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철학

수다의 정원

철학한답시고 글 안종준 / 그림 김지혜
탕비실에 물건을 채우는 슬모, 창문을 활짝 열고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함
장슬모의 독백- ‘옥상 생활자들을 만난 이후 내가 하는 일이 쓸모없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됐다.’ 회사사람 : 슬모씨, 좋은아침~ 장슬모 : 안녕하세요! ‘이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한다는 거, 그럼으로써 세상이 돌아간다는 거, 그것도 꽤 의미있는 일이니까.’ 흐뭇함에 ‘헤~’ 웃고 있는 슬모, 그런 슬모를 보고 ‘수군수군’ 속삭이는 사람들 사람들 : 혼자 웃고 있어.. 철학한답시고 2 수다의 정원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무실 직원 1 : 강팀장님, C업체에서 견적 받으셨어요? 왜 계속 안준대요? 직원 2 : 박PD야, K건 제안서 마무리 했냐? 목덜미를 잡고 지끈거리며 걸어오는 성과장을 보며 직원 3 : 성과장님,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아직도 얼굴 빨간 거 같은데~ 성과장 : 어우~ 죽겠다야. 젊었을 땐 거뜬했는데.. 그땐 기본 주량이- 성과장이 뭔가 생각난듯이 이대리 쪽을 보며 성과장 : 아. 이대리, 미팅 몇 시지? 이대리 : 좀이따 바로요~ 그냥 몸만 들어오심 돼요. 성과장 : 어이구, 나 챙겨주는 건 이대리 뿐이구만.
성과장 : 아, 슬모씨 건강검진 받고 왔어?
장슬모 : 아, 네네. 아무 이상 없다고... 슬모가 말하면서 건강검진 표를 성과장에게 건냄 성과장 : 몸 잘 챙겨야지. 그래야 회사도 잘 되지. 허허~ ‘우리 회사는 매일매일 엄청 바쁘다. 이렇게 바쁠 땐 서로의 안부도 일하는 중에 묻곤 한다.’ 이대리 : 슬모씨, 나 아까 부탁한 것 좀~ 장슬모 : 아, 네네~ 여기요,대리님. 이대리 : 고마워요. 슬모씨도 이번 회의 들어와요. 이대리가 파일을 건내받고 웃으며 슬모에게 말함 장슬모 : 네? 저도요? 장슬모 속마음 : 내가? 회의에? 들어가서 뭐하지? 회의실- 분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사람들과 노트북으로 기록하는 슬모 이대리 : A업체에선 자기네들 역사를 재밌고 쉽게 전달하고 싶어 해요. 직원 1 : 그럼 5분짜리 영상 같은 걸로 만들어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요즘 웹드라마 유행하잖아. 직원 2 : 에이, 웹툰으로 보여주는 게 최고지. 간단히 볼 수도 있고, 영상보다 만들기도 쉽고. 직원 3 : 사진 찍어서 보여주는 건 어때? 포토 에세이처럼 말야. 이대리 : 슬모씨도 한 마디 해요. 좋은 아이디어 많을 것 같은데. 슬모 깜짝 놀라면서 장슬모 : 예!? 저요? 아... 그럼.... 아무래도.... 음.... 재밌고 쉽게 전달하는 거면..... ..아! 제가 어제 드라마를 하나 봤는데... 중년 여자들이 한 집에 같이 살면서 떠들고 막 부딪히고 그러면서... 요즘 여자들이 하는 고민들을 얘기하더라구요... 그러니까... 그게 엄청 재밌었는데.... 저도 막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여자들한테 막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고... 말투를 따라해보기도 하고.... 하하... 성과장 : 슬모씨. 장슬모 : ...네? 성과장 : 회의에선 딱딱 필요한 말만 하면 돼.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마~
성과장 : 슬모씨 은근 눈치 없단 말야.
