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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철학

사랑의 철학자들

철학한답시고 글 안종준 / 그림 김지혜
cafe M 안에 앉아있는 두 남녀, 남자는 요정
여자 : 우린 다시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없을거야. 그렇지?
요정 : ......
여자 : 그럼.... 잘 지내구...
말을 마친 여자가 자리를 떠나고 요정은 카페 밖을 쳐다봄
철한한답시고
5 사랑의 철학자들
‘시끌 시끌’한 시장 안 슬모가 sale하는 꿀수박을 쳐다보며
장슬모 : 보자... 어떤 게 맛있으려나....
옆사람 : 이게 색깔도 선명하고 줄무늬간격도 일정하고... 소리도 좋고...
장슬모 : 응? 저게 맛있는 건가?
통통 두들겨보는 옆사람
장슬모, 요정 : 이걸로 주세요!
장슬모 : 엥? 요정....선배?
요정이 수박을 들고 ‘저벅 저벅’ 걸어가는 두사람
‘힐끔’ 슬모가 요정을 쳐다보며
장슬모 속마음 : 기분 안 좋으신가...
장슬모 : 어디... 다녀 오세요?
요정 : 응. 약속이 있어서.
장슬모 : 아, 네...
어색하게 터벅터벅 걷는 두 사람
장슬모 속마음 : 아... 어색 불편해지면 안되는데.... 무슨 얘기라도 꺼내야 해...!
장슬모 : 선배는 왠지 가정적이실 것 같아요! 수박 같은 거 맛있는 것도 잘 고르시구~
요정 : 그야 예전에 결혼해서 가정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뭐 혼자지만.....
장슬모 : 아아~~ 제, 제가 말실수를.... 그냥 어색해지기 싫어서 말 꺼낸 건데...
요정 : 괜찮아. 올라 가자.
장슬모 : 네...
옥상 밖에 모여 앉은 다섯사람
‘써걱’ 수박이 썰림
필녀 : 네에~!? 뭐,뭐,뭐 뭐라구요~~~~ 전 와이프를 만나고 왔다구요?!!!
난보 : 진짜, 진짜?!!?!!
끄덕이는 요정
장슬모 속마음 : 그래서 표정이 안좋으셨구나...
사자 : 얘기는 잘했고?
‘삭삭’ 수박을 써는 사자
요정 : 응. 뭐... 그럭저럭...
장슬모 : ........
옆에서 안절부절하는 장슬모
난보 : !
분위기 전환을 꾀하는 난보가 ‘와락~’ 요정에게 어깨동무를하며
난보 : 에이~~ 뭐 어때! 선배도 이제 새로 연애할 건데!! 그쵸??
요정 : 때가 되면 하겠지... 별 생각 없어.
분위기 전환을 꾀하는 필녀
필녀 : 저기, 슬모는 남자친구 없어?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잖아~~
장슬모 : 네에... 전 아직...
필녀 : 왜왜왜왜왜~~??
난보 : 잘한다 필녀선배!
필녀 : 이렇게 예쁜 청춘에 왜 남친이 없는 거야~~
장슬모 : 하하.. 선배는요?
‘쿠웅’ 좌절하는 필녀
필녀 : 그런 건 묻지마....
장슬모속마음 : 또, 또 실수한 건가... 하하...
난보 : 우리 다 싱글이야. 뭐 딱히 연애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싱글 난보, 싱글 사자, 돌싱 요정, 모태솔로 필녀
요정 : 난 솔직히 조금 피하고 있는 것 같아. 쉽게 시작하기 두렵달까...
사자 : 요정이야 상처가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
다 썬 수박을 ‘스윽’ 내미는 사자
사자 : 게다가 요즘은 연애라는 게 너무 가벼운 관계가 되어버려서 더 신중해지긴 해. 누구처럼 가벼운 연애를 더 신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보 : it's me~ 하핫~~ 소개팅 어플같은 것도 넘쳐나잖아요! 맘만 먹으면 오늘 당장이라도 시작 가능! HAHAHA~
필녀 : 그래서 요즘은 마치 연애가 네트워크처럼 된 것 같아. 그물망 같은 곳에 던져진 느낌?
장슬모 : 아... 그래도 다들 그만큼 연애를 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고...
필녀 : 그렇지. 예전에 비하면 훨씬 더 간편하게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이야. 하지만 그만큼 편리하게 관계를 끝낼 수도 있는 거지. 언제든지 삭제 키를 누르면 되니까.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들 그림에 창이뜸 ‘필녀 님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사자 :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 속에서 연애도, 사랑도 하기가 쉽지 않아. 나나 요정처럼 조심해질 수밖에.
장슬모 : 저... 그럼... 이런 질문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보 : 당연히 되지~~ 우리 슬모 뭐가 궁금해?
장슬모 : 요정 선배는... 왜 헤어지신 거에요? 서로 삭제 하신... 건가요...?
돌이 되는 필녀와 난보
사자 : 슬모가 묻잖아~ 대답 좀 해줘.
요정 : 어어... 뭐랄까... 우리 같은 경우는... 삭제라기 보단...음... 단 한 번도, 서로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어
사자 :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얘기해~~ 좀 쉽게 말해줘 봐!
