됐긴 됐나보다~ 슬모(평상에 앉으며) 결혼할 때라는 게 진짜 있는 걸까...? 상대방(목소리만) 시기 놓치면 너 평생 혼자 살아~ 근데 너 지금 어디야? 조용하네? 슬모아으~~ 나 갑갑해서 혼자 바람 좀 쐬.... -하면서 슬모, 평상에 드러눕는데, 뭔가 등 뒤에서 물컹한다. 슬모, “뭐지..” 하며 돌아보면 평상 위에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슬모(깜짝 놀라며) 으왁!! 누구세요?!! 누군가, 담요를 스윽 내리는데, 요정이다. 요정슬모냐? 슬모아.... 요정 선배.... (시간 경과) 요정과 슬모, 평상에 나란히 앉아 캔맥주를 마신다. 건배하고는 들이키는 둘. 요정명절에 왜 여길 왔냐? 가족들이랑 안 보내구. 슬모헷, 그러는 선배는요? 요정나야 뭐... 다들 재혼해라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는 것도 지겹고... 슬모와! 저도 그랬어요! 다들 저보고 결혼 할 때 되지 않았느냐, 만나는 사람은 있냐, 언제 할 거냐, 빨리 해라.... 에휴, 숨 막혀서 나와 버렸어요. 목소리1그렇지~~ 요새 결혼 적령기가 어딨어~~ 목소리2옳소! 난 내가 하고 싶은 때 결혼 할 거라구!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요정과 슬모,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쳐다보니 필녀와 난보가 서 있다. 둘 다 손에 든 검은 봉지 들며-
철학한답시고 06화 명절과 철학-3
필녀,난보헤헤, 이거 뭐게? (시간 경과) 요정, 슬모, 필녀, 난보, 나란히 앉아 있고, 중앙에 떡과 튀김 등의 명절 음식이 놓여 있다(필녀, 난보가 가져온 것). 다들 맥주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난보왜 다들 내 결혼 가지고 뭐라 하는지 몰라. 결혼 안하고 있으면 꼭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본다니까. 필녀그거 알아? 미크로네시아에서는 결혼을 세 번 하는 풍습이 있대. 젊을 때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이랑 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동갑이랑, 그보다 더 나이가 들면 어린 사람이랑 결혼을 하는 거야. 세 번의 결혼 이미지 삽입. 1. 젊을 때 → 노년의 상대와 결혼 / 2. 중년일 때 → 동갑내기와 결혼 / 3. 노년일 때 → 젊은 사람과 결혼 // *젊은 모습일 때, 중년일 때, 노년일 때 등등의 모습을 재밌게 잘 구분해서 표현. 슬모와, 대박~~ 그래도 괜찮대요? 싸움 나지 않나? 요정어떻게 보면 그게 합리적일 수도 있지. 요즘은 결혼 적령기라는 관념도 희박해졌잖아. 세 번의 시기에 다른 상대방과 결혼하면 더 좋을 수도 있지. 난보사르트르랑 보부아르의 결혼 이야기도 있잖아. 계약 결혼! 슬모계약 결혼이요? 난보프랑스 철학자였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도 인정해주는 계약 결혼을 했었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얼굴 이미지. 그 사이로 [결혼은 결혼이되 다른 사람과 사랑해도 괜찮다] 라는 텍스트가 선언문처럼 표현된다. 슬모우와~~ 이건 더 대박!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난보솔직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막장 드라마 같기도 했어.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지막까지 경의를 표했지. 요정맞아.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어. “우리의 삶이 그토록 오랫동안 조화롭게 하나였다는 사실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난보두 사람의 계약 결혼은 사랑을 위한 파격적인 실험이었던 셈이지. 슬모아... 그 유명한 철학자들도 사랑하고 질투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찍기도 하는군요... 목소리명절의 내 꼬라지도 막장 드라마 같지. 다들 “응?” 놀라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면, 사자가 서 있다.
