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외국인노동자 병원의 ‘눈물‘- 하종오 시인의 『국경 없는 공장』

외국인노동자병원의'눈물'냄새, 하종오 시인의 『국경 없는 공장』을 가다
구로디지털단지 역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빗줄기가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 역사를 빠져 나와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는 눈빛 중에는 오후 내내 내리는 빗줄기가 멎기를 기다리는 걸음이 있었다. 비둘기처럼 처마에서 날개를 접은 그들은 무슨 사연인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있었다. 먼 이국에서 온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처마 끝에서 발끝을 모으고 있던 이들 중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서 이제 막 생각난 듯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우산도 없이 뛰어가는 그들의 등에는 파초 잎처럼 넓고 무거운 근심이 한 장씩 얹혀 있었다.
나는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걸음 하나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저기요. 가산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나요?” 손가락으로 길을 일러준 이는 스리랑카 혹은 미얀마 인으로 그는 이 동네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산을 같이 쓸래요”하는 내 말을 미처 알아들을 사이도 없이 황급히 빗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일러준 대로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중에 어느 인파에 떠밀려서 보폭을 줄였다. 잠깐 우산의 중심이 뒤쪽으로 기울어져서 가방에 든 카메라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 『국경 없는 공장』이 젖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이 됐다. 나는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었다. 빗줄기는 조금 전보다 더 퍼부어서 구두의 앞쪽이 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잠시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내 눈에 정면으로 잡혔다. 나는 그의 등을 한참 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등은 좀 전에 길을 가리켜 주고 '떠난' 이의 등과 다르지 않은 '착한' 뒷모습이기도 했다.
그의 등은 넓은 초원을 달리는 포유류의 등처럼 아름다운 굴곡을 갖고 있었다. 또 아름다운 곡면은 '벼랑' 혹은 '절벽'의 한 모습이기도 하였다. 그 절벽의 맨 윗자락이 비에 젖어서 나는 잠시 얼떨떨했다. 잘 모르는 이에게 선뜻 우산을 받쳐주지 못한 불편의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의 젖은 잔등을 보면서 한 줄기 상념에 젖기 시작했다. 당신은 왜 가을비에 젖을 수밖에 없는지요.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요. 빗물은 그의 머리카락을 적시고 눈썹을 적시고 이내 그의 널따란 등을 계속 적시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으스스 추운지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서 물방울 몇 개를 털어냈다. 그것은 '살아야겠다고' 하는 여느 포유류의 가느다란 몸짓을 닮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물방울 중 하나가 나의 깊은 내면에 떨어져서 '내가' 젖었다는 것을, 그는 전혀 눈치 채지는 못할 일이었다. 그의 걸음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반대편의 길로 껑충 뛰어가 버렸고 '멀리' 눈에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사슴의 심장으로 안고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빗소리를 듣다가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구로까지 서둘러서 온 걸음이 어느덧 4시. 아직 30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30분 후에는 사슴 같은 눈동자의 그이가 따뜻한 머그잔을 쥐고서 '행복하였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 사이 버스가 와서 나를 태웠고 나는 몇 정거장을 지나서, 외국인 노동자 몇 사람과 함께 버스 밖으로 꺼내졌다. 4시 30분. 지난밤에 인터넷으로 확인한 구로구 인근의 공장 풍경들이 눈에 선했다.
벽에 걸린 액자
우산을 펴든 왼손과 달리 오른손은 '끔벅거리는' 카메라의 눈을 조심스럽게 쥐고 있었다. 셔터를 눌러서 늦가을의 앙상함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찰칵. 찰칵. 나는 초록색깔의 육교를 찍었고 달리는 자동차를 찍었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옮겨서 드디어 '외국인노동자병원'의 간판을 하나 찾아냈다. “저기다” 나는 '아픈' 외부의 전경은 찍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곳 낯선 '공간'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젖은 우산에서 물방울이 미안하게 실내로 떨어져서 들어왔다. 그곳은 『국경 없는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휴식을 얻은 것처럼 아픈 몸을 뉘이고 있는 '무료' 병원이었다.
공간(空間)의 의미는 그 용법(用法)에 따라서 채워진다. 나는 한 권의 시집 또한 그러한 공간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 '골똘하게' 뒤좇는 일은 결국 시가 놓인 '공간'을 찾아내서 그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종오 시인에게 전화를 하였을 때, 당신께서는 시집의 '공간'이 어느 한 곳을 지칭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시인은 내가 궁금해 하는 시의 '공간'이 어디라고 일별해 주지 않았다. “알아서 생각해요.” 시인의 말대로 시집 어디에서도 시의 '공간'이 '구로' 라고 하는 '구체적인' 증언은 없었다.