요정 : 음, 그럼...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장슬모 : 네...
요정 : 넌 그래본 적 있니? 어... 옆집 사람들한테 떡도 주고 그러긴 했지만... 사랑했는지는 잘... 으~음
떡을 줬던 모습 상상 - 슬모가 ‘떡좀드세요’ 하면서 이웃이 ‘고마워요~’ 함
요정 : 우선 이 말은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돼. 이 때 자기애라는 건 마치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거거든. 만약 자길 사랑하지 않으면 어쩔거야?
장슬모 : 아... 그러네요.
요정 :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말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결국 내가 사랑받을만한 자아이기 때문이라고. 그말인즉슨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거고, 타인들이 나를 존중한다면 나에게는 분명 오직 나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거지.
‘자기애:내가 나를 사랑함 단계 다음, 이 때의 나:사랑받을 만한 자아 단계 다음, 사랑 받는 자아:존중 받을 만한 사람 단계 다음, 존중 받는 사람: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그 사람만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이런 도식이죠’ 라고 요정캐릭터가 설명
요정 : 그래서 자기애라는 건 결국 나를 나만의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와도 같은 거야.
장슬모 :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아주 당연한 건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요정 : 그렇지... 그럼 이제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뭘 의미하는 건지 알겠니?
장슬모 : 음... 나를 나만의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듯이 이웃도 그렇게 인정해주라는 거... 맞나요?
요정 : 맞아. 서로의 독특함을 존중하자는 말과도 같은 거야. 그런데 우린 그걸 못했어... 그래서 헤어지게 된 거지. 아...
사자 : 그런데 사실 요정 뿐만 아니라 우린 대부분 그런 사랑을 잘 못하고 있어.
사자 :왜~ 보통 사랑하면 상대방의 모든게 나와 똑같아지길 원하잖아. 한 몸처럼 됐으면 좋겠고, 괜히 나와 틀리면 서운해지고. 요정의 전부인이 했던 말을 회상
‘우린 다시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없을 거야...’
난보 : 그래서 내가 젤 좋아하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의 적은 바로 이기주의라고 하지. 두 사람의 차이를 긍정하지 않고 나와 똑같아지길 원하는 자기 자신이 사랑의 가장 큰 적이라는 거야.
난보 캐릭터와 필녀 캐릭터 : 우린 똑같아 져야 해. 사랑하는 사이니까!
장슬모 : 그럼... 우린 이제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 걸까요? 관계는 넘쳐나는데... 그 속에서 우린 더 외로워지기만 하는 것 같아요...
필녀, 사자, 난보 : .........
요정 : .........내가 못했던 거.
장슬모 : 선배가 못했던 거라면...
요정 : 사랑에서는 두 사람이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창조적인 걸로 변화시켜 갈 수 있어야 돼. 사랑은 둘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 그게 바로 바디우가 말하는 둘이 등장하는 무대야.
장슬모 : 둘이 등장하는 무대....
요정 : 그러니까 우린, 사랑이라는 무대에 하나가 아니라, 둘이 함께 설 수 있어야 해.
무대에 ‘짠’ 하고 서있는 슬모와 요정
장슬모 : 에헤헤...
수박을 냠냠 먹던 필녀
필녀 : 무슨 생각하냐? 혼자서.
장슬모 : 아하하~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하하...
신호가 온듯한 필녀 필녀 : 헉! 으윽!! 전부 비켜~~
엎드려서 꾸르르륵 소리를 내는 필녀 옥탑방 안으로 쌩하고 들어감
장슬모 : 오랜만에 등장이네요
사자 : 폭풍 설사 필녀
난보 : 화장실 또 막히는 거 아냐..
요정이 미소짓고 슬모가 쳐다봄
요정 : 후...
슬모도 함께 미소지음
장슬모 독백
‘무더운 여름. 그 열기만큼 제대로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다. 언젠가..... 둘이 등장하는 무대에 설 수 있길.’
-계속.
요정의 철학 코멘트
철학과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철학은 이성의 영역이고 감성은 예술의 영역이니, 철학과 사랑은 어울리는 조합일 수 없었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렇지만 알랭 바디우는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랑이라고 보고, 철학의 언어로 ‘사랑’을 적극적으로 예찬한 바 있습니다. 사실 사랑이 철학의 주요한 대상이라고 논의한 사람은 알랭 바디우와 같은 남성 철학자만들이 아닙니다.
한나 아렌트에게도 ‘사랑’은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이처럼 현대철학자들에게 사랑 개념이 중요했던 것은 20세기가 인류의 비참이 초래된 시대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종주의와 전쟁을 경유했던 이들 철학자들에게는 전쟁과 같은 파괴와 살육을 넘어설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고 그것은 언제나 사랑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었습니다. 인류는 이 사랑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가늠하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한 마디
한나 아렌트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녀의 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저작입니다. 이 가운데 ‘자애’에 기반한 이웃 사랑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오늘날 이웃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그림
김지혜
감수
김만석 (예술공간 ‘공간 힘’ 기획자, 인문철학연구공간 ‘지하생활자’ 공동운영자)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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