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철학

[연의 철학] 포기하는 용기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수연과 트렁크에 짐을 싸고 있는 재문
김수연 : 여행이요? 윤재문 : 네 속세와 떨어진 채 광활한 대자연의 품에 안겨보고 싶어서요. 김수연 : 작품구상을 위해 떠나고 싶다는 말씀이군요. ‘탁’ 커피잔을 내려놓는 수연 김수연 : 좋은 생각이네요. 전시회 일정에 차질만 없다면... 짐이 쏟아지는 소리가 남 ‘와쟝창’ 윤재문 : ... 김수연 속마음 : 이 자식 설마.. 김수연 : 그래서, 언제 돌아오는데요? 또 짐이 쏟아지는 소리 ‘콰장창’ 김수연 : 설마 내년에 온다거나 후년에 온다거나 아예 안온다거나 그래서 전시회를 못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죠? 재문 철렁하며 윤재문 : ...귀...신...이다... 재문의 짐이 날라다니며 ‘우당탕!!’ 김수연 : 누구보고 귀신이라는 거예요! 당장 짐 푸세요!! 한 할머니가 ‘달칵’ 문을 열며 들어옴 할머니 : 음? 우리화가양반... 무진장 바쁠 때 내가 왔나보네. 눈치없게 껄껄. ‘GG’를 치는 재문 위에 올라타 있는 수연 김수연 : 아, 아니... 이건... 윤재문 : 앗! 김치 할머니!! 김수연 : 응? 김치?
할머니 : 김치 갖고 왔네. 그간 잘 있었는가?
연(緣)의 철학 4화 – 포기하는 용기 윤재문 : 네? 할머니 이사가요? 할머니 : 우리 영감이 하도 고향, 고향 졸라대서 말이야. 윤재문 : 하하, 여전히 금슬이 좋으시네요, 두분은. 소파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재문과 할머니, 수연은 부엌에서 ‘투덜투덜’함 할머니 : 아이고, 아니야! 옛날에는 사이가 엄청 나빴어! 할머니 민망한지 재문을 ‘퍽’ 때리고 윤재문 : 윽! ‘욱신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는 재문 윤재문 : 네? 할머니 : 아니, 나빴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싫어했지. 돈도 없고, 학교도 못 나오고, 그저 그런 못생긴 농사꾼이었거든. 할머니의 회상- 혼례를 치루고 울고 있는 젊었을 때 할머니와 지켜보는 남편 할머니 : 부모님들끼리 한 약속 때문에 억지로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이... 어찌나 억울하고 분하던지, 하지만... 할머니가 무거운 상을 옮기는 것을 돕는 남편, 땀 흘리며 일하는 남편의 땀을 닦아주는 모습, 같이 요리하고 과일을 잘라 먹는 모습들을 회상
남편의 볼에 뽀뽀를 ‘쪽♡’하는 할머니와 쑥스러워 하는 남편의 젊을적 모습회상
할머니 : 살다보니,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조건이 다가 아니더이다. 그러니 두 사람도 싸우지 말고. 응? 할머니 재문과 수연의 손을 ‘꼬옥’ 맞잡게 함 할머니 : 살 부대끼며 함 살아봐. 김수연 : 잠깐만요, 할머니! 저희 사귀는 거 아니거든요?!! 저 이 사람 안 좋아해요!! 할머니 : 나도 내 남편 안 좋아했어. 김수연 : 아니 그게 아니라!! ‘호로록’ 커피만 마시는 재문 해미가 일하는 갤러리- 해미는 작품을 보고 수연은 테이블에 엎드려있음 강해미 : 흐음, 그럼 이게 그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인거네? 수고했어, 수연아. 김수연 : ...해미야 난 잘생기고 돈도 많고 직업도 빵빵한 남친 갖는게 소원이었어. 근데...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걸까? 강해미 : 인간은 남들이 자신을 부모처럼 사랑해주길 바라지? 조건 없이 좋아해주길 원한다는 뜻이야. 김수연 : ? 강해미 : 하지만 다 큰 어른들의 만남은 늘 '조건'이 붙지.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상대에게 매달리게 되고 말아. 하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오래 정을 쌓으며 상대방을 그 자체로 의지하게 된 거야. 이런 사랑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아서 편안함을 주지. 김수연 : 응. 나도 이젠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김수연 속마음 : 학벌, 외모, 능력 따위 따지지 않고... ‘따릉~’ 수연의 핸드폰이 울림 김수연 : 내 여보세... 수연아빠 : 아빠다. 김수연 : 허엌 수연아빠 : 너 키 크고 잘생긴 변호사 사위 데려온다면서 왜 연락이 없어? 김수연 : 아, 그, 그, 그게... 김수연 속마음 : 큰일 났다! 결혼 깨진 거 알면 난리 날 텐데! 어떡하지?
연(緣)의 철학 4화 - 포기하는 용기
철학자문/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안광복
'조건 따지는 사랑'은 왜 불안할까요?
"내 애인은 돈 많고 집안 좋은데다가 학벌 뛰어나고 키 크고 잘 생겼으면 좋겠어."

대부분 사람들의 '소망'입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자신이 '속물'처럼 보일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나랑 마음만 맞으면 돼." 같은 소리들을 늘어놓곤 하지요.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우리의 속마음을 콕 짚어줍니다. 현대인은 늘 불안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어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애정결핍'에 시달리기에 불안합니다. 누구나 세상이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주길 바랍니다. 부모님이 나를 아껴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랑을 받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귀하게 대접받고 싶다면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니까요. 능력이 뛰어나거나 머리가 좋거나 집안이 좋거나 등등으로 말이에요. 조건 좋은 사람과 사귀고픈 마음도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들과 사귄다면 나의 가치 또한 그 정도로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잘나고 멋진 사람과 맺어지면 행복할까요? 조건을 보고 한 사랑은 늘 불안합니다. 상대도 내 '조건'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나를 볼 때마다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어쩌죠? 내가 잘나가는 사람이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습니다. 과연 상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할까요? 나 말고 나의 조건에만 끌리는 것은 아닐까요? 알랭 드 보통은 데이비드 소로의 유명한 말을 들려줍니다. "영혼에 필요한 것을 사는 데 돈은 필요하지 않다." 수연도 말합니다. 이제 학벌, 외보, 능력 다위 따지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충고입니다. 실연(失戀)의 상처는 영혼을 한뼘 높게 키우기도 합니다. 수연도 그런 것 같아요. 수연은 노부부의 사랑을 보며 비로소 '조건을 넘어선 사랑'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하지만 "키 크고 잘생긴 변호사 사위"를 바라는 부모님의 전화에 화들짝 놀라며 또다시 걱정에 빠집니다. 과연 수연은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다음 편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알랭 드 보통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책들은 현재 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그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놀랍도록 기이한 첫 만남에서부터 점차 시들해지고 서로를 더 이상 운명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이별까지,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그 메카니즘이 철학적 사유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는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20대의 재기와 30대의 깊이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새로운 글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 형식으로 문학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프루스트의 편지와 메모들을 인용하며, 프루스트가 겪은 잡다한 사건들은 물론 사생활까지도 인정 사정 없이 들춰낸다. 그는 또한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는 철학사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다룬 가장 탁월한 여섯 명의 정신에 눈길을 돌린다. 그리하여 돈의 결핍, 사랑의 고통, 부당한 대우,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순응에의 압력등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팬하우어, 니체의 처방전이 소개된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주 도망치고 싶은 이 '일'의 세계가 결국 우리 삶에 근본적인 '의미'를 주는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제작
와이랩
재아
그림
SE
자문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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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0-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