철학한답시고 06화 명절과 철학-4
사자(송편이 든 투명 봉지 들며) 조카들한테 돈 다 털리고 이거 하나 건졌네. 모두들와우!! 쏭편~~!!! (시간 경과) 평상 위, 다같이 둘러 앉아 맥주와 송편, 그 외 추석 음식들을 먹는다. 푸짐한 상차림이다. (*여유로운 명절의 밤 분위기가 연출되었으면 합니다) 사자내가 아까부터 쭉 들었는데 말야.... 그래서! 너희들 다 결혼이 하고 싶은 거야, 안 하고 싶은 거야?? 난보모르겠어요. 솔직히 결혼하면 자유를 잃을 것 같기도 하고,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필녀하지만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엔 이 세상은 너무 피곤할 것 같기도 하고... 슬모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긴 한데.... 요정누구나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결혼은 선택할 수 있는 거잖아. 사자(음식들 맛있게 먹으며) 오케이.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 명절이란 건 되게 오래되고 케케묵은 전통이잖아. 하지만 여전히 명절은 우리에게 포기되지 않고, 기념해야 하는 날이야. 아무리 케케묵은 것이라 해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기념해야 하는 날이 있는 거야. 모두들(고개를 끄덕이고) 사자결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결혼을 하기 힘든 세상이고 꼭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는 세상이지만, 결혼이란 게 무조건 버려야 하는 가치는 아닌 거야. 결혼 기념일이란 말이 있잖아. 결혼은 기념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구. 슬모기념.. 한다..... 사자변해가는 시대에 맞춰 결혼을 기념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는 거야. 우리 모두 다, 자기만의 결혼을 찾아야 해.
철학한답시고 06화 명절과 철학-5
모두들, 환한 보름달빛 아래,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들. 그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샤를 푸리에는 결혼과 출산, 양육에 이르기까지 공동체가 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오늘날 복지의 차원에서도 수행되고 있지. 모두들,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쳐다보면, 덩치남이 옥상 난간에 기대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또 오셨네.”, “와서 음식 좀 드세요.”, “선배..라고 부르면 되려나?”, “덩치 진짜 크다..” 등등 숙덕거리는 모두들. 덩치남(쳐다보며) 함께 있는 너희들을 돌아봐라. 결혼이라는 무게를 혼자서 견뎌내려 할 필요 없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 않냐. 명절 밤에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모인 것처럼, 결혼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다. 슬모, 요정, 필녀, 난보, 사자, 모두들 서로를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런데 어디선가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다들 소리 나는 쪽을 보면 덩치남이 평상 앞으로 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다. 슬모(빙긋 웃으며)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요정(빙긋 웃으며) 이렇게 모인 것처럼, 사자(빙긋 웃으며) 함께... 필녀(빙긋 웃으며)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야. 난보(빙긋 웃으며) 그럼..... 다함께(즐겁게 소리치며) 이제 먹자아! 다같이 웃음 소리 커지며, 음식들 맛있게 먹는다. 맥주도 건배하고- 보름달 아래, 옥상의 명절 밤이 깊어간다. 그 위로 슬모의 나레이션 표현된다. 슬모 NAR.함께의 힘을 믿고. 결혼한 모두들, 해피 추석!
덩치의 철학 코멘트
추석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의례 가운데 하나다. 시대나 상황에 따라 의례의 기준이나 방식들이 미묘하게 변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도 조상을 기리는 절차나 방식이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국가적 규범으로 규범화되기도 했다. 이는 국민적 동질성을 이루고 통합을 위한 방식으로 의례가 활용되거나 이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동체의 통상적 감각을 형성하는 데에 추석과 같은 의례만큼 중요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추석을 맞이하면 친척들의 늦은 결혼이 항상 염려되는 것이다. 추석이란 혈육의 동질감을 강화하고, 차이를 공동체 속에 녹아 들도록 해야 하는 날이니까. 그러나 결혼이란 질문의 대상인 것이지, 사람이라면 응당 반드시 해야 할 관계 형식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천천히,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림
김지혜
감수
김만석 (예술공간 ‘공간 힘’ 기획자, 인문철학연구공간 ‘지하생활자’ 공동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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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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