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도덕 감정론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연민과 동정심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대학강의실 권준우 시점 ‘한때는 라이벌이었던 내 친구가..’ 준우, 교수 신명호라고 팻말이 붙어 있는 한 교수실 앞에 서서 생각한다. ‘어느새 벌써 전임교수가 되다니!’ ‘그 동안 나는 대체 뭘 한거지..?’ ‘나도 좀 더 일찍 귀국할 걸 그랬나..?’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준우. 신명호: 준우? 여긴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신명호: 훗 참 빨리도 들렸다~ 들어와서 차나 한 잔 마실래? 친구인 신명호 교수실 안에 들어와 놀라는 준우. 권준우: 이야~!! 연구실 좋네~ 신명호: 그쪽에 앉아~ 커피 괜찮지? 권준우: ‘아오.. 배 아파..’ 신명호는 그런 준우의 모습을 흘끔 쳐다보며 웃는다. 신명호: 피식~ 권준우: ‘뭐지..? 이 기분은..?’ 위에서 비춰지는 준우와 명호의 모습 ‘내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데..?’ 테이블 위 커피를 마시는 준우. 권준우: 선정이.. 아니, 제수씨는 잘 지내고? 신명호: 제수씨가 아니라 형수님이지~
신명호: 이번에 개설한 신규강좌 반응이 좋다며? 권준우: 그냥.. 그렇지 뭐.. 신명호: 원래 네가 요리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 전공과 접목시킬 생각을 하다니! 신명호: 요리를 처음 시작한 건 언제야? 이태리에 있을 때였나? 권준우: 뭐.. 그런 셈이지..홈스테이 아저씨한테 귀동냥으로.. 갑자기 울리는 전화기 소리 삐리리리리리~ 신명호: 아, 미안.. 잠깐 전화 좀 받고.. 권준우: 괜찮아~ 받어~ 뒤돌아 누군가와 통화하는 명호 신명호: 여보세요? 네, 네, 맞습니다. 네, 네.. 그러시죠. 괜찮습니다. 전화통화를 하며 준우를 뒤돌아 바라보는 명호. 신명호: 네? 지금 바로요? 권준우: 오라고해~ 난 이제 그만 갈테니까~ 준우,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윽~ 신명호: 미안~ 갑자기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권준우: 아냐~ 나도 그만 일어나려고 했었어~ 명호, 밖으로 나가는 준우를 문 앞에서 배웅한다. 신명호: 우리 언제 시간되면 술이나 한 잔 하자~ 권준우: 그래~ 연락할게~
권준우: 뭐? 이사? 거길 왜? 준우, 당황하며 권준우: 뭐? 이사는 이삿집 센터에서 알아서 해주는데 뻘쭘하게 그런 곳에 왜 가?? 신명호: 그렇게라도 한 번 더 찾아뵙고 얼굴 도장도 찍고 그러는거야~ 권준우: 그래도 그건 좀.. 그렇지 않나? 신명호: 배가 덜 고팠네.. 하긴.. 너야.. 신명호: 암튼, 연락해~ 내가 선배로서 한 수 가르켜 줄테니까~ 권준우: 됐거든~ 준우 옆을 지나쳐 달려가는 방송국 앵커와 카메라맨 후다다닥~ 앵커 및 카메라맨: 저?다!! 준우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권준우: ‘아오.. 배아파..’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대학 캠퍼스를 걸어가고 있는 준우의 모습 도덕감정이란 것이 있어서 타인의 기쁨을 공감할 수 있고.. 걷고 있는 준우의 발과 모습이 점차 멀어지며 보인다. 타인의 슬픔에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고 했는데.. 왜 나는... 녀석에게 질투심만 느끼게 되는 거지??
10년전, 에펠탑의 모습 프랑스 파리.. 준우, 수프스톡을 물에 넣는다. 신명호: 준우! 뭐하냐? 뜨거운 물에 들어간 수프스톡을 주걱으로 젓는 준우의 모습 권준우: 선정이가 몸이 안좋다고 해서 수프 좀 갖다주려고.. 신명호: 근데 왜 그렇게 서둘러? 뭐가 바뻐? 권준우: 페이퍼를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데... 아직 시작도 못해서.. 그런 준우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명호의 모습. 권준우: 양파수프는 끓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 정성없이 만들 수 없거든.. 신명호: 그럼 내가 대신 갖다줄까? 어차피 나도 그쪽으로 갈 일이 있는데..
