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철학

죽음 앞에서

맛있는 철학 -Delisophy- 글/그림:권혁주
09. 죽음 앞에서 "절망은 자신의 자기에게 관계하는 관계의 결과로 발생한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준우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는다. 권준우: 택시!!! 준우, 자신 앞에 선 택시에 올라타며 말한다. 권준우: **병원으로 가주세요! 한 다리 위에 차들이 빠르게 이동하여 빛의 물결처럼 보인다. 그 속에 준우가 탄 택시 한대가 보인다. 권준우: 어, 나야.. 어.. 맞어.. 지금 가.. 나도 아직 몰라.. 가서 들어봐야지.. 병원 건물, 환자와 간호사가 보인다.
준우와 의사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의사: 아버지께서.. 대장암 3기로 진단되었습니다. 권준우: 아..암이요? 그..그럼 이제.. 얼마 못사시는 건가요? 의사: 아직 그렇게 속단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 대장암 3기의 경우에는 생존율이 50~60%가 되니까..열심히 치료를 받으시면.. 권준우: 치료를 받으면 완치 될 수 있나요? 의사: 생존율이란 것이... 어디까지나 확률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지.. 최악의 경우도 염두하셔야 합니다. 권준우: 최악의 경우라면.. 의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
충격을 받은 듯 한 준우의 모습
죽을 수도 있다고? 우두커니 병원 복도에 앉아 있는 준우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의 죽음.. 낯설다.. 아버지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껏 한번도 인식해본 적이 없었던 걸까..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리며 준우가 얼굴을 내민다. 똑 똑 권준우: 아버지?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가 보고 있는 준우의 귀에 고함소리가 들린다. 권회장 : 글로벌은 무슨 얼어죽을 글로벌!! 내 앞에서 글로벌이란 말을 쓰지 말라고! 고함을 치는 준우의 아버지 권회장의 모습. 권회장: 무슨 개나 소나 지들이 다 글로벌 기업이야! 직원1,2: 죄..죄송합니다..하지만.. 권회장: 뭐든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질 않는 구만! 어서 전화 연결해! 직원1: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권회장, 무서운 표정으로 고함을 친다.
권회장: 토달지 말고 어서 전화해!! 직원은 권회장의 눈치를 보며 뒤돌아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직원1: 네..네.. 회장님께서.. 잠시만요.. 직원은 권회장에게 휴대전화를 내민다. 직원1: 연결되었습니다. 준우는 휴대전화를 건넨 직원의 손을 붙잡으며 말한다. 권준우: 이제 그만, 하시지요! 늦었습니다. 이제 그만 나가주세요. 직원1: 네..? 저.. 그게.. 권준우: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십니다. 오늘은 이만 다들 돌아가 주세요. 권회장: 뭐? 뭐야? 지금은 니가 끼여들 때가 아니야! 권준우: 아빠!! 준우, 아버지를 향해 소리친다. 권준우: 아빤 가만히 좀 계세요!
링거병의 모습이 비쳐지며 누워있는 권회장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준우의 모습이 방안에서 보인다. 권회장은 팔을 들어 링거주사가 꽂혀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본다.
권회장: 대장암 3기라.. 권준우: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서 4기라도 완치할 수 있대요. 권회장:. 내가 암이라니.. 시계를 본 권회장이 말한다. 권회장: 늦었다. 이제 그만 가거라. 권준우: 아.. 네.. 그럼.. 내일 올게요.. 혹시 뭐 드시고 싶은거라도..? 권회장: 없다.
병실을 나가려던 준우, 아버지의 이야기에 고개를 돌린다.
권회장: 시래기국. 니 애미가 해주던 시래기국이 먹고 싶구나.. 권준우: 내일 올 때 가져올게요 권회장:. 준우야.. 이제 그만 나한테 져주면 안되겠냐.. 다음날 아침 준우의 집. 테이블엔 말린 멸치가 있고, 준우의 손엔 고추가루통이 들려있다. 권준우: 처음 해보는데.. 준우가 만들고 있는 시래기국이 보인다. 준우는 냄새를 맡아본다. 권준우: 냄새는 비슷한 거 같은데.. 준우, 만들어 놓은 시래기국을 먹어보며 갸우뚱 한다. 권준우: 엄마가 해주던 맛이 이랬었나? 암튼, 마지막까지..
주방에 서있는 준우의 뒷모습이 비쳐진다. 권준우: 시래기국이라니..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 Delisophy- 박준우의 음식이야기
시래기국 그림
한 레스토랑에서 돼지고기 스테이크 위에 장식으로 오른 처음 보는 풀잎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에 안절부절 했던 적이 있다. 먹으면 죽을 것을 올리지는 않았겠거니 싶어 당장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어보았는데, 이 이름 모를 것에서 미나리의 향이 나는 것이 아닌가. 파리 한복판의 식당에서 미나리를 씹고 있자니 그 기분이 무척이나 오묘했던 것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친구와 그것의 정체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결국에는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세워 그 정체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그것까지는 모르겠다며 우리가 원하면 주방에 들어가 셰프를 불러오겠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이미 나도 친구도 약이 오를 정도로 궁금했던 터라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잠시 후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와 "햇당근의 줄기랍니다."라며 짧은 대답과 윙크만 남긴 채 다시 퇴장하였다. '그렇지, 당근이 미나리 과였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왜 단 한 번도 이 줄기를 먹어볼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까 싶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2의 우승자 최강록씨와 요리강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파뿌리를 깨끗이 씻어 기름에 튀겨 먹는 방법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이처럼 우리가 손질 후 흔히 버리고 마는 재료들도 얼마든지 요리로 활용하여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사실 이런 이야깃거리는 양식이나 일식보다도 한식에 더 많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런 재료의 활용 방면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왔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에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기 보다는 그들이 지닌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성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소 한 마리를 버리는 것 없이 다 먹는다는 것이야 유럽도 마찬가지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화에서 처음으로 시래기 찌개를 끓여보면서 무라는 메인 재료의 '끄트머리'일 뿐인 무청을 이용해 만들어 낸 시래기라는 식재료는 정말이지 놀랍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내게 이 재료를 주며 유럽식 요리를 해보라고 한다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무가 가진 알싸한 맛을 가진 무청을 말려 끓이면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구수한 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는 재료로 거듭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요리자문/에세이
박준우 기자(마스터셰프 코리아 준우승자)
감수
신승철(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
글/그림
권혁주(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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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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