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미 : 슬럼프에 빠졌는지,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고 있어. 두 달 뒤에 전시회가 있는데... 좀 도와줘, 수연아. 어차피 너... 지금 백수잖아. 수연 ‘휘청~’거리며 가슴을 부여잡음 김수연 : 크윽! 강해미 : 부모님은 아시나 몰라. 물론, 난 얘기 안하지. 근데... 장담은 못하겠다. 킥킥킥 김수연 : ... 연(緣)의 철학 2화 - 나와 너 수연 ‘헉 헉 헉’ 거리며 숲을 찾아 헤맴 김수연 : 악마 같은 계집애. 그것도 친구라고... 그나저나 이놈의 작업실은 도대체... 어디에... 박혀있는... 거냐고!! 수연 소리치면서 발로 ‘콰�!!’ 밟았는데 ‘물컹’ 소리가 남 김수연 : 물컹? 수연 아래를 쳐다보니 사람이 누워있음 김수연 : 히이익?? 뭐 뭐야 이사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재문에게 ‘끼익’ 소리가 나며 누군가 들어옴 그런 누군가를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함 재문 : 나도 사랑해 사라 ‘번쩍-‘ 병실에서 누워 눈을 뜬 재문 재문 : 여기는... 김수연 : 정신이 드세요, 작가님? 여긴 병원이에요. 탈수로 쓰러지셨어요. 세상에, 얼마나 놀랐던지... 변사첸 줄 알았어요. 하아 재문 : ...누구신지... 재문 상체를 일으키는걸 수연이 도와줌 김수연 : 연의 갤러리에서 나왔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을 담당하게 될 매니저, 김수연이라고 해요. 재문 : 아, 갤러...! 제가 여기 얼마나 누워있었죠? 김수연 : 네? 한 세 시간 정도... 재문 자신에게 꽂혀있던 링겔바늘을 빼버림 ‘팟!’ 김수연 : 꺄악!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재문 : 사라를 찾아야 합니다! 김수연 : 네? 재문 :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야... ‘휘청’ 거리며 일어선 재문을 수연이 말림 김수연 : 잠깐만요! 작가님 컨디션 관리도 제가 할 일입니다. 제대로 설명을 해 주셔야 저도 도움을... 재문 : 그녀는 지금 홀몸이 아니에요! 김수연 : 뭣? 재문 : 제 탓입니다. 그깟 일이 뭐라고... 다음 나오는 재문의 이야기를 수연의 상상으로 사라는 여성으로 그려짐 재문 : 바쁘다는 핑계로 몇 번이고 사라를 무시했습니다. 사라는 언제나 나만 바라봤는데... 결국, 외로움에 지친 사라는 집을 나갔고... 돌아왔을 때는 아이를... 너무 화가 나서 그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려 했습니다. 사라를 지키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사라는 그걸 오해하고 다시 가출을... 이야기를 들은 수연은 ‘찌잉-‘ 하며 감동적이 눈으로 재문을 쳐다봄 김수연 : 작가님... 재문 눈물이 ‘뚝 뚝 뚝’ 흐르는걸 닦으며 말함 재문 : 전 사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김수연 : 어머... 재문 : 그러니 제발 저 좀 보내주세요. 김수연 : ...알겠습니다. 김수연 속마음 : 보고 있냐, 남동민? 김수연 : 저도 작가님과 함께 사라씨를 찾겠습니다. 김수연 속마음 : 이런 게 바로 사랑이라고! 눈물이 ‘그렁 그렁’ 한 눈으로 수연을 보는 재문 재문 : 네? 하지만... 김수연 : 작가님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저의 임무입니다. 사라씨의 인상착의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재문 : 그녀는 칠흑처럼 아름다운 흑발을 갖고 있습니다. 금색의 눈동자는 햇님을 닮아 반짝이고.. 목소리는 가냘프지만 사랑스럽습니다. 같이 풀밭을 뒤지면서 김수연 : 이런데에 진짜 사라가 있어요? 재문 : 네.. 이런곳을 좋아해요. 뒤에서 ‘바스락 타박타박타박’ 소리가 나자 둘이 뒤를 쳐다봄
재문 : 사라!! 김수연 : 잠깐 너 설마.. 재문 사라를 ‘꼬오옥’ 안고 사라는 ‘하�’거림 재문 : 아까는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다시 나 버리지 마. 김수연 : ...그게 사라? 장난해요? 지금 그깟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이 난리를? 재문 : 그깟이 아닙니다. 사라는 제 전부예요.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기분을 알 수 있죠. 사라 : 캬아악!! 재문 : 응, 나도 사랑해, 사라. 수연 질색인 표정으로 쳐다봄 해미가 다니는 갤러리- 김수연 : 그거 변태 아니니? 수연이 소리치면서 테이블을 침 ‘쾅!!’ 김수연 : 대체 고양이 한테 그녀가 뭐야, 그녀가! 사람도 아닌데! 해미는 신나하면서 그림에 쌓여있는 종이를 찢음
해미, 사라와 아기고양이가 그려져있는 그림을 확인함 강해미 : 재문에게 있어 사라는 '너'였던 거 아닐까? 내 전부를 바쳐 사랑해야 하는 존재인 '너'말이야. 사랑이 꼭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암튼 고생했어. 다음에도 부탁할게. 김수연 : 다음? 강해미 : ...사라가 또 가출한 모양이야. 그림을 못 그리겠대.
