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정언명법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는 것을 의욕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학과장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는 학과장과 권준우 권준우 : 근데.. 학과장님께서 어쩐 일로.. 학과장 : 일은 무슨 일~ 그냥 워째 지내는지, 안부나 물어볼라코 부른게지~ 상영이~ 아니 긍께~ 니 아부지는 안녕하시고? 그나저나 글마는 요즘도 니 철학하는 거 반대해 쌌냐? 권준우 : 아, 네... 여전하시죠.. 학과장 : 이건 그냥..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디..
학과장 : 오해하지 말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라~ 알겄제? 권준우 : 아, 네... 말씀하세요.. 학과장 : 이번에 니가 새로 만든.. 거시기.. 뭐라캤지? 요리철학? 맞나? 권준우 : 아! 맛있는 철학이요? 학과장 : 그려, 마있는 철학! 지난번 교수회의에서 얘기가 나왔는디.. 몇몇 교수들이 걱정을 해싸질 않것냐~ 신성한 학문의 전당에 상업적 문화를 끌어들여 세속화 시킨다는 의견이 있드라고~ 철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어떤 교수는 그게 무슨 철학이냐고! 곡학아세를 한다고 하더라니깐! *곡학아세(曲學阿世) : 학문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한다. 권준우 당황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권준우 : 고..곡학.. 곡학아세라뇨.. 하지만..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게.. 요리를 철학으로.. 아니, 철학을 요리로.. 학과장 : 하하하!! 그려~ 내가 잘 알지~ 알아! 자네 의도를 내가 모르겠나? 그렇지 않아도 나도 교수들에게 걱정을 하덜 말라고~ 이 친구가 기본기가 있으니 잘 할거라고 해부렀어~ 아까도 말했지 않나?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고~
권준우 : 네... 명심하겠습니다.. 권준우 학과장에게 머리숙여 인사 학과장 : 아버지께 안부 전허고~ 권준우 : 네, 선생님~ 공원 벤치에 안장서 하늘쪽을 쳐다보고 있는 권준우 ‘곡학아세? 그게 무슨 철학이냐고? 인간이 먹고 사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데.. 칸트도 '철학'을 가르칠 순 없고, '철학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했는데.. 요리든 뭐든 철학하는 법을 배우면 되는거 아냐?’ 생각하고있는 권준우 곁으로 친구 신명호가 음료수를 들고 다가옴 신명호 : 여어~ 꼬뺑~ 준우~ 학과장 면담은 잘 했어? 권준우 : 잘 하긴~ 완전 부담주던데? 신명호 : 요령껏 해~ 요령껏~ 캔 음료수를 땀 치익-
권준우 : 근데 넌 괜찮은 거야? 뉴스에서 논문 표절이라고 난리던데.. 신명호 : 야, 말도 마! 내가 그것 때문에! 살다살다 별의 별.. 정말 어휴~!! 출처를 다 밝혔는데 무슨 표절이야~ 표절이!! 권준우 : 뭐야? 그럼 누가 널 모함하려고 기자한테 정보를 준거야? 신명호 : 아오!!! 누군지 걸리기만 해봐라!! 내가 아주 그냥 작살을 내버릴테니까!! 권준우 : 그래서.. 어떻게? 해결 된 거야?? 신명호 : 야! 내가 누구냐? 내가 원래 이런거 처리는 깔끔하잖아? 말하면서 신명호 쓰레기통으로 캔을 농구공 골넣듯이 던짐 신명호 : 하지만... 뭐... 꼭 나쁘지만 않아~ 이번 사건으로 내 인지도가 20% 상승한 효과가 있었으니까~ 권준우 : 그런 것까지 계산하다니!! 암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신명호 : 메디치 컴플렉스? 레스토랑이야? 권준우 : 얼마 전에 이곳 사장님한테 꼭 한번 들리라고 문자가 왔거든.. 근데 문을 닫았나? 그냥 딴 데 갈까? 권준우가 Close 판넬이 붙어있는 문안쪽을 살펴보다가 사장이 나옴 레스토랑사장 : 권교수님! 와주셨네요! 꼭 와주시길 바랬습니다!! 권준우 : 근데 어디 이사가세요? 레스토랑사장 : 가게가.. 좀.. 아하하.. 그게.. 사정이 좀 생겨서.. 일단 좀 앉으세요~ 늘 드시던 벨기에 갈비찜으로 드릴까요? 권준우 : 네, 감자도 많이 넣어주세요! 자리에 앉은 권준우와 신명호 신명호 : 그건 그렇고, 수업은 어떻게 할거야? 계속 밀어 붙일거야? 권준우 : 어? 계속 밀어 붙이다니? 신명호 : 학과장님께서 직접 불러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적당히 알아서 고치라는 거잖아? 권준우 : 뭐? 그게.. 그런 뜻이야?