『국경 없는 공장』은 실재의 공간이 지시되어 있지 않는 '독특한' 시집이었다. 시인의 말이 수화기 저편에서 내 쪽으로 들려왔을 때, 나는 시인이 본 풍경을 '나도 함께 보면서' 따라간다고 확신했던 감정의 동선을 잠시 구부려놓고 난감했었다. 시집 속의 '공간'은 시인이 만들어 놓은 '임의의' 공간이었으며 그 공간은 독자 개인이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개별 '용법'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도서 국경 없는 공장
나는 구로의 '외국인노동자병원' 입구에서 시인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이 시집의 '공간'은 한 곳만을 지칭하는 '여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공간은 차라리, 가상(假想)의 '저기' '공간'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로의 외국인노동자병원이 있는 여기로 오게 된 사연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인은 말했다. “어디 외국인 노동자가 구로지역 동네에만 존재하나요. 전국 각지에 흩어져서 전국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문제가 일어나고 있지요.” 그렇다면 『국경 없는 공장』 속에 나오는 시적 여로의 공간은 분명히 여기일 수도 '있고' 또한 '아닐 수도 있는' 두 개의 공간으로 겨냥해서 그 '용법'을 달리해서 나누어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제 막 복도의 흐릿한 불빛을 따라서 들어온 병실에는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했다. 이 휘발성의 냄새는 그 역사가 참으로 길고 아픈 역사이리라. 그 냄새는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나를 '깨우쳐' 줬고 그것은 수많은 통증의 기억을 순식간에 내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 냄새의 근원으로부터 고통의 신음소리가 함께 퍼져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가 있었다.
나는 슬쩍 열어놓은 병실 문이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한 외국인 노동자의 몸과 마음이 나무토막처럼 쓰러져서 누워 있었다. 그와는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 순간은, 엎드려 있는 그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다만 그의 '환부'가 형광등 불빛 아래로 환하게 드러나고 있었는데, 그 누군가가 신문지로 그 빛의 일부를 가려놓은 것이 특이해 보였을 뿐이다. 그는 '어두운' 곳에서 일만하던 이로서 '지금'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빛'이 '분명'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나는 이층 병실로 올라가면서 창문에 기대어서 말라 죽어가는 나뭇잎을 한 장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찰칵. 그것은 여름과 가을빛을 덧칠해 놓은 그림 같았다. 그것은 차라리 아픈 외국인 노동자의 한 '얼굴' 같았다. 창 밖을 응시하던 '생명체'의 한 눈빛이 햇빛 한 줄기를 얻지 못해서 거의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 이 가을이 물러가고 나면 “당신의 모습은 더 힘겨우리라” 나는 초라한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병실로 이동하였을 '수많은' 외국인노동자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의 한쪽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종오 시인이 「성형」이라는 시에서 말했던 다음과 같은 '아픈' 구절이 그 무렵쯤 하여 떠올랐다. 나는 숨을 고르고 아직 빗줄기가 쏟아지는 창 밖을 자세히 건너다 볼 뿐이었다. 빗줄기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여름과 가을빛을 덧칠해 놓은 것 같은
말라 죽어가는 나뭇잎 한 장….
그것은 마치 아픈 외국인 노동자의 '얼굴'
같았다.
그 계단 끝에는 이제 걸을 수 없는 이들이 벗어놓은 휠체어가 한 다발 있었다. 그리고 그 타원형의 계단을 모두 올라가서는 '그들' 아픈 외국인 노동자들의 간절한 '상징'인 그것이 있었다. 십자가(十字架). 여기에 앉아서 그들은 '무엇을' 소망하였던가. 나는 그들의 아직 스러지지 않은 소망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 표정이 다 벗겨져 버려서
딸이 알아보지 못하고
아내가 알아보지 못할 테니
돌아갈 수 없다고 소리쳤다
갸름했던 눈시울과 미끈했던 콧등과
도톰했던 입술
돌려 달라며 날뛰다가 까무러치는
스물일곱 살 미야마리즈
이렇게 자신이 돌아가면
마당에서 기르는 개도 몰라본다고
마을에서 자라는 티크나무도 몰라본다고
산재보험금과 보상금 받아들고
의사선생님에게 고쳐달라고
아내와 선생님에게 고쳐달라고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미소만이라도 살려달라고
- 하종오 「성형」 일부
외국인 노동자들인 그들이 '사고' 후에 제일 먼저 걱정한 일은 그의 아내와 딸들에게 줄 미소였다. 그 '미소'를 돌려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던 이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의사선생님께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미소만이라도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하였을 그 자리에, 나는 앉아 털썩 주저앉아 보았다. '여기서' 그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떨렸을까. 나는 그들을 위한 짤막한 기도를 하나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었다.
나는 '곰표 밀가루'의 누런 성소(聖所)와 같은 빛을 뒤집어 쓴 하종오 시인의 『국경 없는 공장』을 읽는 동안에 생각하였던, 그 형형한 눈빛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밤늦도록 불을 켜놓은 그 '공장'을 고요를 이곳에 와서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고요를 채우고 있는 불빛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였는데. 그것은 슬픔의 냄새였고… 눈물의 냄새였고 피범벅이 된 그들의 아픈 육신일 거라는 생각이 잠깐 사이에 스쳤다. 나는 외국인노동자병원을 나오면서 '하얀' 붕대를 끌러내면 우리는 똑같이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자의 상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를 좀 더 뿌리고 싶은 하늘은 어느덧 더 껌껌한 하늘이었다. '울고 싶으면 더 울어라' 하고 나는 구로의 흐린 하늘을 쳐다봤다.
이기인 시인. 1967년생.
시집『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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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6-09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