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철학

희망의 원리

맛있는 철학 -Delisophy- 글/그림: 권혁주
07. 희망의 원리 "희망은 언제나 환멸을 동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준우와 하연의 집. 하연, 포크를 내려 놓는다. 탁- 권하연: 그만 먹을래 너무 달아... 하연을 험상궂게 바라보고 있는 준우, 뾰루퉁한 모습의 하연. 권준우: 뭐라고! 겨우 한 입 먹고 어떻게 맛을 평가해?! 권하연: 헐 아빠... 권하연: 바다를 다 마셔봐야 바닷물이 짜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뻘쭘하게 긁적이는 준우의 모습. 권준우: 음.. 그렇긴 하지.. 권준우: 흠 난 괜찮은데? 방으로 들어가고 있는 하연의 모습. 권하연: 많이 드셔~ 하연의 방이 보이고 책상 위에는 핸드폰 진동이 울리고 있다. 부르르르~
하연은 진동이 울리는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건 상대방을 확인한다.
권하연: 뭐...?? 발신자표시제한? 권하연: 국제전화인가? 그럼 엄마.? 하연은 전화기를 내려 놓으며, 권하연: 아냐~ 그냥 스팸일거야! 하연은 침대 위에 앉아 계속해서 진동이 울리고 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권하연: 엄마가 이 시간에 전화 할 리가 없지 찬장에서 뭔가를 찾는 준우의 모습 권준우: 타르트 위에 레몬을 얹어볼까? 준우 뒤에 있는 테이블에서 울리는 핸드폰 삐리리리리~ 권준우: 여보세요? 은영씨? 준우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와이프 은영 은영: 여보! 나야, 미안한데 돈 좀 송금해주라~ 권준우: 어? 돈? 갑자기 왜? 또 무슨 일 생겼어?
은영: 지금 스트라이크 때문에 은행이 마비 되어서 돈은 찾을 수 없거든... 내 한국 계좌로 보내면 ATM으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준우, 전화 통화를 하며 종이와 펜으로 받아 적을 준비를 한다. 권준우: 뭐야~ 상황이 그러면 귀국 해야지~ 이게 벌써 몇 년 째야? 일단 계좌번호 불러봐~ 은영: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래~ 암튼 오늘 중으로 꼭 보내줘~ 아 그리고.. 요즘 하연은 무슨 문제있어? 왜 전화를 계속 안받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권준우: 진짜? 전화 한다고 했는데? 어휴 ~ 정말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준우 하연의 방을 바라보며 은영과 통화한다. 권준우: 요즘 연이가 더 까칠해졌어... 좀 이상해 사춘기인가? 요즘에는 뭘 해줘도 잘 먹지도 않는 것 같아... 은영: 돈가스 해줘봐~ 하연이가 어렸을 때 아주 좋아했던 그거 있잖아~~ 밀라노식으로 빵가루에 파마산 가루 넣어서~ 권준우: 밀라노식? 뭐? 꼬똘레따? 난 그거 할 줄 모르는데... 은영: 아주 간단해~ 내가 레시피 알려 줄께~ 카메라맨: 지부장님 촬영준비 다 끝났어요! 은영: 아, 네~~ 금방 갈게요~ 여보 나중에 통화해! 오늘 꼭 입금해 줘야해! 알지?
은영 촬영지로 이동하며,
은영: 자자, 이제 시작해봅시다! 한 마을의 이미지가 보인다. 앵커: 오늘은 방글라데시 외곽에 위치한 담배공장을 찾아 왔습니다. 앵커는 인터뷰를 하고 있으며, 카메라맨이 현장과 앵커를 촬영 하고 있다. 앵커: 이곳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노동현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5살 때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는 11살 소녀를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앵커와 통역을 하는 은영, 그리고 인터뷰에 참여한 모슈미라는 소녀가 보인다. 앵커: 안녕! 넌 이름이 뭐니? 통역해주세요. 은영: 아쁘날 남 끼? 모슈미: 모..모슈미.. 앵커: 모슈미! 이름이 참 예쁘구나~ 일하는게 힘들지 않니? 괜찮아? 은영: 죄송하지만, 그런 식으로 질문하면 아이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없어요! 앵커: 네?? 무슨 말씀이죠? 은영: 이곳에는 "NO"라고 말하는 문화가 없어서 괜찮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대답하거든요. 앵커: 아.. 그렇구나.. 앵커: 그럼, 꿈이 뭐냐고 묻는 건 괜찮나요? 은영: 네, 물론이죠..
앵커는 모슈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으며 은영은 뒤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앵커: 모슈미.. 한가지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너는 꿈이 뭐니? 모슈미: 꿈? 앵커: 그러니까.. 나중에 꼭 이뤄지길 바라는 거 말야~ 모슈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한다. 모슈미: 엄마.. 엄마랑 함께 살고 싶어요. 은영: ‘모슈미...’ 은영의 눈에 비친 모슈미의 모습은 자신의 딸 하연과 닮아 있다. 모슈미에게 자신의 딸 하연이 겹쳐 보인다. 권하연: 나도 엄마랑 함께 살고 싶어요! 은영은 그런 하연의 과거 모습을 회상하며 눈물 짓는다.
하연은 자신을 두고 꿈을 좇아 간 엄마를 원망하듯 말한다.
권하연: 엄마 꿈이 그렇게 중요해? 가! 가버려!! 은영: ‘하연아...’ 은영은 하연의 모습이 비춰 보이는 모슈미를 안아준다. 모슈미와 앵커는 그 모습에 당황한다. 그날 저녁 준우의 집. 준우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은영과 통화를 하고 있다. 준우: 어, 마카로니는 끓이고 있어.. 버터? 버터를 냄비 안에 중탕으로 끓이고 있는 준우. 권준우: 어, 버터도 중탕으로 끓이고 있어. 빵가루는 밀가루랑 계란 풀어서 그냥 묻히면 되지? 은영: 어, 맞어! 전 부칠 때처럼~ 은영: 빵가루 위에 파마산 치즈가루 섞는거 잊지 말고~ 어때? 간단하지? 프라이팬에 얹은 돈가스 옆에 정제된 버터를 두르는 준우. 권준우: 어, 정제된 버터라서 그런지 잘 안타네~ 자기껀 어때? 다 됐어? 은영: 나도 이제 송아지 얹었어. 준우는 접시 위에 돈가스를 자르고 있다. 권준우: 응? 송아지? 돼지고기 아니고?
은영: 여긴 돼지고기 안 먹잖아~
권준우: 맞다..거기.. 방글라데시였지 은영: 술은 아예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니까~! 은영 벽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며, 권하연: 아빠! 무슨 요리해? 냄새 좋은데~ 권하연: 이거 엄마가 해주던 밀라노식 돈가스 아니야? 권준우: 어, 맞어! 엄마가 알려준 그대로 만들고 있어! 은영: 어? 하연이니? 집에 있었네? 은영: 연아, 너 왜 엄마 전화 안받니? 권하연: 미안, 스팸 전화인 줄 알고 안받았어~ 은영: 아~ 그랬구나~ 하긴~ 요즘 한국에서 보이스피싱이 심하다고 하더라~ 역시 우리딸~ 그건 그렇고~ 오늘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는데~ 권하연: 몰라~ 관심없어~ 은영: 모슈미라는 아이를 만났는데~ 방글라데시의 한 건물 안에서 은영이 준우와 통화를 하고 있다. 은영: 아냐, 괜찮아.. 혼내지마.. 어, 입금된거 확인했어.. 고마워.. 은영이 눈을 감고 생각한다. 희망이란,
밝고 미래를 선취한다는 점에선 좋을 수 있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현재를 유보시킨다는 점에선 기만적일 수 있다. 누군가가 은영의 집 벨을 누른다. 띵동~ 은영: 누구세요? 은영, 자신의 집을 찾은 모슈미를 환영하며, 은영: 모슈미구나!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와~ 모슈미: 아쁘니 발로아첸?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 Delisophy- 박준우의 음식이야기
돈까스 그림
한 식당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단 둘이서 돈가스를 먹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가 늦어서 자기 혼자 밥을 차릴 엄두는 나지 않았고, 배달 음식을 시키기에는 아이에게 미안해 돈가스집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세한 속사정까지야 알 수 없겠지만 아무튼 가게 안 그 들의 모습은 참 좋아 보였다.

