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철학

요리왕 슬모

철학한답시고 글 안종준 / 그림 김지혜
옥상생활자들의 옥탑방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이 영화를 보고있는 사자, 요정, 난보 난보 : 대박 요정 : 언제 봐도 죽여줘. 슬모가 문을 열고 들어옴 장슬모 : 안녕하세요. 요정 : 응. 사자 : 어서와~ 장슬모 : 와~ 살인의 추억 오랜만~ 사자 : 근데 필녀, 밥 먹어야 되지 않아? 필녀 : 머어야지.. 해고하.. (*먹어야지. 배고파.) 문에서 스윽 하고 나타난 필녀 얼굴이 퉁퉁퉁 부어있음 장슬모 : 헉 … 어머... 필녀 선배 왜 저렇게 됐... 난보 : 바보같이 사과 알레르기가 있는 걸 잊고는 짐승처럼 엄청 먹어댔거든. 장슬모 : 대체 얼마나 먹었길래.... 사자 : 그럼 뭐 먹을지 골라볼까? 철학한답시고 3 요리왕 슬모 핸드폰 배달 어플을 키는 사람들 ‘척. 척.’ 맛있는 배달음식들이 나옴 ‘두둥 둥 두웅!’ 장슬모 : 먹을 게 많네요. 헤헤... 요정 : 군침 도는구만.... 맥주도 시키자. 난보 : 다 먹고 싶어... 우왕... 장슬모, 요정 : 헥헥 맛있겠당… 난보 : 여기! 여기 시켜먹자~ 요정 : 여기는 어때? 조금 더 싼 것 같은데~ 난보 : 여기도 괜찮아 보여. 사진 이쁘게 찍었네~ 장슬모 : 여기도 맛있어 보여요!
모두 : 뭐 이리 음식 하나 시키기 어려워...
장슬모 : 그럼 저희....... 그냥 만들어 먹을까요? 모두 : !!! 천재…. 필녀 : 그, 그래서 내 밥은… 대형 슈퍼마켓에 와 카트를 끄는 난보, 요정, 사자, 슬모 난보 : 히야~ 북적북적 하네~ 마트는 올 때마다 스펙터클 하단 말야. 사자 : 정신이 하나도 없네. 빨리 살 거 사고 가자. 장슬모 : 그럼 저희 뭐 살까요? 난보 : 글쎄. 요정 : 술. 사자 : 그건 아니지~ 필녀랑 같이 먹을 음식 사야지. 요정: 뭐 먹을 건데? 사자 : ................. 모두 : …….. 장슬모 : 아무도 요리 해본 적 없으신거죠....? 모두 끄덕 x100 장슬모 : 하하..... 그럼 밀푀유 나베 먹어요! 요즘 유행한다는! 누군가 : 밀푀유? 우유인가? 장슬모 : 우선 야채를 사야 하는데..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네... 사자 : 그러게... 이 마트는 뭐가 이리 많은 걸까. 난보 : 아무 거나 골라~~ 먹으면 다 똑같지 뭐. 사자 :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이 많은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우린 알 수가 없잖아. 요정 :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식재료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힘들게 됐지. 그건 큰 문제일 수도 있어. 장슬모 : 그럼 사지 말까요? 사자 : 아니, 필요한 건 사야지. 뭘 사든 슬모가 멋지게 요리해줄 거니까. 장슬모 : 헤-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외침 행인1 : 사람이 쓰러졌어!
시식코너 앞에 난보가 쓰러져있음
장슬모 : 앗. 선배! 사자 : 저 바보! 아무 거나 먹더니! 옥탑방 - 난보 옥상단상에 앉아 멍~ 하고있음 요정 : 필녀와 달리 난보의 알레르기는 이런 우울증으로 나타날 때가 있어. 사자 : 원래 난보는 우울증이 심했었어. 사실 이 녀석의 밝은 성격은 우울증을 덮기 위한 것이기도 해. 장슬모 : 그랬구나... 선배는 걱정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필녀 : 해고하.... 합....(*배고파. 밥.) 모두 : ............. 요정 : 휴~ 총체적 난국이구먼. 사자 : 오케이! 슬모, 요리하자! 먹고 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장슬모 : 네! 그럼 요리 모드로~~!! 앞치마를 두른 슬모, 요정, 사자 요정, 사자 : 슬모! 뭐부터 하면 되지?! 장슬모 : 우선 다시마를 씻고 멸치 X을 떼주세요! 그리고 물도 올리고! 요정, 사자 : 예 쉐프! 슬모 칼을 번쩍 들더니 야채를 ‘타다다다’ 썰어나감 사자 : 소, 손이 보이질 않아... 요정 : 무림 고수를 보는 것 같아... 슬모 냄비에 불을 키고 재료를 모두 육수에 넣는다 장슬모 : 모두 넣고 육수 끓이기!! 자, 이제 밀푀유를 만듭니다! 배추와 깻잎을 씻고 줄기 부분을 잘라서 준비해주세요! 요정, 사자 : 오케이!! 요리설명 ① 추-깻잎-고기-배추-깻잎-고기-배추순으로 3단으로 쌓는다. ② 3등분 해서 썰어 둔다.
장슬모 : 요리사에게 쉴 틈이란 없는 법! 재료 손질하기!!