신명호: 고맙긴~ 우린 꼬뺑이잖아~ *꼬뺑(Copain):친구, 동무 수프와 함께 전달할 편지를 적는 준우. 권준우: 잠깐만.. 기다려봐.. 신명호: 유치하게.. 편지는.. 준우, 명호에게 도시락에 담긴 수프를 건넨다. 권준우: 부탁할게~ 고마워~ 신명호: 걱정마~ 선정의 집. 편지 글 : 선정아! 많이 아프지.. 직접 전하지.. 준우의 편지를 읽는 명호의 모습. 씨익 웃으며 편지를 구겨버린다. 벨을 누르는 명호. 띵동~ 선정: 누구세요? 신명호: 나야! 명호~ 아프다며? 선정의 집 앞에서 준우가 끓인 수프를 들고 편지를 꾸깃꾸깃 접고 있는 명호의 뒷모습
권준우: ‘뭐.. 그런게.. 인생이니까..’ 준우 잔에 따른 와인을 마시며. 권준우: ‘C'est La Vie!’ 권하연: 아빠! 저것 봐!! 저 아저씨.. 아빠 친구 아냐? 권준우: 뭐? 쇼파에 앉아 티비를 보는 준우와 하연의 모습. 권준우: 어? 명호? 오늘 만났었는데? 권하연: 저 아저씨 논문 표절했대~ 헐.. 대박사건~ 뉴스앵커: 모**대학교 신명호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의혹을 받으면서 교수직 박탈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뉴스에 씨익 웃음을 짓는 준우의 모습.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거지?’ ‘타인의 불행에서 연민을 느끼는 것이 정상일텐데..’
‘내게는 도덕적 감정 따윈 없는 것일까..?’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준우의 뒷모습. 권준우: 여보세요? 어, 신혁아.. 술이나 한잔 하지.. - 다음 화에 계속 됩니다.
- Delisophy- 박준우의 음식이야기
일과 관련해 누군가를 만날 일이 있었다. 사담 중에 우연히 국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그가 프랑스에서 장기간 생활한 경험이 있던 지라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양파수프로 흘러갔다. 거무죽죽한 국물에 걸쭉할 정도로 풍성하게 흐물거리는 양파 건더기. 그리고 그 위에 얹어져 국물을 머금고 폭신해진 토스트와 다시 그 위 그릴로 바삭하게 구워진 치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분명 방금 전까지 꽤 날을 세운 말투로 회의를 진행하던 그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묘하게 누그러져 나와 대화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추운 거리를 걷다 실내로 몸을 피해 뜨끈한 국물을 먹은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그는 맛있는 양파수프의 비법은 역시 정성이라고 했다. 양파는 가늘게 썰어 버터에 볶아야 하는데, 이 때 약한 불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얼마나 정성껏 볶아주느냐가 맛의 관건이라고 말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만 한 시간 이상을 쓴다고 했다. 확실히 양파수프는 양파를 태우지 않고 짙은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 그 특유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처럼 성실하거나 마니악하지는 못한 성격이라 양파를 볶는 데에 그 정도까지의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와 나의 다른 점을 굳이 따질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양파수프의 약간은 그로테스크한 치즈의 모습은 레스토랑에서나 사용하는 살라만더라는 특수한 그릴에서 그릇 채로 구워져 나오는 것이다. 집에는 당연히 그런 장비가 없으니 나는 빵 위에 치즈를 올린 올려 오븐에서 따로 구워 완성된 수프에 빠뜨린다. 그럼 오븐에서 바삭해진 빵은 수프를 머금어 부드러워지고, 치즈는 한동한 바삭함을 유지해 얼추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나의 이런 재기발랄함을 들은 상대방은 그다지 감탄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 사이에는 서로 상황을 조금씩 양보할 흐물거리는 양파 건더기가 자리잡은 뒤였다.