요즘에는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예전에는 이것이 꽤나 고급요리 대접을 받았던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데이트 코스 중에 이른바 칼질을 하러 가는 곳이 이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팔던 경양식집이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때 사람들이 자신의 우아함을 뽐내기 위해 이 음식에 커틀릿이라는 꽤 느끼한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했었다. 경양식집에서 사람들은 앞에 놓여진 메뉴판을 들고 포크 커틀릿과 비프 커틀릿 사이에서 몹시 고민해야만 했던 것이다. 사실 포크와 비프 사이의 고민이라기 보다는 돈가스를 돈가스라 부르지 못하는 곤욕스러움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지만 말이다.

돈가스는 본래 일본에서 온 단어로 '가스'는 일어 카츠레츠에서, 그리고 카츠레츠는 커틀렛에서 변형되어 온 것인데, 이 커틀렛은 갈비를 뜻하는 프랑승의 꼬뜰레뜨(Cotelette)나 이탈리아어의 꼬똘레따(Cotoletta)에서 왔다고 한다. 어원이야 어찌되었든 빵가루를 묻혀 지져내는 송아지 고기요리의 원형은 이 두 나라가 위치한 유럽대륙이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원조집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두 지방의 차이를 굳이 들자면 밀라노의 꼬똘레따는 뼈가 붙은 채로 요리되어 나오고, 빈의 슈니첼은 순살로 나온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니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현재 한국에서 먹는 돈가스의 모습은 빈의 슈니첼과 비슷할 것이다.

사실 꼬똘레따고 슈니첼이고를 떠나 돈가스는 이미 한국음식이라고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갈색의 질척한 소스를 뿌려 서걱서걱 잘라먹는 이 정겨운 음식을 이제는 전문점은 물론이고, 기사식당이나 휴게소에서까지 쉽게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요리자문/에세이
박준우 기자(마스터셰프 코리아 준우승자)
감수
신승철(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
자료협조
김진국(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 사무장)
글/그림
권혁주(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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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1-1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