③ 맨 밑에 청경채를 깔고 위에 숙주를 올린다. ④ 3등분 해둔 밀푀유쌈을 빙 둘러 차례 차례 냄비에 넣는다. ⑤ 가운데 빈 공간에 느타리와 팽이버섯을 넣어주고 ⑥ 마지막으로 십자 칼집을 낸 표고버섯을 살짝 올려주면.. 완성! 모두 : 오오! 아름다워. 꿀꺽 장슬모 : 이제 육수가 끓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면 돼요. 헤헷. 모두 : 대단해, 쓸모있는 녀석이었어, 모두 박수를 침 ‘짝짝짝짝’ 사자 : 슬모는 언제부터 이렇게 요리를 잘하게 된 거야? 이런 기술까지.. 장슬모 : 예전에 혼자 지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맨날 비슷비슷한 거 사먹기 질려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어요. 요정 : 그러고보면 요즘은 먹을 게 많긴 한데 뭐가 좋은 음식인지를 모르겠어. TV를 틀어도 다 먹을 것들이고, 아까 마트에서도 온통 먹거리들이었는데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진 모르겠단 말이지. 먹거리가 너무 아무렇게나 깔려 있는 것 같아. 구분도 잘 안되고. 장슬모 : 밥은 먹고 다니냐? 슬모 갑자기 송강호의 흉내를 냄 사자 : 뭐지.. 장슬모 : 헤헤, 왜 어르신들은 만나면 인사 대신에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묻고 그러잖아요. 그만큼 밥은 중요한 것 같은데 요즘 다들 너무 아무 거나 먹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요정 : 그래서 흉내낸 거였냐... 사자 : 어쩌면 알레르기는 아무 거나 받아들이면서 생긴 질병일지도 몰라. 왜 철학자 한병철은 예전엔 면역학적 시대였다고 하잖아. 예전엔 이질적인 것들에 대해 경계하고 밀어냈던 면역력이 있던 시대였다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아무 거나 받아들이게 된 거지. 장슬모 : 그럼 지금은 면역학적 시대가 아닌 거네요...?
사자 : 그런 셈이지. 지금은 그저 다들 괜찮다고 해버리잖아. 정말 아닌 건 강하게 거부하면서 면역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잘 그러지 않는 거지.
장슬모 : 그렇지만... 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괜찮다고 받아들이면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요정 : 그렇게 괜찮다고 아무 거나 먹다가 저렇게 되는 거지. 요정 난보와 필녀를 가리킴 난보, 필녀 : 우리가 왜... 요정 : 슬모 너 네 자신이 소진되어 가는데도 괜찮다면서 일한 적 있지? 장슬모 : 아... 네... 있죠... 요정 : 네 자신이 소진되어 갔다고 느꼈다면 그건 괜찮은 게 아닌 거라구. 그렇게 괜찮지 않은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다가 탈이 나는 거야. 필녀의 알레르기처럼. 우울증도 마찬가지야. 우리들은 무언가를 부정하기보다 과잉 긍정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거야.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말야. 우울증은 그 상처인 거지. 장슬모 : 음.... 그럼 저희는 모든 걸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긍정’이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부정’의 면역력을 길러야 하는 거군요. 사자 : 서당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 슬모 생각이 좋아졌네. 장슬모 : 헤헤, 선배들 덕분이죠~ 요정 : 응? 덩치남이 와서 육수를 국자로 퍼 나베냄비에 부음 ‘쪼륵-‘ 요정 : 또 왔네... 사자 : 이번엔 요리해주시네.. 덩치남 : 지천에 음식이 깔리고 먹방이 아무리 판을 친다해도, 우리가 신중하게 밥을 만들고 나눠 먹을 수 있다면, 우린 보다 튼튼한 면역력을 키울 수 있을 거다. 나베냄비에 불을 키는 덩치남 ‘타닥-‘ ‘화륵’ 장슬모 : 저 분... 전에도 오시지 않았나요? 사자 : 응. 항상 저렇게 뭔가 말하고 사라져. 진짜 철학자라는 소문도 있고... 요정 : 어쨌든 방금은 정확한 말이었어... 보글보글 완성된 나베 사람들 : 우와~ 다 됐네! 오오
장슬모 : 자, 이제 나눠 먹어볼까요?
사람들 : 좋아~~! 사자 : 후룩- 요정 : 와앙 장슬모 : 으음~! 필녀 : 알레르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 난보 : 기분이 좀 좋아지는 것 같아.. 앙- 사람들 모두 하하하.. 호호.. 즐거워함 ‘다함께 나눠 먹을 때, 우린 분명히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 계속.
요정의 철학 코멘트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에너지원을 보충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음식을 생산한 사회와 정신을 동시에 만나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필녀의 알러지는 바깥의 음식이라는 물질이자 정신과 안이 갈등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건 몸의 불화이자 문명의 불화를 의미하기도 해요. 잘 알다시피 오늘날 숱한 갈등들도 이런 알러지와 유사하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바깥과의 불화를 배척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지혜(필로소피 혹은 음식)를 나누는 일이 아닐까요? 마치 사과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사과를 전자 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듯이 말이에요.
작가의 한 마디
음식은 인류가 오랜 시간 공들여 조직해온 문명의 정수입니다. 그것은 정신이면서 물질이지요. 일찍이 레비스트로스가 <신화학1>에서 파악했듯 날 것과 익힌 것, 신선한 것과 부패한 것, 젖은 것과 태운 것은 단순히 음식 조리법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조금은 어려운 책일 수 있지만, 먹방과 쿡방의 원천에 닿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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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