장슬모 : 아... 네.... 성과장 : 자, 또 다른 의견들 한 번 내봐. 의기소침한 슬모와 슬모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이대리 야외 정원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슬모 장슬모 : 왜 말도 함부로 못하게 한대... 치... 빵꾸똥꾸 같으니라구... 꽃아... 넌 참 예쁘기도 하구나.... 이대리 : 여기 좋죠? 이대리가 슬모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 ‘왁!’ 하고 놀라는 슬모 장슬모 : 대리님! 아...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아시구... 이대리 : 나, 여기 좋아해서 자주 와요. 슬모씨 나랑 취향이 비슷하네. 장슬모 : 하하... 그런가요... 이대리 : 나 사실 아까 슬모씨가 말한 드라마 엄청 재밌게 보고 있거든요. 장슬모 : 진짜요?! 와~~ 대리님 그런 거 안 볼 거 같았는데 보시는구나~~ 거기 그 제일 나이 많은 여자 완전 매력적이지 않아요?! 말투 진짜 쩔어요, 쩔어~~ 흥분해서 말을 하는 슬모 이대리 : 응응~~ 나도 그래서 그 말투 막 따라하고 그랬어요. 옷도 -막 - 츄리닝 같은 거 따라 입고! 장슬모 : 와~~ 대리님 뭘 아시네요! 전 그 드라마 아무도 안 보는 줄 알고 되게 외로웠는데~~ 이대리 : 슬모씨 나랑 취향이 비슷해서 잘 통하겠는데요? 앞으로 나랑 얘기 많이 해요. 장슬모 : 저야 완전 좋죠~~ 제가 또 다른 드라마도 보고 있... ‘ 이대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 이대리 : 자, 그럼 다시 힘내서 일하러 가볼까요? 장슬모 : 아.... 네... 하하... 들어가야죠... 일해야죠... 일... 사무실로 들어가는 두사람
옥상생활자들의 옥탑방
장슬모 : 회사에서는 진짜 내 목소리는 없어지는 것만 같아요. 내 목소리가 없어지는 그 자리엔 일 얘기만 남는 것 같고... 요정 : 당연하지~ 회사에서는 모든 것들이 효율적인 생산으로 이어지는 거야. 그러니 효율적이지 않은, 즉 쓸데없는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장슬모 : 그럼.... 회사에서는 편하게 떠들 수도 없는 건가요? 잡담이나 수다 같은 것도...? 커피를 잔에 따르고 있는 사자. 사자 : 생각해 봐. 너 회사에서 쓸데없는 얘기하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지? 장슬모 : ...네? 슬모 회의 할 때를 회상- 성과장 : 회의에선 딱딱 필요한 말만 하면 돼. 불필요한 말은 하지마~ 사자 : 일단 회사에서는 쓸데없는 잡담과 수다가 허락되지 않아. 그리고 만약 회사에서 잡담이나 수다를 떤다 해도 그건 결국 일로 연결될 거야. 수다 떨면서 기분도 풀었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지. 그게 바로 회사야. 슬모에게 커피를 주는 사자 슬모 이대리와 대화 나눴을 때를 회상 장슬모 : 제가 또 다른 드라마도 보고 있... 이대리 : 자, 그럼 다시 힘내서 일하러 가볼까요? 다시 현실 장슬모 : 진짜... 그랬던 것 같아요. 수다가 순수한 수다가 되지 않고 항상 일로 연결되는 듯한.... 호록- 잘마실게요- 필녀 : 우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필녀 핸드폰을 보다가 벌떡 일어섬 필녀 : 어떻게 5년 사귄 남자랑 헤어지는데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 거야? 핸드폰 동영상을 슬모에게 보여주며 말함 장슬모 속마음 :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다... 난보 : 왜요~ 당연한 거 아냐? 나 같으면 5년 사귀다 헤어졌음 신나서 방방 뛰었을 걸?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거잖아! 필모 : 야, 5년을 사랑했으면 두 사람은 거의 하나의 몸이 된 거야. 하나의 몸이 다시 둘로 헤어지는데 얼마나 아프겠어? 헤겔도 사랑은 하나가 되는 거라고 했잖아.
난보 : 하지만 바디우는 이렇게 말했죠. 황홀한 하나란 단지 다수를 제거함으로써만 둘 너머에 설정될 수 있는 거라고. 우린 각자 독립되고 개별적인 존재들이에요. 사랑해서 하나가 된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제거하면서 생기는 아주 일시적인 현상이라구요. 선배도 좀 환상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으로 사랑할 필요가 있어!