권준우 : 강의계획을 바꾸라고? 신명호 : 교수님들한테 밉보여서 안돼.. 잘 생각해봐.. 그나저나 음식이 너무 안나온다.. 레스토랑사장 : 아이고~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카르보나드 플라멍드(Carbonnade a la Flamande)라는 정통 벨기에식 요리입니다! 권준우 : 우와~!! 감자를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만들 수 있죠? 그냥 으깨면 되나요? 레스토랑사장 : 감자퓌레요?
권준우 : 네? 정말요? 그거 영업비밀 아닌가요? 레스토랑사장 : 가게 문 닫는 판국에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 주방으로 들어오시죠~ 신명호속마음 :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겨우 한 접시.. 너무 적어.. 왜 망하는지 대충 알겠다.. 주방 안- 권준우 : 정말 배워도 될까요? 레스토랑사장 : 그럼요~ 근데 별거 없어요~ 먼저 감자를 삶기 전에.. 껍질을 벗겨서 잘게 깍뚝 썰어주세요~ 그리고 물에 세 번 정도 행궈주세요~ 레스토랑사장이 감자를 ‘깍뚝 깍뚝’ 썰고 물에 행굼 권준우 : 어? 감자를 물에 씻는다고요? 레스토랑사장 : 우리나라 감자는 전분이 많아서 물에 씻어주면 더 좋더라구요~ 그래야 훨씬 더 부드럽게 으깨져요.. 권준우 : 아..그럼..이게 벨기에 정통 요리법인가요? 레스토랑사장 : 아니요~ 이건 그냥 하다보니 우연히 알게된 노하우예요~ 권준우 : 아, 그렇군요.. 신명호 주방으로 권준우의 핸드폰을 갖고 얼굴을 내밀며 신명호 : 준우야! 전화왔어!
- Delisophy- 박준우의 음식이야기
벨기에를 방문하는 지인들의 여행을 안내하다 보면 그들은 내게 점심이나 저녁을 사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 다만 장소 선정은 당연히 현지에 사는 나의 몫인데, 대게 광장의 적당한 브라스리나 비스트로를 찾는 편이다. 현지의 전통 음식을 맛 보는 것도 여행 중 좋은 추억이 될 테니 나는 동행에게 되도록이면 벨기에의 색이 짙은 요리 몇 가지를 우선적으로 추천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카르보나드 플라멍드(Carbonade Flamande)이다. 사실 이 명칭은 불어권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실제 이 요리의 고향인 플란드르의 지방어로는 'Stoofvlees'라고 한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맥주를 이용한 소고기 스튜지만 상대방에게 정확한 요리방법을 설명하기도 번거로우니 빠르고 정확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맥주가 들어간 벨기에식 갈비찜'이라고 설명하고는 한다.
물론 이 요리에는 갈비찜이 가지고 있는 간장의 맛이나 설탕이나 과일즙에서 오는 단맛은 없다. 하지만 걸쭉한 소스 안에서 거무죽죽한 색을 띤 소고기 조각들은 아무래도 갈비찜을 연상시키는 지라 항상 그런 식으로 설명 하고야 만다. 사실 갈비찜 보다는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적포도주를 이용하여 만드는 '뵈프 부르기뇽'이나 '꼬꼬뱅'과 비슷한 요리로, 적포도주 대신 벨기에 산 진한 갈색 맥주를 이용하는 오븐요리다. 냄비에 양파와 고기를 볶다가 맥주를 부으면 뜨거운 냄비 바닥은 치익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맥주를 사방으로 튕겨내며 재료를 끓여낸다. 맥주의 알코올 성분이 양파, 소고기의 향과 결합하여 맛이 우러나면, 잔여의 알코올이 날아갈 때까지 어느 정도 졸이다 소고기 육수를 넣고 끓인 후 오븐으로 옮겨 다시 장시간 익혀 완성시키는 부드러운 소고기 요리이다.
기껏해야 투박한 한 그릇의 요리일 뿐이지만, 벨기에 도시의 광장 구석에서 이것을 감자튀김과 함께 먹으면서 양질의 맥주 한 잔을 반주로 곁들여 보았다면 그는 짧은 여행치고는 벨기에라는 나라를 꽤 깊숙이 느껴보고 가는 것일 거라고 10년 차 벨기에 가이드는 자주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