연(緣)의 철학 2화 - 나와 너
철학자문/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안광복
"나에게는 나만큼이나 소중한 누군가가 필요하다."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
어린왕자의 장미는 여느 꽃들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우는 어린왕자의 장미는 특별하다 했습니다. 어린왕자가 애정과 관심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왕자는 늘 장미를 걱정했습니다. 장미를 돌보는 일은 어린왕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도 자신만큼 자기의 장미의 가치를 알아보고 보듬을 사람은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화가 재문에게 고양이 '사라'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남들 눈에 사라는 별다를 게 없는 고양이입니다. 그러나 재문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대신하지 못할 주지 못할 존재입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은 내 인생의 전부가 됩니다. 내 삶도 더 의미 있고 소중해 집니다. 재문이 고양이 사라에게 그림 그릴 힘과 영감을 얻는 것처럼 말이지요.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1818~1965)는 사랑의 관계를 잘 정리해 줍니다. 부버는 관계를 '나-그것'과 '나-너'로 나눕니다. 마당에 선 나무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나무를 '가구 만들 재료'로 여길 때, 나무는 내게 '그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나무의 푸른 잎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시들해 보이면 걱정이 앞설 때는 어떨까요? 이 때 나무는 내게 '그것'이 아니라 '너'입니다. 친한 벗을 대할 때처럼 내 마음은 나무의 상태에 따라 널을 뜁니다. 나무를 챙기는 가운데 나의 영혼도 살갑고 오롯해 질 것입니다.
인간 사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숱한 사람들은 내게 '그것'일 뿐입니다. 가게에서 나를 맞는 점원, 음식을 전하러 문 앞에 선 배달부를 떠올려 보세요. 서로가 필요한 것이 있어 상대를 '이용'할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관계는 언제든 '너'가 될 수 있습니다. 단골이 되어 가게 점원과 깊은 우정을 쌓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경우 상대는 내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너'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나-너' 관계가 '나-그것'보다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과 얽히지 않으려 애쓰기도 합니다.
부버의 말을 직접 들어볼까요?
"인간 사이의 ('나-너') 관계가 항상 원만하고 즐겁지만은 않다. 때로는 폭력과 상처로 얼룩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와 살이 없는 대상으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느니,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삶을 살갑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이런 삶을 통해 우리는 신(神)에게로 다가갈 수 있으나, ('나-그것'의 관계는) 허무함으로 끝날 뿐이다."
재문은 고양이 '사라'와 '나-너'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수연에게 옛 연인 동민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수연은 동민이 이별을 통보하자, 바로 발길질을 하며 그를 밀쳐버렸습니다. '나-그것' 사이를 끊기는 쉽습니다. 필요해서 만난 사이라면, 서로에게 볼 일이 없어졌을 때 관계에 매달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나-너'의 관계는 어떨까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내 삶이 제대로 서려면 나에게는 나만큼이나 소중한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수연은 재문과 '사라'의 관계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수연이 아름다운 사랑을, 나아가 튼실한 인생을 가꾸려면 어떤 사이를 꿈꿔야 할까요? 수연의 성장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