요정 : 난 그 돌싱남한테 자꾸 마음이 가던데. 사자 : 그건 네가 돌싱남이어서 그런 거지. 요정 : 크어어어~~~ 다신 결혼 안해!! 왁자지껄 한 모습을 보며 웃는 슬모 장슬모 속마음 : 뭔가 기분 좋은 수다야... 회사에서는 저런 얘기해도 다시 일 얘기만 하던데... 장슬모 : 저.. 그럼... 회사에서는 잡담이나 수다를 떨 필요도 없는 건가요...? 어떤 말을 해도 다 일로 연결될 테니... 요정 : 에이~ 그렇지 않아. 오히려 그럴 때 일수록 더 수다가 필요한 거야. 회사는 모든 대화를 일로 연결시켜버리지만, 수다는 그런 획일적인 대화를 벗어나는 거거든. 이를테면, 열린 이야기 방식이 수다인 거야. 사자 : 소쉬르와 라캉은 언어가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라고 봤어. 언어는 굉장히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잖아. 수다는 이 조직적인 구성을 벗어나 다른 세계, 혹은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 난보 : 빙고! 그래서 난 수다를 떠는 게 너무 좋아.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나랑 딱 맞잖아. 헤헷. 장슬모 : 그렇구나.... 그래서 힘든가봐요.... 난보 : 뭐가 우리 슬모를 힘들게 할까~? 난보가 슬쩍 슬모의 어깨에 팔을올림 사자 : 또 시작이네 필녀 : 슬모는 신경도 안쓴다, 난보야~ 장슬모 : 그게... 수다는 열린 이야기 방식인데... 회사는 닫혀 있는 곳이니까... 그래서 회사에서는 수다를 떨어도 결국 일 얘기만 하게 되고... 나의 진짜 목소리는 없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힘든 것 같아요. 사자가 슬모옆에 있던 난보를 밀며 사자 : 그걸 힘들게만 볼 필요는 없어. 수다는 너에게 동료를 만들어 주거든. 장슬모 : 동료...요? 사자 : 응. 네가 단순히 일하는 로봇이 되지 않도록,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동료.
요정 : 슬모 너, 철학이 영어로 뭔지 알아?
장슬모 : 철학이면... 필로... 소피...?(philosophy) 맞나요? 사람들 : 오~ 똑똑한데? 바보같아 보이더니.. 완전 의외 요정 : 맞아. 철학은 필로스(philos) + 소피아(sophia), 즉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철학자들이라는 의미야. 각자 자신만의 지혜로움으로 다양한 잡담이나 수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 거지. 바로 이 철학자들이 서로가 서로의 동료가 되어 주면서 밤새 수다를 떨고 그러는 거야. 술도 한잔 하면서! 요정 맥주를 들며 말함 사자 : 동료들이 모이면 새로운 세계를 그려볼 수 있어. 근사하지 않니? 그러니 슬모, 너에게도 잡담과 수다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단다. 장슬모 : 음... 동료라는 건 아마도... 선배들 같은 사람들이겠네요? 난보 : 물론이지! 네가 퇴근하고 여기를 찾아온 것도 아마 우리와는 잡담이나 수다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필녀 : 우와~~ 얘네들 다시 만났어! 역시 사랑은 위대한 거지! 헤어질 수 없는 거야~~ 난보 : 그거 잠시 만난 거에요. 다시 헤어져. 필녀 :으그그극~~~ 그건 스포잖아!!! 결말을 말하면 어떡해!!! 크크 웃는 슬모옆에 사자가 보면서 사자 : 회사에서도 너 스스로 동료를 만들어 봐. 진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장슬모 : 네!
회사 정원에 물을 주는 슬모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동료 만들기. 쉽진 않겠지만 뭘 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대리 : 또 여기 있었어요? 장슬모 : 아, 안녕하세요, 대리님~ 이대리 : 슬모씨는 엄마 같애. 뭔가 보살피는 일을 참 잘해. 장슬모 : 아니에요~ 그냥 날씨도 좋고 해서... 헤헤... 이대리 : 슬모씨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들 편하게 일하는 거에요. 새로 막내 들어 오면 슬모씨도 좀 나아질 거야. 장슬모 : 하하, 괜찮아요… 이대리 :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쉬다 들어와요~ 장슬모 : 아, 저기.... 대리님! 이대리 : 응? 장슬모 : 음...아...그러니까요...그게.. 이대리 : 응? 왜그래? 장슬모 : 퇴근하고 저랑 술 한잔 하시겠어요? 대리님이랑 수다떨고 싶어서요. 이대리 : 아하하~ 재밌어. 슬모씨. 그래요. 그럼. 퇴근하고~ ‘쉽진 않겠지만, 이렇게 조금씩 나아가는거지. ‘ -계속.
사자의 철학 코멘트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가 유지되고 영위되기 위해선 말이 허용되어야만 했어. 오늘날 도시적 삶이 건강해지기 위해선 수다가 잘 이루어져야만 하지. 현대적 수다는 SNS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대체로 그 형식이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유가 많아. 이른 바 ‘답정너’와 같은 현상이 그것이지. 그런 점에서 서로 맞지 않거나 다른 생각이나 주장들을 허용하는 수다는 민주주의 기본적인 조건이기도 해. 우리는 수다를 잘 떨 수 있는 몸을 갖추고 있는지 충분히 생각해보아야 할 거야. 직장이나 생활 영역에서 모두 나의 말과 다른 말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말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잘 구성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테니까.
작가의 한 마디
수다와 동료에 대해 생각을 더 해보고 싶은 분은 철학자 김영민의 <동무와 연인>과 그의 여러 책들에서 귀중한 사유의 고갱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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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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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